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57화
210장 쓸데없이 눈치 빠른 FBI (7)
'현금만 1조 2,000억 달러…….'
'미러 대통령과 사적인 친분…….'
'개인 함대 보유…….'
'반도체 황제…….'
'티타늄 해상교량…….'
'러시아 극동 에너지 파이프……."
윌링턴 일행은 기계적으로 슬롯머신을 당기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끊임없이 하수영이 가진 것들을 열거했다.
'알트리아에 들어가는 담뱃잎을 조사하는 의미가 있나?'
'일개 FBI의 힘으로 이런 사람을 감당할 수 있나?'
'미스터 하수영을 건드린다는 것은 외교적 영역 아닌가? 이건 국무부, 아니, 백악관에서 직접 움직여야 할 사안 같은데.'
그렇게 고민과 번뇌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동안, 윌링턴은 돈을 제법 잃었다.
"이런 아무래도 난 도박하고는 맞지 않는가 봐."
"카지노에서 일하는 게 도박운과 무슨 상관입니까?"
"그렇습니다, 과장님! 그 둘은 전혀 별개입니다. 딜러를 하실 것도 아니잖아요!"
"……난 아직 승낙한 적도 없네. 이 친구들 이거 참."
윌링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부와 전화 한 통 하고 오겠네. 분석 결과가 나온 거 같아서."
"다녀오십시오."
윌링턴은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본부에 전화를 걸었다.
-과장님, 금단을 극복한 중독자들 1만 명 추적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오, 1만 명. 그 정도면 확실히 유의미한 숫자지."
-전부 과장님이 지목하신 그 공장에서 만들어진 담배를 피운 직후, 금단증세가 사라졌습니다.
"음……."
무려 1만 명이다.
이 정도면 수사관으로서의 촉이 확실하게 사실로 자리 잡은 셈.
"여기서 채취한 담뱃잎도 일단 어제 보내뒀어."
-도착하면 그것도 바로 성분 조사하겠습니다. 그런데 과장님, 알트리 아 담배는 조사결과 그냥 평범한 담배였습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중독자들 구매처를 제대로 알아봐."
-중독자들이 피운 담배도 그냥 길거리 마트에서 무작위로 구매한 겁니다. 특별히 마약 성분을 숨긴 담배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윌링턴은 뭔가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알트리아에서 '강력한 마약담배'를 생산했다고 믿었다.
그래서 공급처인 수영농장까지 찾아온 것이고, 그런데 그냥 평범한 담배라고?
-과장님, 놀라지 마십시오. 저희가 50명의 중독자들에게 따로 알트리아의 그 담배를 피우게 했습니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 금단증세가 사라졌습니다.
"뭐? 그게 진짜인가?"
-평범한 담배는 맞습니다. 하지만 그 담배가 금단증세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관계입니다.
담배로 가장한 마약이 아니다?
그냥 일반 담배인데, 금단과 중독증세를 이기게 해준다?
-과장님이니까 특별히 말씀드린 겁니다. 조만간 부국장님이 직접 전화하셔서…….
"지금 부국장님 전화가 들어왔네. 나중에 다시 통화하지."
-예, 무운을 빕니다.
"깐깐한 상사와 해외출장 중 통화 한 번 하는 거 가지고 무슨 무운까지야……."
윌링턴은 일단 부국장의 전화를 받았다.
-담배와 중독자의 상관관계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함구하게. 자네는 물론이고 자네 부하들도 모두 입단속시켜.
"알겠습니다."
-일이 매우 커졌다. 지금 백악관까지 보고가 들어갔어.
"이게 백악관까지 보고 될 정도의 일입니까?"
-마약 근절에 관련된 일이니까. 알트리아가 알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수영농장 담뱃잎으로 만든 담배가 마약중독을 치료하고 있어. 아니, 박멸이라고 하는 게 맞겠군.
"그럴 수가……."
-자네가 그런 말을 했었다지? 중독을 이기는 것은 더 큰 중독뿐이라고,
"그럼 그 담배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까요?"
-그래 봐야 담배 아닌가? 마약의 해악성과 비교하면 몇만 배 이상은 차이가 나지 않겠나.
"……그건 그렇습니다만."
담배와 마약.
무조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면, 어느 정치가라도 전자를 택할 것이다.
