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74화 (874/1,270)

프랜차이즈 갓 874화

213장 치킨 레이스 (4)

"역시 하차감 하면 궤도형 트랙터지. 모두가 다 날 쳐다보는군."

-안 쳐다보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요, 마스터?

"하여튼 다들 비싼 차는 귀신같이 알아본다니까."

-가격 때문에 쳐다보는 게 아닙…… 아, 물론 비싼 차량인 건 사실이지만…….

일반 차량 타이어에 비해서 궤도 교체 주기가 잦고, 교체 비용도 매우 비싸다.

슈퍼카들이 도로에 기름값으로 지폐를 버리고 다닌다면, 대신 궤도 타이어값으로 지폐를 버리고 다니는 차량이다.

하수영은 목이 긴 고무 부츠에 체크무늬 셔츠, 그리고 멜빵바지를 입었다.

흙만 묻어 있었으면 영락없는 농사작업복.

그래도 새 옷이라서 그런지 때 탄자국 하나 없이 반질반질했다.

"하수영 학우님, 어서 오세요. 그, 그런데 복장이……."

"원래 농대 특강이었으니까 농대 컨셉에 맞는 복장을 해봤어요. 어울리나요?"

"……."

"……."

농대 학우들은 번뇌에 빠졌다.

어울린다는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분명한데, 저런 작업복이 어울린다.

고 말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아무튼 하수영은 자리 잡은 청강자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당당히 단상 위로 올라갔다.

"반갑습니다. 한국대 일원 여러분. 저는 24학번, 아니, 20학번 농업단 과대 하수영입니다."

'24학번? 학번을 저렇게 잘못 착각해서 말할 수도 있나?'

'24년은 아직 멀었는데? 어떻게 24년으로 착각해서 말할 수 있지?'

프리덤이 교신기를 통해 하수영만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마스터, 전생 경성제국대 시절과 착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내가 아직 이번 생을 22년밖에 안 살아서 종종 말이 헛나오는 거야, 인마."

하수영은 작게 반박한 뒤, 다시 마이크에 대고 말을 이어 나갔다.

"많은 분들이 찾아와주셨는데요. 오늘 제가 말씀드릴 대주제는 바로 '농자천하지대본' 입니다."

곳곳에서 조금 실망한 표정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수영이 경제와 수영그룹에 관한 주제를 말해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색을 소리로 드러내거나, 자리를 뜨는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농자천하지대본과는 조금 다릅니다. 미래형 농자천하지대본이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농사야말로 나라의 근본이자 으뜸이라는 뜻인데요."

하수영은 잠시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여러분, 반도체 설계나 파일럿은 폼 나고, 농사는 뭔가 3D 직종이라는 이미지 갖고 계시잖아요. 대체로 그렇죠?"

여기저기서 가벼운 실소가 터졌다.

곳곳에서 작게 '아니오!'라는 말이 들렸지만, 그리 힘은 없었다.

"그런데 농산업이 사실 로우테크산업이 아니라, 종합 하이테크 산업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선뜻 인정하기 어려우실 겁니다. 이런 말이 있죠. 농사를 진짜 잘 짓는 국가는 모두 직접 최신 전투기를 만들 줄 안다, 라고요."

대형 스크린에 드넓은 평야가 배경으로 떠올랐다.

광활한 옥수수밭을, 비행기가 낮게 날아다니면서 약을 살포하고 있었다.

건설기계를 연상케 하는 중장비들이 작물을 수확하고, 밭을 일구는 모습이 연이어 재생된다.

곡물을 수송하는 화물차는 바퀴 한 개의 직경이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컸다.

"미국에서는 개인 자영농부가 서울보다 더 큰 밭을 경작하는 게 흔합니다. 잘 빠진 슈퍼카보다 더 값비싼 농장비를 개인이 소유하고, 굴리죠. 솔직히 말해서 농장비는 미제와 유럽제가 좋습니다. 우리나라는 한참 멀었어요."

하수영은 혀를 쯧쯧 찼고, 화면이 다시 실내농장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무인로봇들이 쉬지 않고 일하는 농장, 바로 수영농장의 모습이다.

