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37화
206장 나는 원수다 (1)
하수영은 또 진급을 했다.
이제는 별 넷을 단 해군대장 겸 원수(진)다.
한 달에만 진급식이 여러 번일 정도로 고속 특별 진급.
그리고 이제는 마지막 원수 진급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해군참모차장(3스타)은 아예 청담동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원수 진급식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었다.
"원수 진급은 당연히 대통령 행사입니다. 한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니만큼, 생방송 중계로 진행될 겁니다."
"이거 참. 여의도나 종로와 너무 가까워지고 싶진 않았는데요."
"그리고 원수님께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매달 약 1,200만 원가량의 연금이 평생 지급됩니다."
"지금 4성 장군 연금이 얼맙니까?"
"550이 조금 안 됩니다."
"별 하나 더 달았다고 차이가 두배가 훌쩍 넘게 나는군요."
"원수님이 우리 국군 전투력 증강에 기여하신 공이 얼마인데, 그 정도 예우는 국가에서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최우석이 옆에서 부채질을 하면서 투덜거렸다.
"아니, 8조 원 넘는 군함 5척 받아가고 또 덕분에 핵잠수함 2척도 미국한테 얻었으면서, 겨우 연금 월 1,200만 원 가지고 생색을 내나?"
참모차장은 말문이 막혔고, 하수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에이, 금액이 중요한가요? 퇴역군인 중 유일하게 이런 예우를 받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이 정도면 대통령 연금 수준이잖아요?"
"맞습니다. 예산이 아니라 상징성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대통령 연금수준에 맞췄습니다."
"이봐요, 차장 친구. 그럼 만약 전쟁이라도 나면 우리 하수영 원수는 어떻게 되는 건가?"
"예?"
"당연히 해군을 지휘하는 거겠지?
해군 최고계급자 아닌가?"
"그, 그건……."
차장은 그런 생각을 못해봤다는 듯 버벅거렸다.
예편 장성들이 복귀할 정도로 큰 전쟁이 날 거라는 전제 자체를 못한 것일까.
하수영이 쾌활하게 말했다.
"당연히 저도 현역으로 복귀해서 한 팔 거들어야죠. 저는 전쟁에서 제가 가장 잘하는 걸 할 겁니다."
"그게 뭔가?"
"물량빨로 조지는 거죠. 참모차장님, 청담동 SHOW ME THE MO NEY, OPERATION CWAL, FOOD FOR THOUGHT이 뭔지 보여 드리죠."
"응? 그게 뭔가?"
"자원 확보, 고속 개발, 보급 확장을 뜻하는 군사용어입니다."
"오, 확실히 하 의원 자네한테 딱 맞는 영역이로군. 그럼 전쟁 나도 물량, 보급 같은 건 전혀 걱정할 게 없겠지?"
"그러니 차장님도 뒷방늙은이 퇴역원수한테 무슨 자리를 줄지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참모차장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펴졌다.
"말씀만 들어도 정말 든든합니다. 원수님의 말씀, 항상 가슴에 새겨두고 있겠습니다."
부대 지휘가 아니라 보급 해결에 임하겠다니.
차장은 조금 전 마음을 눌렀던 부담감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래, 원수님이라면…… 아니, 원수님보다 보급 해결을 더 잘할 수 있는 분은 없을 거야.'
러시아, 미국에서 조달한 해군전력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평시에 이 정도인데, 전시에는 어떤 능력을 보여줄지 가슴이 뛰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절대로 나지 않는 것이겠지만……
***
[가칭 하수영협회원 모두에게 알려 드립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하수영 협회장님께서 다가오는 금요일, 해군원수로 진급을 하게 됩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던 5성장군이 되는 겁니다.]
[진급식은 여의도 국회 야외 행사장에서 진행되며, 대통령이 손수 계급장을 달아주십니다.]
[모쪼록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프리덤은 널리 공지를 돌렸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치킨, 수영양식 등등 하수영 프랜차이즈 가맹점 모두에 소식을 전했다.
여기에는 수백만 명이 넘어가는 농어촌 주민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 역시 일상에서 하수영의 지원을 받으며 생계에 집중하기에.
