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54화
210장 쓸데없이 눈치 빠른 FBI (4)
하수영은 농장을 찾았다.
농장 앞에는 관광버스 몇 대가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어린 자녀와 함께 한 부부, 노년부부, 젊고 어린 커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곳곳에는 브이로그 촬영을 하는 스트리머들도 보인다.
수영투어 안내원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수영농장이 자랑하는 무인농장입니다. 수영농장의 모든 작물들이 바로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죠."
"이제부터 내부를 둘러보면서 손수 수확하는 체험을 하시겠습니다."
"무인로봇들은 눈으로만 보고 손으로는 만지지 말아 주세요. 다치실 우려가 있습니다."
"물론 로봇들은 매우 스마트하기에 스스로 여러분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도록 조심할 것입니다."
"자, 지금부터 차례로 입장하시겠습니다."
하수영은 흐뭇한 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이야, 식도락 관광패키지 아주 잘팔리네."
-비용이 매우 저렴하니까요. 요즘은 독도 코스까지 넣은 풀패키지가 아주 잘 나갑니다.
"흑자가 나긴 하냐?"
-저가형 패키지에서 적자를 보고 고가형 패키지에서 흑자를 남기고 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이상해. 농장이 꽤 큰 건 알겠는 데, 이 정도 사이즈에서 그 많은 농작물이 나온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휴지기 없이 일 년 내내 농사만 짓는대. 그것도 아주 빡빡하게. 지금도 봐봐. 어휴, 벼들이 저렇게 빡빡하게 자라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어?"
어느 중년 남자도 혀를 찼다.
"나도 농사 지어봐서 아는데, 저렇게 밀집 재배를 하면 작물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해. 그런데 잎도 그렇고 줄기도 그렇고, 다들 싱싱하고 건강하네."
"수영농장이 쓰는 아주 특별한 비료 덕분이라고 하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가?"
관광객들은 작업복에 작업용 고글을 쓴 하수영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냥 농장 관리직원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그때 임탁정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 검사님."
-의원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화이트 스카치 유사품이 제주도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그래요?"
임탁정은 대략적인 정황을 설명했다.
-프라임웰빙에서 개인 대량판매를 제한하고 있다지만, 번거롭긴 해도 물량을 못 구하진 않겠죠. 그래서 제가 조사를 해볼까 합니다.
"마약이나 만들라고 출시한 건강드링크가 아닌데 말입니다. 참 마약범들 창의력 기발한 거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마약 밀매 방법을 보면 정말 온갖 기발한 것들이 있죠. 밀봉한 마약을 삼켜서 도착지에서 토해내는 방식도 있습니다.
"새기라도 하면 죽겠네요."
-즉사죠. 그나저나…….
임탁정은 조심스럽게 부탁을 꺼냈다.
-프라임웰빙의 판매 자료를 조사해 보고 싶습니다. 수사에 필요합니다.
"영장을 치시면 되지 않나요?"
-영장 없이 조용히 조사하고 싶습니다. 보안을 위해섭니다.
"그러시죠. 마케미야 회장님께는 제가 따로 말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이런 협조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하수영은 전화를 끊고 프리덤한테 물었다.
"넌 뭐 좀 아는 거 있냐?"
-몇 번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게 알려진 이후, 계획범들은 사전에 미리 저를 차단한 상태에서 진행합니다.
"하긴, 마약범들도 바보는 아닐 데니까. 널 감시자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겠지."
-정치인 유저들은 단말기를 꺼놓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대기업 사업체들은 아예 출근할 때 단말기를 일괄 수거합니다.
"수집한 개인정보는 실비아컴퍼니도 열람 못 한다고 공지해도 안 믿는군."
-안 믿는 게 정상이죠.
"그나저나 화이트 스카치라니……. 엘릭서 니코틴에 신경 쏠려 있는데 또 다른 데서 터지네."
-화이트 스카치는 이미 그 효능, 수익성을 입증했습니다. 마약범들이 놓칠 리가 없죠. 해외에서도 이미 상류층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을 겁니다.
엘릭서 드링크를 대량으로 마약에 섞어서 수분만 날려주면 그만.
제조법 자체는 너무 간단하다.
