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64화
212장 중국 졸부가 무섭다 (1)
처음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중간에는 의심도 있었다.
나중에는 못마땅함도 있었다.
하지만 계좌를 확인한 순간, 그 모든 불손한 감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우리 호객님은 오늘 뭐하신다고?"
"오늘도 변함없이 카지노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런가."
"프로 겜블러는 아닌 거 같은데 게임운이 너무 좋습니다. 게임을 대충하는데 베팅하는 족족 다 맞아떨어 집니다."
"그럼 카지노 손실이 제법 크겠어."
"그런데 팁을 워낙에 많이 뿌리는데다가, 오늘은 묻어둔 칩의 2/3 이상을 쇼핑에 사용했습니다."
"그래?"
칩을 많이 땄는데, 그 칩을 다시 카지노에서 팁을 뿌리고 쇼핑에 사용했다면, 카지노 측의 손실은 상당부분 상쇄된다.
진석현 입장에서는 반길 만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라테드림타워 호텔 카지 노는 진석현의 소유물이기 때문이다.
장손이라고 할아버지한테서 생일선물로 받은.
"심지어 쇼핑 매장에서 진열된 모든 상품을 사겠다고 한 뒤, 칩 무더기를 팁으로 바닥에 뿌려 버리기도 했습니다."
"칩을 카지노 밖으로 꺼내가게 두었다고?"
"VIP고객이시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
"어차피 호텔 쇼핑에 사용할 수 있는 건데, 본인이 직접 들고 나가는 게 무슨 대수냐고 주장하셔서……."
호텔 내부에서 칩은 쇼핑 등 모든 서비스에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칩 자체를 카지노 밖으로 갖고 나가는 것은 금지.
묻어둔 칩의 양에 따라 실시간으로 정산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팁으로 수십억 원씩 뿌려대는 VIP라면 그런 절차는 의미가 없지만…….
'아무리 부자라도, 저렇게 큰돈을 팁으로 팍팍 뿌려대는 사람이 있었던가?'
진석현의 기억에서는 없었다.
베팅운이 좋은 날에 기분이라며 팁을 뿌려대는 거야 늘 있는 일.
하지만 저 중국 졸부 2세처럼 딴돈의 1/4, 1/3씩 팁으로 뿌려대는 이는 없다.
며칠 동안 딴 돈이 수십, 수백억이상을 넘어가는 경우는 더더욱.
"돈을 갖고 나갈 생각 자체가 없는거 같습니다. 그냥 카지노에서 다 써버릴 심산으로 보입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좋지."
진석현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손이 큰 호객이로군. 마음에 들어."
선금을 보고 난 후, 진석현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지.
불안함, 의심, 못마땅함 같은 감정은 돈 앞에서 불손하다.
총기로 위협받은 것쯤은 7,000만 불 앞에서 사소한 클레임일 뿐이다.
그리고 클레임은 본래 고객의 정당한 권한.
'물건을 보지도 않고 7,000만 달러부터 그 자리에서 입금했다는 것은…….'
일단 7,000만 불 정도는 그리 큰 돈이 아니라는 재력을 증명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그런 거금을 보자마자 대뜸 던져 버리다니.
또한 장사가 막힐 일이 없을 거라는 자신감을 보여준다.
'어디 한 번 먹고 튈 수 있겠냐는 자신감이겠지.'
그리고 그런 자신감은 보통 배경으로는 형성되지 않는다.
오늘도 호텔 카지노를 휘어잡는 중 국 졸부 2세는 400% 믿을 수 있는 VIP였다.
"자, 어서 물건을 준비하자고!"
"사장님, 그런데 5만 개를 추가로 생산하려면 엘릭서 드링크 약 750만 개가 필요합니다."
단기간에 조달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다.
그러나 진석현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서 일부러 오프라인 매장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거잖아? 뭐가 문제야? 합법적인 구매인데?"
"갑자기 발주량이 일제히, 너무 큰 폭으로 폭주하면 의심을 사지 않을까 싶어서……."
