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806화 (806/1,270)

프랜차이즈 갓 806화

199장 하씨 프롬 코리아 (3)

수영농장에서는 거의 모든 농산물을 재배한다.

제약회사 납품용으로 양귀비도 재배하고 있으니.

심지어 한국에서는 재배하지 않는 코카나무 또한 재배하고 있다.

식도락 패키지 관광으로 수영농장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경기도에 야자수가 있는 것을 보고 기겁하기도 한다.

그런 수영농장에서 딱 하나 재배하지 않는 게 있으니, 바로 담배다.

"양귀비는 제약회사에 팔아서 진통제라도 만들어 쓰면 되는데, 담배는 도대체가 좋을 게 없잖아. 국민건강증진에 도움은 못 줘도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지."

KT&G(담배, 인삼제조기업)는 근래 담배농장의 감소로 담뱃잎 수급에 애를 먹고 있었다.

농가 입장에서도 담배 재배는 확실하게 수익이 보장된다.

하지만 모든 과정을 거의 수작업으로 거쳐야 하는, 꽤 힘든 농사다.

또한 담배식물 자체가 맹독 식물이다 보니, 아무래도 농사를 오래 지으면서 점점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제조권 허가는 문제없지?"

-네, 고속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소식을 들으면 KT&G에서 헐레벌떡 달려와서 읍소하겠군요.

"안 판다고 그래. 전부 미국 수출용이라고."

-그래도 엄청 매달릴 겁니다. 무인 담배농장의 비전을 엄청 탐내고 있으니까요.

담배 농사는 대형 농기계를 쓰기 어려운, 수작업 농사다.

그리고 수영농장은 수많은 로봇들이 사람 손보다 정교하게, 그리고 24시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담배 농사를 하기에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공장 있는 미국 담배회사들하고 미팅 잡아."

-알겠습니다.

담배 밀수는 콜롬보 패밀리의 큰 자금원 중 하나다.

그리고 오래전 비프스 캘론한테서 뺏은 담배 농장은 그 자금원의 상수원이고,

"하씨 패밀리의 덤핑이 얼마나 매운맛인지 제대로 보여주자고."

-예, 마스터. 그런데 비프스 캘론회장님은 이미 잊어버린 눈치인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겁니까?

"잊어버리기는, 지금도 속에서 천불이 날걸? 자기가 세팅 다 해놓은 담배 농장 뺏어가서 20년 동안 100억 달러 넘게 벌었는데, 아마 담배농장으로 얼마쯤 벌었는지 비프스캘론 회장이 훤히 다 알고 있을 거다."

가족 죽인 원한은 잊어도, 내 돈뺏어간 원한은 못 잊는 게 사람이다.

비프스 캘론은 착실하게 사업을 해왔기에 그 묵은 한이 더 클 것이다.

"앞으로 미국에서 수영목장 육류유통을 전담해 줄 사람인데, 그런 정신적 한을 남겨둬서야 일에 효율이 있지 않겠냐?"

-아, 이해했습니다. 오토의 멘탈을 케어해 줌으로써 생산성을 극대화한다는 거군요.

'미국 고기 오토'의 멘탈을 관리함으로써 매출을 올린다.

프리덤은 '역시 나의 마스터'라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친구의 원한을 해소해 주는 거, 생각보다 재미있어. 보람도 있고."

-마스터의 여흥이기도 하군요.

"여흥, 그래, 여흥이지."

하수영은 팔베개를 한 채 피식 웃으며 눈을 감았다.

"가끔 이런 트롤… 아니, 원한 해소 대행이라도 안 해주면, 이 긴 세월을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지."

***

알트리아 CEO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찾아왔다.

이름만으로는 담배회사라는 것을 알 수 없지만, 미국에서 제일 거대한 담배회사다.

그는 하수영의 얼굴을 바로 알아보고 정중히 인사했다.

"수영농장 오너이시군요.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를 잘 아시나 보군요?"

"평소 귀사의 무인농장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담배 농사의 최종점은 결국 완벽한 무인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수영농장은 지금 당장에라도 그걸 가능케 할 저력을 갖추고 있죠."

모리츠 CEO는 씩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완벽한 장비들의 일부만 담배농사에 할당했더라면, 귀사는 천문학적인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겁니다."

