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77화
213장 치킨 레이스(7)
[래플의 견제가 향하는 것은 프리덤폰이 아니라 서진파운드리 반도체.]
[래플표 컨텐츠 생태계 제국을 이룬 상황에서, 프리덤폰의 성장은 명백한 한계가 있어. 래플의 최우선 고려 대상 아냐.]
[래플, 바이오산업 진출을 통해 궁극적으로 식량권력을 꿈꾸는가?]
에브리충청에 실린 기사는 꽤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프리덤이 이용자들에게 노출되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준 덕분이다.
"뭐야? 그럼 래플이 서해전자에 반도체 생산 몰아주는 게 우리나라에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네?"
"래플이 만드는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양이 얼만데. 거기다가 그 많은 데이터센터 그 엄청난 서버에 들어가는 반도체까지."
"래플이 사주는 반도체 물량이 엄청나구나. 숫자로 보니 입이 안 다물어진다."
"서진파운드리가 아무리 반도체 잘만들어도 소비자가 안 사주면 어쩔 수 없지."
"나노소프트도 있고, 쿠글도 있지 않아? 래플이 가장 큰 고객인 건 사실이지만, 래플이 전부는 아니잖아."
"근데 어쩔 수 없지 않아? 이미 래플과 서해전자가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잖아."
***
래플 CEO 팀 콕은 백악관 대통령 참모인 드빌논 국장이 보여주는 기사 내용을 보고 있었다.
한국의 어느 작은 언론사에서 썼다는 기사였다.
다 읽고 난 뒤 드빌논이 물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떻게 생각한다니요. 그게 무슨……."
"래플은 정말 이렇습니까?"
팀 콕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우리는 농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모바일 시장에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반기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말도 안 되는 상상 기사라는 건가요?"
"그렇죠. 말도 안 됩니다."
"실행 가능성만 보면 어떻습니까? 래플이 이대로 추진한다면 불가능할 거 같습니까?"
"하하, 우리는 그럴 생각조차 없다니까요. 의도가 전혀 없는데 실행가능성을 왜 따집니까."
"그러니까 의도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 실행 가능성을 따져보자는 겁니다. 가정법이죠."
"……."
"가능성이 있습니까?"
팀 콕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턱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생각하다가 말했다.
"불가능하진 않겠죠. 하지만 그럴 의도가……."
"의도라는 것은 언제든 생길 수 있는 거지요. 아무튼 감사합니다."
팀 콕은 당황해서 그를 돌아봤다.
"지금 겨우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온 겁니까? 세상에서 가장 바쁜 CEO인 나를?"
"저 역시 세상에서 가장 바쁜 행정기관의 참모 일원입니다."
"설마 서진파운드리를 견제하지 말라, 뭐 그런 경고라도 하러 온 겁니까?"
"백악관이 건실한 미국 기업에 어떻게 그런 경고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백악관은 수영그룹과 꽤 친하게 지내지 않나요?"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정은 확실히 뛰어나다.
래플로서도 군침을 흘릴 정도로.
한때 래플도 발주를 넣으려고 했지만, 상황이 맞지 않아 무산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마이크론, 윈텔 등 다른 회사에서 주문한 양 때문에 순번이 훌쩍 밀려 있던 것.
그래서 래플은 AP 등 모자라는 반도체 부품을 서해전자에 주문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지.
당시에는 서진파운드리가 스마트폰사업에 진출할 줄 몰랐으니까.
만약 반도체 발주를 주었다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 것이다.
경쟁자에게 돈까지 바쳐가면서 핵심 부품 설계도를 고스란히 넘기는 셈이니.
***
지방신문사 에브리충청에 터진 대박에 언론계는 또다시 대성통곡을 했다.
사원 10인밖에 안 되는 신문사가 380억 원의 광고비를 받고, 전 사원들에게 인당 2억씩 인센티브까지 나눠줬다.
기자들은 회사가 받은 광고비가 부러운 게 아니었다.
사원들에게 떨어지는 인센티브가 너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다니고 손가락뼈 빠지게 밤낮으로 기사를 써대도 연봉 1억도 안 되는데!"
"기사 몇 개 썼다고 하루아침에 억? 이게 나라냐? 이게 나라냐고!"
모든 기자들이 프리덤폰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기사들은 편집부의 최종 승인을 받지 못했다.
