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43화
207장 내가 재벌가 사생아라고? (2)
김범석은 생각했다.
'후회한다는 이유로 내게 전 재산을 줬을 리가 없다. 노리는 게 있는 거다.'
하지만 과연 그게 뭘까?
다른 건 몰라도 그룹 지분만큼은 이현덕 부회장에게 돌아가야 할 몫이다.
이현덕의 자리가 흔들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을 만나려고 한 목적이 무엇일까?
그것이 후회나 부성애 때문이라고는, 결코 믿지 않는다.
'이현덕 부회장이 총수의 자질이 없어서 다른 아들을 찾은 거라면…… 아니. 이거야말로 억측이다.'
주인님은 뭔가를 알고 계시지 않을까?
김범석은 하수영의 명령을 떠올렸다.
-당장 찾아가서 이창영의 전 재산을 받아라!
-서해그룹을 장악해서 내게, 네놈의 주인을 위해서 바치란 말이다!
거울을 보며 김범석은 웃었다.
광대를 선명하게 닮은 웃음.
주인님을 만난 이후, 서해그룹을 차지할 단서가 생겼다.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나의 운명은, 그분께 있다……!'
***
이현덕은 요즘 이유 없이 종종 숨이 막히곤 했다.
아니, 전혀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아버지가 배다른 동생에게 전 재산을 줘버렸으니까.
물론 자신 역시 증여받은 그룹 지분이 있다.
하지만 김범석이 증여받은 양에 비하면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지분만큼은 내게 미리 주셨어야 했어."
지분만 생각하면 미칠 것 같았다.
대체 아버지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말년에 이르러 드디어 노망이라도 나신 것인가?
비서실장이 조용히 다가와서 작게 말했다.
"부회장님, 알아봤습니다."
"보고해."
"정황상 확실합니다. 회장님께서는 하수영 그 친구를 만난 이후 결심하셨습니다. 사생아를 찾아 전 재산을 증여하겠다는 것 말입니다."
"한남동 용한 박수무당의 아들이 점이라도 봐줬나? 그래서 노망난 늙은이가 사후에 극락이라도 가보겠다고 덥석 전 재산을 줬나?"
이현덕은 비아냥거리듯이 말했다.
"그리고 김범석 그 친구는 수영콜라 사장이라고 합니다."
"수영콜라 사장?"
"예, 하수영이가 들인 지 얼마 안된 측근입니다."
"하, 그런가? 하수영 그놈이 늙은 아버지 눈을 홀려서 자기 측근을 통해서 우리 그룹을 홀라당 먹겠다, 뭐 그런 시나리오인가?"
"하수영이는 아마도 모든 것을 설계하고 접근을 한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진실과는 정반대의 추측.
하지만 이현덕과 비서실장의 눈에는 너무나 그럴듯해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지니까.
이현덕은 차갑게 물었다.
"그놈이 지분을 가지고 얼마나 그룹을 뒤흔들 수 있겠나?"
"혼자서는 힘들 겁니다. 연금공단을 포함해서 백기사들이 든든하게 부회장님을 호위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사생아를 위해서 자기 인생을 걸 사내이사, 사외이사들은 없을 겁니다."
전체의 5%도 안 되는 지분.
경영권에는 그 어떤 영향력도 끼칠수 없다.
주주열람권 행사로 귀찮게 만드는 것 정도야 가능하겠지.
이현덕의 손에 있으면 더없이 유용 한 방어무기가 될 테지만, 김범석의 손에서는 그저 현금 가치 높은 유가 증권일 뿐이다.
"증여세는 어떻게 처리했지?"
"회장님이 비자금 계좌로 납입을 하신 모양입니다."
"비자금은 넘기지 않았다는 거군."
"예, 엄연히 공개된 전 재산만 전부 넘기셨습니다."
"비자금을 넘기지 않았다는 건…… 아버지가 노망이 난 건 아니라는 건데."
대체 이유가 뭘까?
이현덕은 가만히 하수영을 떠올렸다.
