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94화
196장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 (5)
하수영은 핵잠수함을 올려다보며 무척 안타까워했다.
"핵미사일 없는 핵잠수함이라니. 아이고야. 너도 참 불쌍한 운명이구나."
"저어, 의원님. 미군은 SSGN이라고 핵탄도미사일이 아닌, 순항미사일 전용 핵잠수함도 실전 운용하고 있습니다만."
"미국에서도 그런 식으로 운용하라는 취지에서 신형 오하이오급 2척을 제공한 겁니다."
"전 또 핵잠수함을 준다기에 우리 나라도 이미 핵이 있는 줄 알았어요."
"……우리나라는 핵무기 미보유국입니다."
"그러니까 대외적으로는 없는 척하고, 실제로는 있는 줄 알았죠."
"……."
"……."
"이거 뭔가 아쉽네. 아, 수영조명에서 핵융합 기술 완성하면 핵융합 폭탄이라도 만들어서 납품하는 건 어때요?"
"예?"
"제가 군수에 발 담글 건 아닌데요. 그래도 전략무기 없는 핵잠수함이라니까 뭔가 아쉬워서 그래요. 수영조명에 말을 해둘까요?"
핵융합 폭탄은 우라늄, 플루토늄을 기폭제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제재 대상은 아니다.
하지만 핵물질을 기폭제로 쓰지 않은 핵융합 미사일이 과연 가능할까?
미군 장군이 당황함을 지우고 사근사근 웃으면서 접대 멘트를 했다.
"핵물질을 쓰지 않은 핵융합 잠수함 미사일이라. 정말 꿈만 같은 기술이로군요. 그런 게 개발된다면 당연히 얼마든지 장착하셔도 괜찮습니다."
"흠, 그럼 수영조명에 한 번 만들라고 해봅니다? 아,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요. 지금은 농사용 핵융합 장치도 제대로 못 만들고 있어서."
"하하, 그런 게 개발된다면 꼭 제 희 미군에도 납품을 해주십시오."
"에이, 저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아요. 미국이 제 농장 생산물을 얼마나 많이 사주는 나라인데. 그냥 여기 해돌이 1호기, 2호기에만 딱 넣어줄 만큼만 찍어야지요."
"해돌이? 그새 이름을 붙이셨군요."
"저 혼자 붙인 이름이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해군에서 알아서 명명하세요. 그나저나 진짜 안타깝다. 핵미사일 없는 핵잠수함이라니……."
하수영은 혀를 쯧쯧 차며 핵잠수함에 탑승했다.
그의 페이스에 정신을 못 차리던 한미 인사들도 웃음을 되찾고 뒤따랐다.
'핵융합 미사일 개발이라니…… 우리 의원님도 참.'
'그런 게 애초에 가능할 리가 없잖아.'
'그래도 우리 의원님, 해군에 각별한 애정을 가지신 것은 분명하군.'
'그럴 수밖에. 독도 펜션을 염탐하던 일본 잠수함을 쫓아낸 것도 바로 우리 해군의 공적이잖아?'
핵잠수함 도입은 해군의 숙원사업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자체 건조 기술을 갖춰야 하겠지만, 이렇게 최고급 핵잠수함을 실제로 운용해 보는 것도 매우 귀중한 경험이다.
운용 경험을 바탕으로 건조 기술 개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해군 인사들은 일본 핵잠수함에 오히려 고마운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승조원분들도 같이 봤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그분들이 근무하게 될 함정이잖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이봐! 다들 이리로!"
신임 함장이 얼른 손짓을 했고, 승조원 몇 명이 후다닥 뛰어와서 부동자세로 섰다.
"저는 군인도 아니고 공직자도 아닙니다. 그냥 핵잠수함 딜을 중개했을 뿐이니, 제 앞에서 편안하게 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진짜 편안하게 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승조원들은 당연하지만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군인도, 공직자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국방부 장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 같이 한 번 돌아보자고요."
미군 승무원이 안내를 위해 앞장섰고, 하수영이 제일 먼저 그를 따랐다.
'아니, 통로가 이렇게 넓다니!'
'손원일급은 정말 비교가 안 되잖아?'
'세상에! 개인 침대가 저렇게 넓단 말이야?'