"우리 수영농장에서 굴리는 노예봇, 아니, 농사 로봇들입니다. 그런데 만드는 데 들어간 부품의 80%이상이 미제예요. 나머지 20%는 한국대 로봇공학과를 비롯해서 국내연구기관들에 주문해서 받긴 했는 데, 그것들조차도 근본 기술은 미국이나 유럽에 기인하고 있죠."

농사 이야기라서 다소 실망했던 이들도 점차적으로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세계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기상위성을 통한 종합날씨예측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죠. 이 종합정보를 통해 농부들은 작물이나 파종시기를 변경하거나, 수확 시기를 앞당기기도 합니다."

[종합 기상 시스템이 미국 농가에 기여하는 가치는 1년에 약 120억불 이상으로 추정.]

"또 그게 전부가 아니죠. 미 월가에서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전 세계 작황을 예측하고, 주식과 선물 트레이드에 반영해서 실적을 올립니다."

주식과 선물이 주제에 오르자 많은 이들이 눈이 번쩍 빛났다.

"농기업들은 유전자 연구시장의 큰 손 고객이기도 합니다. 종자 개량과 분석, 유전자 조작 작물 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아낌없이 돈을 쓰고 있죠. 유전자 연구기술을 후원하는 손큰 스폰서이자 고객입니다."

곡물, 축산업 기업들이 바이오산업에 매년 투자하는 비용이 나오자, 농사에 전혀 관심 없던 이들의 눈이 뒤집어질 듯했다.

"이 최신 트랙터는 각종 농기구들을 뒤에 달고, 전자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중공업 기술과 전자기술의 정점을 갖춘 인프라가 있기 때문에 제조가 가능하죠. 이런 게 되는 나라가 몇 없습니다."

"농사를 돕기 위해서 수십억 달러짜리 기상위성을 펑펑 쏘고, 초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매해 업그레이드하고 활용하는 나라가 바로 미국입니다."

"자동차는 그 나라의 종합 산업 기술의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라고 하죠? 저는 그중에서도 트랙터를 꼽고 싶네요."

"람보르기니도 원래 트랙터 만들던 회사였다니까요? 물론 여긴 유럽이지만, 아무튼 지금 분리하긴 했지만 여전히 제일 좋은 트랙터를 만든다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농사지을 만한 땅도 좁고, 키울 수 있는 작물도 제한돼 있는데, 심지어 첨단 농장비는 만들 기술이 부족해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합니다."

"지금 농촌에 한 번 가보세요. 죄다 람보르기니 트랙터만 굴러다닙니다."

-그건 마스터께서 람보르기니 트랙터 5,000대를 주문하셔서 농촌에 렌탈로 뿌려 버리셨기 때문이 아님…….

"무기만 100% 국산화를 한다고 해서 자주국방이 되는 게 아닙니다! 식량도 종묘부터 비료, 농기구 생산기술까지 모두 국산화를 해야 합니다!"

"하다못해 트랙터, 콤바인 등등! 농기구들 굴리는 기름도 죄다 수입이에요!"

"여러분, 지금 이게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아십니까?"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프리덤이 브리핑 자료를 워낙에 깔끔하게 잘 준비했고, 하수영이 겁을 준 덕분에 다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특히 농대 교수들은 팔짱까지 낀 채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틀린 말씀이 정말 하나도 없으시군.'

'강대국은 하나같이 공통점이 있지. 식량기반이 아주 탄탄하다는것. 그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아직 한참 멀었어.'

화면 속의 풍경이 바뀌었다.

햇빛 하나 들지 않고, 하루 종일 폭우가 쏟아져 내리는 도시의 모습이었다.

서울, 대구, 대전, 부산 등등 가리지 않고 전국적으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다.

다시 사진이 나온다.

활짝 핀 진달래 꽃잎 위로 새하얀 눈송이가 쌓여 있는 광경이다.

"작년 8월에 강원도에 눈이 왔습니다. 잠깐 내리고 하루 만에 녹긴 했지만요."

"……."

"2년 전에 전국을 강타한 기록적인 폭우와 강풍을 기억하시죠?"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이 크게 끄덕거렸다.

거의 락다운 수준으로 전국구 도시가 마비된 그 폭우를 잊을 수가 없었다.

