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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 879화

214장 투항의 조건 (2)

전자 주가가 점하를 찍었을 때, 이 현덕 부회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사장과 임원들을 호출해서 불호령을 내리며 그들의 무능함을 꾸짖었다.

"다들 비싼 연봉 받아가면서 모두 퍼질러 놀고만 있었습니까! 이런 일이 생길 때까지 대체 방법을 찾지 않고 뭘 한 겁니까!"

"……."

"옵테인 메모리? 그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출시됐습니까? 이미 몇 년도 전에 출시된 제품입니다! 그때 다들 뭐라고 했습니까?"

"……."

"단가가 너무 터무니없다, 시장성이 전혀 없다, 아랍 왕족들이나 쓸 법한 가격이다. 그렇게들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현덕은 숨을 한 번 고르고, 토해내듯이 외쳤다.

"그런데 지금 이게 뭡니까!"

"……."

"다들 왜 말이 없습니까, 왜! 다들 대체 왜!"

얼마 전 옵테인의 가격이 현실적인 수준으로까지 떨어졌을 때도, 이현덕은 긴장하지 않았다.

가격을 낮췄어도 여전히 비싼 탓에 점유율이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초고사양을 추구하는 게이머들이나 썼지, 일반 PC 사용자나 기업은 그리 반기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역전이 돼버렸다.

심지어 타이밍도 공교롭다.

'하필 래플과 파트너쉽을 맺은 이후에 이런 게 터지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서진파운드리가 숨기고 있다가 노린 게 틀림없었다.

지금 딱 코스트다운을 실현할 공정이 완성되었다는 것은 너무 억지이지 않은가.

"다들 입 꾹 닫고 있지 말고 대응방법을 말해보세요."

"……."

"무리한 아이디어라도 좋습니다. 아이디어를 가지고 질책하지 않을테니 편안히 말해봐요. 내가 책임을 지고 사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도 좋습니다."

"부, 부회장님!"

"정말 물러나겠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어떤 아이디어는 페널티 안 주고 귀 기울여 듣겠다는 겁니다. 그만한 위기 상황 아닙니까?"

그제야 임원들이 하나둘씩 자기 생각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대체로 조심스러운 대응책.

밀어내기 전략이라든가 판촉이라는가, 아니면 양산 직전인 신제품 출시를 서두르자든가.

하나같이 이현덕의 기대를 벗어나는, 하품 나오는 아이디어들이었다.

그래도 이현덕은 약속한 대로 질책하지 않고 모두 끝까지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가지고 질책하면 임원들은 더욱 입을 닫아버릴 테니 말이다.

"부회장님, 제가 오래전부터 가슴에 품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오, 권 사장님. 말해보세요."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반도체 사장이 나서자 이현덕의 표정이 조금 나아졌다.

그래도 여기 모인 사람 중에서는 가장 반도체 사업의 전문가 아닌가.

"실은 제가…… 죄송합니다. 서진 파운드리 공장을 한 번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나요? 괜찮습니다. 지금 그런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이현덕은 순간 흠칫했으나, 곧 태연하게 넘어갔다.

다른 때 같았으면 스카우트, 스파이 등의 혐의를 씌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위급상황에서 먼저 자백을 한 걸 보면, 그런 것은 아니리라.

"우연히 정 대표와 이야기가 돼서 공장을 보게 됐습니다. 절대 스카우트 같은 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정대표의 의도를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정서진의 의도?"

이현덕의 표정에 흥미진진함이 깃들었다.

다른 임원들도 귀를 잔뜩 기울여들었다.

"네, 정 대표는 저에게 그저 과시하고 싶어 했습니다."

"과시?"

"자기 반도체 공장이 이렇게 뛰어 나다, 따라올 엄두도 내지 말아라, 그런 거만과 과시를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

이현덕의 표정이 조금씩 심각해져갔다.

권순철은 주먹을 꽉 쥐며, 표정을 필사적으로 관리한 채 말을 이었다.