"우리 광고주가 누구인데 이런 기사를 올린다고? 자네 제정신이야?"
"국장님, 이대로는 답이 없어요."
"답이 없긴 뭐가 없어. 계속 두들 기다 보면 길이 열리게 마련이야."
"아! 우리가 까는 기사를 쓰면 쓸수록 수영그룹에서는 딴 놈들 배때기만 채워주고 있지 않습니까?"
"그룹 총수가 나이도 어리고 농사만 지어서 아무것도 몰라서 그래. 오기가 덜 빠진 거지. 이런 건 오랜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는 거야. 잘 아는 친구가 왜 그래?"
신흥 대기업이 등장하면 언론사들은 합심해서 길들이기를 시전한다.
처음에는 우호적인 기사를 몇 번 내줘서 창업주를 한껏 들뜨게 만든다.
그리고 곧바로 호된 질책을 시전함으로써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만든다.
언론의 위력을 깨달은 창업 멤버들은 안달이 나서 돈을 싸들고 찾아온다.
그리고 제발 좋은 기사를 써달라고 애원한다.
대중은 광고주가 갑인 줄 알지만, 언론사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펜 한 번 놀리면 천하의 서해그룹이라 해도 얼마 못 가서 나가떨어진다고!'
'서로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상부상조할 뿐이지, 절대 우리가 재벌밑이 아니야.'
'재벌 중의 으뜸이 바로 언론 재벌이야. 열흘은커녕 백 년이 지나도 꽃잎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수영이 그놈은 우리가 처음에 몇 번 좋은 기사를 써줬을 때도 입싹 씻었고, 우리가 아픈 기사를 써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지."
그게 언론사들의 자존심을 박박 긁어놓았고,
"이제는 CVN 같은 곳에 광고비를 펑펑 퍼주면서 우리를 도발하고 있네. 이런 탕아를 절대 용납해서는 안 돼. 이 나라 언론의 위상이 흐트러질 거야."
반드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
놈이 언론의 위력을 깨닫고 진정으로 참회해서 돈을 싸들고 갖다 바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럼 얼마든지 그의 앞에서 비위를 맞추며 광고주 대우를 해줄 수 있다.
"아무래도 기사 방향을 바꿔야겠어."
"어떤 식으로 바꿀까요?"
"프리덤폰보다는 반도체 파운드리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지라고, 래플, 서해가 어떤 기업이야? 그 둘이 합치면 전 세계 반도체 생산품의 9할은 소화하는 기업 아닌가?"
'그 정도까지는 아닐 텐데, 이건해도 해도 과장이 너무 심하신데.'
"아, 네. 그 정도는 될 겁니다. 그 둘을 합치면 장난 없죠."
부장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파운드리가 아무리 잘나 봐야 을이라는 점을 강조해. 슈퍼을은 절대로 초슈퍼갑을 이길 수 없다고, 그러니 한국 반도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때 편집실 문이 덜컥 열리더니, 직원 한 명이 다급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부장님, 서진파운드리에서 기습적으로 오피셜 발표를 냈습니다."
"기습적으로? 하여튼 그놈들은 보도 자료도 안 뿌리고 우리 언론사에 연락도 없고, 아주 언론 알기를 우습게 안다니까. 무슨 내용이야?"
"반도체 생산단가 인하입니다."
부장은 코웃음을 쳤다.
"오호라, 래플이 서해까지 끌어들여서 울타리를 치니까 가격 인하로 맞서겠다?"
내내 함께했던 부하도 맞장구를 쳤다.
"고유 아이덴티티가 없는 중소기업의 한계죠.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가격 경쟁밖에 없는, 근본 없는 게 어디 가겠습니까?"
"그래서 가격을 얼마나 낮춘다는 건데? 한 5% 정도 낮춰준다고 하던가?"
"납품가 기준으로 일괄 30%를 낮춰줄 예정이랍니다."
부장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뭐야? 30%씩이나? 그놈들, 미쳤어? 진짜 치킨 레이스 해보자고?"
***
반 프리덤폰 진영 구축 이후.
래플은 팹리스 반도체 업체들을 자사 진영이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물량은 충분히 보장하겠소. 대신 서진파운드리에 발주를 줘서는 안됩니다. 서해전자에서 생산한 반도체 부품만 받을 거요."
래플은 D램, 그래픽램, 낸드플래시등등 무수한 전자부품들을 소화하는 고객사.
