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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44화 (844/1,270)

프랜차이즈 갓 844화

207장 내가 재벌가 사생아라고? (3)

이창영이 다시 하수영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남의 눈을 피해서, 청담동 저택으로 조용히.

최우석은 한옥에 편안히 앉아 쉬면서 이창영에게 인사했다.

"반가워요. 편히 쉬다 가시구려."

"……혹 성함이 어떻게 되시오?"

"최우석이오. 하수영 회장의 오랜 벗이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며 지나치는 데, 비서실장이 조용히 귓속말을 건넸다.

"강남구의회 부의장입니다. 청담동개발 초기부터 40년 넘게 살아온 터줏대감입니다. 하수영 의원의 후원회장이기도 합니다."

"그렇군."

연령대를 보면 자신이 한국 경제사에 끼친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텐데, 마치 지나가는 행인을 본 것처럼 심드렁하다.

하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으리라.

이제는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을 나이였으니.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하수영이 반갑게 맞이했다.

이창영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집안을 정리정돈 하는 가사로봇들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로봇?"

"가사용 로봇입니다."

"괜찮아 보이는군. 저런 건 어디서 구했나?"

"시판되는 것은 아니고, 개인적으로 주문 제작한 겁니다."

"사람과 비교해서는 어떤가?"

"업무 효율은 비교가 안 되죠. 실수가 없고 매우 정확하고요. 물론 딱딱한 감성과 높은 비용이 사람 가사도우미에 비해서 단점이겠죠."

"자네는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군."

"단점이 아니라 지불한 대가라고 생각합니다."

"지불한 대가라…… 좋은 말이군."

이창영은 그 말을 가만히 입안에 되뇌다가, 하수영을 똑바로 쳐다봤다.

"자네 말대로 했네. 어떤가, 이제 내 아들로 인한 죽음을 피할 수 있는가?"

"확신은 못 합니다."

"……말이 다르지 않은가?"

"아니죠. 그 전에는 죽는다는 미래가 100% 였습니다. 이제 그 100%가 깨진 셈이죠."

"……0%는 아직 아니라는 건가?"

"그래도 0%에 매우 가까운 편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

"그래서 말씀드렸잖습니까. 큰아들에게 지분을 먼저 주고 전 재산 증여를 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요."

"내 은닉 재산이 문제가 될 수도 있단 뜻인가?"

"범석이는 정말로 전 재산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어딘가에 숨겨둔 재산이 있을 거라고 확신할 겁니다."

그 말 그대로다.

비자금, 차명주식.

진짜배기 재산이 아직 든든하게 남아 있다.

"추가 복채를 지불할 수 있나?"

"안 되겠는데요. 이미 제가 최대한으로 쥐어짜서 천기를 열람해드렸습니다. 더 이상은 돈 낭비입니다."

"자네도 최고의 서비스를 다해준 셈이라는 거군. 알았네. 나도 더 보채지는 않겠네. 실은 오늘은 다른 용무로 찾아왔어."

"의뢰로군요."

"한남동 박수무당을 이은 자가 다시 영업을 재개한다고 하니, 요즘주변에서 하도 들썩거려서 말이지."

"영업 시작은 아닙니다. 변덕으로 가끔 하는 알바 같은 거지요."

"그래도 한 사람만 더 봐줄 수 있겠나? 내 안사람일세."

"여사님이 청담동에 미술관 4채를 갖고 계신 것으로 압니다."

"그걸 요구할 줄 알았네. 기꺼이 지불한다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명의 이전 되는 대로 바로 천기를 봐드리지요."

"오늘 바로 시작하지."

비서실장이 서류가방에서 명의양도 관련 서류를 내밀었고, 하수영은 모두 서명을 했다.

용건은 그게 전부였는지, 이창영은 곧바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건 개인적인 궁금증인데……."

"말씀하십시오."

"그전에는 점을 전혀 안 보다가, 이제부터 보기 시작하는 이유라도 따로 있는 건가? 변덕 말고 다른 거 말일세."

"아, 현금이 좀 필요해서요. 요즘돈이 쪼달리니까 아주 죽겠네요. 이것저것 돈 되는 건 닥치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

"……수영사채 오너가 현금이 쪼달린다고?"

이창영은 어이가 없었다.