"의심? 누가 의심을 해? 오프라인 매장 여러 군데에서 엘릭서 드링크 주문량을 늘렸다고 경찰이 뭐 들이닥치기라도 해? 요즘 경찰들은 관심 법도 하나 보지?"
"외국인 관광객이 화이트 스카치에 취해 살인 사건을 저지른 게 얼마 안 됐습니다."
"……."
진석현은 끄응 하고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 사건에서 호텔은 아무런 혐의도 입지 않았다.
검찰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 하리라.
라테드림타워 호텔이 화이트 스카치 핵심 공급망이라는 것을.
그는 고개를 저었다.
"무슨 상관이야. 설마 서울에 있는 마트들이 발주량 조금 늘렸다고, 그걸 제주도와 연관 지어서 누가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진석현이 생각하기에, 그 둘은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일단 1차로 추가 물량 100만 개만이라도 먼저 얹어 봐. 한 번 간을 보자고."
"네, 사장님."
결국 모든 것은 이 젊은 라테일가의 장손이 결정한다.
***
"물었습니다!"
고윤무 검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는 흥분해서 임탁정 눈앞에 인쇄지를 마구 흔들었다.
"68개 마트에서 엘릭서 드링크 발주량을 갑자기 대폭 늘렸습니다!"
프라임웰빙에서 즉각적으로 정보를 공유해 준 덕분에, 제주지검은 즉시 포착할 수 있었다.
임탁정도 기뻐하며 말했다.
"좋아. 그럼 거기 사업장 샅샅이 조사해. 아, 놈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하고."
"당연합니다."
그렇게 기뻐하던 고윤무는 하수영앞에서 고개를 몇 번이고 연신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의원님."
"작물 원생산자로서 윤리적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제가 소중하게 키운 버섯이 상류층 마약의 원재료가 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거든요."
"의원님 덕분에 진석현 그놈을 잡아들일 수 있게 됐습니다."
"음, 근데 자신은 있으세요? 라테그룹에서 가만히 두고만 보지는 않을 텐데요."
그 말에 고윤무는 얼굴을 굳혔다.
"우려하시는 바는 압니다. 하지만 반드시 놈을 법정에 세우고 말겠습니다."
임탁정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의원님, 나중에 라테그룹에서 알게 되면 의원님 사업이 곤란해지지 않겠습니까? 수영레스토랑이 라테백화점에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한때 악연이 있었지만 한 번 풀기는 했죠. 근데 완전히 화해한 건 아닙니다."
오히려 제과, 유통 시장을 잠식당한 라테는 하수영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건드리면 손해만 볼 것을 알기에 모르는 척 데면데면하게 넘어가는 것이지만,
"백화점에서 우리 프랜차이즈 매장들을 내쫓으면 아쉬운 건 오히려 저쪽입니다."
"으음, 그렇군요."
"그리고 그 어린 진가 놈은 음주운전으로 사람 여럿 잡았으면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당장 우리 병원에만 해도 그놈 때문에 불구가 된 재활환자가 두 분 있거든요."
고윤무가 눈을 빛내며 끼어들었다.
"알고 보니 의원님 사적인 응징심리도 있으셨군요."
"제가 나쁜 놈들을 굳이 추노해서 때려잡기에는 이제 늙어서 의욕이 없는데, 눈앞에서 보기 싫게 알짱거리면 파리채를 듭니다."
"……."
"……."
뭐? 늙어서 의욕이 없어?
고윤무와 임탁정은 그 말에 차마 억지웃음조차 보일 수 없었다.
잘해봐야 조카뻘인 청년이 '아이고, 나도 이제 늙어서 만사가 다 귀찮아.'라는 표정이라니.
"제 본진에서 화이트 스카치, 그 유사품을 유통했다가는 골로 간다는 걸 보여줘야죠."
"정말이지 의원님 같은 분이 검사를 하셔야 하는데 말입니다."
"아부하시면 소용 많습니다. 제가 귀에 달달한 말을 좋아하거든요."
"절대 아부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 진실을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달달하네요. 듣기 좋습니다."
***
고윤무 수사팀은 광수대와 협력해서 그물 같은 포위망을 형성했다.