"건강에 좋지 않은 식품은 생산하지 말자는 게 제 생각이라서요."

"이해합니다. 담배는 건강에 좋은 게 하나도 없죠. 건강에 좋은 담배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낸 가장 큰 거짓말이죠."

"솔직하시군요."

"어렵게 찾아온 기회를 어설픈 거짓말로 날리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터놓고 다가가려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담배회사인데도 힘드신 게 있나 봅니다?"

"담배는 밀이나 벼처럼 기계화 재배가 불가능해서요. 거의 모든 것을 사람 손에 의존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규약이 많죠."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들이 귀사의 농장에서 하루에 14시간 이상씩 일하다가 적발돼서 벌금 물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성인들은 일은 안 하려고 하니까요. 어쩔 수 없이 이런 일이라도 하겠다는 아이들을 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치부를 전혀 숨기지 않는다.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그저 건조하고 담대하게 사실을 인정할 뿐이다.

담배사업으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기업의 CEO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는 것일까.

"귀사의 비즈니스 파트너에는 마피아도 포함되어 있나요?"

"글쎄요, 공식적으로는 아닙니다. 공식적으로는 제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고요."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아직은 제가 그런 부분까지 하수영 회장님과 터놓고 나눌 만큼 친밀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좋아요. 질문을 바꾸죠. 콜롬보 패밀리가 비즈니스 파트너에 포함돼있나요?"

"……아닙니다."

콕 집어서 콜롬보 패밀리를 언급하자, 모리츠 CEO는 바짝 긴장해서 대답했다.

한눈에 하수영이 자신을 부른 것이, 그저 비즈니스를 같이하자는 의도가 아님을 알아챘다.

'뭐지? 하수영 회장이 콜롬보 패밀리와 무슨 악연이라도 있는 건가?'

"바로 말해주는 걸 보니 콜롬보와 사이 나쁜 패밀리와 손을 잡고 있나 보군요. 미 국세청에 눈을 부릅뜨고 있을 테니 사이즈 크게는 못 해먹겠고, 아마 전체 생산량의 5% 이하를 대리생산 해주고 있겠죠? 그 마피아패밀리는 그 물량을 밀매해서 적당히 수익을 챙기고 있을 테고."

"……!"

"저도 소싯적에 많이 해본 거라서 좀 압니다. 우리 선수끼리 복잡하게 돌아가지 맙시다. 솔직하게 터놓고 이야기하지요."

모리츠는 하수영의 지루해하는 눈빛을 보고 손끝이 떨렸다.

저런 눈동자, 그는 참으로 많이 봐왔다.

모든 것을 다 이룬 최고봉의 권력 자가 으레 짓곤 하는 표정.

아직 더 올라갈 데가 수도 없이 남은, 그래서 쉬지 못하고 열심히 밑을 채찍질하는 이들은 저런 권태를 품지 못한다.

저런 얼굴을 한 이가 내뱉은 말은 거스를 수 없다.

"딱 300억 달러만 할 겁니다."

"……300억 달러라 하심은?"

"콜롬보 패밀리에 안겨줄 숫자입니다."

모리츠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300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주자는 말이다.

뉴욕 마피아는 음지의 거대한 대기업이나 다름없다.

300억 달러의 손실로 소멸하지는 않겠지.

하지만 엄청난 출혈을 각오해야 할 숫자인 것은 틀림없다.

나노소프트나 래플 같은 굴지의 글로벌 기업에도 300억 달러는 큰 손실이니까.

"제가 담배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한국에 귀사 공장이 있죠? 거기에 납품하겠습니다."

"원료 형태로 미국까지 다시 들여 오는 것은, 저희 입장에서도 손해입니다."

"그것은 알아서 하시고, 콜롬보 패밀리가 담배 밀매로 재미만 보지 못하게 하면 됩니다."

"그 정도로 300억 달러의 손실을 안겨줄 수는 없습니다. 콜롬보 패밀리는 손실이 난다 싶으면 손을 털면 그만입니다."

"그건 제가 알아서 하죠. 귀사는 콜롬보 패밀리의 담배 밀매만 방해 하면 됩니다."