당장 수영사채 예치금만 1,200조원이 넘고, 또 청담스코프 양산투자로 1,044조 원이 넘게 있는 사람이?

심지어 대부분이 원화가 아니라 외화로 이뤄져 있는데?

"사채금고에 있는 돈은 함부로 인출 못 합니다. 일반 예금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예금이 몰리면 몰릴수록 저도 그만큼 제 돈을 채워 넣어야 해서, 이러다가 돈맥경화 오게 생겼거든요."

"………허참."

이창영은 피식피식 웃다가 등을 돌렸다.

***

청담동 미술관 4채의 명의 이전이 끝나고, 홍희수가 조용히 하수영을 찾아왔다.

홍희수는 넓은 저택을 가볍게 둘러보고는 덤덤히 말했다.

"집이 훌륭하네요. 재벌가 안사람이 점 보러 드나든다는 소문은 안날 것 같아서 좋군요."

"점을 보는 게 아니라 천기를 열람한다고 생각하십시오."

"천기를 열람한다라…… 좋은 표현이네요. 다른 점쟁이들하곤 다르시네."

홍희수는 하수영의 복장을 신기한 눈으로 훑어봤다.

온통 황금색으로 번쩍이는 판금 갑옷.

마치 중세시대에서 기사왕이 의전용으로 입었을 법한 옷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패션 센스가 남다르네요."

"전투복입니다."

"천기 열람이 전투에 버금간다. 뭐 그런 의미인가요?"

"어쨌거나 돈 받고 하는 영업이니까요. 전투에 임하듯이 임해야지요."

"그런 태도도 참 마음에 드네요."

"이제 알고 싶은 걸 말씀해 주시죠."

홍희수는 가볍게 웃다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내가 정해진 수명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요."

"……."

"의외인가요?"

"아뇨, 너무 정석적이군요."

"이 나이에 이만큼 가진 사람이 그거 말고 무얼 더 원하겠어요? 다 똑같지. 우리 바깥양반도 비슷한 걸 묻지 않았나요?"

"네, 맞습니다."

"그럼 알려줘요."

하수영은 찬찬히 홍희수를 뜯어보다가 입을 열었다.

"사모님은 큰 질환 없이 천수를 누리다가 본인 침대에서 자연사하실 운명이십니다."

"……그게 끝?"

"상당한 축복이죠. 보통은 말년에 무엇이든지 간에 병을 얻습니다. 몸 어딘가가 고장 나는 거죠."

"……."

"그 고장이 누적되고 그로 인한 장기부전이 쌓이고 쌓이다가 숨이 멎는 거죠. 하지만 사모님은 전체적으로 기력이 조금씩 쇠진하다가, 별다른 고통 없이 주무시다가 돌아가실 운명입니다."

그제야 홍희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났다.

"그 정도면 호상인가요?"

"이보다 더 편안한 죽음은 없을 겁니다. 삶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냥 기력이 조금씩 떨어지는구나 싶다가, 어느 날 자던 중에 조용히 죽게 되니까요."

"그게 얼마나 남았죠?"

"아직 20년은 더 남았습니다."

"더 자세하게는?"

"그 너머 천기는 제가 지금으로써는 열람할 수가 없군요."

"그럼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지금처럼 꾸준히 건강에 신경 쓰시면 됩니다. 식단 관리하시고, 운동하시고, 건강검진은…… 안 받으셔도 됩니다."

홍희수는 눈을 살짝 크게 떴다.

"건강검진을 받지 말라는 건 의외군요."

"고령에 받는 건강검진은 오히려 몸에 스트레스를 줍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사모님은 탈 없이 천수를 누리실 운명입니다."

"흐음."

"몸에 이상이 나타나면 그때그때 치료받으시면 되지, 굳이 매년 미리 검진을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몸에 부담을 주는 검진이 오히려 더 불이익이다. 이거로군요?"

"맞습니다."

"앞으로 20년은 건강히 늙어간다는 것을 보장한다는 거고요?"

"예, 보장합니다."

"중간에 운명이 변할 가능성은 없나요? 가령 누군가가 나를 미워해서 죽인다거나, 혹은 사고로 내가 죽는 다거나."

