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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834화 (834/1,270)

프랜차이즈 갓 834화

205장 청담식 세레모니 (4)

하수영은 오랜만에 깔끔한 정장을 꺼내 입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화려한 황금색 정장이 아니라, 격식 있는 자리에 참가하는 듯이 정갈하고 단정한 정장이었다.

저택 한옥에 있던 최우석이 부채질을 하다 말고 놀라서 눈을 둥그렇게 떴다.

"아니, 하 의원? 복장이 오늘따라 왜 그렇게 얌전한 건가?"

"중요한 자리라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자리일수록 더 요란하게 입는 게 자네 패션 스타일 아니었나?"

"오늘은 그래선 안 됩니다.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거든요."

"어딜 가는데?"

"델지생건 본사요. 현실 티배깅하러 갑니다."

"현실 티배…… 뭐?"

하수영이 국내 콜라시장을 먹어치운 것은 최우석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델지생활건강을 직접 방문할 일이 있을까??

콜라시장을 잃은 델지생활건강은하수영한테 절대로 좋은 마음이 없을 텐데?

"게임에서 이겼으니 세레모니는 해야 인지상정이지요. 이거 세레모니하려고 그렇게 열심히 플레이했는데요."

"뭔지 모르겠지만 델지생건에서 자네한테 마음이 좋진 않을 거야. 그래도 자네가 가진 힘이 있으니 함부로는 못 하겠지. 잘 다녀오게."

"네, 다녀오겠습니다."

정문 밖에는 김범석이 이미 차량을 준비시켜 놓고 대기 중이었다.

뒷좌석에 서 있던 김범석은 하수영이 나타나자마자 뒷좌석 문을 열고는, 정중히 머리를 숙였다.

시동을 걸자 환희의 여신상이 검은 롤스로이스 정면에 멋지게 모습을 드러냈다.

"범석아."

"예, 주인님."

"사실 난 이런 세단은 별로 안 좋아한다. 교통사고에 취약하거든."

"아! 그래서 항상 튼튼하고 커다란 캠핑카를 타고 다니시는군요!"

"죽을까 봐 걱정돼서가 아니야."

나름대로 엘릭서 몇 방울로 단련한 육신은, 지구상의 누구도 가볍게 이길 수 있을 만한 무력을 갖춘 상태다.

고대 주신 후계자의 힘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 육신만으로도 비밀특수부대 정도는 궤멸시킬 수 있을 정도다.

"그냥 트럭에 깔리는 게 기분이 더러워서 그래."

"트럭에 깔려본 적이 있으십니까?"

"있지. 오픈 스포츠카 타고 다니다가 화물차에 한 번 깔려본 적이 있었는데, 다치진 않았는데 더러운 바퀴가 머리에서 공회전하는 게 참 기분이 더럽더라고."

"아앗! 죄송합니다! 제가 그런 줄도 모르고 하필 이런 차를 준비해서! 지, 지금 당장에라도 그럼 다른 차를……!"

"아냐, 내가 콕 집어서 이 차로 준비하라고 했는데, 그게 왜 네 잘못이냐."

하수영의 말대로, 김범석은 지시한 대로 정확한 차량 모델을 확보했을 뿐이었다.

"이런 옷, 이런 차를 타고 가야만 하는 자리도 있는 법이니까."

하수영은 델지생활건강 본사에 내렸다.

육중한 롤스로이스가 접근할 때부터 이미 경비원들은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차값만 거의 10억 가까이 하는 모델.

심지어 운전기사는 머리가 벗겨진 배불뚝이 중년 남자였다.

경비책임자는 그것을 보고 확신했다.

'어디 재벌 회장님 행차가 틀림없다.'

벼락부자 졸부 같았으면 저런 남자를 운전기사로 쓰지 않았을 테니까.

아주 유서 깊은 재벌 회장이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대머리 기사가 뒷좌석 문을 열어주고 웬 청년이 내렸을 땐, 경비책임자도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다.

'어, 뭐지?'

당연히 최소 50대 이상의 유서 깊은 재벌 회장이 내릴 줄 알았는데, 20대 초반의 청년이라니?

심지어 복장도 격식 있는 자리에 한껏 맞춘 회장님 스타일이었다.

"데스크가 어디입니까?"

"아! 저쪽입니다. 제가 안내를……!"

"데스크를 알려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괜찮으니, 본래의 임무에 집중하십시오."