그리고 마침내 원수 진급식이 다가왔다.
하수영은 장효주, 정서희와 함께 여의도를 찾았다.
두 여자는 국회본회관이 처음이 아님에도, 잔뜩 상기돼서 설레고 있었다.
"사람 엄청 모였네요. 저 사람들이 전부 다 수영 씨 축하해 주러 왔나 봐요."
"CVN는 지금 방송헬기를 대체 몇 대나 띄운 거죠?"
"CVN 창사 이후 최고 스폰서인데이 정도 정성은 당연히 보여야죠."
국회에서 열린 원수진급식은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참석했다.
심지어 당선 이후 본회의 출석률을 한 번도 안 했다는 7선의원조차도 참석했다.
일반 참관석 티켓을 얻지 못한 이들은 국회 밖에서 진을 치고 구경하고 있었다.
하수영은 별 넷이 달린 제복을 입고, 계급모를 썼다.
"그럼 다녀올게요."
"잘 다녀와요. 여기서 보고 있을게요."
태연한 걸음걸이는 두 여자의 마음을 묘하게 가라앉혔다.
"수영 씨, 전혀 긴장 안 한 거 같죠?"
"그러게요. 꼭 이런 건 지겹게 해봤다는 사람처럼……."
"수영 씨는 항상 그런 여유가 있어요. 뭐든지 이미 질리도록 다 해본 것처럼."
"여자도 지겹도록 만나본 거 같지 않아요?"
"전 여친 썰들을 몇 번 듣기는 했는데, 10대에 그게 가능할까요? 그 많은 여자들을 만나기에는 시간적으로 너무 말이 안 되는데?"
"……."
두 여자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행사장에 오르는 하수영의 뒷모습에 집중했다.
대형 전광판 위로 하수영이 군에 기여한 공적이 줄줄이 올라간다.
전 국군 장병을 대상으로 한 무상식재료 제공.
신두 개발로 인한 군 전투력 상승지원.
미국과의 협상으로 1.6만 톤급 최신형 핵잠수함 2척 도입 달성.
2.8만 톤급 러시아 미사일 순양함 기증.
4.5만 톤급 미국 경항모 기증.
세종대왕급 이지스 구축함 3척 기증 예정.
5척의 수상함 유지운영비 일체 지원.
……등등…….
병특 대상자가 무슨 해군원수냐는 의문을 가진 이들도, 진급식에서 직접 공개한 하수영의 군공 내역에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와씨. 저 정도면 해군원수 줄 만하네."
"저 업적들을 계급장 하나로 퉁친게 대단하네. 진짜 국방부는 양심이 없어."
국회의원들은 여느 때보다 행사에 집중했다.
스마트폰으로 딴짓을 하는 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재벌 자본 앞에서만큼은 항상 진심으로 공손한 이들 아닌가.
"그럼 하수영 예비역 해군대장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단상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수영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플래시가 터졌다.
수많은 국회의원, 기자, 평론가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저 중에는 그를 흠모하는 이도, 그늘에서 안락하고 싶은 이도, 질투하는 이도,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군상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지.'
잠시 젖었던 감성을 지우고, 하수영은 대통령 앞에 꼿꼿하게 섰다.
대통령이 임명장을 건네고, 손수 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옆에 다가온 행사요원이 붉은 천으로 싸인 상자를 열자, 별5 계급모가 근사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수영은 쓰고 있던 제복모를 벗고, 원수 계급모를 대신 썼다.
그리고 반대쪽에 깔린 수많은 군상을 향해 소리 없이 힘차게 경례했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예비군 훈련면제를 축하드립니다, 마스터.
"그래도 야비군들하고 노가리 까는 재미가 있었는데 말이야."
***
여의도에서 하수영은 장난삼아 청담동 패왕이라고 불린다.
중앙정치에서 큰 무게를 차지할 역량이 넘치지만, 청담동을 일절 벗어나지 않기에.
여야는 여전히 끊임없이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그가 아직은 중앙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절대로 여당이."
"야당이."
"하수영 의원, 아니지, 원수를 독차지하게 놔둬선 안 된다. 모두 필사적으로 몸빵하도록."
"예! 의원님!"
