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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39화 (839/1,270)

프랜차이즈 갓 839화

206장 나는 원수다 (3)

이창영은 하원석이 정말 천기를 읽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점괘는 단 한 번도 틀려본적이 없었으니까.

거의 예언이라고 해도 믿어질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수십 번이 넘는 굵직한 점을 보면서, 단 하나도 틀리지 않는 게 어디 보통 일인가.

다른 점쟁이들처럼 '물을 조심해라.', '동쪽에 길이 있다. 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지도 않다.

선거에서 어느 의석이 몇 개로 분배되는지도 정확히 맞춘다.

그룹에 위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되며, 원인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짚어준다.

때문에 복채를 천억 원부터 받음에도 불구하고, 하원석을 자주 찾았다.

오랫동안 총 수십조 원이 넘는 복채를 줬지만, 그 이상으로 기업을 일구고 위기를 회피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아니, 하원석이 다시 나타나기만 한다면 점 한 번에 몇조 원씩 복채를 요구해도 웃으면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친구도 보통은 아니겠지.'

겨우 3년 만에 농사 하나로 저런 대그룹을 일궈낸 친구다.

다른 재벌 그룹들과는 체질이 전혀 다르지만, 성과만 봐도 하늘의 대운을 타고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수준.

굴지의 재벌 회장이기에 그는 오히려 대운의 존재를 굳게 믿었다.

이미 자신의 존재부터가 큰 운을 받고 이어져 온 것이니까.

과연 그런 걸물이 선택한 양자는 천기를 얼마만큼이나 읽을 수 있을까?

"1,400만 개의 미래 중에 단 하나, 회장님이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생아…… 그 아들이 날 죽인다……."

"그 아들 때문에 죽게 됩니다."

"회피할 길은 무엇인가?"

"그건 추가 복채를 내셔야 합니다."

"얼마든지 내겠네. 얼마든지!"

"그런데 이제 더는 청담동 부동산도 없으시고, 복채로 딱히 지불하실만한 게 없으신데요."

"지불할 게 없다니. 이 이창영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었어! 내가 그 정도 복채도 지불 못 할 거 같은가?"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원래 물질욕이 별로 없어서요."

노령의 측근들은 얼굴이 일그러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야 했다.

아니, 뭐?

물질욕이 없어서 '개인은행'에 막 현금을 1,200조 원씩 쌓아두고 있나?

"자네가 원한다면 서해전자 지분도 줄 수 있네! 아니, 서해생명 지분도 줄 수 있어!"

"회, 회장님!"

노령의 측근들은 안색이 새파래졌다.

서해생명은 서해전자를 지배하는 핵심 계열사다.

어느 쪽 지분을 주든지 간에 서해 전자 지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현덕 부회장이 들었다가는 길길이 날뛸 것이다.

"글쎄요, 지금 서진파운드리가 있는데 굳이 반도체 회사를 또 인수하는 것은 불필요한 중첩 같은데요."

그걸 또 별거 아니라는 듯이 거절하는 태도가 가신들에게는 더 놀라웠다.

"뭘 원하나? 뭘 원하는지 말만 하시게. 내 무엇이든지 지불하지."

"돈보다는 약점을 지불하시죠."

"……약점?"

무슨 말인가 의아했던 이창영은 이 내 말뜻을 깨닫고 안색이 조금 구겨졌다.

"혹시 그룹이 스폰했던 이들 명단을 요구하는 건가?"

"요즘 여기저기서 슬슬 찔러보기가 들어오고 있어서요."

"……충분히 그럴 만하지. 지금 수영그룹은 서해그룹 못지않은 대재벌이니까."

'서해그룹 이상의'라는 표현을 넣지 않은 것은,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나도 한남동에 가만히 눌러앉은 것은 아닐세. 가만히 있어도 보이는 게 있고, 들리는 게 있어. 법쟁이들은 대놓고 손을 벌리고, 정치자영업자들은 은밀히 입을 벌린 채 기다린다지?"

"정치인들이야 제가 여의도에 진출하기 전까지는 서로 무시하면 그만인데, 칼잡이놈들은 정말 염치라는 게 없더군요."

"그래서 그놈들을 막을 방패가 필요하다?"

"호미가 필요한 일에 트랙터를 끌고 갈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푸, 푸하하핫! 으하하핫!"

