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49화
2208장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5)
KT&G는 첫날 하한가 행진을 찍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국내 투자자들이 주저 없이 물량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그 물량은 국내 '일부 세력'이 주워 먹기도 했지만, 해외투자자들도 맛있게 주워 먹었다.
외국 주주들은 쿼터제 법안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건 수영농장과 한국 행정부의 정경유착이다."
"수영농장 담뱃잎을 밀어주기 위한 선단계일 뿐이다."
"결국 KT&G의 주가는 회복될 수밖에 없다."
수영농장이 담뱃잎 매출 확대를 위해서 정치권에 로비를 했다, 라는 주장.
외국 주주 입장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논리였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주장이 나왔다.
"수영그룹 전체 매출이 얼마인지나 알고 그런 맘 편한 소리를 하고 있네."
"KT&G 연 매출이라고 해봐야 10조 원도 안 된다. 수영그룹 입장에서는 코 묻은 돈이나 마찬가지."
"하수영 농민 회장은 비흡연자다. 그리고 담배 혐오자일 개연성이 매우 높다."
"담배농가에 돈을 꼴아박아 가면서까지 작물 전환을 시켜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수영 농민 회장은, 그냥 담배가 싫은 거다."
"하수영 농민 회장이 담배농가에 지원하는 총예산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몇조 원은 될 거다."
"한국 정부는 원래부터 강력한 금연정책을 펼쳐 왔다. 거기에 더욱 가속 드라이브를 걸었을 뿐이다."
"저 법안은 담배 시장을 간접적으로 고사시키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직접적으로 담배 판매 자체를 금지할 순 없으니까."
"담배의 광고와 홍보를 금지하게 만든 것에서 몇 발짝 더 나아간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담배코인에 올라타 있다고? 바보 같은 놈들, 존버해 봤자 지옥으로 추락할 뿐이라고!"
부정적인 의견들이 여의도에서 은밀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당황한 외국 주주들은 더 자세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정보망을 넓혔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악재라는 이야기밖에 들을 수가 없었다.
"이거 한국 정부가 작정하고 담배시장 죽이려는 거다."
"내년도 금연보조금 예산을 3배 이상으로 올리는 안건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흡연부스 숫자를 줄이고, 금연구역을 더욱 넓힌다고 한다."
"이래도 안 내려? 진짜 이래도 안내리고 버틸 거냐?"
"그 로켓은 천상으로 가는 로켓이 아니라고!"
"지금이라도 금연 코인으로 갈아타야 한다."
물론 반발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정치인들이 흡연자들 표 다 포기할 작정이라고? 다음 대선은, 다음 총선은 포기한다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이런 식의 강력한 억제정책은 반발을 불러올 뿐이다. 아무리 간접 방식이라고 해도, 유권자들이 그걸 모를 정도로 아둔하진 않아!"
"이건 그냥 수영농장에 일감을 몰아주기 위한 빅픽쳐일 뿐이라고!"
국내 투자자들 중에서도 이건 지나가는 소나기일 뿐이라고 버티는 이들이 있었다.
그 비율이 그리 높은 것은 아니지만,외국 투자자들은 알트리아코리아에 주목했다.
주주들의 요구에 알트리아코리아는 덤덤하게 해명했다.
"알트리아코리아는 한국 법인입니다. 그리고 해당 법안은 한국 법인이 한국에 유통하는 담배 제품의 50% 이상을 국산화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럼 알트리아코리아는 철수하는 겁니까?"
"공장은 철수해야겠지만, 법인을 철수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해외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을 들여와서 팔면 됩니다."
한국에서 제조하지 않은 담배 제품은 국산잎을 안 써도 상관이 없다는것.
상황이 이리되자 대조적으로 알트리아코리아의 주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KT&G만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우리도 해외에 담배공장 있다고! 해외에서 담배 만들어서 국내에 들여와도 된다고!"
"그랬다가는 더 큰 제재를 얻어맞을 거 같은데요. 우리가 알트리아처럼 본사를 외국에 두고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위태롭게 기우뚱거리던 저울이 마침내 한쪽으로 기울었다.