어쨌든 간에 담배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기호품이고,
-마약 카르텔이 절대로 이 사실을 알아선 안 되네. 그랬다가는 수영농장이 국제 마약 카르텔의 테러 대상이 될 거야. 탈레반 녀석들의 주수입원이 마약 재배라는 것을 생각하게.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반드시 함구하겠습니다."
-그래도 자네 팀이 초기에 방향을 잘 잡은 덕분에 빠르게 포착할 수 있었어. 돌아오면 포상이 있을 거니까, 며칠 더 푹 쉬다가 들어오게.
"네, 부국장님."
통화를 마치자, 긴장에 젖은 땀이 손바닥에 축축하게 고여 있다.
윌링턴은 잠시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쿵쿵거렸다.
'마약을 이기는 담배라니.'
키가 3미터나 넘어가는 담배 작물의 모습이 떠올랐다.
피지컬부터가 남다르다고 생각했는 데, 그런 효능까지 있을 줄이야.
갑자기 픽 웃음이 나왔다.
'니코틴 주제에, 나 말고 다른 중독 성분은 허용할 수가 없다 이건가? 이 인체를 중독시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다, 뭐 그런 건가?'
니코틴이 생각 따위를 할 리는 없지만, 그렇게 의인화하니 뭔가 웃겼다.
'원인 성분이 밝혀진 것도, 메커니 즘이 증명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1만 명을 대상으로 추적조사를 했다.
이 정도면 사실관계는 증명이 된 셈.
아직 '어떻게?'라는 것을 알아내지 못했지만, 방향성을 세우기에는 충분하다.
***
FDA 국장은 미 대통령 앞에서 차근차근 모든 것을 설명했다.
"아직 어떻게 그게 가능한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수영농장 담뱃잎이마약 중독, 금단 현상을 극복시키는 것은 99% 이상 사실입니다."
수준 높은 과학자들일수록 절대로 100%를 입에 담지 않는다.
"성분 조사를 아무리 해도 그냥 평범하다는 거고?"
"그렇습니다, 각하."
"다른 작물들과 마찬가지군. 성분 조사에서는 전혀 이상 없지만, 원인은 모르겠다."
"과학적 방법에는 엄연히 한계가 있죠. 수영농장은 미스터리 그 자체입니다."
말도 안 되는 생산량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서 수영농장 작물을 무작위로 수집해서 성분조사를 해왔다.
아마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중국, 유럽 등도 그런 시도는 했을 것이다.
샘플은 마트에서 간단하게 구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조사해도 '식품영양학적으로 100% 문제없는 최상품 농작물'이라는 결과만 거듭해서 나올 뿐이다.
"오히려 진짜 이상한 점이 바로 이 겁니다. 100% 문제없다는 거죠."
"국장은 과학에서 100%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했었지."
"일반 벼나 밀에서 납 같은 중금속이 극소량 나오는 것은 정상입니다. 그래서 허용치라는 기준이 있는 겁니다."
유해중금속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이 정도까지는 그냥 먹어도 괜찮다, 라는 기준점이 있을 뿐.
"그런데 수영농장의 모든 농작물은 납, 비소, 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전혀 검출되지 않습니다. 0% 입니다.
0%!"
"그 이야기는 지겹게 들은 거 같네만."
"수영농장은 우리 미국의 성분분석기술을 뛰어넘는 뭔가를 갖고 있는 겁니다! 그 뭔가가 뭔지 밝혀낸다면, 우리 미국의 농업의 발전도……!"
"뭐, 대남경제제재라도 하자는 건가? 안전한 농작물 키우는 기술이 무슨 핵기술도 아닌데?"
인류의 건강증진에 남몰래 이바지하는 농장을 제재한다니.
명분도 없고, 양심도 없다.
그냥 좋은 것을 뺏고 싶은 강대국의 탐욕만 있는 행위.
"아닙니다. 제 말은, 수영농장이 우리 미국에도 진출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 귀한 기술이 한국에만 갇혀 있는 것은 너무 아깝습니다."
"중국에 버섯농장을 진출시키긴 했었지."
"네, 우리도 중국에 뒤처질 순 없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그 비법에 다가간 것은 아니야. 적어도 특별한 사료덕분이라는 사실 자체는 알아낼 수 있었지만."
버섯을 키우는 데 쓰는 사료.
안살린 왕자가 개발한 구루마 사료로 알려진 그것은, 전부 한국에서 만들어져 중국에 들어간다.
