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78화
214장 투항의 조건 (1)
윈텔의 옵테인 메모리는 D램과 SSD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
D램만큼 빠르면서, 전원이 꺼져도 데이터는 여전히 살아 있다.
전체적인 컴퓨팅 처리 속도를 월등히 끌어올릴 수 있는 꿈의 메모리.
문제는 너무 말도 안 되게 비쌌다.
처음 출시했을 때는 같은 용량의 D램이나 SSD에 비해서 수십 배 이상 비쌌고, 서진파운드리가 생산한 이후에는 현실적인 가격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하이엔드 유저들이 큰마음 먹고 써볼 만한 수준.
보통 PC 사용자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가격이었고, 성능 향상을 위해서라면 비용을 아끼지 않는 기업들조차도 아직 주저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옵테인 메모리를 제일 많이사간 VIP는 바로 수영농장이었다.
농장로봇 제어용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한다는 이유였다.
서진파운드리는 윈텔의 하청이지만,서진파운드리의 주인은 윈텔의 고객이다.
-이제 컴퓨터 구조는 변신을 할 때가 됐죠. CPU-D램-스토리지로 이어지는 구동구조를 CPU-스토리지로 단순화할 때가 됐습니다.
물론 구동구조를 크게 생략해서 3등분, 2등분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격이 같다면, 소비자는 D램과 SSD를 선택하는 게 바보짓이 된다.
동일한 가격으로 훨씬 더 빠른 성능을 누릴 수 있으며, 구조도 간단해진다.
"정말 SSD 가격 수준으로 팔 수 있는 겁니까?"
-Yes.
"D램과 SSD는 이제 퇴출되는 일만 남았군요."
심지어 그 둘은 서해전자를 먹여 살리는 핵심 기둥이다.
서해전자는 대부분의 반도체 공장을 중지해야 하며, 어마어마한 악성재고를 떠안게 될 것이다.
윈텔 경영진은 서진파운드리의 능력에 그저 감탄만 나왔다.
'이렇게 생산 가격을 빨리 떨어뜨릴 줄이야.'
'적어도 SSD 수준으로 내려오려면 한참 더 멀었을 줄 알았는데.'
'곧 반도체 슈퍼사이클 시기가 다가오는데, 옵테인 메모리가 SSD 가격으로 나온다니.'
경영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옵테인이 보급형 가격 수준이 되었다는 것은, 반도체 시장을 터뜨릴 핵무기를 얻었다는 뜻이다.
그 핵무기를 만들어낸 하청업체는 과연 고객사에 어떤 요구를 할까??
'지분을 달라고 하겠지.'
'일반적인 수순이지. 이 정도 무기라면 증자를 통한 지분 요구가 당연하고,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내줘야 하지?'
-본사는 크게 2가지 조건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얼마든지 말씀하시오."
-앞으로 윈텔의 CPU 생산량의 80% 이상을 맡고 싶습니다.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안 그래도 있던 CPU 공장도 정리할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어요."
-두 번째로, 한국에서 제품 홍보를 하실 때 저희가 지정한 매체에는 어떤 광고도 줘서는 안 됩니다.
"2가지 조건이라는 게 설마 그겁니까?"
-네, 다른 게 더 있어야 합니까?
패트린 CEO가 오히려 당혹스러워했다.
이 정도는 반도체 시장을 휩쓸 핵무기를 개발한 조건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적어도 우리 윈텔의 지분을 일정이상 요구할 줄 알았어요."
-하하, 우리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으며, 고객 위에 올라서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습니다.
"……."
윈텔의 경영진은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신들은 래플의 제안을 놓고 심란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었는데.
"대량생산은 언제부터 가능합니까?"
-오늘부터 즉시 가능합니다.
"그럼 최대한 많이 찍어주시오. 우리가 지불한 선매출을 한꺼번에 모두 차감할 양을 찍어내면 더욱 좋소."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정서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 조금 더 길고 찐득하게 꿀 빨고 싶었는데. 이렇게 조커를 공개해 버리고 말았군."
서진파운드리의 생산 코스트다운은 이미 공장을 설립하면서 정점을 찍고 시작했다.