KT&G 외국 주주들도 미친 듯이 물량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차트에서는 파란 불이 꺼질 날이 없었다.
그리고 영국의 신생 사모펀드가 주식공개매수를 선언했다.
[영국 사모펀드, 갑작스러운 공개 매수 선언!]
[KT&G, 적대적 인수합병 돌입하나?]
[사모펀드의 실제 주인은 미국 알트리아 본사? 한국 시장을 집어삼키기 위한 야욕인가?]
증권 뉴스는 연일 호들갑을 떨었다.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사모펀드를 놓고 실제 주인이 누구인지를 열심히 궁리했다.
미국 알트리아 본사가 1순위 후보였지만, 알트리아는 코멘트를 거부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거부.
이는 일반 투자자들의 믿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
"닥치고 쥐고 있어. 공개매수 선언했으면 지들이 살릴 자신이 있는 거야."
"뭐야, 지금 소문 못 들었어?"
"무슨 소문?"
"살리려고 매수하는 게 아니라 아예 죽여 버리려고, 확인사살하려고 매수하는 거라는데?"
"뭐? 그게 말이 돼?"
"왜 말이 안 돼? 알트리아 입장에서는 KT&G가 완전히 죽어버리면 한국 시장 고스란히 먹을 수 있는 건데."
"……."
"지금 공개매수인데도 프리미엄 전혀 안 붙이고 하고 있잖아. 살릴 생각 자체가 없다는 거야."
"그러네. 몇조 원 투자해서 한국담배 시장을 완전히 집어삼킬 수 있는 기회네."
"미친, 정치하는 놈들은 담배 시장을 해외에 아예 내줄 셈인가?"
"이런 것도 예상 못 하고 그런 법안을 통과시켰단 말이야?"
"무능한 것들! 세비나 축내는 버러지들!"
국민들의 분노가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국민의 건강을 해외 자본에 전부 내주었다는 비난이 국회에 쏟아졌다.
당황한 국회의원들은 기재부를 찾아가서 개인적으로 항의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KT&G 외국 투자자들을 쫓아낼 방책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찬동을 했는데, 결과는 전혀 딴판이지 않습니까?"
"조항 하나가 문제였습니다. 생산뿐만 아니라 국내 유통 자체에 쿼터제를 걸었어야 했는데, 조항 하나가 그만……."
"이게 작은 문구 실수 하나로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소!"
정치인들은 발을 동동 굴렀고, 이 작전에 관여한 기재부 직원들은 모른 척 시치미를 뗐다.
여기서 작은 정보 하나라도 실수로 흘리면, X맨으로 낙인찍힌다.
'하수영 의원님한테 그렇게 낙인이 찍혀 버리면…….'
'절대 안 되지. 나중에 반드시 수영사채로 가야 하는데.'
'그분한테 찍히면 두고두고 맘 편히는 못 살지.'
작전에 참여한 기재부 직원들은 그런 미래를 훤히 예상할 수 있었기에, 정말 실수인 척 적극적으로 연기를 했다.
그런 소식까지 흘러나오자, 투자자들은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알트리아가 법조문의 단어 실수하나를 놓치지 않고 잘 포착했네."
"작정하고 KT&G 없애려는 거다."
"근데 만약에 수영농장이 지금이라도 KT&G에 담뱃잎을 공급한다면 도루묵 되는 거 아니야?"
"그럴 리가 있겠어? 하수영 회장이 혐연가라는 건 유명해. 오죽하면 담배농가를 매수해서 직종을 바꾸게 만들었겠냐고."
"담배 키우던 농부들 지금 수비어 천가 부르고 다니는 거 유명하지. 농사도 렌탈 로봇들이 지워줘서 편해, 판매도 알아서 해줘서 편해, 수입은 오히려 더 늘었고."
"정부의 실수, 국회의 무능, 외국의 탐욕. 이 세 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네."
"사실 기재부는 어차피 담배 세금수익이 가장 크니 누가 담배를 만들 든 말든 크게 관심이 없을 수도……."
