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41화
206장 나는 원수다 (5)
국내 최고의 재벌 회장이 잃어버린 사생아를 찾는다는 공개 영상.
-내 전 재산을 주마. 죽기 전에 얼굴 한 번만 보여다오.
핏줄을 보고 싶어 하는 늙은 재벌회장의 절절한 마음은 여론에 큰 울림을 주었다.
철혈 기업가로 알려진 이창영도 결국 사람이구나, 그래도 심장은 있구나, 하는 인식이 퍼졌다.
서해그룹은 본의 아니게 오너 일가 이미지를 쇄신할 수 있었다.
-근데 전 재산을 다 물려준다면, 지금 이현덕 부회장 지분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직까지는 이창영 회장 지분이 가문에서는 압도적으로 많지 않나?
-그래 봐야 그룹 전체로 치면 3%도 안 되는데, 무슨.
-그 3%로 안 되는 양으로 저 거대한 그룹을 지배하는 게 바로 순환출자의 위엄이지.
-전 재산을 준다고 했으니까 지분도 당연히 준다는 거 아니야? 지금 지분 변동 공시 없지?
-없음. 이씨 일가 지분은 다 그대로임.
-대박. 그럼 새 사생아가 지분으로만 보면 다음 서해그룹 회장이 되겠는데?
-평범한 서민인 줄 알았던 내가 알고 보니 재벌가 후계자?
대중의 궁금증은 하나의 방향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이현덕 부회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4함대와 5함대 창설식이 동시에 열렸다.
미사일 순양함(하수영함)을 기함이자 유일한 함선으로 하는 4함대.
경항모(청담함)를 기함으로 하는 5함대.
1만 톤이 넘는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 3척을 다른 함대에서 뜯어와 5함대에 편입시켰다.
졸지에 전력을 뺏기게 된 다른 함대 입장에서는 억울할 노릇.
하지만 해군 양대 전력 중 하나로 자리 잡은 경항모 호위 문제 앞에서는 깨갱할 수밖에.
하수영은 해군원수로서 창설기념식에 참가했다.
함대사령관의 임명장 수여는 맡지 않았지만, 대신 두 함선의 함장과부함장의 임명장은 하수영이 손수 건넸다.
"축하합니다."
굳은 악수를 나누며, 신임 지휘관들은 가슴 울렁이는 중압감을 느꼈다.
"원수님, 축하 연설 수순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하수영의 창설 축하 연설 순서가 이어졌다.
"……국토와 영해를 단단히 지키는 것 못지않게 해군 여러분 개개인이 무사히 귀가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 잊어서는 안 됩니다……."
장성 및 영관급 장교들은 하수영의 연설에서 단어 하나하나 빼놓지 않게 낱낱이 분석했다.
"병사들의 안위를 무엇보다 가장 크게 걱정하시는군."
"나이가 비슷하니까, 원수님은 병사들에게 우리보다 더 진하게 공감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고방지 대책에 더욱 몰두합시다."
"구태의연한 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원수님의 행보를 생각하면 더욱 세련되고 합리적인 사고방지 아이디어가 필요……."
***
'기대되네.'
미사일 순양함 하수영함의 조리장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냉동창고를 찾았다.
핵잠수함 2척은 수영농장에서 온갖 호화로운 식재료를 무제한 공급받는다.
또한 잠수함이라면 누구나 핵잠수함 2척의 육상식재료 창고를 공유할 수 있었다.
군 부식예산으로는 꿈도 못 꾸는, 값비싸고 좋은 식재료가 가득하다는 해군의 보물창고, 그런 소문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과연 우리는 어떻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냉동창고를 연 조리장의 눈이 터질 듯이 확대되었다.
한우 고급 부위, 돼지, 오리, 닭, 사슴 고기 등등이 조리하기 좋게 절단된 채로 냉동고에 가득 들어 있었다.
소스나 밑재료 따위도 특급호텔에서 쓰는 브랜드가 대형 사이즈로 빼곡하게 쌓여 있고, 이 정도 클래스면 해군호텔에서도 공손히 허리를 숙이고 몇 수 접어줘야 할 수준이다.
부조리장이 옆에서 혀를 내둘렀다.
"아니, 뭔 생선들도 죄다 도미니 다금바리니 좋은 것들만 가져다 놨네요. 사회에서도 돈 주고 사먹으려면 손 떨려서 못 먹는 것들인데."
