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58화
211장 끊을 수 없는 것 (1)
새하얀 정육면체를 본 순간 직감했다.
저것은 마약이라고.
수십 년간 마약만을 쫓아온 FBI 수사관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이름이 스카치인가?'
"이건 내가 알던 스카치가 아닌데? 하얗고, 단단하군."
"화이트 스카치라고 하는 걸세. 아주 죽여주지. 한 번 먹어볼 텐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죽여주나?"
패튼은 킬킬거리면서 귀에 입을 대고 작게 말했다.
"아주 죽여줘. 근데 아무 부작용이 없어. 끝내주지?"
"부작용이 없다고?"
"몸 망가질 걱정도, 중독 걱정도 없네. 그냥 잠깐 즐기고 끝내면 되는 거야. 어떤가, 생각 있나?"
"설마 우리 둘이서만 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하지! 이 좋은 걸 하는데 여자가 빠져서야 쓰나! 자, 올라가세!"
"그러세."
패튼과 윌링턴은 사이좋게 어깨동무까지 하고 카지노를 벗어났다.
패튼의 스위트룸은 적당히 어질러져 있었다.
적어도 며칠 이상은 체류한 모양이었다.
얼마 후 벨이 눌리고, 패튼이 문을 열어주었다.
화려한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여자 셋이 복도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패튼!"
"오늘도 같이 재미있게 놀아요!"
"다시 연락 주기만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어머, 오늘은 친구도 있네?"
"자자, 어서들 들어오라고."
세 여자는 한국인으로 보였지만, 영어가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녀들은 윌링턴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런 자리가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현관에서부터 넷이 서로 부둥켜안고 진한 스킨십을 나누기 시작했다.
윌링턴은 위스키 한 잔을 쥔 채 일부러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속으로는 날카롭게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하아…… 패튼, 그거 있죠?"
"당연하지. 마음껏 즐기라고."
"며칠 동안 그것만 계속 생각났는 데, 자주 불러주지도 않고, 나빠요."
윌링턴의 눈빛이 날카롭게 여자들의 표정을 수색해 나갔다.
'중독자로는 보이지 않는데.'
중독자 특유의 망가진 눈빛은 아니다.
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또다시 기대하는 사람의 눈빛과 똑같았다.
"자자! 친구! 여기로 오라고!"
윌링턴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패튼의 양옆은 두 여자가 차지했고, 남은 한 여자는 배시시 웃으며 윌링턴의 옆에 앉았다.
"잘생긴 미국인 오빠, 안녕?"
"어, 그래."
"패튼 친구?"
"오늘부터 친구."
"아아, 그렇구나. 잘 부탁해."
패튼이 담배 지갑을 열어서 새하얀 정육면체 5개를 꺼내 놓았다.
여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을 뻗어서 화이트 스카치를 바로 삼켰다.
윌링턴이 손에 쥔 채 빤히 바라보자, 패튼이 웃으면서 재촉했다.
"어서 들어보라고, 친구."
"이거 끝내줘요."
"아무 부작용도 없어요. 머리가 아주 말끔해요."
"진짜 부담 없이 즐기기 좋아요."
윌링턴은 일부러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삼키는 척을 했다.
얼마 후, 약효가 돌기 시작하는지 패튼과 세 여자의 눈빛이 풀리기 시작했다.
패튼은 약이 주는 황홀감에 취해 두 여자와 정신없이 스킨십을 시작했다.
윌링턴의 파트너도 흥분이 올랐는지 신체 접촉을 시도했다.
"나, 난 잠시 화장실 좀…… 토할 거 같아."
"……."
여자는 대답이 없이, 패튼 무리를 바라보다가 그쪽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일어난 윌링턴은 화장실을 가는 척하면서 스마트폰을 꺼내서 촬영을 시작했다.
화장실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조용히 돌아왔다.
이미 네 남녀는 쾌락에 빠져 주변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약효 도는 게 빠른데.
이제 자유 시간이다.
윌링턴은 패튼의 스위트룸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약 20분 정도 뒤졌을 무렵, 그는 두툼하고 투명한 봉지를 찾아냈다.
안에는 화이트 스카치가 잔뜩 들어있었다.
어림잡아도 200개 정도?
월링턴은 그중 10개 정도를 꺼내서 슬쩍했다.
패튼의 여권을 찾아서 촬영하는 스파이캠으로 촬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채집을 끝낸 윌링턴은 거실로 돌아왔다.