"알트리아가 동남아에서 만든 담배를 들여와서 팔든 말든, 기재부는 어차피 세금만 거두면 그만이니까."
"모르지, 뭐. 아예 담배를 완전히 축출하려는 정부의 큰 그림일 수도."
"어쨌든 KT&G는 이제 희망이 없구나."
여기에 쐐기를 박는 일이 벌어졌다.
연금공단, 중소기업은행이 보유한 총 15%의 지분을 팔아치운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KT&G에게서 손을 떼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추는 급격하게 기울어졌다 못해서 아예 박살이 나버렸다.
물량이 쏟아졌고, 사모펀드는 남김없이 전부 주워 담았다.
프리미엄은 없지만, 공개매수 가격에 팔아도 그렇게까지 큰 손해는 아닌 상황.
주주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너나할 것 없이 내다 팔았다.
***
***
KT&G 직원들만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가 없어지게 생겼으니까.
소비자들이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국산 담배가 없어질 뿐, 담뱃값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니까.
"정말 사모펀드 주인이 알트리아라면, 국산 담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지. 그냥 라이선스만 옮겨서 그대로 생산하면 되니까."
"어, 그렇구나. 진짜 소비자들은 상관없네."
"KT&G 직원들만 안 된 거지."
KT&G 직원들은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번갈아 가며 농성 중이었다.
그런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이미 주식 과반 넘어간 이상, 게임 셋이야."
"KT&G의 운명은 이제 우리 정부의 손을 떠났어."
"알트리아가 자비를 베풀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지."
"지금이라도 수영농장에서 나서주면 안 되나?"
"이제 와서 담뱃잎 팔아봤자 외국자본만 배불려 주는 건데, 뭐하러? 더 명분이 없지."
"아, 하긴 그렇네."
"법 조문 단어 실수? 웃기지도 않는다. 난 정부가 담배를 완전히 퇴출시키기 확신을……."
"어, 속보 떴다?"
"무슨 속보?"
"하수영 농민 회장님이 미국으로 출발했다는데? 사모펀드 주인 만나서 담판을 짓겠다나 봐?"
"뭐라고?"
-일자리를 제발 잃지 않게 해달라는 한 근로자의 눈물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 역시 땅을 일구며 땀을 흘리는 한 명의 근로자이기 때문입니다.
-몇몇 정치인분들의 사적인 민원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이대로 놔두면 외국산 담배가 국내 시장을 독점할 게 뻔한데, 차라리 그 이익을 한국에 흡수시키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영국이 아니라 미국으로 가는 거야? 영국 펀드 아니었어?"
"딱 보면 각 나오잖아. 사모펀드주인이 알트리아라는 거지."
"역시…… 알트리아가 국회의 실수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네."
"실수 아니고 빅픽처가 틀림없대도 그러네. 담배 쫓아내려는 빅픽처."
-제 마음이 심히 무겁습니다. 어쩌면 제 손으로 국민 여러분들이 소비할 담배잎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아니, 그냥 차라리 회장님이 만들어주세요! 어차피 담배 필 거, 차라리 알트리아 말고 회장님이 돈 버시라니까!"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하겠습니다.
하수영이 미국에서 누구를 만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알트리아가 정말 사모펀드의 주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사흘간의 일정을 소화한 끝에, 좋은 소식이 KT&G 직원들에게 돌아왔다.
[영국 사모펀드, KT&G 지분 전량 하수영에게 넘기기로 결정! 협상 가격은 비밀!]
[또 하수영? 또또 하수영?]
[사모펀드가 확보한 지분 총액은 95.2% 이상으로 집계돼…….]
[하수영, 엠파이어 스테이트의 한복판에서 상장폐지를 선언하다!]
[100% 개인회사 전환! 지분 전량소각!]
[수영농장, 눈물을 머금고 KT&G에 담뱃잎 공급하기로 결정!]
-역시. 담배잎 납품 가지고 협박하면 알트리아도 어쩔 수 없었을 거다.
-알트리아가 맞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