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22화 (822/1,270)

프랜차이즈 갓 822화

203장 청담과 하수영 (2)

"최성재 소장님."

아직 준장이다.

소장 진급심사 대상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심사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하지만 하수영은 당연한 듯이 최성재를 소장이라고 불렀다.

장성들의 얼굴에 부러운 감정이 가득 떠올랐다.

'젠장, 운 좋은 친구 같으니.'

'줄을 제대로 잡았어.'

'평생 원리원칙대로만 군 생활하던 녀석이 저렇게 든든한 줄을 잡을 줄이야.'

'내가 저 친구는 결국 언젠가는 빛 볼 줄 알았다니까. 잘됐네, 최 소장.'

최성재도 감격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들뻘이나 마찬가지인 하수영 앞에 나섰다.

"소장 최성재! 말씀해 주십시오!"

"그 절친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소장님이 이야기하다가 원수 진급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네! 유통업에 종사하는 제 오랜 친구입니다!"

"혹시 대머리예요?"

"……잘 못 들었습니다?"

최성재는 순간 저도 모르게 얼이 빠져서 반문했다.

다른 장성들도 이 순간만큼은 속으로 그를 탓하지 못했다.

자신들도 같은 표정,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막 머리 벗어지고, 배는 올챙이처럼 불룩 나오고, 겉보기에는 순둥순둥한 중년 아저씨 아니에요? 주제에 또 피부는 하얗고 맑아서 괜히 징그러운 친근감을 주는."

장성들은 순간 '징그러운 친근감'이란 게 대체 뭘까 하고 같은 생각을 했다.

"아! 맞습니다! 혹시 제 친구 김범석을 어디서 보셨습니까?"

"딸이 둘 있죠?"

"헉! 예! 그렇습니다!"

"서해그룹에서 일했나요?"

"마, 맞습니다! 임원으로까지 일하다가 조기퇴직하고 자기 사업을 하는 친구입니다!"

"……역시."

전생의 인연은 참으로 질기고도, 악착같다.

하수영은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도 하던, 충실한 노예였던 김범석.

'이번에는 안 만나는 줄 알았는 데…….'

"그 친구를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지금 여기로 오라고 해주세요."

"지금 말입니까?"

최성재는 순간 난감했다.

자신이야 해군 장성이지만, 녀석은 민간인.

하수영의 그런 지시를 받을 이유가 없다.

녀석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500억짜리 발주 하나 내줄 테니 지금 당장 튀어오라고 하세요."

"아! 알겠습니다!"

최성재는 조금 전의 꺼림칙함을 말끔히 씻어냈다.

사업하는 놈이 바이어가 비즈니스하자고 하면 당연히 튀어와야지.

***

"김범석이라고 하옵니다. 회장님."

서글서글한 눈매가 가늘게 웃음을 만들어낸다.

팔다리는 가늘고 배 뽈록 튀어나온 중년의 대머리가 손을 싹싹 비비며 헤헤 웃고 있다.

사복 차림으로 동행한 최성재는 혹시라도 변수가 생기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고,

"최 소장님은 이만 가보셔도 좋습니다."

"예?"

"이제부터는 민간 사업가 간의 비즈니스 이야기입니다. 장성이 들어서 좋을 게 없어요."

"알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원수님. 필승!"

"필승."

최성재가 떠나고, 둘만 남았다.

수렁김범석을 물러미 바라보았다.

김범석은 겉으로는 애써 웃음을 지으면서, 속으로는 끊임없이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500억 원어치 발주라. 참다랑어 컨겠지 해 수출을 생각하고 계시려나? 내가 역수입으로 유통 마진에서 재미를 봤다는 걸 알고 계신 모양이야.'

거리끼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이익이 안 나올 것 같은 곳에서도 아이디어 하나로 쥐어짜낸 자신을 높게 사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출소는 언제 했냐?"

"……!"

김범석은 순간 눈을 부릅떴다.

느닷없는 반말도 반말이거니와, 자신이 전과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뭐? 서해그룹에서 임원으로 일하다가 퇴직을 해서 자기 사업을 했다고? 임원 진급 실패해서 부장까지만 하고 퇴사한 걸 잘도 감췄네."

"그, 그걸 대체 어디서……."

"다시 묻는다. 언제 출소했냐?"

