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817화
201장 최후의 만찬 (3)
요셉은 혼이 날아갈 듯한 표정이었다.
뜻밖의 상황이 연달아 닥친 바람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그는 항모 2척의 측면이 하얗게 도색돼 있고, 붉은 십자 마크가 그려져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헬기가 착함한 이후에도, 요셉은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사장님, 이제 내리시면 됩니다."
"내, 내리면 되는 거요?"
요셉은 저도 모르게 공손하게 존댓말을 했다.
바다 한복판의 항모함대 비행갑판에 홀로 있으니, 없던 공경심이 제 절로 무럭무럭 솟구쳤다.
엉거주춤 헬기에서 내린 요셉은 문득 비행갑판 한복판에 세워진 간이 시설을 보았다.
'뷔페? 아니, 야외 주방?'
비행갑판 한복판에 야외 주방을 설치해 놓다니.
언제든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준비태세를 유지해야 하는 항모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항공기 이착함보다 더 중요시해야만 하는 작전이 아닌 이상은…….
그때였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장님. 제가 에스코트하겠습니다."
흰 요리사 복장을 한 하수영이 나타나서 공손하게 인사했다.
아는 얼굴을 맞이하자 요셉은 조금 마음이 풀어졌다.
그리고 곧 새로운 긴장감이 대신 치솟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건가? 엠파이어 트러스트 오너의 초청을 받아 왔는 데, 어째서 미 항모함대에……?"
"오해하고 계시는군요. 여긴 미 항모함대가 아닙니다."
"미 함대가 아니라고?"
"네, 엠파이어 트러스트의 '개인 선박' 입니다."
"……이게 개인 요트라고? 엠파이어 트러스트는 항모함대를 단독으로 보유할 정도로 부자였단 말인가?"
"항모 2척만 엠파이어 트러스트의 소유입니다. 호위함선들은 미 해군이 제공하는 서비스입니다."
요셉은 혼란스러웠다.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개인 재산으로 항모함대를 운용할 수 있는 부자라니.
아니, 아무리 돈이 많다 하더라도, 미군이 개인에게 최신 항모를 판매하는 게 말이 되는가?
"그동안 제가 식사를 준비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
요셉은 조용히 하수영을 따랐다.
하수영은 간이시설 한쪽에 설치된 원형 테이블로 그를 안내했다.
곳곳에서 갑판 작업에 열중하는 미군 병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이쪽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기들 할 일에만 묵묵히 전념한다.
하수영이 칼을 들었다.
전에도 봤던, 무기로 순간 오해했던 1미터짜리 대형 해체칼이다.
예식용 보검처럼 휘황찬란하게 생긴 육중한 칼을 아무렇지 않게 한손에 들고, 식재료들을 거침없이 잘라나간다.
10여 개가 넘는 프라이팬과 냄비들이 저마다 식재료를 익혀내고, 구수한 풍미가 갑판에 은은하게 퍼지고 있다.
"애피타이저입니다. 꽃게살을 저며서 우려내고, 황금비단우산버섯으로 국물맛을 살려낸 스프입니다."
"……맛있군."
요리는 그저 배만 채우면 된다, 라고 평소 생각한 요셉한테도 무척 맛있는 스프였다.
아버지라면 아마 환장을 하셨을지도.
"다음은 황금비단우산버섯 오일로 풍미를 가미한 연어와 양배추 샐러드입니다."
"맛있어."
"닭고기 스튜입니다. 함께 들어간 감자만을 특별히 먹고 자란 닭으로 만들었습니다. 맛의 통일성, 일체화가 느껴지실 겁니다."
"이것도 맛있군."
"이제 메인입니다."
하수영이 반구형 쇠뚜껑을 열자, 한눈에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비프스테이크가 나타났다.
일체의 데코레이션은 없다.
그저 적당한 소스가 흩뿌려진 스테이크 혼자 위풍당당하게 있을 뿐.
"50만 두의 소 중에서 특별히 골라낸 한 마리의 소를 잡아서, 그 중 최고의 부위만을 또 따로 선별했습니다. 감히 장담하건대."
