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31화
205장 청담식 세레모니 (1)
"귀엽네, 우리 영진이."
하수영이 키득거렸고, 정서희가 눈을 빛내며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그러니까 이 평창동쿨가이가 고영진 사장이 확실한 거죠?"
"네. 맞아요. 국정원에서 알려줬다니까요."
"국정원이고 니정원이고 간에, 아무튼 이 오빠도 참 할 짓 없나 봐요. 사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게 뭐야. 고객센터에서 일반 회원인 척하면서 고객과 키배질이나 하고."
"일반 회원인 척하는 경쟁사 사장을 그 회사 본진에서 티배깅하는 사람도 여기 있습니다."
"……수영 씨야 자수성가했으니 뭘해도 오케이지만, 이 오빠는 아무것도 한 거 없이 그냥 물려받기만 했잖아요."
업계에서는 C콜라가 국내에서 퇴출될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었다.
델지생건 입장에서는 살점이 뭉텅이로 잘려 나갈 충격이다.
정작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런 현실 감각이 없으니.
"이러니까 멀쩡히 생겨가지고 재벌가 딸들한테 인기가 없지. 최소한의 사업 감각이라도 좀 있어야 처자식 건사할 거 아니야. 어휴."
정서희는 한심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꽤 친한가 봐요?"
"재벌가 뚜쟁이들 사이에서 유명해요. 예전에 저 좋아했었고."
"서희 씨는 재벌가 남자들이 다 한번씩은 좋아했던 거 같습니다."
"지성과 미모, 몸매가 되잖아요?
저 재벌가에서 인기 많은 며느릿감이에요."
"하긴, 이제는 돈도 많으시죠."
정서희는 프라임컴퍼니 지분 5%의 가치만 따져도 1조 원 이상이다.
지성도 갖췄고, 미모와 몸매도 재벌가 여식 중에서 압도적인 1위이니, 재벌가 혼령기 남자들이 몹시 탐을 내는 신붓감이다.
"이 오빠는 특히 많이 질척거렸어요."
"결혼해 달라고 말이죠?"
"네. 우리 어머니는 결사반대했죠. 처자식 고생시킬 상이라고 하면서."
"사장이 일반 회원인 척하면서 클레임 넣는 고객과 싸우는 거 보니 알 만하네요."
"근데 알고 보니 경쟁업체 사장이었죠?"
"조금 전에는 자수성가니까 자격있다고 해놓고는."
"누가 뭐래요? 자격 충분해요."
둘은 시선을 마주하고 가볍게 킥킥거렸다.
불현듯 정서희의 손끝이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 끝을 쓸었다.
"효주 씨하고는 요즘 어때요? 잘돼가요?"
"잘 되어갈 게 뭐가 있습니까?"
"없으면 다행이고요."
"……."
"……."
"비주얼은 효주 씨가 저보다 더 낫지만, 알죠? 전 경영 내조를……."
-마스터! 코카나무 조건부 상업재배허용 법안이 최종적으로 본회의 부결되었습니다!
"뭐야? 에이, 결국 그렇게 될 줄 알았잖아? 국회의원들이 미리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었는데."
-정황을 보면 델지생활건강의 강력한 대관 로비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놈들도 사활을 걸었겠지. 됐어. 어차피 콜롬비아에 코카농장 지으려고 했으니까."
"……수영 씨."
"네? 왜요?"
"……아니에요."
정서희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등을 돌렸다.
하수영은 조용히 말했다.
"잘했다, 프리덤."
-정보를 접하자마자 보고를 드렸을 뿐입니다. 긴급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른 척 시치미 떼기는, 그 정도는 이제 딥러닝 됐잖아?"
-……마스터는 연애나 결혼 생각이 없으십니까? 정서희 부회장, 장효주 여배우 모두 훌륭한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연애 잘못했다가는 무덤까지 초고 속 스트레이트행이다. 그 두 여자는 특히 그래."
-무덤이요?
"원래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야, 인마. 아직 해야 할 게 산더미인데, 무덤에 내 발목을 잡힐 순 없지."
-마스터의 결혼 생활을 다 합치면 꽤 되겠군요. 질릴 만도 하시겠습니다.
"그냥 연애만 하자고 하면 나도 좋은데, 그게 안 되니까 아예 손도 안담그는 게 낫지."