이미 쇼파는 짐승의 향연이 한창이었다.
윌링턴은 찬찬히 바라보며 위스키한 병을 뜯었다.
친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그는 다른 방에서 조용히 위스키를 마셨다.
다음 날.
"친구! 아침에 일어나니까 자네 모습이 안 보이더군! 언제 그렇게 빨리 나간 건가?"
"아, 좀 쑥스러워서 말이지."
"이런, 겉모습은 이렇게 터프한 친구가 생각보다 수줍음이 많군."
패튼은 킬킬거리더니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래, 어땠나?"
"죽여주던데."
"여자가? 약이?"
"둘 다."
패튼은 더욱 즐겁게 웃어댔다.
"그렇지? 약 이름 한번 잘 지었단 말이야. 스카치위스키처럼 다음 날이면 언제 술을 마셨냐는 듯이 머리가 아주 깔끔하다고."
"정말 부작용이 없나? 갑자기 조금 걱정이 돼서 말이야."
"그렇다고 하더군. 나도 한 달 넘게 매일 먹고 있는데 전혀 변화가 없어. 그래서 오히려 더 자주 찾게 된다니까?"
"근데 그게 중독 증세 아닌가?"
"노노, 이 친구가 아주 순진하군."
패튼은 짓궂게 웃으며 덧붙였다.
"중독 증세라는 건 그런 게 아니야. 그냥 생각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게 없으면 손발이 덜덜 떨리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고, 머릿속은 온통 그거 생각만 가득 찬 거. 그게 중독이지."
"……그렇군."
"화이트 스카치는 아주 깔끔한 기호식품이지. 이거보다 더 깨끗한 건 내가 본 적이 없어."
"가격이 얼마나 하지? 나도 한 번 구해보고 싶은데."
"좀 비싸다네. 자네가 먹은 한 알에 2천 불."
"……좀 비싼 정도가 아니군?"
"부작용이 없고 깔끔하잖나. 이 정도 가격은 당연한 걸세. 그래서 아무나 못 먹어, 하하하!"
패튼은 화이트 스카치 일부가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일일이 개수를 세어가면서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윌링턴은 이후에도 패튼과 친해지면서 화이트 스카치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몰두했다.
본국에도 화이트 스카치 관련 조사자료를 당부해 두었다.
-과장님, 미국에 그런 마약이 유통된다는 정보는 없습니다. 그런데 1회 투여량이 2천 불이라고요?
"그렇던데. 한 사람이 한 번 먹는데 2천 불."
-지나치게 비싼데요. 그런 약이면 아마도 부유한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나 은밀히 돌 법한데.
"그래서 아직 정보가 없는 걸 거야. 그러니 수사망을 더욱 좁혀야 해."
-알겠습니다. 타겟팅을 다시 해야 하는군요.
윌링턴은 패튼과 어울려 정보를 빼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난 지금 놀고 있는 게 아니다. 분명히 일을 하는 거다.'
제주도 체류는 당분간 연장되었다.
***
슬롯머신으로 딴 5억 원 덕분에 수중에 돈은 넉넉했다.
윌링턴은 패튼을 통해 판매책과의 접선을 시도했다.
"한두 알 사려는 거면 그 친구들은 눈길도 주지 않아."
"일단 20알 정도 사려고 하는데, 이것도 너무 적으려나?"
"그 정도면 충분하지."
마약 거래는 보통 온갖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이뤄진다.
판매책도 함정수사 등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갖가지 잔꾀를 내게 마련.
윌링턴은 어떤 방식으로 거래할까 궁금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심플했다.
호텔 직원이 직접 스위트룸으로 직접 찾아온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약 거래가 아니라, VIP고객을 대상으로 한 상품 안내인 줄 알 것이다.
"백색 위스키가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첫 구매에 20알이나 주문하시다니요."
20알이면 4,000만 원.
첫 거래금액으로는 절대 적은 게 아니다.
패튼은 옆에서 호탕하게 껄껄 웃었다.
"이 친구가 한 번도 약을 안 해봤는데, 첫날에 바로 뿅 가서 죽으려고 하더라고! 나한테서 여자들을 뺏어가서 자기 혼자 즐기는데, 내가 어찌나 웃었던지!"
"다음부터는 더 부족함이 없도록 잘 에스코트해 드리라고 당부하겠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어. 하하하!"
윌링턴도 웃으면서 직원의 연락처를 따로 받았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여기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이미 마약을 복용했다(고 오해)는 사실 때문인지, 직원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친절했다.