68개 마트에서 엘릭서 드링크 물량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세밀히 감시했다.
동시에 마트의 지분 관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도 파헤쳤다.
"기현태. 68개의 매장 오너입니다. 사업자금 출처가 정확히 소명되지는 않습니다. 아마 진석현의 자금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이는 더 많지만, 몇 년 전부터 진석현의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처리해 온 심복입니다."
"엘릭서 드링크 제조 시설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기현태가 거느린 조직원들의 마약거래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5만 개의 엘릭서 드링크를 만든다는 것은, 당연히 5만 개의 마약 투여분이 필요하다.
5만 회 투여분의 도매 가격만 10억 원.
"아니, 마약거래는 덮치지 마. 지금 덮쳐봤자 꼬리만 자르고 빠져나갈 뿐이야."
임탁정과 고윤무는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진석현이 더 많은 화이트 스카치를 만들어내는 그때까지.
"1차 거래는 그냥 넘어간다. 더 많은 물증이 필요해.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드링크 100만 개면 화이트 스카치 6,666개를 만들 수 있는 물량이다.
"의원님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거 같습니다."
"그렇지. 진석현이가 안심하고 나머지 물량 확보에도 혈안을 올리게 만들어야 해. 5만 개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확신하게 해줘야 해."
진석현도 1,500억 원짜리 거래가 시작임은 알고 있다.
하지만 사이즈가 크다 보니 조심스럽게 몸을 사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
1차 거래에서 진석현에게 더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하수영이 쾌활하게 말했다.
"그거라면 걱정 마시죠. 완벽한 배우들을 섭외해 놨습니다."
"배우들이라고요?"
"네, 디테일까지 제대로 신경을 써야 멋진 작품을 만들지 않겠어요? 아, 덕분에 간만에 제가 여기저기 아쉬운 소리도 좀 했습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미리 스포일러 하면 재미가 없죠. 당일에 직접 보세요. 괜찮을 겁니다."
***
수사팀은 마침내 화이트 스카이 제조공장을 찾아냈다.
"물류 창고에 공장을 만들어놨을 줄이야. 정말 간도 큰 녀석들이군."
"반입한 엘릭서 드링크를 추가로 운송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머리를 잘 쓴 겁니다. 원래 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잖습니까."
"공장으로 운반 안 하고 왜 이렇게 뜸을 들이나 했더니, 물류 창고 안에 공장이 있었을 줄이야."
제조를 마치면 부피는 비약적으로 줄어든다.
400㎖짜리 150병이 손톱 크기로 변하니까.
그러나 수사팀은 모든 걸 확인하고서도 곧바로 덮치지 않았다.
아직 더 무르익어야 했다.
더 확실하고 촘촘하게 그물을 펼친 후, 단숨에 잡아당겨야 했다.
***
진석현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그게, 1차 물량이 준비되었다고 알렸는데 겜블 중이라며 일어나지를 않고 있습니다."
"젠장, 호객 한 명 다루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네. 현태 형, 물건은 문제없지?"
조용히 서 있던 기현태가 끄덕였다.
"어, 물건은 문제없다. 걱정하지 마."
"빨리빨리 넘겨주고 나도 한 잔 빨러 가야 하는데."
그때, 눈부신 라이트 여러 개가 게 스트하우스로 들어오는 입구를 찬란히 밝혔다.
진석현 등 조직원들은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뭐야? 설마 경찰이야?"
"아니야. 천천히 들어오는 걸 봐선 경찰 아니다. 부하들을 데리고 온 모양인데."
진석현은 끄덕이며 납득했다.
개당 300만 원에 6,666개의 물량을 가져가려면 당연히 부하들을 데리고 오겠지.
10여 대에 달하는 검은 밴이 줄을 지어 자리를 잡고, 마지막으로 검은 세단 한 대가 중앙에 섰다.
밴의 문이 일제히 열리고, 안에서 내린 건장한 남자들을 본 조직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중국인이 아니잖아?"
황인이라고는 바이어인 졸부 2세뿐.
나머지는 모두 백인과 흑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