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72화
213장 치킨 레이스 (2)
"쿨럭! 쿨럭!"
정서진은 순간 기침을 내뿜었다.
입안에 뭔가를 머금고 있었다면, 아마 정서희의 얼굴에 뿜었을지도 모른다.
"뭐야, 반응 보니 진짜인가 보네?"
"뭐, 뭐야. 여자는 무슨…… 아니, 너 근데 갑자기 왜 그런 걸 물어보는데?"
"여동생으로서 오빠의 연애사에 아주 관심이 많거든."
"그러니까 왜?"
"왜긴, 오빠가 서진파운드리 CEO니까 당연하지. 누가 안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파운드리 사업 방향성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잖아."
"……."
"재벌 딸이야? Yes or No로만 대답해."
"아니, 청문회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무슨……. 그리고 내가 연애를 하든 말든 뭔 상관인데? 너희 회사는 반도체하고는 아무 상관 없잖아!"
"왜 상관이 없어. 반도체가 우리 수영그룹에서 두 번째로 돈을 많이 버는 계열사인데, 당연히 부회장으로서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거지."
"그룹 부회장은 아니잖아."
"프라임컴퍼니가 지주회사나 다름없으니까 부회장 대행도 해야지."
"지주회사는 무슨. 계열사들끼리 지분 얽힌 것도 전혀 없는데."
사실 그랬다.
여론과 언론에서는 '범수영그룹이라고 한데 묶어서 부르는데, 회사들 간에는 전혀 지분으로 얽혀 있지 않았다.
법인끼리는 남남이나 다름없는 사이.
"그래서 재벌가야? Yes? No?"
"……No."
"그럼 예능계?"
"……Yes."
"이쁜가 보네."
"넌 발끝에도 못 쫓아오지."
"그래서 누군데?"
"몰라도 돼. 아직 그런 말 할 사이는 아냐."
"어디까지 갔어? 잤니?"
"아직 손도 안 잡고! 밥만 먹었다! 그나저나 넌 어디서 들었냐!"
"엄마가 그러더라고, 오빠 또 여자 생긴 거 같다고."
"또는 무슨 또야. 누가 들으면 바람둥이인 줄 알겠네."
"바람둥이는 한 번에 여럿을 만나야 바람둥이지. 혹시 둘 이상이니?"
"그만 가라. 좀 가. 가라고."
"데이트해야 돼서 바쁜가 봐?"
"데이트는 무슨, 일 때문에 바쁘다. 요즘 정신없다고."
"돈 잘 벌려서 좋겠다."
"잘 벌리긴. 선매출 땡긴 거라서 당분간 돈 들어올 덴 없고 나갈 돈만 있다."
정서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이어 만나러 가?"
"바이어는 아니고, 서해전자 권순철 사장."
"어머, 그 사람 사장이었어? 언제 대행에서 사장으로 올라갔대?"
"좀 됐어."
"경쟁자 만나는 자리라서 불편하겠네. 내가 같이 가줄까?"
"네가 그 자리는 뭐하러. 됐어."
정서진은 피식거리며 외출 준비를 마쳤다.
***
서해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 권순철.
회사에서 아무도 모르지만, 그는 철저히 친 정서진 인사였다.
'우리 서해전자 반도체의 미래는 팹리스에 있다. 생산을 가지고 서진 파운드리와 경쟁하는 것은 미친 짓이야.'
서진파운드리 공장을 견학한 그가 얻게 된 깨달음이었다.
공정에 물이 필요 없고, 오염물질을 배출하지도 않으며, 복잡하고 다양한 공정 중간 과정이 없는 무인 로봇공장.
그에 비해 재래식 공정은 어떤가.
온갖 화학약품을 덕지덕지 바르고, 씻어내고, 굽고, 또 바르고, 자르고, 기타 등등을 수십 번 이상 반복해야 웨이퍼가 나온다.
'로봇 도입 비용이 매우 비싸지만, 한 번 지어 놓으면 모래 매입비밖에 안 드니까.'
물론 정말 모래를 매입하는 것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의미.