다만 고객사에 그 점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예전의 TSMC가 매출 100억 불을 올릴 때 5, 60억 달러의 이익을 냈었다.
서진파운드리는 매출 100억 불을 올릴 때 90억 불 이상의 이익을 냈고,극단적으로 말해서 '모래값+전기 료' 밖에 안 드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D램 시장을 지키고 싶어하는 마음은 정서진도 서해전자 못지않았다.
서해전자가 D램 100억 달러어치 팔아서 30억 달러 남겨먹을 때.
마이크론은 D램 70억 달러어치 팔아서 17억 불을 남겨먹는다.
그리고 서진파운드리는 D램에 납품해서 45억 달러 이상 남겨먹는다.
터무니없이 낮은 생산 비용과 시세의 격차 덕분에, 서진파운드리가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빨리 D램 시장을, 내 손으로 무너뜨리게 될 줄이야."
SSD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시장을 누구보다 지키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서진파운드리.
그 덕분에 서해전자 반도체 사업이 아직까지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보급형 옵테인이 등장하면 D램, SSD 시장은 확실히 박살 납니다. 그리고 옵테인이 그 둘을 완전히 대체하게 되겠죠.
"우리 회사의 이익은 어떻게 되지?"
-당장의 이익률은 감소하겠지만, 시장 완전독점을 하게 되면 회복될 겁니다. 그 이후에 점차적으로 가격을 올리면 됩니다.
"앞으로 미국과 EU의 독점 제재에 시달릴 준비를 해야겠구나."
-그거야 윈텔이 알아서 할 일이죠. 우리는 고객의 요구대로 생산해서 정가에 납품할 뿐입니다.
"윈텔도 차라리 본사 소재지는 한국에 두는 게 나을 텐데."
-훨씬 이익입니다. 한국의 독점 제 재는 미국과 유럽에 비할 바가 아니니까요. 미국에는 연구개발부서만 두면 됩니다.
"아무튼 이제 물량 풀자."
정서진은 128기가, 256기가, 512기가, 1테라로 나누어서 옵테인 메모리를 납품했다.
이 부품을 달면 하나의 메모리카드가 D램, 그리고 저장 매체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게 된다.
예전에는 메모리 용량을 늘리려면 카드를 추가하거나 교체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추가하고 싶은 만큼 설정을 바꾸면 된다.
병목현상, SSD가 D램보다 느리다는 차이로 인해 일어나는 딜레이 현상은 해당이 없다.
소비자는 같은 가격으로 더 월등한 퍼포먼스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윈텔이 해냈습니다.]
[꿈의 메모리 옵테인! 마침내 보급 형 수준으로까지 가격이 떨어지다!]
[D램과 낸드플래시 SSD! 마침내 종말을 맞이하다!]
[윈텔, 당장 다음 달부터 전 세계 물량 배포 시작! 이미 1억 개 이상의 생산재고 확보!]
[폭락하는 마이크론 주가! 회생 가망성은?]
[절망하는 마이크론 경영진과 주주들!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모두 박살 나!]
[서해전자 주가 하한선! 점하에서 벗어날 줄을 몰라.]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을 덮친 메모리 쇼크!]
[윈텔은 어떻게 옵테인의 가격을 보급형 수준으로 떨어뜨렸나??]
[서진파운드리의 말도 안 되는 공정수준, 그 비밀을 밝히다!]
[TSMC가 일찍이 백기를 든 것은 이런 미래를 내다본 선견지명이었다?]
[불과 작년에 완공된 50조 원짜리 서해 반도체 신공장, 50조 원짜리 애물단지로 전락하나?]
[패닉, 패닉, 그리고 또 패닉!]
전 세계 반도체 업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D램과 낸드플래시(SSD)의 자리를 옵테인 메모리가 한순간에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이건 경착륙 수준이 아니라, 그냥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이박은 수준이었다.
***
서해전자는 애써 태연한 척 유지하려 했다.
그러면서 물밑에서는 옵테인 메모리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알아봤다.
"정말 SSD 가격 수준으로 판매한다고?"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미 판매홍보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에는 당장 다음 주부터 물량이 뿌려진다고 합니다."
"허허……."
