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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42화 (842/1,270)

프랜차이즈 갓 842화

207장 내가 재벌가 사생아라고? (1)

장효주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가 쉴 새 없이 하수영과 김범석을 번갈아 바라봤다.

김범석은 하늘이라도 무너진 듯한 표정으로 얼이 빠진 채 하수영을 보고만 있었다.

하수영이 손을 뻗어 그의 어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왜 숨는 거냐, 이범석."

"……저는 김범석입니다, 주인님."

"그리고 이범석이기도 하지. 그 둘다 모두 네 모습 아니겠냐?"

"……."

"조금만 손을 뻗으면 전부 가질 수 있는데, 왜 피하고만 있는 거냐?"

하수영은 김범석이 보일 반응을 기대했다.

모자란 그릇이라면 격앙된 감정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혹은 넘치는 그릇이라면?

"함정인지 아닌지 살피고 있습니다, 주인님."

"그래, 그런 거라면 흡족하고."

"이창영 회장은 믿을 수 없는 늙은이입니다. 자기 사망 후 제가 유류분을 주장하고 나올 것을 대비해서 싹을 자르려는 수작일 수도 있습니다."

"상속다툼 벌이려고 했구나?"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창영 회장이 죽는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많이 뺏어오기 위해서 말입니다."

"지금 들어가면 네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가져올 수 있을 텐데?"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서해그룹 일가는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잠시만요, 잠시만!"

그때 입을 틀어막고 있던 장효주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두 분 말씀은, 김범석씨가 이창영 회장님이 찾는 사생아라고요?"

"그냥 편하게 이놈저놈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예비 사모님."

"어, 어떻게 이창영 회장님 아드님한테 그렇게 부를 수가 있겠어요……."

"유전자를 받기는 했지만 아들은 아닙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거냐?"

"저는 우리 어머니 김상희의 아들이며, 그분만이 제 유일한 부모이십니다."

김범석의 표정과 어투는 내내 평온했다.

그것은 오랜 증오와 원망이 삭아서 만들어진, 체념 같은 것하고는 전혀 달랐다.

분노할 필요도, 가슴에 담아둘 필요도 없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도출끝에 나온 태도.

"지금 찾아가는 게 나은지, 아니면 사후의 유산다툼을 노리는 게 나은지, 신중하게 재고 있다는 거구나."

"그렇습니다. 주인님."

"지금 찾아가는 게 좋을 거야. 더 시간 끌지 말고."

"……주인님, 미천한 이놈에게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그래야 네가 생부를 쥐고 흔들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회는 점점 사라져. 지금 이 순간에도 희미해지고 있지."

"……."

김범석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으로 변했다.

하수영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별안간 호통을 쳤다.

"김범석이! 네 이놈!"

"주, 주인님!"

김범석은 얼른 그 자리에 납작 엎드리며 온몸을 벌벌 떨었다.

보여주기 위한 경련이 아니었다.

하수영의 일갈이 자신의 온몸을 훑으며, 전신의 세포에 말할 수 없는 공포가 새겨지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신기한 것은 장효주는 그저 큰 소리에 조금 깜짝 놀라기만 했다는것.

'여, 역시 나의 주인님……!'

그 와중에도 단숨에 자신을 제압한 주인의 공포에, 김범석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안도감마저 느꼈다.

절대적인 힘의 과시는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안도가 되어준다.

그늘 아래에서 안락하고 싶어 하는 이에게는.

"당장 찾아가서 이창영의 전 재산을 받아라! 그것으로 서해그룹을 장악해서 내게, 네놈의 주인을 위해서 바치란 말이다!"

김범석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더 이상 생각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저 혈관을 울리는 이 뜨거운 머슴의 본능에 충실하기만 하면 될 뿐!

"머슴! 김! 범! 석! 주인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가라, 어서! 서해그룹을 손에 넣기 전에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라!"

"예! 주인님!"

김범석은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고, 그제야 하수영은 팔짱을 풀었다.

장효주가 어안이 벙벙해서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근데 수영 씨."

"네. 말씀하세요."

