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62화
211장 끊을 수 없는 것 (5)
"돌려! 돌려! 우하하하! 돌리라고!"
그는 천박한 언행으로 시끌벅적하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누가 보기에도 틀림없이 완벽한 중국 졸부 2세.
재벌이 아니라 졸부의 자식이라는 컨셉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아니, 의원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
고윤무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다 잡았다.
회중시계가 키워드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도 회중시계를 차고 다닐 수 있지 않은가.
-윤무야.
"네, 선배님. 지금 잠입해 있습니다."
-응, 의원님 지금 카지노 룰렛에 있으시다는구나. 털 많이 달린 흰코트를 찾으면 된다.
"……설마 했는데 정말 저분이 맞았군요."
-그래? 벌써 알아봤어?
"네, 제대로 중국인 졸부 2세를 연기하고 계십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주의해.
"네, 선배님."
하수영은 카지노 룰렛에서 맹활약을 보였다.
베팅하는 족족 쇠구슬이 들어갔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따라 베팅을 하느라고 룰렛이 난장판이 될 지경이었다.
"으하하! 퀸을 따먹었으니 이제 킹의 목을 따러 가볼까! 이봐, 딜러! 안내해!"
"예, 예?"
"바카라가 어딘지 안내하라고! 바카라 몰라?"
그리고 하수영은 바카라에서도 딜러를 말 그대로 탈탈 털어댔다.
돈을 턴 게 아니라 혼을 털었다.
"베팅액을 왜 더 못 올린다는 거야? 소국이라서 2배수의 재미를 모르나?"
'이, 이건 좀 세신 것 같은데.'
"베이징에서는 바카라 할 때 세 게임마다 판돈을 무조건 2배로 올리는 게 룰이라고!"
"죄송합니다, 손님. 저희 카지노는 베팅액 상한에 자체적으로 한계가 정해져 있다 보니……."
"에이! 그러니까 카지노 네놈들만 돈을 딴다고 여기저기 욕먹고 다니는 거다! 베팅액 상한도 자기들 입맛에 맞게 딱 정해두고는!"
'돈을 딴 건 의원님이신데? 카지노딜러는 돈을 꽤나 잃었는데?'
"에이, 슬롯머신이나 당겨야겠어. 이거 거기, 술병 들고 따라와."
"예?"
"보드카 하나 들고 따라오라고, 몇 번 말을 해야 알아듣겠어?"
"그것은 규정상……."
"다들 팁 달라는 걸 왜 이렇게 빙빙 돌려, 이 카지노는."
하수영은 곤란해 하는 직원 앞에 칩을 무더기로 던져 버렸다.
직원은 당황해서 서 있다가 얼른 팁 박스를 가져와서 칩을 주워 담았다.
어느덧 하수영은 슬롯머신 앞에 앉았다.
그리고 시끌벅적하게 중국어로 노래를 부르면서 손잡이를 당기기 시작했다.
빰! 빠라빠라빰! 빰! 빰!
"오, 잭팟! 바카라에서 쏟아부은 운을 여기서 보상받는군."
'바카라 테이블에서도 돈 땄잖아? 뭘 쏟아부었다는 거야?'
그날 하수영은 카지노에서 10억원 이상을 땄다.
고윤무의 눈에는 말도 안 되는 기적이었다.
원활한 잠행을 위해서 무언가 조작이나 트릭을 사용한 게 아닐까 생각 될 정도로.
다음 날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하수영은 카지노를 방문했다.
그는 딴 칩은 전부 카지노에 묻어두고 시끌벅적하게 게임을 즐겼다.
이제 카지노 직원 중에서 하수영의 존재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겁나게 운이 좋은, 중국인 졸부 2세라고,
"게임도 별로 할 줄도 모르는 거 같은데 그냥 막 이기네."
"아까는 포커를 치는데 텍사스홀덤이 뭔지도 모르더라고."
"블랙잭 테이블에서는 알파벳 카드숫자 구분을 못 해서 딜러와 멱살잡고 싸우려고 들었잖아."
"팁 뿌리는 것만 아니었으면 진작 내쫓았을 텐데."
이 무례하고 시끄러운 중국인 졸부 2세가 쫓겨나지 않은 것은, 아낌없이 뿌려대는 팁 덕분이었다.
심한 경우에는 한 테이블에서 딴칩을 그 자리에서 전부 팁으로 뿌려 버리기도 했으니까.
