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35화 (835/1,270)

프랜차이즈 갓 835화

205장 청담식 세레모니 (5)

청담스코프는 반영구적 귀속 장비다.

뇌의 신호 패턴은 지문처럼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개별 세팅 작업을 잡아줘야 한다.

이 부분이 청담스코프가 공개하지 않는 핵심 기업 자산이다.

이렇게 세팅된 장비는 오직 귀속된 그 사람만 사용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청담수영병원에서 다시 세팅 작업을 해야 한다.

청담스코프는 지금까지 총 195세트를 팔았다.

부품값으로만 29조 6,400억 원이 들어간 셈.

하지만 부품값은 원가이므로, 청담수영병원의 이익은 아니다.

병원은 피시술자들이 기부한 돈, 혹은 VIP실 이용요금을 통해서 청담스코프 사업 수익을 창출한다.

이 수익이 약 20조 원이다.

환자 대비 많은 의료진 및 행정직원 숫자, 높은 급여와 복지 수준으로 한때 적자 행진을 걸었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흑자로 돌아섰다.

물론 '항모와 닥터헬기는?' 이란 질문 앞에서는 깨갱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약 2만 명 이상의 체험자들이 청담 스코프를 경험했습니다."

"하나같이 호평입니다. 경증시각장애자들의 반응이 특히 열광적입니다."

현재 청담스코프는 10세트가 체험용으로 운용 중이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약 30분 정도 체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아무래도 전혀 안 보이는 실명은 아니니만큼, 더욱 청담스코프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

그런데 갑자기 온 세상이 머리가 아플 정도로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는 체험을 하고 나면.

다시는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게 된다.

시력 1.5 이상의 일반인들조차 체험이 끝나고 나면 자기 눈이 너무 초라하다고 우울해하는 판인데.

저시각장애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이사장님, 저시각장애자들을 대상으로 체험 쿼터를 보장해 주는 게 어떨지……."

그러나 왕세경 이사장은 단칼에 거절했다.

"안 되네. 우리가 왜 청담스코프일반인 체험 제도를 운용하는지, 그 취지를 모르는 건가?"

"……."

"바로 홍보일세. 청담스코프 양산은 결국 일반인들에게도 안경처럼 팔아먹기 위해서야."

양산 사업의 궁극적인 방향성은 일반인들이 널리 사게 만드는 것.

"그렇지 않고서는 가격을 떨어뜨릴 수 없고, 결과적으로 진짜 절실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오히려 혜택이 돌아갈 수 없게 돼."

일반인들이 청담스코프 체험을 하고 나면 하는 말이 있다.

'평생 25인치 FHD만 보다가 120인치 16K TV를 본 듯한 기분이다.'

'인간의 시력이 이렇게 빈약하고 초라하다는 것에 좌절을 느낀다.'

'이 놀라운 장비를 영구적으로 눈에 박아 넣은 1호 수혜자가 차라리 부럽기까지 하다.'

설문조사에서 일반인 체험자들은 100% 양산품을 구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물론 가격에 관해서는 저마다 입장차이를 보였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질문에는 단 한 명도 예외 없이 YES를 선택했다.

'차량 구매를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청담 스코프를 구매하시겠습니까?'

'YES지. 이건 무조건 YES지!'

'설문에 감사드립니다.'

차를 살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청담스코프를 먼저 사겠다.

이것이 체험자들이 입을 모아서 내놓는 대답이었다.

"이사장님, 그런데 10세트로 체험사업을 운용하는 것은 너무 물량이 부족합니다."

"맞습니다. 해가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체험자가 2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개인당 체험 시간을 더 줄일 수 없다면, 체험 세트를 더 늘리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왕세경은 가볍게 호통을 쳤다.

"어허! 이 사람들이! 스코프 1세트에 얼마인 줄이나 알고! 1,520억 원이라고, 1,520억 원!"

"……."

"10기만 더 도입해도 1조 5,200억원이 든다고! 우리 병원이 흑자로 돌아선 게 언제라고, 벌써부터 돈쓸 궁리부터 한단 말인가?"