순간 이창영은 통쾌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기분 좋은 웃음이었다.

"내가, 우리 그룹이 수십 년 이상 관리해온 스폰 내역 명단이 겨우 호미라는 뜻인가?"

"한 뼘짜리 텃밭에 트랙터 끌고 들어갔다가는 밭 전체가 날아가잖아요. 그건 피하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알겠네. 내, 기꺼이 내어주지. 물론 자네라면……."

"그걸 가지고 서해그룹에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겁니다. 안심하세요."

"어쩌다가 우리 현덕이가 자네와 그렇게 틀어지게 됐을까. 참 안타깝군."

"그래도 다행 아닙니까? 제가 회장님 따로, 부회장님 따로, 딱딱 칼같이 구분하고 있으니까요."

"그만큼 냉철한 건지, 아니면 자네한테는 별거 아니라는 건지. 아무튼 고맙네."

"그럼 복채가 준비되면 연락 주십시오."

"그러지. 다음에는 내가 직접 찾아 가겠네."

***

며칠 후, 이창영은 청담동 저택으로 조용히 찾아왔다.

노령의 비서실장 측근이 메모리카드 하나를 내밀었다.

"여기에 모두 정리해서 넣어두었습니다."

"누락된 내역은 없겠지요?"

"네, 원본에 있는 모든 것을 그대로 기재했습니다. 다만 그룹 이름은……."

"아, 그거야 당연히 기록하지 않는 게 맞겠죠. 아무튼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메모리카드를 흘끔 살피고는 이창영을 돌아보았다.

"확실하군요."

"그런 것도 점을 칠 수 있는 건가?"

"네, 이런 사소한 것들은 그냥 보면 바로 눈앞에 떠오릅니다."

"……자네가 어떻게 농사 하나로 그런 대기업을 일궜는지, 그 비밀을 이제 알겠군."

"아버지가 박수무당이 아니라 기업가를 했었다면 세상에 대기업은 단 1개만 존재했을 겁니다."

"그런 생각을 종종 했었네. 하원석그 친구가 그 전지한 능력을 자기를 위해서 썼다면, 나는 감히 그 앞에서 고개도 들지 못할 것이라고."

이창영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을 이었다.

"그 친구가 말했었지. 천기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읽어선 안 된다고, 그랬다가는 천벌을 받아 영영눈이 멀어버리게 된다고."

"남을 위해 천기를 대신 봐주고 그 대가나 받아먹으면서 살아야 부정을 안 탄다, 뭐 그렇게요?"

"맞네. 그런 식으로 설명을 했었어. 그래서 원석이 개인적으로는 참 안타까운……."

"클리셰예요. 이제는 사골 레퍼토리죠."

"클리셰…… 뭐라고?"

"오래된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있어 보이려고 둘러대는 말이죠."

"……."

"아버지는 그냥 직접 하는 게 재미없었던 겁니다. 남들을 도와주면서 열심히 구경했겠죠. 개발 시뮬레이션이라는 게 원래 그런 맛에 하는 거거든요."

"……."

이창영은 무슨 이야기인지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맥락만큼은 분명하게 이해 했다.

"그러니까 하원석 그 친구는 할 수 있는데 그냥 재미가 없으니까 안 한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그룹을 포함해서 자기 점을 받은 다른 기업이나 정치인들이 성장하는 걸 구경하는 재미로 살았다?"

"네, 그래요."

"혹시 자네도 그런가?"

"전 그래서 평소에는 봉인해 둡니다. 천기를 안 보려고 눈을 감고 있죠."

"……."

"가끔 지금처럼 꼭 필요할 때만 슬쩍슬쩍 열어서 보는 거예요. 안 그러면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거든요."

"……자네 부자, 확실히 보통이 아니군."

노령의 비서실장은 이제 아예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하수영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정말 세기의 대예언자 부자라는 게 아닌가?

이미 하원석과 하수영이 이뤄낸 업적들이 있기에, 그 말을 거짓으로 치부하기도 어려웠다.

"그럼 지금부터 천기를 누설하겠습니다."

하수영이 입을 열자, 이창영과 비서실장은 바짝 긴장해서 눈에 힘을 주었다.

"아들의 나이는 만 42세입니다. 근데 이건 실제 나이이고, 주민등록상으로는 생일이 6개월 늦습니다. 병원을 매수해서 출생신고를 늦게 했군요."