중국은 이미 그 사료 일부를 빼돌려서 조사를 했다.
미국도 했는데, 중국이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하지만 사료를 아무리 조사해도 그냥 질 좋은 신형 사료일 뿐이었다.
정식 판매를 시작한 구루마 사료역시 마찬가지.
물론 구루마 사료는 농가에서 앞을 다투어 찾는, 세계 최고로 꼽히는 제품이긴 했지만.
'모든 농작물에 무세금 특혜를 줬으니, 수영농장도 조만간 미국에 진출하겠지.'
무세금 특혜에는 그런 의도도 숨어 있었다.
그런데 아직 미국에 농장을 지을 마음이 없어 보여서 백악관은 애가 탔지만.
"아무튼 수영농장 담뱃잎이 마약을 근절시킬 수 있는 비대칭무기다, 이거로군?"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피식 웃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의 핵보다 더 무서운 '식품계의 핵'을 남한에서 만들었군."
남미는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의 테러 세력들의 주요 자금원은 마약재배.
하수영은 그들을 굶어 죽게 만들 수 있는 '식품계의 핵폭탄'을 만든 셈이다.
북한의 핵폭탄보다 더 무시무시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전 세계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는,
"그럼 이제 우리 미국이 할 일은?"
"이 '담배 핵폭탄의 존재를 감추는 것이죠. 또 다른 이가 눈치챌 수 없도록 말입니다."
"아주 큰 연막을 준비해야겠어. 핵폭탄의 버섯구름도 감춰 버릴 수 있는 사이즈로."
탈레반이 정의의 알라봉을 들고 수영농장에 돌격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사양이다.
금단증세 극복은 아직 기사로도 다뤄지지 않았다.
연막으로 얼마든지 감출 수 있는 타이밍.
다음 날, 미국 제약업계는 대대적인 발표를 했다.
[마약 중독 치료제 개발!]
[중독자들 대상으로 대대적인 임상시험 개시!]
***
윌링턴 일행은 편안한 마음으로 카지노에서 며칠 더 머물렀다.
카지노가 어떠한 곳인지 분위기를 파악하는 데에 나름 신경을 썼다.
심지어 윌링턴은 이틀째 되는 날, 슬롯머신에서 잭팟을 터뜨리기도 했다.
무려 5억 원이나 되는 돈을 한 번에 딴 그는, 기분 좋게 일행의 추가 체류비를 부담하기로 했다.
비싼 호텔에서 묵어놓고 회사에 청구서를 내미는 것은 좀 눈치가 보인다.
'이 녀석들, 이미 마음이 벌써 그쪽으로 단단히 기울어졌네.'
부하들은 틈만 나면 카지노의 화려함을 찬양했다.
"아, 이런 데서 근무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매일매일이 영화 속에서 사는 것 같지 않을까요?"
"여기서는 시설만 보셔야 합니다. 손님을 보시면 안 돼요. 라스베이거스는 여기와 달리 금발 미인들이 바글바글하답니다. 제가 구글링을 다해봤습니다."
노골적으로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는 의도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윌링턴과 함께 움직여야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며칠 동안 카지노에 살다시피 하다 보니, 그새 친해진 고객도 생겼다.
미국에서 온 중년의 백인 남성 사업가, 이름은 패튼이었다.
마침 출생한 주도 같은 터라, 윌링턴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우오오! 그래, 그렇지! 들어가라! 들어가라!"
"하이 호!"
윌링턴은 오늘도 패튼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술잔을 부딪치며 카지 노 룰렛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을 즐겁게 구경하고 있었다.
패튼은 자기가 선택한 코너에 볼이 걸리자 얼굴이 뻘게지며 크게 함성을 질렀다.
"우와! 우와아! 드디어 걸렸어, 걸렸다고!"
그리 큰돈은 아니지만 저리 기뻐하는 걸 보면, 카지노 룰렛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이 기쁜 날 스카치가 빠질 수 없지. 이봐, 친구. 자네도 스카치 한번 할 텐가?"
"스카치 위스키라면 지금 마시고 있잖아?"
"이거보다 훨씬 더 좋은 걸세."
패튼은 피식 웃으며, 작은 담배 지갑을 열어 그 안을 슬쩍 보여주었다.
새하얗고 작은 정육면체 몇 개.
순간 윌링턴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
'마약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