"서해그룹 오너 일가는 대대로 머리가 풍성하지 않아요? 하지만 김범석 씨는 탈모인데. 대머리인데……."

정말 이창영의 핏줄이 맞기는 한 건지, 장효주는 그 점이 이상했다.

하수영이 쾌활하게 대답했다.

"아, 범석이 대머리 아닙니다."

"네?"

"저거 자기가 직접 민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아니, 근데 머리 밀어도 모근 자국은 당연히 보여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염이 덥수룩한 사람은 아무리 깔끔하게 밀어도 수염자국이 보인다.

심지어 머리를 밀었다면, 그 모근자국이 새카맣게 보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김범석의 두피는 아기처럼 희고 깔끔했다.

삭발을 했다는 의심 자체가 들지 않을 만큼.

"왁싱을 오래 했나 보죠. 그럼 모발이 가늘어져서 모공도 작아지잖아요."

"그, 그럴 수도…… 근데 그럼 왜 그렇게까지……?"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겠죠. 설마 대머리를 자기 핏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

"풍성충들은 원래 그래요. 남들도 다 자기처럼 머리가 풍성한 줄 압니다. 그런데 대머리를 보고 자기 핏줄이라는 생각을 떠올리기에는 어렵죠."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친자 검사 결과를 봐도 받아들이기 힘들 겁니다."

장효주는 잠시 상상해 보았다.

'내 아들이 대머리라니! 대머리라니!'라고 절규하는 이창영의 모습을…….'

왠지 어깨에 오슬오슬 소름이 돋았다.

***

서해그룹 기획실은 혼란스러웠다.

저마다 자기가 이창영의 사생아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남자고 여자고 성별의 구분이 없었다.

이창영은 사생아가 정확히 아들인지 딸인지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연령조차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기에, 다양한 연령대의 사칭자들이 자기가 사생아라고 연락을 해왔다.

기획실은 그런 연락들을 칼같이 관리했다.

"그럼 머리카락부터 채취하겠습니다."

"머리카락을 채취한다고요? 왜요?"

"당연히 친자검사를 해야죠."

"다, 다른 증거들은 살펴보지 않고요?"

"친자검사가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데 굳이 먼 길 돌아갈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근을 채취한다고 하면 다들 기겁을 해서 도망치기 바빴다.

절반은 장난으로 연락을 한 이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사기를 목적으로 접근한 이들이었다.

초반에 친자검사부터 하자고 나서니 다들 기겁을 하고 발뺌을 했다.

그 뒤로는 사생아라고 주장하는 연락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로 그 타이밍에, 김범석이 서울 서해병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친자 검사를 부탁드립니다."

"……본인이 회장님이 찾으시는 사생아라고 생각합니까?"

"결과가 모든 걸 말해줄 겁니다."

결과는 그날 곧바로 나왔다.

서울서해병원에서 긴급으로 내린 검사이니, 오래 걸릴 필요가 없었다.

99.98% 친자 일치.

검사지가 나온 순간부터 김범석을 대하는 임직원들의 태도가 하늘과 땅 차이로 변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까이에서 보는 게 처음은 아니다.

서해그룹에서 일했을 때, 본사 로비에서 마주친 적이 있다.

당연히 김범석은 다른 직원들처럼 얼굴도 들지 못한 채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있었고, 병실에 들어서자 잔뜩 상기된 이창영이 두 팔을 벌려 맞이했다.

"어서 와라, 아들아. 보고 싶었단다."

"……아버지. 저도 보고 싶었습니다."

둘은 서로 알았다.

지금 둘 모두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있으며.

그걸 서로가 눈치챘고,

마음에 없는 연기가 필요할 때이며.

그렇게 하기로 무언의 합의를 했음을.

그리고 나서부터는 형식적인 시간이 일사천리로 지나갔다.

마음에도 없는 포옹, 절제된 감정의 표출, 주요 계열사 사장단의 소개…….

그중 몇몇 이들은 김범석의 얼굴을 알아보고 흠칫 놀라기도 했다.

만년부장 시절의 김범석을 기억하는 상무는 어느덧 사장까지 승진을 한 채였다.