오늘도 하수영은 카지노 딜러들의 멘탈을 탈탈 털어버린 뒤, 뿌듯한 어깨로 외출했다.
카지노에서 적당히 떨어진 흑우집에서 임탁정, 고윤무, 윌링턴과 만났다.
물론 옷도 차에서 완벽하게 한국인처럼 갈아입고 나왔다.
"의원님 연기력이 날이 갈수록 빛이 납니다. 과연 영화제 시상식을 싹쓸이하실 만합니다."
"아아, 저는 상은 하나도 안 받았습니다."
"그거야 의원님이 사전에 미리 주최측에 사양 의사를 밝혔기 때문 아닙니까? 개인상은 거절하셨지만 맨프롬 콜롬비아가 나머지 분야를 휩쓸었죠."
유명한 이야기였다.
하수영이 먼저 영화제 때마다 '난 상 안 받으니까 빼줘요.'라고 사전에 고지한 것.
아무리 수상이 확실시된다 하더라도 일반 배우가 저랬다가는 미친놈, 오만이 극치에 달한 놈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하지만 각 영화제 위원들은 자신들이 정성껏 준비한 성의를 허공으로 날려 버리게 돼서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덕분에 하수영이 받아야 했을 신인 연기상 등등 여러 상은 다른 배우들에게 돌아갔다.
물론 상을 받을 만한 연기를 보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잘 보이고 싶었던 위원들의 마음이 더욱 컸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팍팍 놀고 있는데 왜 아무도 접근을 안 하는지 모르겠네요. 이쯤 되면 놈들이 약 한번 빨아보실래요, 하고 접근을 할 만한데."
"존재감이 너무 강렬하셔서 오히려 더욱 신중하게 기다리는 걸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살인 사건도 있지 않았습니까."
경찰과 검찰은 현장 감식 이후 카지노 조사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카지노는 재수 없이 사건이 발생한 장소일 뿐, 마약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어필한 것이다.
"아직도 몸을 사리고 있는 건가. 음, 그렇게 겁이 많아서야 약장사를 어떻게 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터프하게 밀어붙여야 하는 사업인데."
하수영은 뺨을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하긴, 곱게 자란 도련님이라서 겁이 많을 수도 있겠어요. 자기 고모가 약에 손댔다가 골로 가는 걸 한번 봤으니까."
"아직 약을 어디서 제조하는지는 알아낼 수 없었습니다. 진석현의 명의로 된 모든 부동산이나 건물들을 뒤졌지만 수상한 것은 찾지 못했습니다."
"엘릭서 드링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걸 보면 분명 어딘가 큰 창고에 쌓아뒀을 텐데 말이죠."
"창고류의 부동산은 전혀 없었습니다."
진석현은 소매점 사업을 차명으로 운영했기에, 검찰에서도 밝혀내지 못했다.
"그놈은 참. 살인자 될 뻔한 걸 살려줬으면 참회하고 반성하면서 살아갈 것이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약에나 돈을 대고 말이야."
"그러고 보니 의원님과도 악연이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놈이 저한테 악연 운운할 티어는 아니죠. 아무튼 이번에 제대로 뿌리 뽑아서 감옥에 길게 처박아 봅시다."
가볍게 회식을 하면서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헤어지기 전, 하수영은 윌링턴을 조용히 불렀다.
"윌링턴, 담뱃잎은 그냥 조용히 묻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어째서 입니까?"
"증명할 수 있어요?"
"……."
"증명 못 하면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만 바보 됩니다. 조용히 지켜보세요. 누군가가 증명을 해내면 그때 나서면 되고요."
"하지만 수영농장 담뱃잎은 많은 마약 중독자들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욱 그 효능을 입증해서 널리 퍼지게 만들어야……."
"그럼 마약으로 먹고사는 테러범친구들이 너도나도 한국을 찾게 되겠죠."
"……."
그 말에 윌링턴의 안색이 굳어졌다.
하수영은 조용히 설득하듯이 말했다.
"우리 농장 담뱃잎이 해를 끼치는 건 아니잖아요? 중독자들이 마약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그냥 조용히 묻어두는 게 더 나을 겁니다."
"……확실히 수영농장뿐만 아니라 알트리아도 잦은 테러 위험에 노출되겠군요."