짜릿한 전기가 혈맥을 감도는 것만 같다.

김범석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하수영이 자신의 복역 사실을 갑자기 찌르고 들어온 것 때문이 아니다.

보자마자 다짜고짜로 나를 이렇게 하대하다니…….'

기이한 것은 그게 전혀 무례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묘한 희열마저 들었다.

'하수영 의원은 말단 직원 한 명 한 명한테까지 공손히 존대하는 인품의 사업가라고 들었다.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함부로 대하다니…….'

누구에게 신입 공

손히 대하는 1세대 자수성가 초재벌젊은 회장.

그런 사람이 아버지뻘이나 마찬가지인 자신을 함부로 하대하고 있다.

오직 자신만 무례하게 대하고 있다.

지금! 나만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렇게 기괴하게 이어진 논리의 흐름이, 알 수 없는 짜릿함을 북돋워 일으킨 것이다.

"……재작년에 출소했습니다."

"출소하고, 그 뒤에는 뭐 했고?"

"묻어놓은 돈들을 찾아서 유통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저것 손 안 댄게 없습니다. 수영장 생산물도 중간에 보따리장사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는 참다랑어 캔도 취급했고, 덕분에 돈 좀 만졌습니다."

수영은 손을 종업 지시했다.

이윽고 종업원이 미리 준비한 요리를 가져왔다.

반구형 뚜껑을 열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두부김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종업원은 또 소주도 한 병 옆에 놓았다.

휴민트타워 레스토랑에서는 본래 취급하지 않는 주류.

하지만 하수영은 빌딩주이다 보니, 콜키지 서비스를 허용했다.

"고생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먹어라."

두부.

출소한 이들에게 지인이 챙겨주는 기념 같은 것.

김범석은 두부김치와 소주, 그리고 하수영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제가 전과자인데 아무렇지 않으신 겁니까?"

"진짜 큰 사기꾼들을 역으로 턴 거잖아. 힘없는 가맹점주들을 대신해서 전부 뒤집어썼고, 그 돈은 몰래 다시 가맹점주들에게 나눠주지 않았냐?"

"……맞습니다."

"그래도 수수료는 챙겼겠지?"

"헉! 그,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세상에 공짜로 일해주는 게 어딨냐. 일을 했으면 대가를 챙겨야지."

"회장님은 법을 중요시해야 하실 정치인이신데, 법을 어긴 제가 아무렇지 않으신 겁니까?"

"법이 피해자를 케어 못 하면 자력 구제 하는 거지. 그게 자연법인 거야.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그냥 나라 갈아엎고 내가 왕 했다."

"허억! 여, 역시! 배포가 아주 대단하십니다!"

"라테그룹 마약중독자 큰딸내미 이혼시키고 해외로 쫓아 보낸 게 바로 나야. 감히 내 신성한 건강식품을 가지고 마약 제조를 했거든."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쩐지 라테그룹 큰딸이 갑자기 사라져서 궁금해했습니다!"

"오, 너도 그 사건을 아네?"

"수영그룹 관련된 일이라면 샅샅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아무튼 나는 원래 소송을 별로 안 좋아해. 내가 직접 해결하고 말지."

"역시 대단하십니다."

둘은 어느새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범석은 문득 하수영이 자신을 아이 대하듯이 하대하고, 자신이 그를 어른 대하듯이 극존대하는 지금을 깨달았다.

그리고 지금 이런 구도가 몹시 자연스럽고, 마치 온천에 몸을 담근듯이 편안하다는 것도.

'아아…… 이것이 바로…….'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받쳐서 모실 만한 존재를 만났을 때 느끼는 안락함이라던가?

관우도 유비의 그늘에서 이랬을 테고.

황희도 세종대왕의 품 안에서 이런 아늑함을 느꼈을 테지?

"그래서, 얼마 작업했어?"

"3조 2,000억 원 정도 됩니다."

"희대의 대사기극이네. 피날레는 잘 마무리했고?"

"예, 그 쩐주들이 알뜰하게 싹싹긁어모은 이익에 이자까지 전부 붙여서 가져왔습니다."

"피해자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쨌든 범죄수익이잖아."

"그래서 제가 그 피해자들에게 또다시 사기를 시도했다는 식으로 위장을 했습니다."

"오호."