"지금 국내 D램과 SSD 판매가 완전히 멈췄습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은 채, 옵테인 메모리 출시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같은 가격, 동급 용량, 그리고 더 빠른 성능.
컴퓨터를 그렇게 업그레이드해 줄 제품이 일주일이면 나오는데, 멍청하게 구형 부품을 사는 소비자는 없다.
"용산에서도 지금 마지막 밀어내기를 하려고 발악 중입니다. 이미 나간 제품들도 반품이 속출하고, 더 이상 새 제품을 받아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밀어내! 악성재고를 조금이라도 줄여야 한단 말이다!"
"이미 전국에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기존 D램과 SSD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영업실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부품 제조사들도 기존 낸드플래시 구매 계약을 모두 취소했습니다. 위약금을 무는 한이 있더라도 더 이상은 사지 않겠다고 합니다."
메모리는 거의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간다.
서해전자는 SSD, 플래시 메모리 등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팔기도 하지만, 다른 전자업체에도 부품을 판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뚝 끊겼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보통 정보가 느린 사람들은 잘 모르고 어느 정도 구형제품을 구매하곤 하는데, 그런 것도 전혀 없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모든 판매가 올스톱했으며, 거래가 0을 찍었다.
부장은 내뱉듯이 말했다.
"그거야 프리덤 덕분이겠지. 요즘필수정보가 느린 사람이 어딨나? 프리덤이 일일이 하나하나 케어해 주는데 말이야."
"그, 그럴 수도 있겠군요."
"보이스피싱 업체들이 한국 장사접고 떴대잖아. 프리덤 때문에 보이 스피싱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실제로 한국은 프리덤 서비스가 보편화된 이후,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가 바닥을 찍었다.
보이스피싱을 당한 사람들은 전부 프리덤을 쓰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프리덤도 서진 파운드리 거잖아?"
"그렇지요."
"서진파운드리가 프리덤 이용해서 국내 소비자들을 부추기는 거 아니야? 지금 컴퓨터 맞추지 말고 기다렸다가 옵테인 메모리로 맞추라고."
"아,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이건 플래폼 독점 지위를 이용한 불법광고…… 아니다. 어차피 옵테인이 훨씬 나은 건 분명한 사실인데 프리덤이 권유를 해도 잘못이 아니지."
프리덤은 주인의 잘못된 소비 선택을 지적할 의무가 있었으니.
***
국내에 옵테인 메모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업체들의 사재기가 불가능할 정도의 물량이었다.
또한 판매 물량에 다양한 제한을 두었기에, 사재기를 하고 싶어도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렇게 새로 PC를 맞추거나, 업그레이드를 한 소비자들이 앞을 다투어 리뷰 영상과 글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각종 벤치마크 결과가 UCC 포털, SNS 등을 도배하며 옵테인의 화려한 독재 시대가 열렸음을 알렸다.
-결론은 하납니다. D램, SSD 생각하지도 말고 무조건 옵테인으로 컴퓨터 맞추세요.
-이거 예전에 가격 엄청 비싸지 않았었나? 그래서 살 엄두도 못 냈었는데.
-심지어 그게 한참 떨어진 가격이었음. 그런데도 하이엔드 유저들만 사용했지.
-가격은 같은데 속도 차이가 압도적입니다. 더 뭘 생각해야 하죠?
-D램, 낸드플래시 만드는 회사 주식을 아직도 들고 있는 건 아니죠? 마이크론이고 서해전자고 죄다 팔아버리세요.
-그리고 윈텔 주식 사세요. 아, ADM는 놔두세요. 거기는 이번 옵테인 쇼크와 무관하거든요.
-R.I.P D램. R.I.P SSD.
-편히 잠드소서. DDR 당신이 있어 지난 수십 년간 무척 행복했습니다.
-서진파운드리 주식은 어디서 살수 있나요? 장외거래만 하나요?
-그거 유한회사라서 거래 자체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음.
하수영은 이현덕 부회장의 연락을 받았다.
-꼭 시간을 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서진파운드리 일이라면 정서진 대표와 이야기하셔야 되는데요. 전 쩐주라서 아무것도 몰라요."
-반드시 오너와 해야 할 이야기입니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