"……굳이 저에게 그렇게 자세하게 설명하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그래야 귀사도 더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달려들 거 아닌가요? 바이어의 의도를 알아야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거 아니겠어요?"

"……."

담배 밀매 방해는 시작일 뿐이구나.

모리츠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손끝이 계속 떨렸다.

확실한 것은 하수영이 콜롬보 패밀리를 위한 선물을 잔뜩 준비할 예정이라는 것.

'멍청한 놈들, 어쩌다가 원한을 사도 하필이면…….'

"혹시 제 사적인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은근한 질문.

자신이 알고 있는 마피아 파트너의 손을 빌리고 싶냐는 뜻이다.

즉 무법의 영역.

"제가 외국 독재자와는 악수해도 마피아나 갱단하고는 겸상도 안 해서요. 필요 없습니다."

"……그러시군요."

"하루아침에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수 있는 스케일도 아니고요."

서두르더라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는 일.

"하지만 담배 밀매만큼은 조속히 끊어버렸으면 좋겠네요."

"무슨 뜻이신지 알겠습니다."

"담뱃잎은 얼마든지 원하는 만큼 공급하겠습니다. 가격도 맞춰 드리죠. 단, 제가 판 잎으로 만든 제품은 한국에 유통해선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맨 프롬 콜로비아 라는 영화를 보셨습니까?"

"네, 감명 깊게 봤습니다."

미국에서도 개봉을 하긴 했다. 인기도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았다.

모리츠 CEO는 평소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다. 영화를 볼 시간 자체가 없다.

하지만 수영농장 오너가 조연으로 출연을 했다기에 일부러 시간을 내서 본 것이다.

"제 연기가 어땠어요? 형편없죠?"

"아닙니다. 놀라운 연기력이 깊은 감동을 받고 전율했습니다. 만약 영화배우 쪽으로 나가셔도 전 세계를 울릴 대배우가 되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게 연기라고 생각하세요?"

"……."

"저 연기 잘 못합니다."

연기가 아니라면, 평소 모습이라고?

하수영은 군용 나이프 여러 자루를 꺼냈다.

나이프를 하나하나 쥐어서 허공에 순차적으로 던지며, 손으로 받고, 다시 던지고, 그렇게 한 손 저글링을 시작했다.

열 자루 가까운 나이프가 빠르게 저글되는 모습을, 모리츠 CEO는 얼이 빠진 채 지켜봤다.

슉! 슉! 슉!

하수영은 벽을 향해, 나이프를 받자마자 곧바로 던졌다.

여러 자루를 한손 저글링을 하면서, 단 한 번도 떨어뜨리지 않은 채, 정확하게 표적을 향해 날린 것이다.

표적은 여러 장의 인물 사진이었다.

칼 전부가 인물들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힌 것을 보고, 모리츠는 부르르 떨었다.

바로 콜롬포 패밀리 빅보스를 비롯한 직계 가족들이었다.

"제 친구가 그렇게 애연가였대요. 하지만 수십 년 전에 담배를 끊었대요. 전 건강을 생각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군요."

담배를 끊은 시기가 담배 농장을 강탈당한 바로 그 해였다.

"오죽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그 20대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탈모가 시작됐을까요? 이제는 나이가 먹어서 복구되지도 않더군요."

모리츠는 돌아가는 대로 수십 년 전에 콜롬보 패밀리에 담배 농장을 뺏긴 20대 청년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손절 치고 정리한 주식 뒤늦은 폭등세 관음하는 것도 아니고, 20년 넘게 농장 수익 매일 체크하면서 얼마나 속이 상했겠어요? 아, 주식 하세요?"

"……네, 합니다."

"그럼 방금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아시겠네요."

"확 와닿았습니다."

"제가 또 의리파라, 친구 마음을 풀어주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어서요. 겸사겸사 귀사는 수익도 챙기고요, 이 거래 괜찮나요?"

"받아들이겠습니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비즈니스 파트너 마피아…… 어디 패밀리인지는 모르지만 가슴에 바람 안 들어가게 잘 관리하셔야 합니다."

모리츠는 이 순간 속으로 강하게 확신했다.

하수영은 겉으로 보이는 친절하고 사근사근한 농업 기업가만이 아니다.

'아마도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국의 밤을 지배하는 빅보스인 게 틀림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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