"병사들 배식에 도미를 내놓는 부대가 세상에 어디 있냐?"
"설날 특식도 이 정도는 불가능하죠."
"와씨. 이거 도미로 무슨 메뉴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프네."
"튀김과 매운탕으로 만드세요."
그때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조리장과 부조리장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돌아봤다.
"필승!"
반짝거리는 별 다섯 개를 확인한 순간, 조리장은 우렁차게 경례구호를 외쳤다.
하수영은 경례를 가볍게 받은 후, 냉동고를 눈으로 훑으며 말했다.
"원래 도미가 회로 먹는 것보다 튀겨서 먹거나 매운탕으로 먹는 게 더 좋아요. 생선까스 만들어서 배식하면 반응이 나쁘지 않을 겁니다."
조리장과 부조리장은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도미로 생선까스라니.
그것도 군대에서…….
"요즘 양식장이 잘돼서 도미 따위는 부족하지 않습니다. 아, 울릉도와 통영 근처에서 작전할 때에는 제 양식장에 연락하면 신선한 광어도 갖다 줄 겁니다."
"과, 광어를 말씀이십니까?"
"광어가 싸긴 한데 희소성이 떨어져서 그렇지, 횟감으로 치면 정말 고급 어종입니다. 대량생산 성공 전에는 얼마나 비쌌는데요. 병사들이 좋아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원수님."
"이 배의 명예군수인사과장으로서 내리는 지시니까 차질 없이 이행하세요. 주에 1회는 활어회를 내놓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네, 원수님!"
"그리고 여기 육류는 모두 우리 목장에서 애지중지 키운 것들인데, 시중에 유통되는 것들보다 더 품질이 좋습니다. 재벌도 못 먹는 등급이에요."
"그, 그렇습니까?"
"하수영함은 특별히 내가 엄선해서 식재료들을 준비했습니다. 내가 명예군수인사과장으로 있는 배들인데, 부실한 보급품을 넣어줄 순 없죠."
조리장은 그제야 하수영의 뒤에서 빳빳하게 굳어 있는 부함장과 장교들을 볼 수 있었다.
함장은 함의 통솔에 집중하고, 부함장이 하수영을 에스코트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는 동안, 갑판에는 쉼 없이 박스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 콘솔 게임기들이 이제야 왔네."
"콘솔 게임기? 원수님, 저것들이 설마……?"
"선상 생활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오락거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또 이런 게 있어야 선임들이 후임 가혹 행위 할 시간에 게임한 판이라도 더하려고 할 거 아닙니까?"
"……."
"똥군기 잡을 시간도 없도록 정신없이 재밌게 만들어줘야 사고가 안납니다."
그렇게 4함대와 5함대는 첫 동시출항 작전을 가졌다.
서해부터 남해를 한바탕 훑은 뒤, 마지막으로 동해의 독도를 찍고 다시 모항으로 귀항한다는 항해 작전.
영해를 한 바퀴 순찰하면서 함의 운용을 손에 익히고, 함에 적응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하수영도 하수영함에 올라서 함께 순항을 하기로 했다.
하수영은 장병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일단 나잇대가 비슷했고, 하수영이 전군 장병들 가정에 송이버섯, 황비버섯 등의 식재료를 무상배송해주는 덕분에 장병들도 친숙했다.
하늘같은 원수님을 편하게 대하는 모습에 장교들은 기겁했지만, 감히 하수영 몰래라도 그런 낌새를 드러낼 수는 없었다.
"본 원수는 진심으로 장병 여러분들의 기둥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주저 없이 말을 하십시오."
"본 원수는 '사재를 털어서' 장병 여러분들의 사회적응 프로그램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역하고 당장 할 게 없다면 하수영 프랜차이즈에 지원을 해보십시오. 전 직영점에서는 전역하고 2년 동안은 군 복무 인센티브로 월 100만 원을 추가로 지급하고 있습니다."
"원수님, 그게 정말입니까?"
"2년 가까이 고생했으니까 그 기간만큼 약간이라도 꿀을 빨게 해줘야 하는 게 이 부족한 지휘관의 배려입니다."
현실적인 이야기가 나오자 장병들은 물론이고 부사관들의 눈도 초롱초롱해졌다.