"이제야 말씀드리는 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전 팹 경쟁으로는 서진 파운드리를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공장 경쟁으로는 이길 수 없다? 절대로?"

"서진파운드리의 공장은 다른 공장이 따라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전 TSMC가 왜 웨이퍼 제조를 포기하고, 서진 아래로 들어갔는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

"죄송합니다. 우리가 가진 공장들은 서진의 맵에 비하면 조선시대 화살과 21세기 기관포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이현덕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 정도나 심하게 차이가 난다고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일부러 파운드리 비용을 높게 받고 있습니다. 실제 제조비용은 그보다 훨씬 낮은데도 말입니다."

"……."

"옵테인도 그렇습니다. SSD와 동일한 비용이라고 하지만, 서진파운 드리는 얼마든지 더 코스트다운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아직도 모든 패를 공개한 게 아니라는 겁니까?"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요. 서진파운드리는 철저히 이윤을 추구하는 겁니다. 지금까지 D램, 낸드플래시시장을 무너뜨리지 않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권순철은 잠시 호흡을 다듬고, 절 절히 덧붙였다.

"서진파운드리도 D램과 플래시를 통해서 돈을 벌고 있었으니까요. 굳이 무너뜨릴 필요가 없었던 겁니다."

"……."

"제가 파운드리 사업 확장을 반기지 않았던 것은 아실 겁니다."

"설마 그것이……."

"예, 우리도 팹을 버리고 ADM처럼 설계전문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차마 그 말씀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현덕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보고라도 하지 그랬습니까. 아니면 사석에서 가볍게라도 언급을 하던가. 설마 내가 그 정도로 소통이 안 되는 오너인 줄 알았습니까?"

"죄송합니다. 증거라고는 얼마 안되는 제 견학 경험뿐이어서, 확신을 가지고 부회장님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권순철은 그리고 품에서 봉투를 꺼내어 앞에 내밀었다.

이현덕의 눈이 커졌고, 임원들도 뒤집어질 듯이 놀랐다.

"모든 게 입을 열 용기가 없었던 제 불찰입니다. 그 책임을 지고 은퇴해서 치킨집이나 차리려고 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서진파운드리로 영전하는 것은 아니다.

권순철은 지금 온몸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남아 있는 의심이랄 것도 없었지만, 이현덕은 모든 의아함을 지워버릴 수 있었다.

"치킨집이라뇨. 허락 못 합니다. 입을 닫고 있었던 책임을 끝까지 지세요."

"부회장님."

"전시에 총사령관이 자리를 내놓으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다시는 사직서를 제출할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거기 임 이사, 그거 지금 당장 우리가 보는 앞에서 찢어버려요."

지목을 당한 임 이사는 얼른 봉투를 들고, 그 자리에서 갈가리 찢어버렸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이현덕이 다시 입을 열었다.

"팹리스 전환, 그거 말곤 답이 없다는 겁니까?"

"서진파운드리의 제조공정은 누가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에릭로한이 핵심 기술을 개발했다고 들었습니다. 해상 교량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 방에 이해가 되는군요."

어떤 금속이든지 물에 뜨게, 아니, 물에 반발하게 만드는 성질을 부여 하는 처리기술.

수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달려들었지만, 그들은 사소한 원리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그저 현실에 구현된 결과를 누릴 뿐,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서진파운드리 팹이 그 정도라는 거군요."

"그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100%로봇 운영은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팹을 버려야 한다, 공장을 포기해야 한다……."

이현덕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설계 능력만 보면, 서해반도체는 아직 윈텔, ADM 등 다른 반도체 업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다.

초미세 나노기술을 접목한 웨이퍼생산.

안정적인 품질 및 대량생산 관리능력.

언제나 한발 앞서나간 제조공정 기술개발.

그런 모든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지금의 서해반도체의 위상을 만든 것이다.

ADM은 단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맵을 버렸다.

그들은 그래도 되었다.

하지만 서해반도체는 그럴 수 없다.