유통되고 있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화이트 스카치의 존재가 알려진 이후 드링크 판매량이 늘었다.
일반 소비자들이 마약의 위험까지도 억제해 준다는 점에서 '정말 효과 좋은 드링크인데?'라는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
"좋은 약을 만들어서 팔았더니 일부러 병을 키워서 약을 찾는 꼴이 네."
-부작용 없는 쾌락을 탐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어쩔 수 없는 듯합니다.
"원래 인간이 그래. 그걸 억제하려면 군주가 돼서 철혈독재를 펼쳐야 하는데, 그게 제법 귀찮아."
-피지배층을 착취할 게 아니라면 일정 이상의 권력 집중은 번거로울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지금 꼴랑 기초의원만 하는데도 이렇게 귀찮은 일이 산더미인데, 은하 황제 같은 걸 하면 얼마나 짜증 나겠냐?"
***
요즘 수영투어를 찾는 식도락 관광객 중에서는 외국인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식도락 패키지는 SNS를 통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고, 수영투어의 흥행을 이끌었다.
외국인들은 그렇게 풍성한 음식을 삼시세끼 제공하는 관광패키지의 가격이 그거밖에 안 된다는 것에 경악했다.
[먹는 게 남는 거라는 정신에 충실한 패키지 구성.]
[이 돈으로 일주일 내내 이런 것들을 먹을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기적!]
[동남아 여행을 갈 바에는 수영투어 식도락 패키지를 가라.]
안내원한테 멀어져서 자기들끼리 농장을 둘러보는 백인 남자들 그룹이 보였다.
그들을 지나치던 중, 하수영은 우연찮게 대화를 들었다.
"확실히 이상해. 여기 농장이 팔아 치우는 농작물 양에 비하면, 농장의 크기가 너무 작아."
"특별한 비료를 사용해서 생장 속도와 수확량을 높였다고는 합니다만."
"돼지 100마리를 키우는 농가에서 10만 마리에 달하는 고기를 출하하면, 그걸 특별한 사료 덕분이라고 납득할 수 있겠나?"
"한국 정부에서도 여러모로 의심을 하지만, 그냥 덮어두는 거 같습니다. 실사를 나와도 아무 이상 없이 잘굴러가는 농장이니까요."
"농장 오너가 한국 지하의 빅보스라는 말이 있어. 식약처도, 정부도, 모두 그의 손아귀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
"담배 농장을 한 번 봤으면 좋겠는 데, 거기는 개방이 안 되는군요."
"담뱃잎 진액이 위험하다는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서일까?"
"둘 다가 아닐까요?"
하수영은 못마땅해서 미간을 살짝 구기고는 끼어들었다. 물론 영어로,
"손님, 담뱃잎 진액이 위험해서 공개를 하지 않는 거지,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어서는 아닙니다."
"여, 영어를 할 줄 알았습니까?"
백인 남자들은 당황했다.
하수영이 자기들 대화를 다 알아들었다는 것이 전혀 의외였던 모양이다.
"원하신다면 제가 따로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담뱃잎 진액은 독해서 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보여주겠다면 우리야 고맙소."
"뭘요. 의심 같은 건 바로바로 풀어야 제가 직성이 풀려서요."
하수영은 그들에게 마스크를 건네고, 담배 재배구역으로 안내했다.
높이가 3미터 넘게 자라는 거대한 담배 작물들을 보고 남자들은 입을 쩍 벌렸다.
"담배가 원래 이렇게 크게 자랍니까? 내가 아는 담배보다 훨씬 큰데 8.?"
"기업 비밀입니다. 크게크게 키우는 방법이 있죠. 유전자조작종은 아니니 안심하세요."
"크흠……."
백인, 윌링턴 요원은 헛기침을 하며 자세히 둘러보았다.
무인로봇들이 곳곳에서 돌아다니며 세심하게 작물을 관리하는 게 눈에 보인다.
담뱃잎을 따서 담는 녀석들의 움직임은 사람보다 훨씬 빠르고,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다.
'왜 여기 농장이 농사의 미래라고 하는지 알겠어. 만약 미국의 모든 농장에 이 로봇들을 도입한다면……."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기대할 수 있겠지.
하지만 농사 수입만으로 로봇들 가격을 충당할 수 있을까?