하수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소 부위로 만든 스테이크입니다."
"……."
요셉은 불현듯 깨달았다.
하수영은 요리 솜씨가 최고급 셰프처럼 대단하지는 않다.
섬세하기는커녕 오히려 투박하고, 세밀한 조리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칼솜씨가 빠르긴 하지만, 그건 조리용 칼질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요리 하나하나마다 모두 훌륭한 맛을 자랑하는 것은…….
"자네는 솜씨보다는 식재료로 승부하는 요리사 타입이로군."
"원래 요리는 재료가 8할입니다.
남이 99점짜리 요리를 만든다면, 저는 200점짜리 재료를 준비하면 그 죠"
만이죠."
하수영의 표정은 기쁜 듯이 보였다.
마치 자기의 정성과 마음을 알아준 것이 정말 흐뭇하다는 듯이.
"그 200점짜리 식재료를 준비하는 게 보통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이들은 불가능하기에 200점, 300점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하수영이 재촉했다.
"어서 드셔 보시지요. 평가가 기대 됩니다."
혀가 흐물흐물 녹아버릴 듯한 맛이었다.
온몸이 혀를 뒤따르듯이 강렬한 맛의 시냅스 충동을 터뜨린다.
이 소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어떤 목장을 준비했으며, 어떤 사료를 빚어냈고, 또 어떤 물을 먹이며 키웠을까?
"가히…… 신들의 음식이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군."
"정확한 미각을 지니셨습니다. 마피아 보스에 머무르기에는 아까운 혀로군요."
"엠파이어 트러스트 오너는 언제 오시는가?"
그때였다.
미군 일행이 발을 맞추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선두에 선 장교는 붉은 천으로 휘감긴 상자를 손에 받쳐 들고 있었다.
미군들이 하수영의 앞에 멈추고, 경례를 했다.
하수영이 경례를 받았고, 장교 한 명이 붉은 천을 풀어헤치고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장성용 제복모였다.
별 다섯 개가 휘황찬란하게 반짝거리는 것을, 요셉은 멍한 정신으로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기에, 그의 상식은 한참이나 속도가 뒤쳐져 있었다.
"고맙네, 대위."
한손으로 제복모를 받아든 하수영은 그것을 머리에 썼다.
동시에 겉에 걸치고 있던, 치렁치 렁한 흰 조리복을 가볍게 당겨서 단숨에 벗겨냈다.
펄럭~!
양쪽 어깨에 별 다섯 개의 견장이 달린, 화려한 장성용 예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리사에서 5성 장군으로 변신한 청년이 원형 탁자 맞은편에 앉아,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며 바라본다.
"신의 음식이라. 본 원수는 그대가 가진 의외의 미각에 조금 감동했다."
"……!"
"그래서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그 대에게 사법거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핵폭발이 머릿속을 휘집고 지나간 것만 같았다.
초토화된 정신을 겨우 가다듬은 요셉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설마… 당신이 엠파이어 트러스트 오너였소?"
무심히 넘겼던 기억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엠파이어 트러스트는.
-엠파이어 트러스트가.
-엠파이어 트러스트의 의지는.
하수영은 한 번도 '엠파이어 트러스트 오너'를 언급한 적이 없었다.
바로 자신이 오너였기에?
'5성 장군이라고? 엠파이어 트러스트 오너가?'
원수라고, 저렇게 젊은 나이에?
미국에 저런 인물이 있었나?
말도 안 된다.
그런 인물이 있었다면, 아무리 자신이 마피아라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백인 회귀자가 2차세계대전에서 종횡무진 날뛰며 전과를 올리지 않고서야, 20대에 원수 진급은 불가능한 일이다.
계급 사칭은 아닐 텐데.
항모 비행갑판 한복판에서, 그것도 미군 장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5성장군을 사칭할 수 있을 리가.
자세히 보면 미 해군제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요셉은 국가 간 제복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다.
"숙청에서 살아남을 성인 한 명을 골라라. 그래도 누군가는 가문을 보살펴야 하지 않겠나?"