그렇게 여야 초선, 재선들은 하수영을 전담 마크하기 위해 땀을 뻘뻘흘리며 노력했다.
이런 중요한 행사 뒤풀이에서 상대 당이 하수영을 독차지하게 놔둘 수는 없는 법.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치열하게 오가다 보니, 하수영은 편안하게 뒤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뜻밖의 얼굴도 만났다.
"축하하오, 하수영 원수. 우리나라 국군 역사에 큰 획을 그었구려."
세상에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서해그룹 이창영 회장이 참석한 것이다.
하수영은 의연하게 대답했다.
"고맙습니다, 이창영 회장님."
"하원석 그 친구 아들이라 크게 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3년 만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이뤄낼 줄은 몰랐소."
"저도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조금 숨 고르기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 서해그룹과는 꽤 악연이 있다지?"
"악연이라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시장 점유율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인생사 아니겠습니까?"
이창영은 그 말에 잠시 한 방 먹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껄껄 웃었다.
"반도체 산업으로 우리 그룹을 너무 괴롭힌다 들었는데, 조금만 살살해 주시게나."
첫 대면은 아닌 관계로, 둘은 좀 더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이창영은 사업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반도체 등등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굴뚝같음에도.
그것은 이제 자신의 일이 아니라, 아들의 일이라고 치부하는 듯이 말이다.
"원석이 그 친구 점괘가 정말 대단했지. 신통을 넘어서 마치 미래를 직접 경험하고 온 듯한 정확함이 있었어. 그 친구 덕분에 무일푼에서 지금의 서해그룹을 일궈낼 수 있었지."
"무일푼이라니요. 유서 깊은 만석꾼 양반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요즘은 조금 허탈하네. 하 원수는 농사 하나로 불과 몇 년 만에 우리 서해그룹을 넘어서는 사업체를 일궜는데, 우리는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듯하니……."
한 명은 시대를 풍미했던 재계의 황제.
다른 한 명은 급속히 떠올라 한국농어촌계를 비추는 찬란한 태양.
두 거물이 대화하고 있으니, 6선 이하 잡것 의원들은 차마 가까이 다가오질 못했다.
"원석이 그 친구가 참 먼 여행을 떠났나 보군. 아직도 소식이 없으니."
"글쎄요. 정말 먼 여행을 떠났는지 떠난 척만 한 건지 저도 잘 모릅니다. 워낙 자유분방한 분이셔서 말이죠."
"혹시 연락이 닿을 방도는 없겠나?"
"일단 지금으로서는요. 아버지께 볼일이 있으신가요?"
"그 친구가 우리 그룹을 위해 점괘를 마지막으로 봐준 게 이미 십 년이 넘었다네.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저야 모르죠."
"이미 충분하다고, 더 이상은 그룹에 화만 불러올 거라고, 자기 점괘는 이제 오히려 해만 될 거라고 했다네."
"점이 틀릴 거라고는 안 했나 보군요."
"그렇지. 점괘는 여전히 정확하겠지만, 자기가 점을 봐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해가 될 거라고, 태양을 너무 오래 쳐다보면 눈이 상하는 것에 비유했다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점괘를 한 번 더 보고 싶으신 겁니까?"
"그룹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
"항상 회사를 위해서 거액의 복비를 지불하면서 점괘를 봤었지, 정작 나 자신을 위해서는 점괘를 본 적이 없었네."
이창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 억울한 게야. 그 천문학적인 복채를 내려고 어마어마한 비자금을 조성해 놓고, 정작 나를 위해서는 한 번도 점을 보지 않았으니."
그룹과 본인을 동일시했기에, 그룹을 위해서 점을 보는 게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년에 실무경영에서 손을 떼니, 비로소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해도 위험하지 않습니까?"
"자네 부친과 나는 공범인데, 내가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있나?"
"그렇군요."
"자네 아버지가 나한테서 챙긴 복채만 50조 원이 넘을 텐데, 내가 자네 앞에서 그걸 두려워할 필요는 없……."
"잠깐만요. 50조 원이 넘는다고요?"
"복채 때문에라도 그룹 전체가 열심히 비자금을 만들어야 했다네."
아니, 아버지.
그 돈은 다 어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