때문에 윈텔, ADM, 마이크론 등 서진파운드리의 기존 고객사들은 번 뇌에 시달렸다.
서진파운드리는 아주 좋은 파운드리 업체고, 최상품의 클래스의 제품을 납품한다.
하지만…….
"귀사의 물건을 가장 많이 사주는 것은 결국 우리 래플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그들도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제품을 팔지만, 래플이 소화해 주는 물량에 비할 바는 아니다.
때문에 래플의 반협박에 나름 갈등을 겪었다.
"서해전자 파운드리는 그다지 신뢰가 안 가는데."
"동급 제품을 생산하는데 서진파운드리 평균 납품가가 5%나 더 낮습니다."
"서진파운드리는 불량제로인 데다가 모든 부품들이 설계상 최고의 성능을 내줍니다."
"옵테인 메모리 가격을 절반 이상 다운시킬 수 있었던 것도 서진파운드리 덕분입니다. 서해전자가 옵테인 메모리를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을 거 같진 않습니다."
"그런데 래플이 CPU 물량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으니……."
"그 약속을 믿습니까? 래플은 작년에 우리 대신 ARM을 택했어요. 한번 돌아선 연인은 언제든 다시 돌아설 수 있습니다."
래플은 오랫동안 자사 노트북에 들어가는 PC용 CPU를 윈텔에서 공급 받았다.
하지만 최근 ARM 프로세서 기반회사를 인수하고 직접 CPU를 생산하는 등, 윈텔과는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10년간 전체 CPU 파이의 50%를 보장했어. 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놓칠 수는 없지 않겠나?"
"서진파운드리를 놓치면 옵테인은 완전히 죽습니다! 옵테인 가격을 조금만 더 다운시키면, 램과 낸드플래시 시장을 한꺼번에 집어삼킬 수 있어요!"
서진파운드리를 버리고 자기들 진영에 완전히 합류하라는 것.
윈텔 경영진은 래플이 보여준 당근의 유혹을 놓고 갈팡질팡했다.
"퀄컴은 래플 진영에 들어가지 않겠지?"
"거기에 스냅드래곤이 설 자리는 없으니까요. 퀄컴은 프리덤폰, 서진 파운드리와 끝까지 함께 갈 겁니다."
"젠장. 이제 겨우 한국 시장에서만 팔리는 스마트폰 하나 때문에 이게 무슨 난리인지."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한국에서 새로운 소식이 날아왔다.
공문을 확인한 윈텔 경영진은 일제히 뒤집어졌다.
"납품가를 일괄 30% 하한 조절하겠다고? 잠깐, 그러면 최종 가격이 대체 얼마나 떨어지는 건가?"
"정말 시원시원하군요. 한 방에 30%나 낮춰주겠다니. 그것도 일시적이 아니라 반영구적인 결정입니다."
래플과 생과 사를 함께 하는 업체들에게는 높은 나무에 달린 포도.
하지만 윈텔이나 ADM, 마이크론같은 업체 입장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심지어 윈텔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정서진이 직접 윈텔 CEO 패트린과 영상 통화를 가졌다.
-하하, 우리도 래플과 정말 끝까지 싸우겠다는 마음은 없습니다. 어쨌거나 래플은 가장 큰 잠재 고객입니다. 언젠가는 우리 회사의 VVIP가 되어줄 몸이죠.
"래플은 귀사 공장에서 나온 반도체는 단 한 개도 쓰지 않을 작정으으로 보입니다만."
-서해전자 공장이 없어져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
-반도체를 찍어내는 회사가 우리 회사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럴 수 있을까요?
"서해전자 공장에 무슨 악재라도 있는 겁니까?"
-옵테인 메모리가 아직까지도 D램이나 SSD에 비해서는 상당히 비쌉니다. 그래서 일부 초하이엔드 라인업에만 들어가고 있지요?
"잠깐, 설마?"
-옵테인만큼은 30% 할인에서 예외입니다. 특별 인피니티 다운코스트가 들어갑니다.
옵테인은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비쌌다.
그만큼의 생산 마진을 서진파운드리가 먹었기 때문이었고, 당연히 윈텔은 그 사실을 몰랐다.
-준비하세요. 앞으로 옵테인을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으로 팔아야 할 테니까요.
"…… 서해반도체의 핵심이 모두 박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