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95화
196장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 (6)
핵잠수함 2척의 식료품 저장소를 꽉 채우고도, 여전히 마트 컨테이너가 많이 남아 있었다.
"이것들은 부식창고에 보관해 주세요. 아, 전력 끊어지지 않게 해주시고요."
"네, 의원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잠수함 전용으로 준비한 식료품입니다. 다른 부대에서 손대면 안 됩니다. 그랬다가는 제가 찾아올거라고 공지해주세요."
부사관 책임자는 순간 하수영의 표정이 무섭다고 생각했다.
"여기 컨테이너에 큼지막하게 적어둔 문구들 보이시죠? 다른 부대에서 손대려고 하면 이거 꼭 보여주세요."
"아, 정말 그렇군요."
컨테이너들은 수영마트라는 표시외에 다음과 같은 글귀도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잠수함 전용입니다. 비잠수함은 손대지 마시오.
-하수영 백]
"잠수함 전용……? 혹시 그러면 핵잠수함 말고 다른 잠수함들도 사용해도 된다는 겁니까?"
"네. 다른 초소형 잠수함들은 더 열악할 텐데, 내가 거래 중개했다고 핵잠수함만 편애하는 것은 좀 아닌 거 같아서요."
"그, 그러시군요."
"자기들이 가져가는 건 놔두려고요. 어차피 다른 잠수함들은 기존의 식단 공급 시스템이 있잖아요? 그걸 납품 안 받을 수도 없을 테고, 군납업체들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부식장교는 대답 대신 식은땀을 흘리며 어색한 웃음만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핵잠수함 말고 다른 초소형 잠수함들 식단도 제가 책임지고 싶은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 얼마든지 가져가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다른 잠수함 승조원들도 모두 크게 고마워할 겁니다."
"냉동 컨테이너 출고량은 자동으로 집계되거든요. 때 되면 알아서 트레일러들이 올 테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 그거 정말 편리하군요."
"원래 프리덤이 먹는 거 관리하려고 만들어진 인공지능이라서 그렇습니다."
"……?"
***
해군본부 등 상급부대에서 살금살금 냉동 컨테이너에 탐심을 부렸다.
[잠수함 전용입니다. 비잠수함은 손대지 마시오.]
하지만 이 문구의 위력은 생각보다 컸다.
"저 문구 안 보이십니까? 이거 하수영 의원님이 잠수함 승조원들만 먹으라고 내주신 부식 재료들입니다."
"아니, 그래도 조금만 가져가면 어차피 모르실 거 아니야?"
"죄송하지만 안 됩니다. 만에 하나 하수영 의원님 귀에 들어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장담 못 합니다. 국방부 장관님께서도 쩔쩔매는 분이십니다."
"에이, 그래도 민간인인데 뭐 알겠어? 자네는 그냥 오늘 이 자리에 없는 거야. 내가 몰래 꺼내 간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으라고."
"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알아서 하십시오. 전 진짜 모르는 겁니다."
그렇게 직위와 짬밥을 내세워서 창고관리 부사관을 무시하고 냉동 컨테이너에 손을 댄 간 큰 수상함장도 있었다.
"이야, 프리미엄 한우라더니 정말 입에서 살살 녹네."
"와씨, 저 지금 감동받았습니다. 소고기가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겁니까?"
"투쁠 한우도 이 정도 맛은 아니었는데. 수영목장 한우가 그렇게 끝내준다는 게 정말 명불허전이구나."
"함장님, 많이 드십쇼."
"수영김치도 맛이 아주 그냥 끝내 주네. 아니, 김치에 대체 뭔 짓을 했기에 이렇게 맛있는 거냐?"
"쓰레기 같은 부식 김치만 먹다가 수영김치 먹으니까 혀가 정신을 못차리는 거 같습니다."
"혀만 정신을 못 차리나? 간땡이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 같은데?"
"……!"
"……!"
"피, 필승!"
별 3개 계급장.
해군 참모차장이 서슬 퍼런 눈빛으로 장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금 그게 목구멍으로 넘어들 가시나?"
부동자세로 선 함장 이하 장교들은 새파랗게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랐다.
참모차장이 배에 올라탈 때까지 자신에게 전혀 보고가 오지 않았다니?