반도체 장비 만드는 회사들은 왜 서진파운드리가 EUV 등 장비 발주를 하지 않는 건지 항상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미국에서 비밀리에 최신장비들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만 하고 있다.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방금 왔습니다."
정서진이 도착하자 권순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인사했다.
짧게 안부를 주고받은 후,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중국이 중국 공장에 EUV설비라인을 도입하라고 우리 회사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요?"
"미국이야 안된다고 하죠. 물밑으로 압박이 들어왔습니다. 반도체 최신설비가 중국으로 들어가는 건 막겠다는 의지입니다."
"귀사가 이리저리 고충이 많겠습니다."
"저희야 중국 생산품은 대부분 낸 드플래시라서 아직은 괜찮습니다. 윈텔의 중국 공장 철수 결정이 중국정부를 불안하게 만든 모양입니다."
윈텔은 중국, 대만 등 여러 나라에 공장을 두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점차적으로 공장을 정리하는 분위기다.
"귀사에 맡기는 게 품질과 비용 면에서 무조건 나으니까요."
"우리야 뭐 불량률 0을 자랑하니까요."
"모든 생산품이 하나같이 설계 이론상 최대치의 성능을 보여준다는 것도 장점이고 말입니다."
권순철의 눈가에 언뜻 부러운 감정이 스쳤다.
서해전자는 물 부족 때문에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자 결국 서진파운드리에 일부 생산을 맡겼다.
"지금 경영진은 중국에 D램 공장을 두는 것보다 서진파운드리에 맡기는 게 더 싸다는 분위기입니다."
"오너 일가도 동의합니까?"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못 달고 있죠."
"처음으로 나서는 게 부담스럽긴 하겠죠."
"부회장님께서는 프리덤폰 때문에 서진파운드리, 아니, '수영전자그룹' 을 더 조심하는 분위기입니다."
"수영전자그룹이라니. 정작 우리 회장님은 입에 담지도 않는 용어가 밖에서 나돌고 있군요."
정서진은 피식거렸고, 권순철도 웃음을 지었다.
"그럼 회장님은 뭐라고 부르십니까?"
"그냥 수영농장과 자회사들, 뭐 이렇게 생각하고 계십니다."
"그러고 보니 수영농장 순이익이……."
"중국 버섯농장에서만 하루에 수천억씩 떨어집니다."
"……."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쌀로 불린다지만, '국물요리의 쌀' 앞에서는 못당해내는 거 같아요."
"중국인들이 황비버섯에 정말 환장하죠. 14억 인구가 매일 먹는 식품을 독점으로 생산한다고 생각하면, 어휴……."
잠시 이야기가 낸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래플이 자사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반도체를 우리 회사에 몰아줄 거 같습니다."
"TSMC에서 생산하는 것들까지요?"
"네, TSMC는 이미 귀사의 하청업체나 마찬가지이니까요. 래플이 긴장하고 있는 겁니다."
한때 서해전자와 래플은 스마트폰시장을 놓고 경쟁했다.
하지만 이제는 1위와 2위라는 표현조차 무색할 정도로 격차가 벌어졌다.
래플폰은 두말할 여지 없이 독보적인 최강의 황제 스마트폰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래플이 우리한테 더욱 베풀어줄 여유도 생겼고요. 물론 부회장님은 꽤나 자존심 상해하고 계십니다."
"폰에 들어가는 대부분의 반도체라면……."
"거의 모든 전자 부품을 우리 회사에 몰아주려는 모양입니다."
옛날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벌써부터 프리덤폰을 견제하는 거군요."
"프리덤폰은 출시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한국에서 '가장 가지고 싶은 스마트폰 1위'에 선정되었으니까요."
무려 100만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였다.
실비아컴퍼니에 의뢰만 하면 저렴한 비용으로 간단하게 설문조사를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
-주인님, 잠깐만 설문조사 좀 해도 될까요?
-뭔데?
-가장 가지고 싶은 스마트폰이 무엇입니까? 1번 겔드폰, 2번 래플폰, 3번…….
심지어 설문과 조사 집계도 순식간에 이뤄진다.
