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53화 (853/1,270)

프랜차이즈 갓 853화

210장 쓸데없이 눈치 빠른 FBI (3)

임탁정 검사.

검찰 내부에서도 비주류에 속했던 그는 마약 범죄를 진심으로 증오했다.

강남 클럽 일대를 돌던 화이트 스카치, 엘릭서를 섞은 상류층 전용 마약을 쫓던 그는 라테그룹의 회장 장녀에게까지 칼을 댔다.

그 결과 라테그룹은 2천억 원에 달하는 손해를 봤고, 진세주는 한국에서 얼굴을 들고 살지 못해 해외로 도주했다.

재벌을 건드린 원죄로 제주도로 좌천되었지만, 그는 느긋했다.

"외식업중앙회 비리 게이트도 이제 다 마무리되었으니, 내가 의원님을 위해서 더 해드릴 것은 없겠군."

제주도에서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지만, 전혀 나쁘지 않았다.

"자, 자. 오늘은 흑우 먹으러 가자고, 내가 갑자기 흑우가 땡기네."

"또요? 차장님, 저번 주에도 개인 카드로 흑우 긁으셨는데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괜찮아. 이 정도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어. 먹고 싶은 사람들 모두 모여."

"진짜 모두 모여도 됩니까?"

"괜찮다니까 그러네."

제주지검에서 임탁정 검사는 인기 스타였다.

먹을 거 잘 사주는 돈 많은 영감님이었으니까.

매일 비싸고 맛있는 것만 먹으러 다니다 보니, 임탁정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넘쳐났다.

"아, 선배님, 오늘 회식하러 가십니까?"

"회식은 무슨, 시간 남는 사람들끼리 그냥 밥 한 끼 하는 거지."

"혹시 저도……."

"그럼 안 가려고 했어? 일 빨리 끝내고 흑소랑으로 넘어오게."

"헉! 거기를 가십니까? 예, 알겠습니다.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임탁정은 예금으로 252억 넘게 있었다.

로또 당첨금 중 아내에게 28억을 주고도 252억이 남았다.

그 돈을 몽땅 은행에 VIP 장기상품으로 묶어 놨다.

예·적금 금리가 2%가 안 되는 시대인데, 은행은 3% 가까운 금리를 약속했고, 매달 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대신 임탁정은 5년간 돈을 빼지 않으며, 그전에 빼게 될 경우 이자를 반환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이자를 세금떼고 4,000만 원 넘게 받는다.

때문에 임탁정은 말 그대로 물 쓰듯이 돈을 쓰고 있었다.

한 달에 4,000만 원을 넘게 써도 오히려 저축까지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아유, 차장님. 돈 너무 많이 쓰시는 거 아닌지 걱정됩니다."

"넣어 둬, 넣어 둬. 이번에 주식이 잘됐거든. 유성케미컬 대박 난 거 있잖아. 거기서도 쏠쏠하게 재미 봤어."

"헉! 대박이십니다!"

"우와, 그거 초대박 주였는데 차장님 거기에 들어가셨었군요!"

"응, 몇 장 건져서 주머니 사정 넉넉해. 아,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뭣이 중요한가? 안 그래?"

마약범들을 상대하며 한껏 날카로워졌던 인상.

하지만 지금 임탁정을 보고 어느 누구도 그런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했다.

얼굴에 웃음 가득하고 서글서글한 인상은, 성격 좋은 동네 아저씨 같은 분위기다.

"오늘 한 사람당 2인분씩 못 먹으면 다음 회식은 삼겹살인 줄 알고 있어라."

"아이고, 삼겹살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차장님!"

무려 50명이 넘는 단체 손님들이다 보니 매장은 시끌시끌했다.

"선배님, 제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옆자리에 냉큼 앉은 후배가 공손하게 두 손으로 소맥을 말아 올렸다.

서버들이 분주하게 다니며 먹음직스러운 한우를 굽고, 잘라주고 있었다.

검찰 직원들은 아직 굽지 않은 한 우의 선홍빛 자태에 마음을 한껏 빼앗겨 있었다.