"법 기술자 놈들 입장에서는 제가 피해자들에게 또 사기를 치려다가 손해를 본 모양이니까요. 그런데 막상 그 피해자들에게 손해는 없고, 오히려 피해 보전이 됐으니까……."

"머리 잘 썼네. 그럼 그 피해자들이 가끔 연락 오겠어?"

"제가 연락 다 끊었습니다. 괜히 연락 유지하면서 감사하다는 말 들어봤자 남들 보기에는 서로 짜고 한 것으로밖에 안 보이니까요."

"그랬군."

김범석은 술에 취해서 붉어진 얼굴로 호탕하게 웃었다.

하수영이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까지 했냐?"

"피해자들이 불쌍해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럼?"

"그냥… 그 쩐주 놈들이 돈 해처먹고 거들먹거리는 꼬락서니가 너무 보기 싫었습니다. 역겨웠습니다. 그래서 놈들에게 한 방 처먹이고 싶다, 그런 마음이 가장 컸습니다. 하하하!"

"솔직하네."

겸손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김범석은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보다는, 큰 사기꾼들에 대한 반감으로 일을 시작했다.

겸사겸사 수수료도 챙기고.

"역시 재벌 회장의 수백조 원의 비자금을 만지던 배포가 어디 가지 않는구나."

"예? 비자금이라니요? 전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응, 꿈에서 내가 본 네놈 모습이 그랬어."

네놈이라는 호칭이, 이렇게 친근하고 자상하게 들리는 게 말이 되는가?

"우리 집이 어딘지 알지?"

"예!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내일 새벽부터 출근해, 퇴근은 밤늦게 하고."

"알겠습니다!"

김범석은 '왜요?'라고 반문을 하기 는커녕, 당연한 듯이 크게 외쳤다.

오늘 처음 만나 말부터 깐 하수영의 자연스러운 명령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이러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래도 얼마간 수행·수발하는 거는 지켜봐야 내가 뭘 맡길지 결심을 할 수 있지 않겠냐. 안 그래?"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요!"

"그나저나 그 챙긴 돈은 안 뺏기고 어디에 잘 묻어놨나 보네. 탈탈 털릴 줄 알았더니."

"하하…… 사실 제가 그래서 신용 불량자입니다. 제 명의로 된 재산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김범석은 모처럼 마음 편하게 크게 웃고 떠들고 마시고 재롱도 피우며 술과 분위기를 즐겼다.

이상했다.

원래 자신은 식품재벌인 하수영의 눈에 띄어 어떻게든 유통로 하나를 잡으려고 나온 것이다.

원수진급 조언 한 방에 500억 원이나 발주를 해주겠다는 그 포부에 혼비백산해서 뛰어왔는데.

마치 자연스럽게 그에게 빨려들어가서, 50년 정도는 밑에서 모신 주인님 같은 기분이 들었다.

뇌세포가 알코올에 젖어 해롱해롱하고 있는데, 불현듯 하수영이 말했다.

"네놈이 난 놈이긴 난 놈이야. 고대 주신이 사기에 휘말리게 한 건 네 놈이 처음일 거다. 변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술에 너무 취했다 보니, 무슨 말인지는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주인님'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불현듯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느낀 '오래전'과 실제의 '오래전'은 혹시 까마득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

만취는 밑도 끝도 없는 용기를 불쑥 내게 만든다.

"그런데 회장님, 저희가 혹시 전생의 연이라도 있는 겁니까?"

잔뜩 꼬인 발음.

"꼭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전생을 믿는 건 아닌데, 꼭 회장님은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하고…"

"응, 네놈이 전생에 우리 집 개새끼였어. 살이 뒤룩뒤룩 찌고 탈모이긴 했어도 재롱 하나는 기가 막혔지."

"개새끼, 개새끼. 에헤헤, 전 그럼 이번 생에도 회장님, 아니, 주인님의 뒤룩뒤룩 탈모 강아지 하겠습니다."

"그래, 앞으로 주인님이라고 불러라. 언제 어디서든."

둘이 있을 때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게 소원이었을 만큼.

김범석은 충직한 오토였다.

하수영은 차원을 뛰어넘은 전생의 노비를 보며 중얼거렸다.

"소주병에 빨대 꽂아서 빨아먹는 버릇은 여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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