"뉴욕 4대 패밀리에서도 가만히 놔두지 않으려고 할 테고요. 우리 농장 담뱃잎 수입을 훼방 놓을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담뱃잎을 더 이상 파고드는 건 포기하겠습니다."
"그래요. 애꿎은 담뱃잎은 놔두고, 라테그룹 장손 마약이나 한번 족쳐 봅시다."
"네."
쉬운 결정은 아니지만, 며칠 동안 고민했기에 수긍이 빨랐다.
마약보다는 담배가 훨씬 낫지 않나?
이걸 입증을 할 수가 있나?
괜한 풍파에 휘말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고민을 수도 없이 반복했었다.
'그래. 테러범들이 수영농장을 노리는 일만큼은 없어야지.'
***
수사팀은 진석현 등 신원이 드러난 범인들을 24시간 미행했다.
몇 번 마약을 운반하는 정황을 포착했지만, 덮치지 않고 참을성을 보였다.
"엘릭서 드링크를 어디에 보관하고, 화이트 스카치를 어디서 만드는지 알아내야 해."
"묵직한 증거 없이 처넣어봤자 집행유예로 풀려나올 뿐이야. 재벌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확실하게 골로 보낼 증거를 잡아야 한다. 아니면 현장을 덮치거나."
하수영은 라테드림타워 카지노에 꾸준히 출석 도장을 찍었다.
본래 내국인은 출입 금지지만, 외국인으로 가장해서 검찰에 협조하는 처지라 합법적인 카지노 나들이였다.
"그렇게 팁을 팍팍 뿌렸는데 어떻게 화이트 스카치 권하는 놈이 한 명도 없네. 제주도 카지노 인심이 원래 이렇게 야박한가?"
-패튼 살인사건 때문에 아직도 몸을 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패튼 그 친구는 조만간 미국으로 돌아간다며?"
-네, 곧 범죄인 송환 절차가 시작될 거 같습니다.
피해 여성의 유족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
하지만 돈 많은 미국인이라는 현실은 어쩔 수 없었다.
"넌 뭐 증거 잡은 건 없냐?"
-계획범들은 항상 저를 조심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빅데이터에서 추출한 간접 증거는 일부 있습니다.만, 큰 도움은 안 될 겁니다. 그거라도 보여드릴까요?
"아니, 공략집 보고 게임 하면 그게 무슨 재미냐. 그냥 갖고만 있어."
-네, 마스터.
필요할 때마다 프리덤이 수집한 정보 데이터를 열람하면 헤쳐 나가는 것은 편하다.
하지만 그건 기껏 산 퍼즐 게임을 공략 보고 푸는 것이나 마찬가지.
"에이, 그냥 내가 선공 쳐야겠다. 카운터 노리다가 게임 타이머 다 닳아버리겠어."
하수영은 게임을 끝내고, 카지노직원의 안내를 받아 제공받은 객실로 들어섰다.
직원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그는 기습적으로 물었다.
"여기 아주 끝내주는 사탕이 있다던데?"
"고객님?"
"베이징에 소문이 아주 파다하다고, 효과는 끝내주는데 절대로 몸에 아무것도 안 남는다고 말이야. 한번 가져와 봐."
"고객님,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어? 그럼 알아서 가져와."
직원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겉보기에는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 태도.
하지만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른 직원이 룸을 찾았다.
"고객님, 혹시 이것을 찾으신 겁니까?"
직원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투명한 비닐 팩을 보여 주었다.
안에는 10정에 달하는 작고 새하얀 정육면체가 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설탕 결정을 굳힌 과자처럼 생겼다.
하수영은 노련한 눈으로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직원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거 얼마나 더 구할 수 있나?"
"그거야 고객님이 얼마나 원하시는지에 달렸습니다."
"5만 개 가능하지?"
"예? 5, 5만 개라니요? 고객님, 이것은 한 정에 무려 2,000불이나 하는……."
"개당 3,000불 주마, 5만 개 가능하냐?"
직원의 표정이 당혹스러움으로 물들었다.
그냥 소문을 듣고 화이트 스카치를 찾은 중국인 졸부 2세인 줄 알았는 데, 느닷없이 5만 개라니.
하수영은 거만하게 소파에 걸어앉은 채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내가 베이징에서 장사 한번 해보려고."
"……."
"3천 불에 살 테니, 5만 개 가져와 봐."
원화로 1,500억 원에 달하는 거금.
재벌 3세도 눈을 뒤집을 금액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