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32화
205장 청담식 세레모니 (2)
하수영도 김범석의 활약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입에 침도 안 바른 거짓말로 능수능란하게 델지생건을 교란하는 모습에 만족했다.
"역시 어그로 끄는 거 하면 우리 범석이가 최고란 말이야."
"지금 저게 어그로 끄는 거예요?"
"네, 맞아요. 녀석의 특기죠."
장효주는 반신반의해서 물었다.
"수영 씨 말하는 거 보면 그분을 되게 오래전부터 알았던 것 같아요. 묘해요."
"꼭 오래 만나봐야 그 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는 건 아니죠."
하수영은 뿌듯해서 덧붙였다.
"후후, 재벌 비자금 수백 조 만지던 그 재주가 어디 가겠어요?"
"네? 재벌 비자금 수백 조를 만지던 사람이었어요?"
"저 반짝거리는 대머리를 한 번 보세요. 전생에 그랬을 거 같지 않아요?"
9시 뉴스에서는 김범석의 인터뷰가 무려 20초 이상이나 흘러나오고 있었다.
김범석은 상상도 못 한 논리를 들이대며, C콜라가 정당한 권리자가 아님을 설파했다.
잘 모르는 국내 소비자들이 보면 '정말 그런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저런 뻔한 거짓말에 사람들이 많이 넘어간다는 게 신기해요."
"진실은 각인보다 강하지 않습니다. 저놈은 지금 그 법칙에 충실한 거죠."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연예계에서도 진실이 뭔지가 중요하지 않은 때는 많으니까."
-C콜라는 원래 미국의 한 약사가 소화제로 개발한 상품입니다. 하지만 델지생건은 고작해야 음료로 팔고 있죠. 우리라 '정통'을 계승한 우리 수영콜라는 다릅니다.
-수영콜라를 드셔보신 분은 상비용 소화제보다 훨씬 더 소화를 잘 돕는다며 극찬을 하신 바 있습니다.
"진짜 그랬어요?"
"아뇨. 저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활명수? 위천생? 다 필요 없습니다. 수영콜라를 엘릭서 드링크와 함께 드십시오. 정통을 계승한 톡 쏘는 강렬한 맛은 소화를 촉진시키고, 알콜의 해독을 돕습니다.
"진짜 저래요?"
"처음 들어요."
"저래도 되는 거예요?"
"알아서 하겠죠. 저는 전권을 줬습니다."
"그, 그래도 허위광고로 한 번 낙인 찍히면……."
"저놈, 지금은 일단 이기고 보자라고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수영콜라를 마시면 소화가 잘된다는 후기들이 SNS를 점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숙취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그래서 술자리에서 물 대신 함께 마시면 좋다는 후기들도 뒤따랐다.
-수영콜라 진짜 짱인듯.
-맛있고, 소화 도와주고, 무엇보다 싸고.
-C콜라는 가라. 껍데기만 남겨두고 처가라.
-이제 2,000원짜리 1.5리터 수영콜라의 시대가 도래했도다. 음료 카르텔의 패악질을 심판하기 위해 하수영 데메테르께서 손수 빚어 내리신 신의 음료가 한국을 지배하리라!
-내가 만성소화불량이 좀 있거든? 근데 수영콜라가 확실히 소화를 도와주는 느낌이다. 웬만한 소화제보다 훨씬 나아.
-님들아, 괜히 숙취제 이상한 거 먹지 말고 술 먹고 자기 전에 엘릭서 드링크와 수영콜라 함께 원샷 때리고 자셈. 다음날 정말 상쾌함.
-맞음. 엘릭서 드링크와 수영콜라 조합이 진짜 무시 못 함. 소화도 돕고, 간 해독도 돕고, 수영콜라가 소화와 알콜 해독을 돕는지는 불명하다.
하지만 엘릭서 드링크가 소화와 알콜 해독을 돕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즉 둘을 같이 먹으면 당연히 소화, 알콜 해독에 도움이 된다.
김범석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같은 회사에서 만든 이 둘을 함께 드셔보시면, 그 시너지 효과를 상당히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김범석은 계열사인 프라임웰빙에 아예 협조 요청까지 보냈다.
마케미야 사장은 그 요청에 흔쾌히 수락했다.
[엘릭서 드링크 묶음 행사! 한 병을 사면, 수영콜라 한 병을 무상으로 드립니다!]
[과도한 음주가 걱정되시나요? 드링크콜라 세트를 한 번 드셔 보세요. 다음날을 상쾌하게 맞이하실 수 있습니다.]
엘릭서 드링크는 잘 팔리지만, 비싼 건강음료라는 인식이 있었다.
400㎖ 한 병에 1.5만 원이나 하니까.
인기가 많긴 하지만, 건강에 관심 많은 중장년층 이상 위주로 소비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프라임웰빙과 수영콜라가 콜라보 상품을 내놓았다.
엘릭서 드링크 100㎖와 수영콜라 250㎖가 하나로 묶인 상품이다.
가격은 5,000원.
그렇게 묶은 상품을 '숙취 해소와 소화흡수에 큰 도움이 된다'라고 홍보해서 팔았다.