팹을 버리면 더 이상 예전의 서해 반도체가 아니게 된다.

하지만 버리지 않을 수도 없다.

아니, 반드시 버려야만 한다.

이현덕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분한 마음에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서진파운드리 오너를 만나보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수영과 만남이 이뤄졌다.

***

약속을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수영은 굳이 발을 빼지 않았고, 이현덕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바로 청담동으로 달려갔다.

희미한 절박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을 보며, 하수영은 속으로 잔잔히 생각했다.

'이 정도 손가락 꿀밤에도 넉다운 될 거였으면서, 대체 왜 그리 깡을 부렸을까.'

서해그룹은 너무 욕심이 많았다.

반도체로 이미 흥했으면서, 식품사업까지 손을 뻗쳐가면서 자신과 부딪쳤다.

농업 소득면세까지 손을 대서 자신을 저격하지만 않았어도, 반도체에 손을 뻗치지는 않았으리라.

'평온하게 농사만 지으려던 나를 기어이 끌어들인 것도 당신의 욕심때문이었지.'

하수영은 속으로 피식거렸다.

동정심은 없다. 대신 귀찮은 마음이 있을 뿐.

하지만 귀찮다고 한 번 결정한 것을 철회하진 않는다.

선을 넘은 대가로 반도체를 앗아가겠다고 했고, 정서진을 불러들여 파운드리 회사를 꾸렸다.

이제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행할때.

"서해반도체는 이제 반도체 생산을 접고 팹리스로 전환하고자 합니다."

"서해반도체의 물량을 소화할 만한 파운드리 업체는 몇 개 안 될 텐데요."

"사실상 한 곳뿐이죠. 바로 서진파운드리입니다."

"그것은 정서진 대표님과 말씀하셔야 할 문제입니다. 전 반도체 사업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오너가 결심을 하면 경영진이 좀 더 쉽게 움직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그래도 이왕 오셨으니 한번 말씀해 보세요."

이현덕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국내의 모든 D램, 낸드플래시 공장을 서진파운드리에 넘기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세요? 래플과의 계약은 어떻게 이행하시려고요?"

"모든 생산을 서진파운드리에 맡기려고 합니다. 계약 내용에 서진파운드리에 위탁을 주지 말라는 조항은 없었으니까요."

"래플이 그런 허술한 계약을 하다니."

"너무나 당연해서 아무도 넣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지요. 일이 이렇게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확고한 진영 가르기가 구축된 상황이기에, 오히려 적진 투항에 대한 조항이 없었다.

이런 미친 짓을 할 거라고 래플은 물론이고, 서해전자도 상상해본 적도 없으니까.

"점차적으로 반도체 생산을 완전히 포기하고, 전부 서진파운드리에 넘기겠습니다. 부디 수주를 거부하지만 않도록…… 정 대표에게 한 말씀만 부탁드립니다."

"안 그래도 정 대표님이 이미 여기로 오는 중입니다."

"아, 정말입니까?"

"네, 곧 도착할 때가 됐는데……."

이윽고 정서진이 하수영의 저택에 도착했다.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이현덕과 인사한 정서진은 자세한 상황을 듣고 미소를 보였다.

"전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저희 서진파운드리는 모든 고객을 귀중히 모시고 있습니다."

"정 대표."

"고객사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고객사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고객사의 지분을 넘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우리 서진파운드리의 3대 원칙입니다."

서해반도체는 완전히 투항하고, 서진파운드리의 '전속 단골'이 되기로 했다.

"고객님, 이제 우리 서진파운드리의 전속 고객이시니만큼 다른 가게는 가시면 안 되겠습니다."

그렇게 Inferior갑과 Ultra Super Prime을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아, 조만간 래플과의 미팅 자리에 꼭 끼워 주십시오. 그래도 을…… 아니지. 래플이 갑이고 서해가 을이니까 제가 병이군요. 하청의 하청이라 만나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인사는 한 번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서진은 시원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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