"원수님, 혹시 예비역 간부도 해당이 됩니까?"
"아쉽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
"하지만 밀리터리 인센티브는 점진적으로 확장해 나갈 계획입니다. 그러니 실망하지 말고 기다려 보십시오. 첫술에 배가 부를 수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원수님!"
"다들 정, 진짜 너무너무 할 게 없다면 수영목장이나 수영양식장의 문을 두드리십시오. 몸이 조금 고될 순 있지만 최소 연봉 7천 이상은 벌 수 있습니다."
최소 7천이라는 말에 다들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짓말 같습니까? 울릉도 수영양식장에서는 일개 직원도 벤츠를 끌고 다닙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면 전역 후 찾아오십시오."
어느덧 장성들도 고개를 내밀고 하수영의 이야기에 귀담아듣고 있었다.
진급에 거듭 실패하고 옷을 벗을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에.
그리고 주변에서 구직하는 지인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지휘관이 돈이 많으면 휘하 부하들이 확실히 편하긴 한데.'
'해군원수님이 진짜 저렇게 돈이 많으시고 넉넉한 분이시니…….'
'해군 전체 살림살이가 달라지는구나.'
당장 하수영함, 청담함의 보급품만 봐도 차원이 달랐다.
이전의 해군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사치품들을 가득히 싣고 있으니.
심지어 지금 장병들은 다들 수영치킨을 뜯고 있었다.
하수영이 수영치킨 전용조리도구를 배에 여럿 실어준 덕분이다.
밖에서 사회에서 사먹던 그 치킨 그 맛을 재현하기에, 장병들은 감격했다.
하수영은 일주일 정도 항해작전을 함께한 뒤, 헬기를 타고 육지로 돌아왔다.
초기 운영 상태만 어느 정도 관찰한 후, 최고계급자는 빠져준 것이다.
***
세상은 여전히 서해그룹 오너 일가의 일로 시끌시끌했다.
"뭐야, 아직도 사생아를 못 찾은 겁니까?"
"그래요. 설마 배에서는 인터넷이 안 돼요?"
"일부러 바깥소식은 신경 끄고 있었죠. 배 며칠 타고 들어오면 다 끝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난리예요. 일각에서는 이미 사생아를 찾았는데 파파라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아닌 척 거짓말을 한다는 말도 있고요."
"그건 아닌 거 같네요. 아직 사생아를 못 찾은 거 같은데요?"
"수영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장효주가 의아해서 묻자 하수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제가 서해그룹과 친하잖아요. 찾았으면 저한테 진작 연락이 왔을 겁니다."
"친했어요? 반도체 때문에 엄청 크게 싸우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사이가 돈독해야만 친한 게 아님니다. 미운 정이나 원한이 깊은 것도 친한 거예요."
"……."
"그나저나 범석아."
"예! 주인님!"
김범석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방금 대화 다 들었음에도 표정에는 전혀 변화가 없었다.
하수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이 회장 사생아 말이다."
"본인이 사생아라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니, 내 질문은 그게 아니고."
"이 미천한 머슴에게 구체적인 꾸짖음을 내려 주십시오, 주인님!"
"전생에 어떤 인연이어야 현생에서 사생아로 다시 만난다고 생각하냐, 너는?"
그 말에는 김범석도 조금 당황했다.
"전쟁의 인연이라니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생의 원수는 현생에서 부부로 잘 만나더라. 전생에 피해자는 가해자의 자녀로 다시 만나고, 전생에 지은 죄를 내리사랑으로 갚아나가라는 섭리겠지."
"……."
"재벌 회장의 사생아, 이거 보통 전생 인연은 아니거든. 둘은 전생에 무슨 사이였을까? 만약 전생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말이야."
"……."
"한 번 상상력을 발휘해 봐."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김범석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주인님, 전생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말입니다."
"그렇지. 그 가정하에."
"어쩌면 사생아는 전생에서 세상에 드러내기 껄끄러운 측근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물론 전생 말씀을 진지하게 하셔서 저도 상상력을 발휘해본 겁니다."
하수영은 잔잔한 미소를 짓고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만약 전생이 있다면, 넌 이창영회장 비자금 수백조 원을 혼자서 관리하던 사냥개였을 거야."
"……."
"안 그냐? 김, 아니, 이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