작정하고 털려고 기습 감찰을 나온 것이다.
"이봐, 함장."
"대령 조필준!"
"비잠수함은 손대지 마시오, 라는 문구 봤어, 못 봤어?"
"봤습니다!"
"그런데 관리 부사관도 쌩까고 그걸 몰래 집어 와? 자네, 제정신인가? 하수영 의원님이 민간인이라서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야?"
"시정하겠습니다!"
"내가 지금 차장 달고 이까짓 한우 몇 덩이 때문에 이 시간에 여기까지 내려와야겠어?"
어떻게 알았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설마 그놈이 진짜로 보고를 했을까?
'모르는 걸로 한다고 했는데…….'
"청담동에서 민원이 들어왔어요, 민원이. 그거 때문에 지금 해군본부가 발칵 뒤집혔어. 국방부에서 군감찰 크게 한 번 털어야 한다는 걸 총장님께서 싹싹 빌어서 수습하시는 중이라고."
장교들은 눈앞이 노래졌다.
참모총장이 그런 망신을 당했다면, 자신들의 군 인생은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터 진짜 중요한 질문이다. 솔직하게 대답해야 할 거다."
"대령 조필준! 알겠습니다!"
"째벼온 음식들… 너희들끼리만 처먹었냐, 아니면 수병들한테도 나눠줬냐?"
"그, 그게……."
"아아, 너희 장교들끼리만 처먹었군. 멍청한 놈들. 살아날 마지막 가능성까지 날려먹는구나."
참모차장은 잔뜩 열이 받아서 말했다.
"의원님이 민원 넣으시면서 그러시더라. 컨테이너에 손댄 건 나쁜 짓인데, 병사들에게 나눠준 거면 그냥 넘어가 달라고, 인사상 불이익도 절대 주지 말라고."
"……."
"그런데 너희 장교들끼리만 열심히 처먹었네. 고기 남은 거 있지?"
"이, 있습니다!"
"지금 전부 다 구워서 수병들에게 돌려라. 내 눈앞에서 수병들한테 전부 다 먹여."
"알겠습니다!"
컨테이너에서 몰래 털어온 고기들은 그렇게 수병들 위장 속으로 사라졌다.
끝까지 그것을 지켜본 참모차장은 함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돌아갔다.
떨리는 다리로 참모차장을 배웅한 함장은 차량이 사라지자마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눈앞이 그저 캄캄했다.
마치 이제부터 펼쳐질 자신의 군 생활처럼.
그 사건 이후로, 냉동 컨테이너에 감히 손을 대는 비잠수함 인물들은 없었다.
잠수함 승조원들은 당당하게 식료품 창고를 찾아와서 수영마트란 글자가 박힌 박스를 챙겼다.
냉동 컨테이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라면, 스낵, 참치 통조림 등 상온 보관이 가능한 식료품도 잔뜩 있었다.
그래도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냉동 컨테이너에 보관 중인 수영목장산 육류였다.
"딱 1인용 스테이크로 알맞게 잘라서 랩핑까지 해놓으니 정말 편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이대로 해동해서 바로 굽기만 하면 되게 해놨어요. 생선도 마리 단위로 전부 머리, 내장 손질도 다 해놨고요."
육류, 생선류를 정성스럽게 손질해 놓은 것은 잠수함 조리장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렇게 곱게 포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성스레 손질을 했을까.
"엘릭서 드링크 이거 나름 꽤 비싼건데 이렇게 원 없이 실컷 먹게 될 줄이야……."
"잠수함에 적재 공간만 충분하면 더 많이 가져가고 싶은데 말입니다. 조리장님."
"우리 이렇게 눈이 높아져서 큰일이다."
"안 그래도 잠수함 식단이 해군에서 좋기로 유명한데, 여기서 더 높아져 버렸으니……."
"식자재들만 보면 이건 특급호텔수준 아닙니까?"
"특급호텔 스테이크도 이런 맛은 아닐걸? 이건 고기 자체가 아예 차원이 달라. 투쁠 한우도 이 정도는 아닌데."
"한우는 보통 쉽게 질리기 마련인데 수영목장 한우는 그런 것도 전혀 없어서 참 좋습니다."