하수영은 그런 질문을 할 줄 알았다는 듯이,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이치적으로는 불가능하진 않죠. 하지만 천기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

"사모님의 이미 정해진 운명을 비트는 것은, 사모님의 대운을 압도적으로 능가하는 이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현실적으로……."

하수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이 땅에 갑작스러운, 상당한 규모의 전쟁? 거기에 재수 없게 휘말리는 정도가 아니고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내 운명을 비틀수 있다?"

"그 정도는 되어야죠."

그제야 홍희수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고마워요. 역시 하수영 의원님을 찾아오길 잘했군요."

"지금은 하 무당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하 무당?"

"천기를 읽을 때는 그런 호칭으로 불리고 싶습니다."

"기억할게요. 아, 혹시 지인한테 하무당을 소개해 줘도 될까요? 다들 하 무당을 만나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청담동 저택과 함께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홍희수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청담동, 좋은 동네인 것은 맞는데 그렇게 수집하듯이 모으는 이유가 있나요?"

"위치가 아주 좋습니다."

"그게 소문나면 재벌가에서 더욱더 청담동 부동산 수집에 뛰어드는 게 아닐까요?"

"저에게만 유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무의미한 포지션이죠."

궤도 엘리베이터를 지을 능력이나 동기가 없는 이들에게는 전혀 무관한 것.

"그렇군요. 알았어요. 그럼 20년 뒤에 다시 한번 봐줘요. 물론 그 전에도 종종 봐주고요."

"알겠습니다. 살펴 가십시오."

홍희수가 저택을 떠났고, 그제야 하수영은 진지한 표정을 풀었다.

"천기 대신 봐주고 반응 즐기는 것도 재미있기는 한데, 이건 너무 쉽게 질린단 말이지."

-무척 즐기시는 듯이 보였습니다.

"대충 다 말해줬으면 빨리 일어설 것이지, 꼬치꼬치 캐묻잖아. 그래도 건물 4채 얻어서 소득은 괜찮았다."

***

김범석은 충격과 슬픔을 잊기 위해서, 더욱 일에 매진했다.

애써 자신의 슬픔을 삭이려고 노력했다.

'그래, 어차피 나의 정수리를 귀여 워해 주시는 주인님을 위해서 평생 이렇게 살기로 결심하지 않았느냐, 김범석이.'

가장 마지막으로 두피 왁싱을 했던, 그 날의 굳은 결심.

'이렇게 살기로 한 것, 이렇게 살수밖에 없는 것. 외관으로 보기에는 결국 같은 것이다. 그러니 집착하지 말자. 번뇌하지 말자. 방황하지 말자…….'

어차피 울창한 삼림이 아닌, 메마른 들판에서 평생 살기로 했다.

그러니 슬퍼할 것도, 번뇌할 것도 없으리라.

하지만…….

"내 의지로 돌아가지 않는 것과, 돌아갈 다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큰 차이가 있구나……."

"허망하고, 허망하도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지난 세월을 그렇게 아득바득 생부를 피해가며 살아왔던가……."

"아아, 어머니. 왜 저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빛나는 20대만이라도 풍성한 삶의 추억과 사진을 쌓아놓을 수 있었을 것을……."

입으로는 떨쳐내기 힘든 번뇌를 토로하면서도, 눈과 손, 귀는 끊임없이 업무에 집중했다.

"음. 수영콜라 매출이 대단하군. 마치 '울창했었을' 내 두피숲처럼 말이지."

"껄껄, C콜라 녀석들 한국에서 아주 꽁지가 빠지게 도망쳐 버렸단 말이지. 마치 지금 내 두피 들판처럼 말이지."

수영콜라 직원들은 혼자서 울다가 웃다가를 반복하며 장부 분석에 집중하는 김범석을 안쓰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사장님이 심경이 많이 복잡하신가 봐요."

"당연하죠. 세상에, 내가 알고 보니 서해그룹 아들이었어! 전 재산도 받았어! 얼마나 혼란스럽고 마음이 복잡하겠어요?"

"그래요? 전 마냥 기쁘기만 할 거 같은데. 하루아침에 벼락부자 된 거잖아요."

"그나저나 그럼 우리 수영콜라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러게요. 우리 사장님, 이제 서해 그룹에서 계열사 여러 개 맡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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