윌링턴은 표정 관리를 하면서 명함을 챙겼다.
'마약책들이 호텔 직원들까지 매수해서 유통망을 뚫어 놨군. 이러면 한국 수사망에도 걸리기가 쉽지 않지.'
카지노 외국인들을 중심으로 판매한다면 한국 경찰이 포착하기 힘들다.
심지어 이곳 카지노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부유한 외국인이 아닌가.
그중에서도 비싼 호텔 객실을 이용하거나, 혹은 VIP서비스로 객실을 제공받는 이들만 엄선해서 접근하는 모양이었다.
***
"잘 어울리십니다, 선배님."
후배, 고윤무가 손바닥을 마주치며 연거푸 칭찬했다.
제주도에 유통되는 화이트 스카치의 정보를 처음 물어온 후배.
임탁정은 쑥스러운 듯이 자신의 복장을 이리저리 내려다보았다.
"너무 졸부 티가 나진 않아?"
"그게 더 좋죠. 지금부터 선배님, 아니 대표님은 LA한인타운에서 크게 성공한 재미교포 사업가입니다."
"영어 회화 좀 열심히 할 걸 그랬어."
"영어는 제가 할 줄 아니 염려 놓으십시오. 대표님은 평생 한인타운에서만 성장하셔서 '굳이' 영어를 열심히 습득할 필요가 없으셨던 겁니다."
임탁정은 끄덕였다.
둘은 렌트한 벤틀리를 타고 라테드림타워로 향했다.
카지노로 들어가려고 하자 입구에서 가볍게 제지를 당했다.
"이곳은 외국인 전용 시설입니다."
영어지만 임탁정도 대강 알아듣고 으스대듯이 말했다.
"자네, 검은머리 외국인도 모르나?"
"고객님?"
"나 재미교포야. 고 비서, 여권 보여줘."
"예, 대표님."
고윤무 비서는 공손하게 위장 여권 2매를 보여 주었다.
여권을 확인하고 난 뒤 직원이 공손히 머리를 숙여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착오가 있었습니다. 사죄의 마음에서 불편함이 없도록 정성껏 모시겠습니다."
"머리 검고 한국말 쓴다고 다 한국인이 아니라고."
임탁정은 으스대듯이 말하며, 고윤무와 함께 카지노에 들어섰다.
주변을 가볍게 두리번거리고는 고윤무의 어깨에 손을 얹고 킬킬거렸다.
"습관이 참 무서워. 하마터면 대검에서 왔다고 말할 뻔했지 뭔가."
"저도 제주지검에서 왔다고 말할 뻔했습니다."
"너무 오래 여기 있었어, 자네는."
"예, 그래서 하루속히 서울로 올라가고 싶습니다. 잘 좀 부탁드립니다."
임탁정은 화려한 카지노의 실내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여기가 주요 판매망인 게 확실하지?"
"공항에서 적발된 4명의 외국인 모두 이곳에 투숙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또 모두 카지노를 즐겼고요."
"중국 약쟁이들이 제주도까지 기어들어 와서 약장사를 하는 걸까?"
"요즘 중국 정부의 마약 단속이 한층 심해져서 설 곳이 많이 줄었을 겁니다. 그리고 화이트 스카치는 가격을 고려하면 일반인이 살 수 있는 품목이 아니죠."
"해외까지 나와서 카지노를 즐길만한 부자들이 대상이라, 이거군."
"외국 마약책이 단독으로 벌일 수 있는 사업은 아닙니다. 분명히 국내마약책과도 연합을 맺었을 겁니다."
"그나저나 라테드림타워라…… 감회가 조금 새로운데."
"아, 선배님이 라테그룹 장녀를 화이트 스카치로 보내 버리셨었죠?"
"설마 진세주 고년이 여기에서 몰래 장사를 하는 건 아니겠지?"
"그건 제가 알아봤는데, 절대 아닙니다. 진철진 회장이 진세주의 하루 24시간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고 있습니다. 평생 마약은 꿈도 못 꿀 겁니다."
둘은 보란 듯이 손님 행세를 하면서 유유자적하게 카지노의 분위기를 즐겼다.
갑자기 임탁정이 작게 말했다.
"윤무야. 저기 저 두 놈, 수상하다."
"중년 백인 남자들 말씀이시죠? 저도 봤습니다."
"가까이 가보자. 영어 믿어도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