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67화
212장 중국 졸부가 무섭다 (4)
'50억이라니. 그런 푼돈으로 감히 누구를.'
서울에서 모든 걸 불태우고 쓸쓸히 제주도로 좌천되었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았을때.
의원님은 무려 280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내려주셨단 말이다!
심지어 세금 떼기 전에는 420억이었다!
'역시 졸부 가문은 어쩔 수 없군. 고작 50억으로 마약수사외길의 자존심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니. 천박한 자본가 같으니.'
경제사학을 배우면서 접했던, 근세기의 무수한 악독 자본가의 성향을 떠올렸다.
진철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한국에서 선한 자본가는 오로지 하수영 의원님, 단 한 사람뿐이지.'
"50억이 전부입니까?"
"그건 시작일 뿐일세. 차후 자네들이 어떤 길을 택하는 그룹 차원에서 적극 밀어주겠네. 총장을 노린다면 총장을, 여의도 진출을 노린다면 여의도를, 일생에 있어서 아무런 불편함이 없게 해주지."
"그럼 일단 1심 결과를 보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하시죠."
"블러핑을 쓸 자리가 아닐세. 그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하네."
진철진은 짐짓 불편한 표정으로 말했다.
1심 전에 가급적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러나 임탁정의 눈빛은 완강했다.
"블러핑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서 보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젊은 친구가 참 당돌하구먼."
"재벌 앞에서 쉽게 굽실거리지 않는 검사도 몇 명쯤 있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신중하게. 우리 그룹과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세."
"안심하십시오. 신중하게 생각해서 결정을 내릴 겁니다."
"몸값이 조금 부족하다는 이야기로군. 하지만 50억은 용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
"100억. 이 친구와 저 둘 각각 100억씩 주십시오."
"……."
진철진의 눈빛 속에서 순간 불꽃이 튀었다.
순식간에 금액이 두 배로 뛰었다.
100억이면 라테그룹 입장에서도 적은 지출이 아니다.
대관을 위해 매년 지출하는 정치자금을 상회하는 금액이었으니.
(다른 재벌그룹은 훨씬 더 많은 지출을 한다) 임탁정은 더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듯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1심 때까지 대답 주시기 바랍니다."
***
돌아오는 길에서, 고윤무는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
'100억이라고? 100억?'
말 그대로 인생을 뒤바꿀 수 있는 금액.
거기다가 앞으로 출세하는데 라테그룹이 계속 뒤를 봐준다니.
그룹 규모에 비해 정치 로비력이 약한 편이지만, 그래도 5대 재벌 아닌가.
"선배님, 진 회장이 어떻게 나올까요?"
"여의도에서도 워낙 짠돌이로 소문난 양반이야. 현금 만지는 놈들 특징이지. 머리 싸매고 고민 좀 할 거다."
"만약 정말로 100억을……."
"시간 끌려고 한 말이야. 준다면 좋지. 알아서 증거물을 갖다 바치는거 아니야?"
"예?"
"줘도 좋고, 안 줘도 좋아. 우리는 조커 패를 쥐고 있는 거라고."
임탁정은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거렸다.
고윤무는 새삼 그가 진세주를 어떻게 보내 버렸는지를 떠올렸다.
언론까지 동원해서 아주 전국구 개망신을 줘버렸었지.
그 때문에 라테그룹은 정치권에 그의 좌천을 압박했다.
재벌 눈치 보는 검찰도 그가 불편해져서 제주지검으로 보내 버렸고.
'새끼 저거, 그대로 놔뒀다가는 내 스폰서도 치겠네.'
'가만히 두면 안 되겠는데.'
'어디 멀리 보내 버려야지.'
이런 이해관계가 일치했기에, 좌천된 것이다.
'마약범죄에 미친 사냥개.'
검찰에서 오르내리는, 임탁정을 일컫는 별명.
고윤무는 그 별명이 어떻게 해서 탄생했는지를 실감했다.
100억 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다니.
'100억,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돈인데, 저렇게 초탈하실 수가 있나?'
하수영 덕분에 부유하게 사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한 자산이 어느 정도 되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도 100억이 껌으로 보일 정도는 아닐 텐데. 그만큼 돈 앞에서 의지가 굳건하다는 거겠지.'