과도한 음주 후 콜라보 상품을 마시고 잠든 이들은 다음 날 아침, 매우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났다.
"몸이 가벼운데? 어제 전혀 술을 안 마신 것 같은 느낌이야."
"수영콜라, 대단하네."
사실은 엘릭서 드링크의 효과가 가장 크지만, 소비자들은 수영콜라도 어느 정도 기여를 했다고 믿기 시작했다.
"엘릭서 드링크가 숙취 해소 끝판 왕인 건 웬만한 애주가들은 다 알고 있지."
"근데 비싸잖아. 400㎖ 한 병에 만오천 원이나 해서 맘 편히 못 마셨던 것뿐이지."
"이렇게 100㎖짜리가 콜라보로 나오니까 좋긴 하네."
CD1 편의점에서는 콜라보 상품을 대대적으로 들여놓았고, 상품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오죽하면 프라임웰빙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우리도 100㎖짜리를 출시 안 했던 것은 아닌데……."
"소비자들이 외면했잖아. 100㎖짜리 살 바에는 그냥 400㎖짜리 산다고, 어차피 건강 생각해서 홍삼액처럼 먹는 거니까."
"수영콜라와 콜라보는 대성공이네요."
***
델지생건은 원액 레시피 권리를 가지고 큰 법적 공방을 예상했다.
김범석이 처음부터 그렇게 떠들어 댔으니까.
정황상 레시피를 도둑맞은 게 분명 하기에, 조만간 크게 한 판 붙을 거라고 봤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으로 흘러갔다.
"아직도 소송 들어온 게 없다고?"
"네, 수영콜라에서는 분주하게 소송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증거와 자료 수집도 아주 열심인 상황입니다."
"그 열심히 하는 소송 준비는 대체 언제까지 열심히 하는 건가?"
델지생건과 C콜라코리아.
두 파트너는 수영콜라에서 분주하게 준비하는 것을 보고, 조만간 걸려올 억지 소송에 맞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준비만 할 뿐이다.
아직까지도 소송을 개시할 낌새가 없다.
그 틈을 타서 엘릭서 드링크와 콜라보를 하는 등, 이미지 마케팅에서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 수영콜라는 타사와 다르게 유해성분을 완전히 제거한 코카잎만을 사용합니다.
-코카잎을 사용하는지 안 하는지를 확실하게 못 밝히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원래 미국이 있으면서 없는 체, 없으면서 있는 체, 그런 '긍정도 부정도 않는' 스탠스에 특화되어 있죠.
-주한미군에 핵이 있는지 없는지, 미국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델지생건 이사회는 사흘이 멀다 하고 입을 털어대는 김범석의 어그로에, 이미 몇 번이고 거듭해서 뚜껑이 열리곤 했다.
"이 뺀질뺀질 대머리 사기꾼 새끼가!"
고영진 사장은 오늘도 고객센터 게 시판에서 키보드 배틀을 붙고 있는 중이었다.
상대는 바로 '청담동가즈쏜'.
비가입 회원이기에 신상을 알 수 없지만, 매일 배틀을 뜨는 걸 보니 할 일 없는 방구석 백수가 분명하리라.
'이놈, 정말이지 자극하는 맛이 있다니까.'
저번에 대뜸 자신한테 '영진아. 추하다'라고 했을 땐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네가 여기 사장이라도 되냐? 왜 이렇게 편을 들어?'라는 의도인 것을 알고는 마음이 편해졌다.
고객센터 게시판에서 매일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친근감도 생겼다.
원래 델지생건 고객센터는 하루에게시글이 1, 2개 정도 올라올까 말까 할 정도였었는데.
심지어 얼마 전에는 톡도 교환했다.
아직 톡으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게시판도 활기가 생겼고 말이야.'
활기라고 해봐야 자신과 청담동가 즈쏜 둘이서만 만들어낸 것이지만, 자신이 델지생건에 다닌다고 밝힌 이후, 청담동가즈쏜의 태도는 눈에 띄게 얌전해졌다.
그게 가장 흡족스러웠다.
청담동가즈쏜 : 그래서 직급이 어떻게 됨? 사원? 대리? 과장?
평창동쿨가이 : 비밀이지 친구야^^너 같음 그런 신상을 함부로 알려주겠어?ㅋ
청담동가즈쏜 : 델지생건을 자기와 한 몸처럼 실드치는 거 보니 직급이 꽤 높을 거 같아서.
평창동쿨가이 : ㅋㅋㅋ 야, 주소불러라. 내가 니 집으로 C콜라 1.5리터 1,000병 쏴준다. 아, 그나저나 보관할 공간도 없겠네.
청담동가즈쏜 : 1,000병이면 내 방침대 머리맡에 대충 두면 되겠네.
평창동쿨가이 : ㅋㅋㅋ반지하 월세살이가 죽어도 가오는 잡네.
청담동가즈쏜 : 요즘 장사 안 되지? 남아도니까 그냥 뿌리는 거네.