앳된 목소리지만 깊이가 있고, 말투 또한 정중하다.

절대로 천방지축 재벌 3세거나, 주식이나 선물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젊은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김범석이 부리나케 뒤를 따라붙었고, 하수영은 성큼성큼 로비를 걸었다.

직원들의 시선이 그를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데스크에 선 하수영은 여직원과 눈을 맞추고 싱긋 웃음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첫눈에 보기에도 범상치 않았기에, 여직원도 바짝 긴장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어디서 본 얼굴인데, 어디서 봤더라…….'

"고영진 사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전달해주시겠습니까?"

"아, 예약을 하셨나요? 혹시 존함을 들을 수 있을까요?"

"미리 약속은 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하지만 그러면 저희도 쉽게 말씀을 드리기가 곤란합니다. 혹시 성함과,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알려 주시면……."

"하수영입니다. 수영콜라에서 왔습니다."

"네, 하수영님…… 네?"

순간 여직원은 화들짝 놀랐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제야 SNS 등에서 봤던 하수영의 얼굴이 눈앞의 청년과 겹쳐 보였다.

실물은 처음인 데다가, 이렇게 갑자기 맞닥뜨릴 거라 상상을 못 했기에 바로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서, 설마 수영그룹 하수영 회장님?"

"수영그룹이란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한 적은 없지만, 수영콜라에서 온 것은 맞습니다."

"자, 잠시만요! 바로 연락을 올리겠습니다! 아니아니, 제가 바로 안내를……!"

여직원은 허둥지둥하면서도 매뉴얼대로 행동했다.

이런 귀빈은 약속 없이 갑자기 찾아왔더라도 로비에 방치할 수 없다.

애초에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지만, 어쨌든.

여직원은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잡고, 하수영을 사장실이 있는 층까지 안내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앞에서 대기하던 비서들이 얼른 하수영을 에스코트했고, 로비 여직원은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다시 내려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비로소 참았던 한숨을 토해냈다.

"후아, 10년 감수했네."

하수영의 방문에, 델지생활건강 본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예정에 전혀 없는 방문이었지만, 그걸 탓할 입장이 아니었다.

임원들 사이에 순식간에 긴급연락이 꽉 돌았고, 고영진 사장도 허둥지둥해댔다.

"하수영 회장님이 나를? 아니, 무슨 이유로?"

설마 콜라 시장을 뺏어서 미안하다.

고 조롱하러 왔을 리는 없을 텐데.

애초에 하수영이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회의적이었다.

그에게는 델지그룹의 그냥 한 계열사라는 인식밖에는 없지 않을까?

아니, 델지생활건강이라는 계열사의 존재를 인지하기는 할까?

하수영이 '청담동가즈쏜'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그로서는, 예정에 없던 미팅이 당혹스럽기만 했다.

'그래도 만나서 나쁠 건 없지. 콜라 시장을 뺏어가긴 했어도, 어쨌든 우리나라 최고 부자니까.'

고영진은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하수영을 맞이하러 나갔다.

***

'말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말할까…….'

하수영은 오늘 이곳으로 오는 내 내, 속으로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청담동가즈쏜이라는 사실을 밝힐지 말지.

때로는 선택지를 놓고 고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고민도 있는 것이다.

약 20분가량.

고영진과 영양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속으로는 즐거운 고민을 했다.

"우리 정서희 부회장과도 인연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서희요. 서희는 잘 지냅니까?"

"그럼요. 믿음직한 경영진입니다. 전성렬 회장님과 함께 종합식품사업을 든든하게 챙겨 주고 계십니다."

"서희가 옛날부터 그런 수완은 좋았습니다."

"그럼 정서진 대표님하고도 친하시겠어요?"

"아, 서진이하고도 친하지요. 그러고 보니 서진이가 요즘 반도체 사업으로 아주 잘 나간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고영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기억을 떠올렸다.

"서진파운드리였나? 아무튼 괜찮게 나간다고 들어서 다행이죠. 그런데 회장님은 서진이 하고도 친하신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모르는 눈치였다.

"서진파운드리에 출자한 게 접니다만, 모르셨나 보군요."

"예?"

"서진파운드리도 제 회사입니다."

"……그, 그럴 수가."

고영진은 입을 쩍 벌리며 놀랐다.

검색만 조금 해봐도 알 수 있는 것을, 여태까지 몰랐다니.