-그럼 가볍게 만날 다른 여자들을 찾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나도 눈 달렸다."
-음 장효주 배우와 정서희 부회장 정도가 커트라인이라는 거군요. 완벽하게 이해했습니다. 러시아의 로마노프와 NSA의 미레아는 어땠습니까?
"그 둘도 외모는 괜찮지. 야, 수영사채 전산기록 좀 한 번 띄워봐라."
-알겠습니다.
프리덤은 대형 화면에 수영사채의 금융재정내역을 띄웠다.
"예치금이 이제 1,200조 원 돌파했네."
-그중 1,020조 원이 자가예치액, 즉 오롯한 마스터의 돈입니다.
"전부 내 돈은 아니지. 계열사들 계좌를 박박 긁어모은 거니까."
자가예치액이 1,000조 원이면 일반예금주들의 돈을 최대 200조 원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통상 입출입을 위해서 일부러 넉넉하게 여유를 남겨둔다.
-중국, 미국 농작물 수출은 당분간 돈이 들어올 게 없으니 다른 사업으로 현금을 확보해야 합니다.
"수영사채 만든답시고 선매출 수십년 치를 잔뜩 땡겨 받았으니까."
-부동산 구매를 위해 남겨두었던 예비자금은 미사일 순양함과 경항모구입으로 모두 소진되었습니다. 지금 청담동 부동산 웨이브가 열리기라도 하면 물량을 받아내지 못합니다.
"그럴 일은 없으니 안심해라."
-농장 금광의 수익을 금 현물이 아니라 현금으로 전환하시는 건 어떠신지요?
"이미 동상 만들어버린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건 그냥 놔둬. 가만있자, 백두중공업에 세종대왕급 이지스함 3척 발주한 건 어떻게 되어가지?"
-건조 단계별로 나눠서 5회에 걸쳐 비용을 지급해야 합니다. 총 3조 1,560억 원가량이 예상됩니다.
프리덤은 작게 투덜거렸다.
-굳이 이지스함 3척까지 사주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는 한국해군이 직접 부담하게 했어야 했습니다.
"해군이 돈이 어딨다고. F35B 26기도 공군 예산 털어서 겨우 샀다는거 같은데."
-잊지 마십시오. 백두중공업 백진 택 사장에게 성공 보너스 3조 원을 지급해야 합니다.
"오, 화물선 100척을 용케 납기일에 맞출 수 있나 보네? 그건 기쁜 일이지."
앞으로 실어 날라야 할 농산물, 식재료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화물수송을 외부 해운사에만 언제까지고 의지할 수는 없는 상황.
역시 직접 화물선을 갖고 운용해야 안심이 된다.
-그리고 마스터, 에너지 파이프 건설도 적지 않은 공사비가 들어가는 것은 아시죠? 통관수수료를 받는다 해도 당장 공사비 원금을 회수하려면 오래 걸립니다.
"괜히 발끈해서 수영사채 만들었나? 갑자기 마음 약해지네."
-그건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결정입니다. 부정한 국내 은행들에 마스터의 전 재산을 더 이상 맡겨둘 순없었습니다.
"그래, 언젠가는 결국 개인금고 은행을 만들긴 해야 했으니까……."
-자가예치액과 일반예치액의 10:2비율을 깨뜨려야 합니다. 다른 은행들처럼 제한 없이 일반 예치액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남의 돈놀이에는 취미 없다. 그냥 내 금고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래도 마스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언젠가는 수영사채가 다른 은행들을 모조리 인수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하수영은 지금도, 앞으로도 돈이 나갈 사업들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곧 독도 펜션도 붙여야 하고, 퀸루나도 원자로 장착 개조해야 하고……."
-당분간은 돈 나갈 일들투성이입니다. 아니, 항상 그랬었군요.
"미국 장수말벌은 요즘 어때?"
-오토 랩터 킬러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나노소프트 농가와 인근 농가는 피해가 없습니다. 미 정부도 서비스 지원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랩터 킬러를 지속적으로 늘려야 할 거 같습니다.
"이번에 50대 늘린다고 돈 많이 썼는데 또 늘려야 하나."
-미국 농부들도 동업자이니 도와야 한다는 건 마스터의 결정이셨습니다.