고윤무는 오늘따라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
연예인 스캔들이 연일 일간지를 도배하며, 대중의 관심을 유혹했다.
파파라치 폭로로 유명한 '댓츠패치'에 떠오른 이름에 대중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뭐? 장효주가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다고? 상대가 누구야?"
"그냥 '그분'이라고만 하고, 얼굴에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우리더러 알아서 추리하라는 거야, 뭐야?"
"상대가 아주 유명한가 보네. 대놓고 이름, 얼굴을 언급 못 하는 거보니."
이것은 정보력이 가장 떨어지는 군중의 반응이었고,
"진짜 하수영 회장하고 사귀는 사이였어? 계속 아니라고 했었잖아!"
이것은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군중의 반응.
"이제야 겨우 인정을 하는구나. 하수영 회장이라면 오케이야. 우리 효주 누나를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겠지……."
"효주 누나, 결혼해서도 은퇴하지 말고 연기는 계속 이어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만둘 이유가 있나? 하수영 회장님 본인부터 미디어 컨텐츠 시장에 관심도 많고, 투자도 엄청 붓고 있는데."
이것은 라이트팬들의 반응.
"아예 하수영 회장님하고 나중에 달달한 로코 드라마 한 편 찍어주면 안 되나? 연인이니까 스킨쉽, 키스씬도 적극적으로 찍을 거 아냐?"
"아예 청불 관람으로다가 찍어주면 좋은데…… 아무래도 무리겠지?"
좀 더 하드한 팬들의 반응.
"씨발! 이게 언제적 사진인데 이걸 가지고 여론을 흔들어? 댓츠패치 이 녀석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이거 저번 홍수 때 서울에 전기다 끊겨서 수영 형님이 아파트 발전기 봐주러 들어가다가 찍힌 그거잖아."
"재난 때문에 세입자 집에 전기가다 끊겨서 집주인이 봐주러 들어간 사진 가지고 지금 스캔들 기사를 쓰는 거야?"
그리고 이것은 찐팬들의 분노였다.
장효주는 20대 중반임에도 아시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최고의 배우였다.
몸값도 한국에서는 최고를 달렸다.
덕분에 대중들의 관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진석현으로부터 싹 거둬졌다.
온 연예계 기사에서 장효주와 하수영의 비밀연애만 다루고 있었다.
-니년 주둥이가 약보다 맛있는지 한 번 빨아보려고.
-눈 떠라. 감으면 뒈진다.
영화, 맨 프롬 콜롬비아에 나왔던 강제 키스씬 장면도 질리도록 회자 되었다.
-장효주 씨는 이 영화 전에는 한번도 키스씬을 찍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데요.
-워낙에 스캔들 거리가 없고 조용해서 한때는 레즈비언 의혹도 받았었습니다.
-이런 찐한 키스신을 거부하지 않은 것은 이미 이성적인 교류가 있어서이겠죠?
-대한민국 어느 여배우가 '그분'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기사들을 훑어본 임탁정은 차갑게 중얼거렸다.
"이것들, 선 씨게 넘네. 프리덤."
-예, 주인님.
"이거 관련 기사들 전부 PDF 따고, 아카이브도 떠놔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을 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척 보면 안다. 이거 라테그룹에서 사주해서 터뜨린 거야."
-그렇습니까?
"그래, 진석현 그 새끼 감추려고 연막 친 거지. 이런 게 어디 한두번이냐."
임탁정은 다 마시고 난 음료수캔을 우드득, 하고 우그러뜨렸다.
"이것들이 감히 건드릴 게 따로 있지, 의원님을 건드려?"
***
세상이 시끌벅적한 틈을 타서, 진석현은 슬그머니 보석을 신청했다.
임탁정은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으나, 보석 허가는 엄연히 법원의 권한.
결국 세상이 떠들썩한 틈을 타서, 진석현은 슬그머니 풀려날 수 있었다.
하반신 불구라는 점 덕분에, 법원도 부담 없이 라테그룹에 보석이란 선물을 안겨줄 수 있었고, 진석현은 보석으로 풀려나자마자 곧바로 서울로 날랐다.