"내 전 재산을 지금 즉시, 너에게 주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유언장을 고치는 게 아니라, 즉시 증여였다.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증여계약서를 썼다.

현 시간부로 모든 재산을 김범석에게 증여한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내가 죽고 난 뒤에 네 형제자매들이 유류분을 들먹일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걱정 마라. 그 문제도 내가 알아서 처리하마."

재산 목록은 참 많았다.

책 한 권을 써도 충분할 정도.

하지만 그중 가장 핵심은 바로 이 창영이 가진 그룹 계열사의 지분.

변호단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지분명의 변경까지 실시했다.

눈치 빠른 사장 한 명이 나섰다.

"회장님, 이범석 군이 예전에 생명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오, 그래?"

"네, 부장까지 달고 퇴사했는데 당시 뛰어난 수완을 보여서 임원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자자했었습니다."

"그런 인재를 왜 이사로 올리지 않고 퇴사하게 만들었나?"

"자세한 내역은 정일승 사장이 아마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정일승의 안색이 일그러졌다.

과거 그는 김범석이 라인을 잡은 임원과 대지 관계였다.

결국 정일승에 패배한 임원은 퇴사를 했으며, 김범석도 그 뒤를 따라야 했던 것이다.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였다.

차가운 새벽, 김범석은 혼자 욕실에 서서 우두커니 거울을 노려보았다.

상의를 벗은 채 자신의 듬직한 O형 복근을 바라보다가, 선반을 열어 왁싱페이퍼를 꺼냈다.

희끗희끗하게 조금씩 자라난 솜털위로, 왁싱페이퍼를 천천히 덮는다.

그 모습 위로, 오래전 처음으로 바리캉을 머리에 댔던 기억이 내려앉는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머리를 밀었던 기억.

고등학교로 특별 강사를 왔던, 서해그룹 출신 임원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너, 이창영 회장님을 참 많이 닮았구나. 나중에 입사하면 회장님이 참 좋아하시겠어.

그래서 바로 머리를 밀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노려보며, 바리캉으로 천천히 밀어버렸다.

나중에는 왁싱으로 아예 털을 뽑아버렸다.

살도 한껏 찌워서 자신의 이목구미가 지방에 파묻히게 만들었다.

더 이상 그런 사람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그 노력 덕분인지, 서해그룹에서 부장까지 올라가면서도 단 한 번도 그런 말은 듣지 않았다.

두발은 참 신기하다.

있고 없고, 많고 적고의 차이로 인상을 확 다르게 만든다.

이제는 더 이상 모발을 뽑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모발은 굵어지고 숱도 많아질 것이다.

"주인님이 귀여워해 주시는 내 모습을 내 손으로 지워 버릴 순 없지."

김범석은 거울 속의 자신을 뚫어져라 노려보며, 주저 없이 왁싱페이퍼를 뜯어냈다.

***

장효주는 물론이고, 정서희까지도 난리였다.

"와, 그럼 이제 범석이, 아니, 범석씨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분을 받았으니까 이제 서해그룹다음 회장이 되는 건가요?"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어렵죠. 이창영 회장 지분이라고 해봐야 전체의 5%도 안 되는 걸요."

이미 서해그룹은 이현덕을 중심으로 온갖 인맥이 결집되어 있다.

거기에 지분 몇 %를 들고 사생아가 참전해 봤자, 싸늘한 냉대만 받을 뿐이다.

"그럼 아무 소용도 없는 건가요?"

"그 지분이 이현덕 부회장 손에 들어가면 강력한 무기가 되지만, 사생아 손에 있으면 뺏고 싶어지는 초콜릿 상자일 뿐이죠."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당연하죠. 무엇보다 내부에서 분탕질을 하기에는 최고의 아이템입니다."

"근데 수영 씨는 어떻게 김범석 씨가 회장님 아들이라는 걸 알았어요?"

하수영은 잠시 말이 없다가 조용히 말했다.

"실수였어요. 눈 잘 감고 있다가 괜히 슬쩍 떠버리는 바람에 그만 이렇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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