무심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요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원래는 기계적으로 일족 모두 예외 없이 죗값을 치르게 하고자 했다. 자네 집안은 어린아이를 제외하면 모두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나올 수 없게끔."
성인 한 명만큼은 사회에 남아서 가문을 부양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것.
모두 감옥에 들어갔다가는 아무도 가문의 어린아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자칫 대가 끊어질 수도 있으니.
"물론 그대는 안 된다. 다른 죄 무거운 이들도 안 된다. 본 원수를 납득시킬 수 있을 만한 인물을 골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신의 음식이라고 극찬한, 그 미각적 판단을 존중하는 한 가닥 배려. 그리고 변덕.
"처음부터…… 우리 콜롬보 패밀리를 노리고 작업을 했던 거요?"
"본 원수가 겨우 마피아 패밀리의 이권을 탐내서 직접 움직였을 거라고 보는가?"
당연하다는 듯한 반문에, 요셉은 할 말을 잃었다.
최신 항모 2척까지 보유했다는 인물한테, 마피아의 이권 따위가 얼마나 하찮게 보일지.
"이유라도 알고 싶소. 부탁하오!"
"이유를 알면, 재보복이라도 하려고 그러나?"
재보복이라는 말에 요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이 모든 것은 저 젊은 원수의 보복이었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려주시오. 그것을 교훈 삼아,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소! 제발 부탁하오!"
요셉은 아예 머리까지 숙이며 빌다시피 간청했다.
하수영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비프스 캘론."
"……!"
"만약 그와 그의 가족, 그의 주변의 모든 것에 위해를 가하려는 '생각만이라도' 품는다면, 본 원수는 그대와 그대 혈족을, 나이 구분 없이 산 채로 기름에 넣어 튀겨버리겠다."
"……절대, 절대 그러지 않겠소."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에 관한 유감을 아예 지워 버리는 것이, 그대 혈족의 튀김 신세를 면하게 해줄 거다."
"그는 내 일족 한 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준 은인이오. 절대 그에게 해를 가할 마음을 품을 일조차 없을 겁니다."
하수영이 손가락을 가볍게 흔들어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문 셰프들이 푸드카트를 끌며 나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만찬이 줄줄이 식탁에 놓이기 시작했다.
이걸 과연 둘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적어도 이십 명은 달려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가짓수였다.
"들게. 자네 최후의 만찬이 될 테니."
요셉은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 파티가 끝나면, 자신은 곧바로 체포되리라는 것을.
그리고 다시는 이런 맛있는 음식을 죽을 때까지 맛보지 못할 것이다.
똑같은 최고급 식재료를, 투박하지 않고 섬세한 전문 셰프의 손길로 빚어낸 만찬.
당연히 아까 먹었던 것보다 맛은 더 있었다.
그러나 하수영의 손길이 닿았던 요리보다 강렬함만은 못했다.
최후의 만찬이 끝나자, 미군이 아닌 FBI 요원이 나섰다.
요셉은 조용히 두 손을 내밀어 수갑을 받았다.
***
같은 시각, 콜롬보 대저택.
대저택은 산 아래를 완전히 포위당했다.
하늘에는 무장헬기 다수가 떠서 물샐 틈 없는 감포위망을 펼치고 있었다.
방탄수송차량이 줄을 지어 길을 올라가고, 대저택 앞에 자리를 잡았다.
헬기에 자리를 잡은 저격수들의 스코프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다.
"저항하지 마라. 절대로 저항해서는 안 된다."
조노반은 몇 번이고 거듭해서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어차피 이 저택에는 우리 사업의 증거가 될 만한 건 없다. 그러니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놈들을 들여보내 줘라."
저택에는 어떤 불법의 증거도 없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이라고는 자동소총 여러 자루 정도. 타 마피아의 습격에 대비한 방어용.
그 정도는 벌금으로 간단하게 무마할 수 있으리라.
"요셉은? 요셉은 아직도 연락이 되지 않느냐?"
"죄송합니다, 빅보스.
"요셉과 함께 간 녀석들은 대체 뭘 하느라고 자기 보스도 놓쳤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