"아마 그룹의 추적을 피하려고 그랬을 거 같군."

"네, 그렇습니다."

그럼 약 42년에서 43년 전 사이에 자신이 정리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배가 불러왔다면 자신이 모를 리가 없을 테니.

배가 불러오기 전에 아마 정리가 되었으리라.

이창영은 그때를 기점으로 정리한 여자가 누구인지 재빨리 생각했다.

'그래, 하원석 그 친구 점도 항상 이런 식이었지.'

두루뭉술하지 않고 매우 정확하게 핀포인트로 짚어준다.

때문에 방향을 헤맬 필요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질주하기만 하면 된다.

"모친은 이미 사망했군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갔습니다."

"내 아들은? 어떻게 살아왔는가?"

"모범생으로 반듯하게 성장했습니다. 원래는 경범죄 전과 하나도 없을 운명인데, 이런…… 감옥을 한번 다녀왔군요."

"감옥을?"

"네, 하지만 안심하십시오. 인성은 문제없습니다. 그냥 누명을 써서 간 거니까 재심을 하시면 되겠네요."

"누명이 확실한가?"

이창영은 조금 안심해서 물었고, 하수영은 힘차게 끄덕였다.

"네, 누명을 덮어쓰고 간 겁니다. 변호사 살 돈이 없었나 보네요."

"……그랬군."

변호사 살 돈도 없어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었다니.

이창영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아들이 이제 와서 자신을 죽인다고?

이창영은 대체 무슨 인과가 끼어 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 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일로, 언제 나를 죽이게 되는가?"

"그걸 이제부터 자세히 보는 중인데…… 어? 으음……."

갑자기 하수영이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자 이창영은 불안해졌다.

"이거 제 숙련도가 부족해서 아주 자세한 천기는 아직 읽을 수가 없네요."

"숙련도?"

"네, 그래도 아직 제가 아버지만큼은 아니라서. 아무튼 출생신고를 거짓으로 6개월 늦게 한 실제 나이만 42세 아들 때문에 회장님은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제 6개월이 남지 않았습니다. 약 5개월에서 6개월사이."

"좀 더 특정할 수는 없는 건가?"

"제가 특정을 하는 순간부터 그 미래는 다시 변합니다. 변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일부러 이만큼만 특정을 했습니다."

"미래가 다시 변한다?"

"네, 예를 들어 제가 175일 후라고 특정을 하면 그게 그 직전까지는 올바른 미래입니다. 하지만 특정을 한 직후에 곧바로 변하게 되죠. 왜냐면 회장님이 천기를 알아버리셨으니까."

"……으음. 무슨 말인지 알 거 같네."

이창영은 크게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앞으로 약 5개월에서 6개월 후, 내 아들이 나를 죽이러 온다……."

"저는 아들 때문에 죽게 된다고 했지, 아들이 죽인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다른 건가?"

"완전히 다르죠. 결정적 원인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을 죽게 만드는 데는 꼭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뭔가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창영은 그 말이 입에 남는지, 자꾸만 여러 번 곱씹었다.

"그래서 어떡하면 내가 운명을 회피할 수 있나? 1,400만 개의 미래 중에서 어느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하수영은 한참 동안 허공을 노려보다가 표정이 살짝 굳어진 채 말했다.

"전 재산을 아들에게 증여하겠다고 널리 알리십시오."

"전 재산을?"

"네, 드러나지 않은 재산은 빼돌리셔도 됩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널리 알리시고, 세상 누구도 인정할만큼의 전 재산을 증여하십시오."

"상속은……."

"안 됩니다. 미리 증여하셔야 합니다. 증여세를 생각하실 때가 아닙니다."

"아들을 찾아서, 전 재산을 증여하란 말인가?"

"찾아낼 시간도 별로 없을 겁니다. 하루 빨리 터뜨리셔야 합니다. 아주 크게 광고를 내고 홍보를 해서, 사생아를 보고 싶어 한다고 알리셔야 합니다. 그럼 아들이 제 발로 찾아올 겁니다."

"그게 내 죽음을 앞당기는 것은 아닌가?"

"아닙니다. 아무튼 이것만이 회장님이 1,399만 9,999개의 운명을 회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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