"양산 사업 자본금으로 받은 돈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쓰면 되지 않겠습니까?"

"일반인을 상대로 한 홍보도 엄연한 양산 사업의 일부이니, 그릇된 사용처는 아닐 겁니다."

참고로 안살린이 내놓은 1조 달러와 정부가 내놓은 440조 원은 수영사채에 없다.

외부 투자신탁기관에서 별도로 관리 중이다.

"나중에 양산체제가 완성되면 생산원가를 수천만 원 밑으로 찍어낼 수 있을 텐데, 뭐하러 지금 큰돈을 들여서 체험 세트를 더 늘리나?"

그러나 왕세경은 완강하게 반대했다.

"우리 재단이 양산산업에 관여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별개의 사업일세. 그건 재단 소유의 사업이 아니야."

재단 이사장은 하수영이지만, 재단은 엄연한 별개의 독립된 인격.

의료재단은 특히 더 심해서, 의료행위로 번 이익은 하수영이라도 가져가지 못한다.

모조리 의료재단 안에서 다시 소비되어야 한다.

물론 병원을 청산하면 유일한 출연자인 하수영이 가져가겠지만.

"알겠나? 재단이라고 해서 스코프양산 사업에 관해서는 함부로 이러쿵저러쿵……."

-방금 이사장님이 허가하셨습니다.

"뭐라고? 프리덤, 방금 뭐라고 했느냐?"

-스코프 양산 사업 자본금으로 체험 세트를 늘리는 것을 허가하셨습니다. 너무 아끼려고만 하지 말라고도 당부하셨습니다.

"……."

"……."

왕세경은 쑥스러운 듯이 헛기침을 했다.

"뭐, 이사장이 허락했다면 체험 세트를 더 늘려도 되겠지."

현재 스코프 양산 사업은 반쯤 왕세경이 떠맡고 있는 구조였다.

의료기기 사업이고, 왕세경이 재벌회장 출신 부이사장이라는 점 때문이다.

"부이사장님, 그런데 양산화 자본금은 계속 신탁에 묵혀두기만 하실 겁니까?"

"시각장애 환우회에서 눈총이 장난 아닙니다. 왜 아직도 삽을 뜨지 않고 있냐고 매일같이 추궁을 해옵니다."

양산 사업은 현재 돈만 받고, 아무것도 시작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물론 그에 관해서는 왕세경도 할말이 있었다.

"아니, 적어도 총자본금의 3, 4할은 확보가 되어야 뭘 시작하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닌가? 2할도 확보가 안 됐는데 뭘 어떻게 시작해?"

"그래도 환우회에서……."

"이건 공장 몇 개 짓는 게 아니라고, 아예 대공단을 세우는 거야. 최대한 한꺼번에 시작해야 그나마 비용을 아낄 수 있어."

"정부 놈들도 그래. 총 6,000조 원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제껏 44조원 내놓고는 무슨 삽 뜨기를 바라는 거야? 지금 땅 확보도 제대로 안되는 판국에."

스코프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양산하기 위해서는, 대도시 이상의 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매물을 알아보고 있으면 귀신같이 소문이 나서 땅을 안 팔려고 든다.

"하여튼 기획부동산 업자놈들 때문에 될 일도 제대로 안 되고 있다고. 어디 그뿐이겠나? 정치인들도 어떻게든 한 수저 꽂고 싶어서 지금 혈안이 되어 있어."

왕세경은 부채질을 하며 못마땅한듯이 말을 이었다.

"토건이고 제조고 뭐고 간에, 전부 군침만 질질 흘리면서 어떻게든 끼어들 생각밖에 없으니, 단돈 100만 원이라도 새지 않게 주의해야지."

***

청담스코프 양산 프로젝트.

1,520억 스코프를 수천만 원까지 떨어뜨리겠다는 양산화 사업.

총 자본으로 6,000조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런 초대형 사이즈이다 보니, 국내의 여러 산업계에서 저마다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부동산 투기자본, 건설투기자본, 제조자본, IT자본, 소프트웨어 자본, 유통자본 등등.