"혹시 수영그룹과 남모르는 빅딜을 한 것은 아닌가? 김범석 그 녀석은 그 사이에 낀 메신저고."
"헛, 그럴 가능성도 높겠습니다. 역시 부회장님이십니다!"
"회사 지분을 넘기면서까지 맺어야만 하는 빅딜이라…… 그게 뭔지 전혀 모르겠는데."
"기획팀을 총동원해서 다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신중하게 알아보고, 그나저나 그 녀석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지?"
"서울서해병원에서 정밀검진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아버지 지시? 아, 그렇군."
이현덕은 뭔지 알겠다는 듯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그 녀석이 엇나간 우리 집안 모습이라니. 나 역시 앞으로도 계속 주의해야겠어."
***
김범석은 서해병원 VIP실에 있었다.
무슨 면역, 호르몬 검사를 해야 한다고 의료진이 한창 난리였다.
"회장님 지시입니다. 힘드시겠지만 참아주십시오."
힘든 건 아니고, 그냥 지루했다.
그리고 왜 이런 검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은 불과 두 달 전에 종합검진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는데도, 의료진은 귓등으로만 들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김범석은 병동을 천천히 거닐었다.
경호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역시 수영병원보다는 못해.'
청담수영병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그런 활기가 있었다.
의료진도, 직원들도,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없이 모두가 쌩쌩했다.
심야에도 다르지 않았다.
또한 환자나 가족들 역시 금방 완치돼서 나갈 수 있겠다는 희망이 얼굴에 가득했다.
그에 비해서 서해병원은 혼잡하고 정신없는, 흔하디흔한 3차종합병원이었다.
한 바퀴 돌고 병실에서 쉬고 있으니, 담당 교수가 들어왔다.
"유전자 반응은 양성입니다."
"유전자 반응? 그게 뭡니까?"
"아, 예. 회장님 일족에 대대로 전해지는 유전자 질환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양성으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친자검사에서도 일치했는데 당연히 양성이겠지요."
김범석은 덤덤하게 말했고, 담당교수는 그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해당 유전자가 실제로 발현되는 것은 '치료하지 않을 시', 만 30대인데, 이 사장님 같은 경우는 너무 일찍 발현되셔서요. 여기 병력에 보면 20대 초반에 이미 강하게 발현이 된 것으로 나와 있다 보니, 회장님도 걱정이 심하십니다."
"20대 초반에 일찍 발현?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겁니까?"
김범석은 당최 무슨 이야기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했다.
담당 교수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김범석의 머리를 향했다.
"발현 증세 하나가 탈모입니다."
"……?"
"회장님 일족 희귀유전병입니다. 강한 자가면역장애의 일환으로 탈모가 처음 시작되고, 그대로 방치하면 크론병 등 다른 면역장애로도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회장님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
"회장님도, 부회장님도 탈모가 아니신데? 설마 가발이라는 겁니까?"
"아닙니다. 적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탈모는 크게 억제한 겁니다. 시판약인 피나스테리드와 미녹시딜은 회장님 핏줄에는 전혀 듣지 않아 우리 병원의 오너 전용 처방을 꾸준히 받아야……."
"잠깐, 오너 전용 처방이라고요?"
"아, 모르셨습니까? 우리 서해병원은 회장님 일족의 유전병을 연구하고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당연히 대외비입니다."
"……."
금시초문이었다.
그런 유전병이 있었다니. 그리고 그 증세가 탈모라니.
어처구니가 없어 바라보던 김범석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아아, 사실 나는 탈모가 아닙니다. 교수님."
"예?"
"이건 그냥 내가 민 겁니다. 왁싱페이퍼로 꾸준히 떼어낸 거지요."
김범석은 과거를 후회했다.
서해그룹의 핏줄임을 숨기려고 일부러 대머리 행세를 했는데, 결국 소용없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 비밀이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대부분의 임원들은 모르는 내용이리라.
다만 20년 넘게 불필요하게 모발을 뽑아냈던 수고가 새삼 아까울 뿐이다.