"카지노로 수익 한번 잘 내봐. 그걸로 랩터 킬러를 좀 더 도입하던가 해야지."
-알겠습니다, 마스터.
하수영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돈이 왜 이렇게 없냐."
***
델지생활건강.
정보팀은 김범 과거 이력을 싹싹 긁어서 조사해 왔다.
요약된 보고서를 확인한 이사진은다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뭐 이런 골 때리는 친구가 다 있어?"
"아니, 사기 전과자를 회사 CEO에 임명한다고? 수영그룹은 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근데 조 단위로 사기를 해먹었으면 오히려 금전적인 면에서 매우 유능한 경영자의 자질을 지녔다는 증거 아닙니까?"
"……."
"……."
다들 헛기침을 하며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일부는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한남동 재개발 게이트…… 그것을 설계하고 주도한 인물이었군. 누구인가 했더니 그 친구였어."
"한남동 게이트? 그 떠들썩했던 분양 사기사건 말입니까?"
"아주 유명했지. 원래는 원주민들이 손해 보고 쫓겨나는 걸로 끝날설계였는데, 역으로 토건 패밀리가 된통 당했으니까."
"라테건설이 그때 된통 깨졌죠, 아마?"
"생각보다 감옥에 오래 있지는 않았네. 전관변호사를 쓴 것도 아니었는데."
원주민을 대상으로 토건 회사들과 쩐주들이 짜고 큰 사기를 치려 했던 사건이다.
그 사건에서 오히려 토건회사와 쩐주들이 크게 손해를 보고 원주민들은 피해를 간신히 면했다.
사기범은 원주민들을 상대로 또다시 사기를 치려고 했지만, 이 과정에서 사기로 벌어들인 돈의 대부분을 잃었다.
이것이 알려진 사건의 모습,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대머리 사기꾼 하나가 사기꾼 집단한테 사기를 쳐서 딴 돈으로 사기 피해자들에게도 사기 치려다가 고스란히 잃었다. 이게 겉모습이긴 한데."
"실제로는 그 대머리 사기꾼이 피해자들을 구제하려고 사기꾼 집단한테 더 큰 사기를 쳤다. 라고 말들이 많았죠."
"그 과정에서 2, 3조 원인가 되는 돈이 어딘가로 증발했다던데……."
"그 행방은 아마 이 친구만 알고 있을 겁니다."
"하수영 의원은 왜 이 친구를 고용한 거죠? 사기꾼 전과를 모르지는 않을 텐데?"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수영 의원의 운영 방침을 보면 철저히 실리 중시예요."
"아니, 그래도 C콜라 비법이 원래 자기들 것이라고 기자들 앞에서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건 너무 나간거 아닙니까?"
누군가가 울분을 토하듯이 말하자, 다른 이사들도 거기에 동조했다.
"맞습니다. 이건 선 넘었죠."
"조 단위로 사기를 쳤던 친구라서 그런지 아주 표정이 태연하더라고요. 나 그거 보고 완전히 소름 돋았다니까요?"
"C콜라 본사에서는 원액 레시피를 훔친 게 거의 확실하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량생산한 콜라 성분비가 그렇게 완벽하게 일치할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C콜라에서 소송 들어가는 겁니까?"
"소송에서 이기려면 결국 원액 레시피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건데……. C콜라도 그걸 반기지는 않을 겁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직원 한 명이 총총 들어와서 전무에게 태블릿을 건넸다.
"전무님, 지금 뜬 속보입니다. 확인해보시죠."
속보 내용을 확인한 전무는 눈을 부릅떴다.
그는 이를 바드득 갈다가 지시했다.
"임원들 다 볼 수 있게 지금 화면에 띄워 줘."
"네, 알겠습니다."
임원들은 대체 뭐길래 전무가 저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의아했다.
빔 프로젝터 화면에 기사 내용이 떴다.
불과 몇 분 전에 올라온 속보로, 수영콜라 사장 김범석의 인터뷰였다.
-우리는 타사와 달리 유해성분을 완벽하게 제거한 코카잎을 원료로 사용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진정한 레시피 중 하나입니다.
"타사와 달리?"
"그럼 우리는 유해성분이 남은 코카잎을 원료로 쓴다는,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저, 저놈을 그냥!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