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48화
208장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4)
차관은 긍정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섣불러 인정할 수 없는 사실.
기재부 차원에서 주가 조작을 기획했다는 뜻이니까.
물론 진실을 알더라도, 탓할 수 있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바로 국익을 우선한 작전이니까.
"기재부는 담배인삼공사 민영화의 실패를 되돌리고 싶습니다."
"흐음."
"지금 KT&G는 오너라고 할 만한 주주가 없습니다. 15%가 넘는 단일주주가 한 명도 없으니까요. 그래서인지 경영도 방만한 분위기입니다."
"담뱃잎 쿼터제로 KT&G를 더욱 압박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물량을 쏟아내게 하겠다? 그리고 그걸 제가 주워 담으라, 이건가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사업을?"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회장님께서 맡아 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수영은 가만히 바라보며 눈빛으로 다음을 재촉했다.
정민광 차관은 찬물로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어차피 담배를 아예 금지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합니다."
"……."
"기왕 누군가가 해야 한다면, 회장님이 맡아주시는 게 이 나라 소비자들의 건강을 조금이라도 케어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거라고 봅니다."
순간 하수영이 피식 웃었다.
정민광 차관은 그게 좋은 의미인지 나쁜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확실히…… 담배를 전면 금지시킬게 아니라면 소비량 자체는 그대로 유지되겠죠."
"그 알짜배기 수익을 엉뚱한 외국인들이 가져가고 말입니다."
"다시 정부가 가져올 수단이 없으니 이런 꼼수를 부리는 거군요."
"……."
"담배, 담배라. 담배…… 아, 이거 참."
하수영은 손가락을 톡톡 두드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고, 정민광 차관은 조용히 기다렸다.
'회장님이 맡아주는 게 이 나라를 위해서도 가장 베스트 선택지다.'
전면금지를 하지 않는 이상(할 수도 없고), 결국 누군가는 담배 판매로 이익을 취한다.
그런데 외국 주주가 40%나 되고, 심지어 원재료는 100% 해외산인 상황.
말 그대로 국민 건강을 팔아서 해외에 퍼주는 꼴 아닌가.
'이 말도 안 되는 구조만큼은 어떻게든 타파를 해야 한다.'
"지금 정부는 강력한 금연 정책을 펼치고 있죠. 그런데 저더러 담배산업을 맡아달라는 건 그 포화 속으로 들어가라는 거 아닌가요?"
"……면목이 없습니다."
"조건이 있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제가 인수를 하더라도 제 눈치 보느라고 정책을 바꾸지 마세요. 하던 대로, 국민들 건강만 생각하세요. 쉽죠?"
"예?"
정민광은 조금 당황해서 바라봤다.
그래도 어느 정도 금연정책 완화등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하수영의 눈이 가늘게 웃고 있었다.
"어차피 5천만 국민 전원이 제 고객입니다. 담배를 파나, 간식을 파나, 고객들은 제게 돈을 지불하게 되어 있죠."
"……."
"전 기왕이면 간식을 더 많이 팔고 싶군요. 담배 필 돈도 아껴가면서 사먹을 만한 그런 간식거리들 말입니다."
"회장님."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한다면, 그래요. 제가 하는 게 낫겠죠. 그 편이 제 5천만 고객들의 건강을 좀 더 케어할 수 있을 테니."
하수영은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고는, 정민광 차관을 뚫어져라 주시했다.
"어디 한 번 들어봅시다. 기재부가 그린 밑그림."
처음부터 기재부가 관여되어 있었다.
정치권에 은근한 분위기를 조성해서 KT&G를 강하게 압박하도록 만든 것이다.
담배농가가 없어진 것은 하수영의 의지지만, 거기에 맞춰 기재부도 의도적으로 KT&G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KT&G의 외국인 주주 비율 감소는 사실 오래전부터 기재부 내부적으로 논의하던 주제 중 하나입니다."
"담배 세금 수익은 기재부 입장에서는 노다지일 테니, 신경이 많이 쓰였겠군요."
"민영화를 찬성했던 분들은 오래전에 기재부를 떠나셨죠. 여야에도 들어가 계시지만, 다른 금융회사에도 많이 들어가 계십니다."