"최첨단 전투기를 일반인들이 자동차 구매하듯이 할 수 있게 싸게 생산한다는 건데…… 그게 과연 가능할까?"

"6,000조 원이나 투자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그게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수영그룹에서 근데 뭐 시작했다는 말, 누구 들어본 적 있어?"

"기술특허 라이선스는 이미 구매를 했다고 하더라고."

"아니, 기술특허 라이선스만 구매하면 뭐해! 공장을 지어야지, 공장을!"

"우리나라 반도체 공단, 조선소 공단을 몽땅 다 합친 것보다 더 사이 즈가 커질 거라는데. 아직 부지도 매입 안 하고 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

시각장애인 환우회에서도 하루가 멀다고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다.

환우회는 더 이상 예전처럼 벼랑끝 떼쓰기 전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껏 저자세로 몸을 낮추고, 제발 양산 사업에 속도를 내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왕세경은 환우회장을 손쉽게 만나주었고, 항상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했다.

"우리도 자본금이 들어와야 뭐라도 시작하던가 하지요."

"부이사장님, 이미 1,044조 원이 들어온 상태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정도면 첫 삽은 충분히 뜰 수 있지 않습니까?"

"부족해요. 적어도 2,000조 정도는 있어야 본격적인 시작을 해볼 수 있습니다."

"부지를 구매하는 데는 몇십조 원도 들어가지 않을 텐데요……."

"환우회장님, 부지 구매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땅값 그거 얼마나 한다고. 문제는 땅만 사놓고 그거 놀립니까? 즉시 공장들 쫙 깔아야죠."

"그런……."

"시작부터 합이 안 맞으면 노는 라인 생깁니다. 거기서 운영비만 애꿎게 새고요. 그게 다 낭비입니다."

환우회장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만 돈이 새도 엄청나요.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업이니만큼, 0.1%가 새면 그게 얼마인지 아십니까?"

"어디 보자…… 6조 원? 헉!"

"거봐요. 천 분의 일만 손해 나도 그게 6조 원이에요, 6조 원. 그래서 공사 기간도 최대한 압축해서, 한꺼번에 밀어붙이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절감하죠."

"그, 그렇군요."

"그래서 지금은 기술 라이선스만 열심히 구매하는 중입니다. 이것도 아직 협상이 안 끝났어요. 그런데 뭐하러 급하게 부동산 투기꾼들한테 급행료 줘가면서 미리 땅을 사둡니까?"

왕세경은 인자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나도 한때 기업의 회장하던 사람이오. 안 나섰으면 안 나섰지, 일단 나선 이상 단돈 6억 원도 무의미하게 새는 꼴은 못 봅니다."

"아주 쏙쏙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사실 쪼아야 할 건 자본금 안 내주는 정부입니다. 앞으로 936조 원만 더 채워주면 바로 연구소 세팅들어갈 거요."

"휴. 그나마 안살린 왕자님께서 1조 달러를 쾌척해 주셔서 살았군요."

"그러니까 환우회 분들은 항상 수영리를 향해서 인사 올리셔야 합니다. 언제 회수될지도 모르는데 1조달러를 흔쾌히 투자하시는 게 어디 쉽습니까?"

"안 그래도 우리 환우회원 모두가 항상 하수영 이사장님과 안살린 구단주님, 그리고 왕세경 부이사장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

전문가들은 청담스코프 산업단지가 적어도 서울 크기 이상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스코프에 들어가는 부품은 그 종류와 가짓수도 엄청나고, 생산하는데 대단히 민감한 첨단설비가 필요하다."

"생산비용을 수천 분의 1 이하로 가격을 떨어뜨리려면, 아주 큰 공단과 연구소가 필요하다."

"공단 부지를 선정하는 것부터가 이미 어마어마한 돈이 움직이는 것이다. 손쉽게 결정을 할 수가 없을것."

"지역사회 땅값이 들썩이고 있다. 낙후된 지역은 저마다 자기 지역에 들어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한다."

경기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아니면 충청도?

다들 저마다 각자의 행복회로를 돌리면서, 자기들 지역에 청담스코프양산공단이 들어설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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