"대머리 행세를 하면 사생아라는 의심조차 피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한 건데, 지금 교수님 말씀을 들어보니 평생 헛짓거리를 했군요."
"계속 왁싱을 하신 거라고요?"
"네, 그래요. 왁싱을 그만두면 다시 잘 자라날 겁니다. 들어보니까 두피같은 경우는 1년만 왁싱을 멈춰도 모발 굵기도 원래대로 돌아온다고……."
"……저희가 두피 모근 상태 검사도 진행했는데,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습니다."
"……뭐라고요?"
"이미 정수리를 침범한 지 오래입니다. 이 유전병의 특징은 일반적인 탈모처럼 이마와 정수리 위주로 벗겨지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두피전체에서 건강한 모낭이 꾸준히 줄어듭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얼마 전에도 내가 왁싱페이퍼에 어린 털이 잔뜩 묻어나는 걸 봤는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으니 그 차이를 느끼지 못하셨을 겁니다. 물이 천천히 끊어 가면 그 변화를 못 느끼는 것처럼요."
김범석은 새하얗게 질려서 거울을 바라봤다.
"그럼 20대가 아니라 원래대로 30대에 발현이 되었다. 가정하더라도, 지금은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됐을 겁니다.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치료를 해야 하니, 왁싱페이퍼는 절대 엄금해 주시고……."
"그, 그럴 리가 없어요! 교수 양반! 내가 탈모라니! 탈모라니!"
"탈모는 여러 증세의 하나일 뿐, 이것은 희귀유전병으로 ……."
"내가 탈모라니! 으아아아!"
어차피 닥칠 운명을 10년 정도 일찍 스스로 시작한 것뿐입니다.
라고 위로를 하려다가, 교수는 가까스로 참았다.
'안 되지, 안 돼. 이런 멘트는 환자를 더 놀리는 셈밖에 되지 않아.'
이창영 회장은 이미 증세가 상당히 진행이 되었지만, 혁신적인 비절개털 이식으로 공터를 채웠다.
이현덕 부회장은 그보다 예후가 좋아서, 부친에 비해 털 이식을 훨씬 적게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추가 털이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다.
많이 늦긴 했지만 이제부터라도 꾸준히 관리하면 털 이식을 기대할 수 있다. 여기서 아예 놓아버리면 생착률이 0%에 가까워져서 절망적이다. 그러니 꾸준히 노력하자…….
라는 말을, 절규하는 김범석 앞에서 차마 지금 꺼낼 수는 없었다.
"……탈모 증세와는 별개로 유전질환에 대한 치료를 즉시 시작하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장기에서 이상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교수 양반! 제발 진실을 말해주시오!"
메마른 들판에서 풍성한 삼림으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다리가 있었다.
그래서 메마른 들판에서 오래 머무르면서도 느긋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다리가 오래전에 이미 부서졌다고?
"나는! 나는! 의심받지 않는 완벽한 탈모 메소드 인생을 위해서 탈모카페에도 오래전에 여러 개 가입했고, 나 스스로도 진짜 탈모라고 믿어가며 살아왔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플라시보 효과라고, 원래 질환은 마음에서부터…… 아차차,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발!"
사생아를 칭한 그 많은 이들 중대머리는 김범석 단 한 명이었다.
그 보고를 들은 이창영 회장은 '볼것도 없이 내 아들이다.'라고 중얼거렸다.
-참 안 된 녀석. 10년만 내가 더 일찍 결심을 했어도…….
라는 이창영의 자그마한 탄식.
교수는 그 두피 시린 이야기를, 절대 김범석 앞에서 발설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
-……이렇다고 합니다, 마스터.
"자기가 일부러 민 건 알고 있었는 데, 어차피 결국 그렇게 될 운명이었다…… 프리덤, 인간의 전생과 운명이란 건 참 신기하구나."
하수영은 전생의 김범석을 떠올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번 생에서는 당당히 그 운명을 피해간 줄 알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