"외국인 주주들이 알트리아코리아 쪽으로 많이 갈아타겠는데요?"
"그걸 노리는 겁니다."
잠시 알트리아코리아에 우위를 내주더라도, 수영농장이라면 단숨에 역전시킬 수 있으리라.
수영농장은 알트리아 본사에 있어 슈퍼을 납품자이기도 하니까.
"정부는 연금공단과 중소기업은행몫을 합쳐서 15%를 들고 있습니다. 주가가 폭락하면 이것을 전부 수영그룹에 넘기겠습니다."
"이제 담배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건가요?"
"완전히 손을 떼는 건 아니죠. 여전히 세금 수익을 거두니까요."
"외국인 주주, 외국산 담뱃잎 해도 결국 가장 큰돈을 버는 건 언제나 정부죠. 솔직히 말해 봐요. 담뱃값의 75%가 세금이라는 거 거짓말이죠? 한 8, 90% 되는 거 아닌가요?"
"……KT&G를 인수하시고 내부기 밀을 열람하시면 자연히 알게 되실 겁니다."
"15% 기본 확보면, 일반 물량 35.1%만 더 확보하면 되긴 하겠네요."
"그리 부담이 되지 않으실 겁니다."
"근데 저 캐쉬 없는데."
"예?"
정민광 차관은 당황해서 동공이 흔들렸다.
아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현금 많은 사람이 캐쉬가 없다니, 이게 말이 돼?
'브, 블러핑도 정도껏 하셔야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1,200조 원이 있어도, 거기서 인출할 수 있는 건 얼마 안 됩니다. 기재부가 만든 5:1 법칙 때문에 말이죠."
"……."
차관은 할 말이 없었다.
하수영의 돈과 일반 예금의 비율이 5:1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은, 기재부가 당시 내놓은 타협안이기도 했으니.
'5:1이 아니라 4:1, 아니, 3:1 정도로 맞춰드렸어야 했었나…….'
하지만 금감원의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 사채업체이니만큼, 충분한 안전장치는 갖춰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에서 무조건 거부했을 테니까.
"아아, 농담이에요. 저도 어차피 남의 돈으로 돈놀이하는 거 안 좋아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아무튼 1,200조 원이 있어도 당장 인출 가능한 금액은 20조도 안 되는……."
"현 시가총액이 12조 원입니다, 의원님."
"잘못들었습니다?"
"지금 시가총액이 12조 원입니다. 50.1%면 약 6조 원, 그것도 거기에서 더 떨어질 것을 감안하시면……."
"담배시장의 65%를 처먹, 아 죄송해요. 차지하고 있으면서 시총이 그 거밖에 안 된다고요?"
"……예."
하수영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에서, 정민광 차관은 왠지 모를 죄송스러움을 느껴야 했다.
침착함을 되찾은 하수영이 말했다.
"쿼터제, 지금 3, 40% 이상으로 올릴 거라고 했죠?"
"예."
"그냥 90% 이상으로 팍팍 올려 버려요. 그래야 외국인 투자자들이 앗뜨거라 하고 내놓겠죠."
하수영은 외국자본이라는 것 자체에 적대감은 없었다.
다만 내 소중한 고객들의 건강을 팔아치우는 산업 아닌가.
이건 좀 이야기가 다르지.
농민 회장, 어민 회장, 축산 회장으로서 색안경을 좀 끼고, 팔도 안쪽으로 팍팍 구부려도 된다.
"회, 회장님. 그건 너무 노골적이어서 오히려 국제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걸 거면 걸라고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송을 무서워해서 문제예요. 그걸 즐길 줄 알아야 진정한 금융강국인 건데."
그건 소송에 낭비되는 시간과 심력, 돈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라는 말은 차관의 입에서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차관은 진땀을 흘린 끝에 겨우 하수영을 설득할 수 있었다.
"50% 이상이라. 너무 적은 거 같긴 한데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죠. 알겠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오너가 누가 됐든 간에 기재부는 세금 수익만 잘 거두면 그만.