해군 전체에 소문이 쫙 퍼졌다.
수영마트 덕분에 잠수함들이 호화스러운 식단을 꽉 구성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수영마트가 하나부터 열까지 전담하는 핵잠수함 식단은 인트라넷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아니, 핵잠수함은 원래 이렇게 식단이 쩔어주게 나오는 거야?"
"잠수함 식단 좋은 건 알았지만, 이건 무슨 호텔 특식 수준이잖아?"
"배식판 말고 접시에 담았으면 진짜 완전 호텔 특식 수준인데?"
"와씨, 무슨 손바닥만 한 전복찜을 배식하고 있네."
"참돔으로 매운탕 끓여 먹는 거 실화입니까? 진짜 핵잠수함들은 다 저렇습니까?"
"간식으로 참다랑어 대뱃살 회가 나온다고? 아무리 잠수함이라지만 이건 너무 나간 거 아니야?"
"핵잠수함들은 도대체가 정도껏이라는 걸 모르나!"
핵잠수함 식단은 해군 전체의 부러움을 샀다.
신형 오하이오급 핵잠수함의 내부 시설은 한국해군 수상함들도 감히 도전장을 내밀지 못할 정도였다.
작전에 투입돼도 물을 전혀 아껴쓸 필요 없이, 바닷물을 분해해서 만든 담수를 펑펑 쓸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 번 바다에 들어가면 몇 주나 못 나오는데…… 그래도 역시 수상함이 낫다."
"근데 식단만큼은 정말 부럽긴 하다."
***
갑작스러운 핵잠수함 2척 도입은 해군에도 큰 즐거움이었다.
급격한 전력 상승에다가, 잠수함인원 TO도 확 늘어났으니.
잠수함 사령관의 어깨에도 한껏 기운이 들어갔다.
그런데 해군 고위층에 스멀스멀 불안한 기운이 퍼지기 시작했다.
바로 잠수함 식단 때문이었다.
"핵잠수함 식단이 널리 공유되는 바람에 식단을 대하는 우리 해군의 눈이 너무 높아져 버렸습니다."
"수상함 장병들 부모들의 민원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핵잠수함식단에 비하면 자기 아들이 먹는 밥은 개밥 수준이라는 겁니다."
"해군이 밥이 못 나오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3군 중에서는 가장 잘나오는 편인데."
"전복 스테이크 특식 앞에서는 그런 말은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니, 우리 기준에서야 특식이지 핵잠수함안에서는 그냥 늘 먹는 수준이랍니다."
큰일이었다.
잠수함 복무자들의 눈과 기준치가 확 뛰어오름에 따라, 해군 전체의 기대치와 불만 역시 증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는 삼시 세끼 호텔 특식 수준으로 밥을 먹는데, 배부르다고 전복스테이크를 남겨서 버리는 수준인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디젤 잠수함승조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설마 식단을 바꿔달라는 건가?"
"네. 자기들도 핵잠수함처럼 수영마트에서 아예 전담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수영 의원님이 흘린 말이 퍼진 모양입니다."
하수영은 얼마든지 모든 잠수함 식단을 책임질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기존 군납업체의 밥줄을 건드릴 수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승조원 입장에서는 군납업체 밥줄 따위 알 바 아니다.
당장 자신들이 먹을 식단이 핵잠수함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기를 바랄 뿐.
"문제는 또 있습니다. 핵잠수함은 디젤함에 비해서 승조원이 누비는 공간이 쾌적하다 보니, 디젤함 승조원들도 그에 대한 불만이 무척 커졌습니다."
"우리 해군 전통의 함 운용 사상에 큰 흔들림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함은 원래 한정된 공간이다.
때문에 해군은 최대한 많은 물자를 신되, 사람은 대충 구석에 끼어서 생활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운용해 왔다.
그런데 로또처럼 얻은 핵잠수함.
이 2척이 그런 해군의 전통 함 운용 정신을 슬그머니 건드리고 있었다.
"해군, 특히 잠수함 승조원들 눈과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 버렸습니다."
"이천 톤급 미만 소형 잠수함 승조원들은 전부 전역신청서라도 낼 기세입니다."
핵잠수함과 수영마트.
그 조합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해군의 근간을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