주소지가 서울이기에 허가지역 이탈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좋은 핑계도 있었다.
대검에서는 제주지검에 대고 사건을 이첩하라고 연일 압박을 가했다.
덕분에 임탁정과 대검 사이에 낀 지검장만 난처해졌다.
"임 차장, 그냥 서울에 넘겨 버리고 우리는 손 터는 게 낫지 않아? 지금 총장님이 엄청나게 화가 나셨다고 하네."
"우리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인데 범인 주소지가 서울이라고 왜 무조건 넘깁니까?"
"하지만 화이트 스카치는 서울에서 제조했잖나."
"서울은 단순히 제조 장소일 뿐입니다. 사건은 절대로 못 넘깁니다."
"지금 넘기라는 게 아니라, 1심이 끝나면……."
"안 됩니다."
임탁정이 눈알을 부라리며 압박하자 지검장은 간이 쪼그라들었다.
상명하복이 철저한 검찰 조직이라지만, 임탁정처럼 잃을 게 없고, 애초에 조직 내에서 출세할 마음이 없는 이들은 부담스럽다.
심지어 임탁정은 돈도 많지 않은가.
***
장효주 스캔들이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을 무렵, 또 다른 연예계 스캔들이 터졌다.
그렇게 연예지는 대중의 관심을 감아먹으며, 진석현의 존재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임탁정은 기소 실무 과정을 고윤무에게 일임한 뒤, 막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라테그룹의 로비를 주시했다.
그러는 가운데 마침내 1심 선고일이 열렸다.
임탁정은 비어 있는 피고인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자기 사건 선고일인데도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 피고인이라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건지, 천룡인이라서 상관없다는 건지."
고윤무가 덤덤하게 말했다.
"하반신 불구라는 게 법관들한테 잘 먹힌 거죠. 법정 출두가 매우 번거롭고 힘들다, 뭐 그런 논리 아니겠습니까?"
"재벌 3세가 힘들 게 뭐 있어? 훨체어도 비서들이 알아서 다 밀어주고 들어주고 할 텐데."
"그런 게 대중에는 은근히 잘 먹힙니다."
"아무튼 잘하자. 이거 잘 해결해야 윤무 너도 실적 쌓고 서울 갈 거 아니겠냐."
"네, 그래야죠."
오늘은 변론 일절 없이, 오직 선고만 내리게 되어 있었다.
법관들이 들어왔고, 재판장이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방청석은 거의 비어 있었다.
연예계 스캔들이 대중의 눈을 적절하게 돌리기도 했고, 제주지방법원이라는 지리적 특징도 있었다.
"……그러므로 피고를 징역 2년 2개월에 처하며, 집행을 4년간 유예한다."
순간 이를 바드득 깨무는 소리에, 고윤무는 슬쩍 돌아보았다.
임탁정이 죽일 듯이 법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개새끼들. 라테그룹이 어지간 히도 무서웠나 보네."
"선배님. 아니, 차장님."
"됐다. 첫술에 배부를 거라고 생각한 적 없었어. 2심에서 뒤집으면 되지."
"2심은 서울에서 진행하겠죠?"
"광주고등에서 하면 좋은데, 놈들이 그렇게 순순히 해주지 않을 거 같다. 어차피 제주도 밖을 벗어나야 한다면 서울이 될 가능성이 높지."
"당분간 긴 출장이 되겠군요."
임탁정은 우두커니 중얼거렸다.
"어차피 실형으로 집어넣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진세주 고것도 그렇게 빠져나갔는데. 대한민국에서 얼굴 못 들고 살게 만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1년이라도 무조건 실형 살게 만들어야죠."
"불구라서 더 힘들 거야. 판사들이 천룡인들한테 오죽 관대하냐? 몸도 불편하신 회장님 손주분을 감히 어떻게, 라고 생각하겠지."
임탁정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무튼 수고했다. 앞으로도 수고해 줘야겠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재판 당사자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방청객석도 전부 빈자리가 되었다.
조용한 법정에 혼자 남은 임탁정은 가만히 중얼거렸다.
"윤무야, 100억이 그렇게 좋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