그렇기에 여론조사 업체들은 앞을 다투어 실비아컴퍼니에 의뢰를 했다.
하지만 프리덤은 지나친 설문은 주인을 방해하는 일이라며, 스스로 제한을 두고 있었다.
"그냥 1위도 아닙니다. 100만 중에 무려 99만 명 이상이 가장 갖고 싶은 폰으로 프리덤폰을 손꼽았죠."
"사실 누구라도 갖고 싶을 겁니다. 스마트폰의 줌왈트 아닙니까?"
프리덤폰의 스펙은 래플폰을 아득히 넘어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첨단 첩보시장과 하이엔드 군수 시장에서 사용되는 부품을 아낌없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1억 개 이상이라는 규모의 경제를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기 원가만 300만 원 이상.
유통, 관리 비용 등을 생각하면, 300만 원에 팔아도 '프리덤인더스트리'는 손해를 본다.
서해전자가 래플로서는 절대로 시도할 수 없는 짓.
"그리고 서진파운드리는 프리덤인더스트리의 지분 95%를 갖고 있죠. 래플로서는 견제를 위해서라도 서해 전자를 키워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아직 국내 점유율이 그리 높지도 않은데요."
"단말기 교체 주기가 도래하지 않아서 그렇겠죠. 지금의 프로모션 정책을 유지하는 한, 사람들은 다음 폰으로 프리덤폰을 선택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래플로서는 한국 시장을 완전히 잃게 된다.
"글쎄요. 프로모션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1개 팔 때마다 수십만 원에서 200만 원이상도 지원을 해주고 있어서요."
말은 저리 하지만, 권순철은 알고 있었다.
프리덤 인더스트리는 프로모션을 절대로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국민 모두가 한 번씩은 프리덤폰 사용 경험을 갖게 만들 것이다.
한번 기댓값이 높아진 사람은 다시는 되돌아가지 못한다.
86인치 TV를 사용한 사람은 그보다 작은 TV를 구매하지 않는 것처럼.
권순철은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래플은 프리덤폰이 국제 시장에 진출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때 적이었던 서해전자를 품에 완전히 안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물밑에서 반 프리덤폰 진영을 한창 구축하는 중입니다. 서해전자는 시작입니다. 대만의 산업단지도 한창 교섭 중입니다."
목이 마른지, 권순철은 잠시 물을 마셨다.
"곧 윈텔, 마이크론, ADM도 선택을 종용받게 될 겁니다. 그들이 서진파운드리를 통해서 생산하는 반도체는 단 한 개도 래플 제품에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폰, 모니터, 노트북, 태블릿, 이어폰, 마우스, 기타 등등.
이쪽은 완제품으로 이제 겨우 폰하나를 만들었고, 그마저도 손해 보며 팔고 있다.
하지만 저쪽은 전자제품의 종합 체제를 갖춘, 말 그대로 완성된 철옹성.
심지어 전 세계적으로 수십억이 넘는 충성스러운 고객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드웨어는 시작일 뿐입니다. 어플 개발 개인과 기업들, 전자 컨텐츠 개인과 기업들까지 선택을 종용 받게 될 겁니다."
"그 정도로 래플이 독하게 마음을 먹은 겁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 반도체 사업부에 그런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리가 있겠습니까?"
권순철이 친 정서진 인사가 된 것은,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서해반도 체의 미래를 위해서였다.
무인공장을 견학한 그는 반도체 공정으로 경쟁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해전자는 모든 반도체 공장을 정리하고, 팹리스로 나아가야 한다.
언제든지 서진파운드리가 마음만 먹으면 수십, 수백조 원을 들인 모든 공장들이 고철로 전락할 수 있음을 알았다.
"래플의 반도체 부품 파운드리를 받으면 당장 실적은 좋겠죠. 하지만 그렇게 안주하면, 서해반도체는 조금씩 뜨거워지다가 종래에는 팔다리가 삶아져서 솥을 탈출하지도 못하고 죽을 겁니다."
반도체 자가생산은 하루라도 빨리 정리해야 한다.
그게 권순철이 정서진 편에 선 이유.
"독이 든 성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