평창동쿨가이 : 장사가 안 되긴 무슨, 우리 회사 매출 겁나 잘 나오니까 네 월급이나 걱정해.
청담동가즈쏜 : 사장이 돼가지고 매출 떨어진 것도 모름? 요즘 경쟁콜라 겁나 잘 나가던데.
평창동쿨가이 : 경쟁은 무슨. 우리 나라에서 우리 회사 음료 이길 데는 없다.
청담동가즈쏜 : S콜라 때문에 님네 회사 매출 크리 터진 거 모름?
평창동쿨가이 : 어차피 잠깐 내렸다가 지나갈 이슬비임ㅋ
"저어, 사장님."
한창 재미있게 키보드질을 하는데, 불현듯 상무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고영진은 짜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지금 CS페이지 확인하는 거 안 보여요?"
"이번 분기 C콜라 매출이 아무래도 위험할 거 같습니다만……."
"매출이 위험하다고요?"
고영진 사장은 말만 사장이지, 그냥 회사에 놀러 나온다.
매출이 얼마나 나오고 수익이 얼마이며, 회사 분위기가 어떤지는 관심이 없다.
어차피 이 사업이 오너의 특출한 비전을 바라는 분야는 아니니까.
임원들은 자기들끼리 뭉개고 뭉개고 하다가, 더 이상 방안이 안 보여서 보고를 올리기로 한 것이다.
아무도 보고를 올리지 않으려고 회피하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다.
'애초에 요즘 업계 돌아가는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는데, 이렇게 온 세상이 떠들썩한데.'
이 젊은 오너는 자기 사업체에 진짜 관심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네, 저번 분기 대비 매출 하락세입니다."
"-65%?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숫자입니까?"
아무리 경영과 숫자에 둔감해도, -65%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알아서 잘굴러가는 캐시카우였는데.
사장이 되고 나서 처음 보는 숫자에 고영진은 반쯤 패닉에 빠졌다.
"그런…… 대체 이유가 뭡니까?"
당연히 수영콜라지!
오너라는 작자가 지금 그걸 되묻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라는 속마음을 꾹 눌러 참으며, 상무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수영콜라라고 아실 겁니다. 경쟁사에서 내놓은 콜라인데, 그 상품이 시장 점유율을 급속히 집어삼켰습니다."
"수영콜라? 그거 잠깐 내리고 지나가는 이슬비 아니었습니까?"
"……."
"그래서, 그래서 이번 분기는 그렇다 치고, 다음 분기에서는 회복할 수 있습니까?"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만 가보세요."
"저, 그리고 회장님께서 오후에 건너오라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아버지가? 알았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그, 그럼 저는 이만……."
상무는 도망치듯이 빠져나갔고, 고영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참 동안 굳어 있었다.
그는 조용히 인터넷을 검색했다.
프리덤한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일부러 자기 손으로 하나하나 기사 등을 검색했다.
2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수영콜라가 음료계에 어떤 폭발을 일으켰는지.
"……."
초점 없는 눈으로 모니터를 바라보던 그는 불현듯 폰을 꺼냈다.
[청담동가즈쏜]
교환만 해놓고, 한 번도 말을 걸어 본 적 없던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 : 수영콜라 요즘 좀 나간다더라?
상대 : 훨씬 싸니까.
나 : 너도 그거 먹냐?
상대 : 아니. 난 C발C발 거리면서 C콜라 먹고 있다. 가격 좀 내리라고, C발 C콜라 새끼들아!
고영진은 순간 왈칵했다.
그래도 이 손가락이 험한 진상 고객은 욕을 하면서도 우리 제품을 꾸준히 구매해 주고 있구나.
나 : 고맙다. 욕하면서도 먹어준다니, 갑자기 힘이 나네.
상대 : 그러니까 가격 좀 내리라고!
나 : 비싼데 왜 우리 C콜라를 계속 먹는 거냐?
상대 : 원래 요리사는 자기가 만든 음식은 잘 안 먹는다.
나 : 그게 무슨 말이야?
상대 : 나 수영농장 다님.
고영진은 가슴이 애잔해졌다.
반지하 월세에 사는 백수인 줄 알았는데, 농장에서 열심히 힘들게 일하는 청년 근로자였구나.
'이 친구, 농부였구나. 고생이 많네…….'
나 : 주소 알려줘라. 내가 1,000톤은 힘들고 1만 병 보내줄게. 한 번에 100병씩 꾸준히 나눠서.
상대 : 그냥 넣어둬. 님네 회사 매출도 안 나오는데 무슨.
***
-그런데 마스터, C콜라 원액 레시피를 정말 알고 계셨습니까?
"우연히 들어맞았나 보지. 내 인생에서 그런 게 어디 한두 번이냐?"
-하긴, 일상다반사로 있는 일이지요. 납득했습니다.
하수영은 최근 사흘 C콜라의 편의 점 매출 그래프를 확인했다.
무려 -95% 감소라는 놀라운 수치.
그리고 오늘 하루, C콜라는 전국의 모든 편의점에서 단 한 병도 팔리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비자가 가격 좀 내리라고 할 때 내렸으면 진작 좋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