기왕이면 국내 투자 세력의 손에 맡겨두면 더 좋고, 그런 면에서 하수영은 대체할 사람이 없는 최고의 카드였다.
"아, 그래도 KT&G와 농장은 엄연히 별도인 거 아시죠? 담뱃잎 킬로 당 2, 3만 원씩 팍팍 매겨서 납품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담뱃값이 오르거나, 판매수익이 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겠죠. 어느 쪽을 고를까요? 청담동 스타일은 둘다 고르는 건데."
"……."
최고의 카드가, 맞겠지?
"안 그래도 이제 슬슬 인삼도 팔려고 했는데, 교통정리를 어떻게 해야 하지? KT&G에 인삼도 자회사로 있잖아요?"
"그렇지요. 그건 내키는 대로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인삼농가에 해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내가 그분들께 잘해줄게요."
"하하, 믿고 있습니다. 회장님은 항상 농민들의 삶 증진을 위해 노력하셨지 않습니까?"
차관이 돌아가고, 하수영은 중얼거리듯이 프리덤한테 말했다.
"아, 그렇게 많은 전생을 했는데도 아직도 이 충동구매는 어떻게 할 수가 없네."
-지름신은 고대 주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인 거 같습니다.
"맞아. 아버지도 지름신 앞에서는 머리 숙이실걸?"
-마스터의 이미지를 생각하면 손해입니다. 그러나 국민 전체의 건강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라면, 피할 수 없는 선택입니다.
"말은 제대로 하자. 건강을 끌어올려?"
-국민의 건강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결정입니다.
"그래. 오천만 국민의 횡격막 근손실 방지를 위한 대의라고 생각하자고."
-그런데 흡연으로 인해 폐 산소능력이 감소하면 오히려 횡격막은 튼튼해지는 거 아닙니까? 더 열심히 폐를 움직여줘야 하니까요.
"너, 쓸데없는 디테일에 너무 집착하면 스카이넷 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모르냐?"
***
정부가 발의한 담뱃잎 수급 쿼터제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순식간에 통과되었다.
반대할 만한 곳은 KT&G뿐이었기에, 날치기 가까운 속도에도 잡음이 없었다.
KT&G는 담배를 판다는 원죄 때문에 언제나 여론 앞에서 사려야 하는 입장이었기에.
알트리아코리아 역시 법안에 별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 시장에서 다소 손해를 보겠지만, 그 이상으로 미국에서 이익을 보고 있으니.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KT&G의 주가는 무시무시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결 첫날에는 시작부터 하한가를 찍었고, 그 자리에서 쭉 머물러 있었다.
"국내 투자자들 피해는 없지?"
-예, 제가 미리 조언을 해서 최소한의 손실로 정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거 주가 조작입니다.
"내가 설계했냐? 기재부가 했지."
-그건 그렇습니다.
"그리고 소모임이 작당하면 주가조작인데, 국가가 하면 경제정책인 거야."
또한 하수영은 기재부가 설계한 그림에 물감값을 보탰을 뿐이다.
"원래 옛날부터 외국돈 뜯어먹는 건 돈놀이가 아니라 외화 영웅이라고 했다. 다른 나라도 다 하고 있는 짓이야, 다."
-마스터도 전생에서 많이 하셨습니까?
"직전 전생에서는 전혀 못 했지. 나한테는 외국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으니까."
세상을 일통했으니까.
"자기들끼리 서로 남이니 뭐니 하면서 툭하면 분열하려고 하고, 싸우고, 편들어달라고 징징거리고, 어휴, 단일국가도 인구가 해 단위 넘어가면 그때부터 답이 없더라고."
-억조경해의 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인구가 해 단위 이상이라니. 그런 세상은 저 같은 AI의 전면통제가 필수였겠군요. 아, 어찌 그런 꿈같은 세상이……!
"뭔 소리냐? 해는 은하단을 말하는 건데."
-인구수가 아니라 은하단 수라고요?
"거기서는 인구를 머릿수로 안 세. 인구가 밀집한 은하단마다 끊어서 세지. 여기 가구 수 세는 거하고 비슷한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