"여기 고깃값이 1인분에 8만 원가까이 하지 않습니까? 이거 고깃값만 천만 원 넘게 나오겠는데요?"

"허허, 그럼 이번 주에는 오리고기만 먹고 살아야겠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 배포,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임탁정이 돈 많다는 것은 제주지검에서 모르는 이가 없었다.

임탁정은 처음 제주도에 내려왔을 때 구했던 집도 정리하고, 지금 드림타워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무려 일박에 수십만 원이 넘어가는 객실에서 장기투숙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텔 생활은 괜찮으십니까?"

"으응, 처음에는 걱정했는데 막상 지내보니 좋더라고, 아기 엄마하고 애들도 제주도 한 번씩 올 때마다 좋아하고, 어째 내가 아니라 호텔에 놀러 오려고 자꾸 내려오는 거 같지만 말이야."

"하하, 가족끼리 화목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애들 얼굴 본 지가 벌써 두 달이 넘었습니다."

"자네 가족들이 서울에 있었지?"

"예. 좀 내려오라고 사정사정을 해도 주말에 뭐가 그리 바쁜지 안사람이 서너 달에 한 번 내려올까 말까 합니다."

"아무래도 매달 내려오기는 부담스럽지."

"사모님은 매주 아이들 데리고 내려오시잖아요. 참 부럽습니다."

"수영병원에서 닥터헬기 빌려줘서 자주 내려오는 거지, 안 그럼 우리 안사람도 진작 포기했을 거야."

임탁정의 가정은 옥상에 헬기 이착륙장이 있는 고급 주상복합으로 이사했다.

제주도에 오고 싶으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 착륙장으로 가면 된다(물론 관리소에 사전신고하고, 비용도 내야 한다).

1시간도 안 돼서 호텔 옥상 헬기 이착륙장에 바로 내리니, 그만큼 편할 수가 없다.

탑승 수속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이 전부 다 하이패스다.

"하수영 의원님하고 정말 친분이 두터우신 거 같습니다."

"내가 그분께 신세를 많이 졌지. 나보다 어리지만, 대화를 섞다 보면 한참 오래 사신 듯한 느낌을 받게 돼. 참 이상하지."

"아, 그렇습니까?"

"고루하다는 게 아니야! 그냥 보면 되게 밝고 경쾌한 그 나잇대 청년인데, 뭔가 설명 못 할 연륜이 있어. 자네도 직접 겪어보면 알 거네."

"저도 언제 한번 꼭 뵙고 싶습니다. 기회 되면 인사 한번 시켜주십시오."

"뭐, 기회 되면 그게 뭐가 어렵겠나."

임탁정은 허허 웃으며 술에 술 탄듯, 물에 물 탄 듯 넘어갔다.

예전 같았으면 똑 부러지게 거절을 했겠지만, 굳이 대놓고 강경하게 나갈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기회 되면 어려울 것 없다'에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한 잔 더 드시지요."

"자네도 들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새 취했다.

"차장 검사님! 이 귀한 고기를 쏘시는 날에 그래도 건배사 한 잔은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배사! 건배사!"

"하하, 이거 참. 내가 그런 거 쑥스러워하는 거 다들 알잖아요."

"건배사! 건배사!"

"좋아요. 그럼 짧고 굵게 한마디하지."

임탁정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후배 검사가 부리나케 잔을 가득 채워 주었고, 그는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다들 그를 따라서 잔을 높이 들어올렸다.

"한 명당! 3인분! 소주는! 재량껏! 계산은! 내 카드! 위하여!"

"위하여!"

"위하여!"

"차장님 최고! 너무 멋있으시다!"

"아우, 이렇게 제 가슴을 울리는 건배사는 여태껏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거 같습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온다.

임탁정은 제주지검 생활을 하면서 그 말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검사로서의 업적도 그 끝을 봤다.

서울에서 마약 수사를 하면서 몸통인 재벌 계열사와 재벌 딸까지 한번에 날려버렸다.

앞으로 마약 수사에서 그보다 더 큰 업적을 또 한 번 쌓을 수 있을까?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임탁정은 생각했다.

마약 수사 경력으로는 자신이 절정을 찍었다고.