'알면 알수록 여기 농장은 기형적이야. 어쩌면 농사는 그냥 눈속임뿐이고, 진짜 돈벌이 수단은 다른 게 아닐까?'
마피아들이 자주 써먹는 수법이다.
나이트클럽을 차려놓고 지하에서는 밀거래품을 열심히 제조하거나.
오락실을 차려놓고 지하에 마약을 쌓아놓거나.
여기도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을까?
"보셨습니까? 우리 담배 농장에서는 숨기고 싶은 비밀 같은 것은 없습니다. 진액 위험성 문제로 평소에는 비공개로 해둘 뿐이죠.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보여드립니다."
"그렇군요. 감사히 잘 봤습니다. 여기 관리직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혹시…… 아닙니다."
윌링턴은 뭔가를 물어보려다가 멈줬다.
직원 역시 공모 가능성이 있으니까.
어설픈 질문은 이쪽의 정체만 드러내게 할 뿐이다.
그래서 일부러 가벼운 화제로 돌렸다.
"그런데 이 멋지고 근사한 농장이 곧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아, 네. 맞습니다. 지금 새 농장을 짓고 있는데, 완공되면 옮길 겁니다."
"이유라도 있나요?"
"아, 재수 없게 땅에서 금맥이 발견되는 바람에요. 600톤쯤 묻혀 있다나? 그것도 좀 얕은 편이라 그냥 땅만 좀 걷어내면 된다고 해서 자리를 비켜줘야 됩니다."
"금맥이라고요?"
윌링턴은 그 말에 눈을 빛냈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네. 겨우 300억 불짜리 금덩이를 위해서 연간 수천억 불 이상의 수익을 내는 농장이 이사를 가야 합니다. 웃기지 않습니까?"
"그것 참 아이러니하군요. 저도 담배농사를 짓고 있어서 남일 같지가 않네요."
"담배농사를 지으신다고요?"
"네, 이 농장에서 알트리아에 납품을 한다고 들어서 한 번 견학을 온 겁니다. 어떻게 농사를 짓는지 꼭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농사지으신 지는 얼마나 되셨죠?"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농장을 물려받기로 해서 배우고 있는 단계입니다."
윌링턴은 낮빛 하나 안 바뀌고 술술 거짓말을 했고, 부하 직원들은 상사의 연기력에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좋은 농법이 있으면 또 배워도 보고 싶었고요."
"저희 농장에서 배울 건 없습니다. 보다시피 로봇들이 다 하기 때문에, 다른 농장에서 참고하다가는 큰일납니다."
"네, 보자마자 깨달았어요. 이건 뭐 배우고 베끼고 할 만한 수준이 아니 더군요. 이 로봇들은 다 얼마나 합니까?"
"로봇 세팅하는 데 지금까지 100억 달러 이상은 들어간 거 같네요."
"그, 그렇게나 비쌉니까?"
"로봇이 한두 대가 아니다 보니까 그렇습니다. 그래도 부품 대량구매로 단가를 많이 낮춰서 그 정도지, 적게 샀으면 오히려 개당 단가는 몇 배로 뛰었을 거예요."
하수영은 윌링턴 일행을 가볍게 훑고 물었다.
"일행분들은 그럼……?"
"제 일을 도와주기로 한 친구들입니다. 녀석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초짜입니다."
"음, 다른 형제는 없는 건가요?"
"있긴 합니다만, 그건 왜……?"
"농장은 다른 형제에게 줘버리세요."
"미스터?"
"제가 관상, 그러니까 얼굴에서 그 사람의 포츈 스트림을 좀 읽을 줄 알거든요? 그런데 손님 여러분들은 모두 얼굴에 콤바인이 없어요, 콤바인이. 이런 분들이 농사에 손대시면 패가망신하십니다."
"……."
"어디 보자…… 신기하게도 다 칼이 있으시네요. 그것도 아주 날카롭고 단단한 칼입니다. 여러분들은 검사나 수사관, 조사관 같은 일을 하시면 인생이 잘 풀리실 거 같은데요?"
하수영은 차마 '마피아를 하시면 진짜 엄청난 부자가 될 거다.'라는 말은 덧붙이지 못했다.
초면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니까.
윌링턴 일행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