'아무리 델지가 반도체는 안 하고, 이제 모바일도 손을 뗐다지만, 그래도 백색가전이 주력인데 그것도 모른다니…….'

하수영은 보이지 않게 혀를 찼다.

생필품과 음료 사업에 집중하고 있으니 모를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재벌 3세한테 그게 정당한 변명이 될 수 있을까?

"제, 제가 알기로 서진이가 올해 급여만 3조 원이 훌쩍 넘는다고, 그래서 저는……."

대충 어디서 들은 이야기.

당연히 자기 회사라서 그렇게 조단위로 급여를 가져가는구나, 하고 감탄했었다.

너무 부러워서 더 관심을 주지 않았는데.

"아, 영업이익이 괜찮게 났거든요. 이익의 5%를 인센티브로 가져가시지요."

"3조 원 이상이 5%란 말입니까?"

"내년에는 7, 8조 원 이상 가져가 실 겁니다. 지금 서진파운드리가 파운드리 시장은 다 먹었거든요. 능력이 아주 출중하시죠."

고영진은 부러워서 말이 더 나오지 않았다.

"제가 오늘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수 문제 때문입니다."

올 것이 왔구나.

고영진은 얼굴을 금방 침착하게 다 잡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콜라제조설비는 팔 수 없습니다. 우리는 콜라 말고 다른 음료도 생산합니다. 라인을 다른 음료로 돌릴 겁니다."

콜라 사업에서 철수하게 됐으니, 빈 콜라제조설비를 사려고 저런 말을 꺼낸 것이리라.

고영진은 그렇게 확신했다.

'무력하게 패배했는데 비굴하게 남은 것들까지 싹싹 긁어서 바칠 수는 없다.'

당장 설비가 놀기는 하겠지만, 다른 음료라인으로 돌리면 그만이다.

고영진은 좋아하는 정서희의 고용 주 앞에서 마지막 자존심은 지키고 싶었다.

"지금 델지생활건강에서 우리 편의 점으로 생필품도 많이 납품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런데…?"

콜라 설비 인수 이야기를 하다가 왜 갑자기?

고영진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치약, 비누, 샴푸, 세제가 특히 주력 상품이신 것으로 아는데요. 그제품들, 우리 씨디원으로 9% 정도가 나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압니다."

사실 모르지만, 대충 맞겠거니 하고 고영진은 아는 체를 해보였다.

"우리는 콜라 라인 확장이 시급합니다. 제 대머리 머슴이 급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요. 이왕 쓸모없게 된 거, 우리한테 파시면 서로 좋은 게 아닙니까?"

"저희 회사에 좋을 건 없어 보입니다만……."

"그럼 우리 편의점에 들어오는 귀사 소비재를 공략해도 된다는 생각이십니까?"

"……!"

그제야 고영진은 갑자기 왜 화학용품 소비재 이야기를 꺼냈는지 깨달았다.

'협박이구나! 콜라 공장을 넘기라는!'

갑자기 상대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사악해 보였다.

"콜라 가격을 지나치게 올린 탓으로 소비자가 우리 제품을 선택한 겁니다. 그걸 가지고 이렇게 원망하시면 안 되죠. 가격은 제대로 쳐드릴테니, 신중하게 생각해 주십시오."

"회장님, 이건……."

아무리 그래도 무례하지 않느냐.

고영진은 자신보다 한참 어린 동생 뻘 앞에서 그 말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씹어 삼켜야 했다.

"여기 개인번호입니다. 결정이 나시면 연락을 주십시오."

하수영은 명함 한 장을 남기고 일어났다.

고영진은 심장을 씹는 듯한 심정으으로 배웅을 나갔다.

사무실에 돌아와서도 분한 나머지 집기를 마구 던지고, 발로 찼다.

한참 씩씩거리며 분을 풀던 그는 하수영이 준 명함을 확인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거 번호가 왠지 눈에 익은데?'

어쨌거나 폰에 저장하기 위해 번호를 입력하는데, 놀랍게도 이미 저장된 번호라고 나왔다.

고영진은 뒤집어졌다.

"처, 청담동가즈쏜? 하수영 회장이?"

놀라서 부들부들 떨던 그는 얼른 청담동가즈쏜의 톡 프로필을 확인했다.

프로필 메시지가 바뀌어 있었다.

[현실 티배깅 끝.]

배경 사진은 이곳, 델지생건 본사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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