"온실가스 증가와 그걸 제거하기 위한 차이…… 아무튼 강국들의 비밀 실험의 후유증이 기상 이상화를 앞당기고 있습니다. 장담하건대 5년 후의 날씨는 5년 전의 날씨와는 전혀 다를 겁니다."

"……."

"본격적인 이상기후가 전 지구를 휩쓸었을 때, 그래서 옥수수 한 포대도 귀중한 시대가 열렸을 때, 우리나라의 식량자주권이 어떤 모습일지 두렵네요."

그때 누군가 손을 들었고, 하수영은 청중용 마이크를 넘겨주었다.

"수영농장 생산량이 엄청나다고 들었어요. 우리나라 전 국민을 먹여 살리고도 남을 정도라는데, 그럼 어느 정도 안심이지 않을까요?"

"말씀드렸다시피 수영농장 로봇들은 90% 이상이 미국 부품, 혹은 기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

"그리고 로봇들을 제어하는 슈퍼컴퓨터의 하드웨어는 100% 미국제 부품으로 이뤄져 있고요. 진정한 자주화가 아닙니다."

고요한 소란이 청중들 사이에 잔잔하게 퍼졌다.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옆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스크린의 화면이 바뀌자, 다시 청중들의 집중력이 향했다.

"프리덤폰입니다. 수영농장이 쩐주역할을 해서 탄생한 제품이죠."

프리덤폰이 옆으로 밀려나고, 래플폰이 나타나서 대립 구도를 이뤘다.

그리고 래플폰의 아래에는 서해전자의 로고가 박힌 반도체 부품들이 떠올랐다.

"래플은 자사폰에 들어가는 반도체 부품 대부분을 서해전자에 파운드리를 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농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왜 프리덤폰과 래플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했지만, 다들 뭔가 있겠지 하고 잠자코 들었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제조업체들한테도 자기들 진영에 가담할 것을 강권하고 있습니다. 겔드폰과 손을 잡는 한이 있더라도 프리덤폰은 반드시 견제하겠다는 의도입니다."

하수영은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들 모르시겠지만, 프리덤은 본래 우리 수영농장 운영을 위해 만든 AI입니다. 그 비밀, 오늘 시원하게 털어놓습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오, 그런 비밀이!"

"와, 나 이거 처음 들어."

"그럼 개인비서로 활용할 목적으로 설계한 AI가 아니라는 거야?"

하수영은 분위기를 잠시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그리고 프리덤은 우리 수영농장의 각종 먹거리들을 널리 홍보하기 위한 좋은 수단이죠. 그런데 래플이 반 프리덤폰 진영을 구축하는 게, 과연 스마트폰 시장 때문만일까요?"

"……!"

"래플은 바이오산업에도 거액의 돈을 꾸준히 투자해 왔고, 신경 써 왔습니다. 글로벌 곡물 회사들과도 굵직한 협업을 많이 합니다."

청중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정말 그런 거야?"

곧이어 기사가 떠올랐다.

한국의 언론사가 작성한 기사로, 래플과 서해전자의 혈맹이 반 프리 덤폰 진영의 중추가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제가 장담하건대, 래플은 스마트폰 OS 및 앱 시장 그 이상을 바라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오랜 경쟁자인 서해전자에 자사 제품의 모든 반도체를 과감히 맡기기로 하는 겁니다."

청중들은 '스마트폰 그 이상'이라는 단어에서, 다들 이상기후와 식량난, 그리고 식량패권을 떠올렸다.

"우리 수영농장은 반도체 파운드리 회사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장 로봇에 필요한 대량의 반도체 수급을 원활히 하기 위한 보험입니다."

"반도체가 무너진다는 것은 나아가 농장이 무너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래플은 거기까지 밑그림을 그리고 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나 우리 수영농장은 지지 않습니다.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언젠가 식량위기 상황이 닥쳐온 다 해도 슬기롭게 헤쳐 나갈 겁니다."

"와아아! 와아아아!"

"하수영! 하수영!"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반도체, 철강, 자동차, 우주항공기술은 21세기 농자천하지대본의 필수 요소입니다. 제가 타고 온 트랙터는 자기 위치 실시간 기상 사진도 받아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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