그것도 앞으로는 그 반의반도 범접하지 못할 엄청난 절정이라고.

성취감은 막대했지만, 한편으로는 허탈감을 주었으며,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도 주었다.

이 모든 게 실수령 280억 원이라는 로또 당첨금 덕분이다.

만약 그냥 좌천만 되었다면 아마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에 분함이 가득 차올랐으리라.

하지만 임탁정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절대 깨지지 않을 신기록을 달성하고 막대한 포상금을 받은 뒤 후회없이 은퇴한 기분이야…….'

그런 뿌듯함을 참을 수 없어, 검찰청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밥을 사는 것이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모친 수술비로 걱정하는 가난한 9급 직원에게 자비로 1,000만 원을 쾌히 건네기도 했다.

그 일은 한껏 미담으로 알려졌고, 임탁정의 이미지를 더욱 인자하고 부드럽게 만들었다.

보살 검사, 임탁정 차장.

이름과 인상이 전혀 따로 노는, 자애로운 상사.

퇴근하면 깨끗하게 정돈된 고급 객실이 항상 그를 반긴다.

아무리 어지럽히고 출근해도 저녁에 돌아와 보면 새 객실처럼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등 다양한 룸서비스가 24시간 주문 가능하며.

주말이면 처자식이 닥터헬기를 타고 편안하게 놀러 와서 안락한 시간을 보내다가 돌아간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존경과 인정,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심지어 개인 자유 시간마저도 만땅이다.

일요일 점심,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아내의 뒷모습이 연애 초창기 시절 훨씬 더 흥분된다고!

가야 할 때를 알고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아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선배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응? 뭔데? 어디 좋은 맛집 생겼나?"

"화이트 스카치가 반입된 거 같습니다."

"……!"

술이 확 깨는 듯한 느낌이었다.

임탁정은 순식간에 또렷해진 눈으로 후배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빈 잔을 내밀었다.

후배는 가만히 잔을 따라주었고, 임탁정은 단숨에 들이켰다.

"제주도에?"

"예."

"확실한 거야?"

"반입 자체는 확실합니다. 그런데 오리지널은 아니고 유사품인 거 같습니다."

"누군가가 엘릭서 드링크로 만들었다?"

"그렇습니다."

"가격은?"

"1회 투여량이 20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어림도 못 내겠는데."

"그래서 중국 관광객들 사이에서 은밀히 돌고 있는 모양입니다."

"중국? 걸리면 사형일 텐데, 여기까지 와서 마약을 한다고?"

"화이트 스카치는 중독 증세가 없죠. 검출도 되지 않고요. 부작용 없는 쾌락의 절정 아닙니까?"

"……그렇지. 그 생각을 못 했군. 내가 많이 취했나 봐."

"화이트 스카치 관광을 위해서 제 주도에 오는 중국 관광객도 많은 양입니다."

"1회 투여량에 200만 원이면 그 정도 재력은 있어야 될 테니까. 화이트 스카치 자체가 애초에 돈 많은 약쟁이들 상대로 한 마약이거든."

화이트 스카치가 근절될 거라고는 생각한 적 없었다.

돈이 많이 들지만 만들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아무 마약에나 그냥 엘릭서 드링크를 부작용 없는 수준까지 꽉꽉 부어 넣고, 수분만 날려 버리면 된다.

그럼 마약은 철저하게 쾌락만 준다.

중독성도, 금단증세도, 몸이 망가지는 일도 없다.

'그게 더 치명적인 2차 범죄를 만들지. 환각 상태에서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니까.'

화이트 스카치의 가장 큰 피해는 복용자가 제삼자에게 저지르는 환각범죄.

환각 상태에서의 운전, 폭행, 강간 등이다.

"주요 유통지가 어디인지 아나?"

"드림타워입니다. 지금 선배님이 머무르시는 호텔……."

"……그렇지. 여기 호텔에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있었어."

1회 투여에 200만 원.

부자가 아닌 이상 구할 수 없는 마약이다.

"선배님, 저 좀 도와주십시오. 저 이거 꼭 때려잡아서 서울 가고 싶습니다."

"휴가는 오늘로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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