승조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2,000톤도 안 되는 초소형 잠수함에서 열악한 복무 생활을 했기에, 오하이호급의 내부는 더욱 놀라웠다.
대학가 근처의 좁은 모텔과 여의도 한복판의 특급 호텔을 비교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와, 침실이 이렇게 좁아서 사람이 어디 잠이나 제대로 자겠어요? 거기 승조원분, 이 좁은 침실 보고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예? 누워서 다리를 쭉 뻗고 팔도 위로 끝까지 뻗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참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안 그래도 좁아터진 잠수함인데 개인침실 하나씩은 줘야 하는거 아닌가요?"
"……."
"……."
'좁아터진 잠수함이기 때문에 개인 침실을 줄 수가 없는 겁니다, 의원님…….'
"나 때는 말이죠. 아예 승조원 세명당 10만 톤급짜리 잠수함 한 척씩을 배정해서 편하게 근무할 수 있게…… 아니다. 아무튼 다음 시설도 한 번 봅시다."
"예, 이곳은 어뢰 보관소로서……."
"어뢰는 됐고요. 냉동칸이나 한 번 보자고요."
"아, 안내하겠습니다."
하수영은 전투 관련 시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때문에 안내병은 곧바로 취사 시설로 안내했다.
"이건 아이스크림 제조설비입니다. 승조원들은 24시간 언제 어느 때든 마음껏 아이스크림을 제한 없이 먹을 수 있습니다."
승조원들의 눈빛이 감격으로 물들었다.
'미쳤다, 미쳤어! 잠수함에서 아이스크림이라니!'
잠수함은 함정 중에서 가장 식단이 좋은 편이다.
오랜 기간 폐쇄된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해군에서 아이스크림제조 설비를 갖춘 잠수함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는데.
"오, 냉동고 사이즈는 제법 크네요. 식자재는 많이 넣을 수 있겠어요."
"하하, 영하 40도 미만의 온도 유지가 가능한 최고급 냉동고입니다."
승조원들은 그 말을 듣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역시 전기가 남아도니까 냉동고도 크고 짱짱한 걸로 팍팍 넣어주는구나."
"디젤잠수함은 전기 아껴야 한다고 맨날 조명도 어둑어둑하게 유지하는 데……."
"핵잠수함 좋다 좋다 말은 들었는 데, 이렇게까지 좋은 줄은 몰랐네."
하수영은 갑자기 해군 참모총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참모총장님, 이거 잠수함 식자재는 어떻게 관리하실 건가요?"
"당연히 해군 부식 운용 규정에 따라……."
"그냥 깔끔하게 저한테 맡겨 주시죠? 제가 무상으로 좋은 식자재만 골라서 넣어드리겠습니다."
"예?"
참모총장은 놀라서 눈만 깜빡거렸다.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도 마찬가지로 놀라서 반응을 못했다.
하수영은 다소 못마땅하다는 듯이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뭐예요? 저 못 믿습니까? 저 하수영이에요, 하수영. 대한민국 최고 농부."
"미, 믿습니다!"
"곡물이고 채소고 육류고 수산물이고, 제가 취급 안 하는 식자재 없습니다. 그런 제가 무상으로 핵잠수함 2척 식료품 싹 책임져 드린다니까요?"
승조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러고 보니 의원님, 식품그룹 재벌 회장이시잖아?'
'그런 분이 직접 우리 잠수함 식단을 전부 책임져주신다고?'
'이건 무조건 감사히 받아야 해!'
해군 참모총장은 얼떨떨했지만, 국방부 장관의 눈짓을 받고 얼른 말했다.
"알겠습니다. 의원님의 선의를 감사히 받겠습니다. 승조원들도 모두 좋아할 겁니다."
"제가 편의점, 마트도 운영합니다. 이 핵잠수함을 백화점 종합식품마트로 만들어드릴 테니까, 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프리덤."
-예, 마스터.
"잠수함 채워 넣을 식료품들 지금부터 빨리 준비해서 보내라고 해."
-알겠습니다. 최고로만 갖추겠습니다.
다음은 함내 영화상영관.
하수영의 표정이 조금 펴졌다.
"오, 잠수함에 82인치 TV가 있네요? 이건 어떻게 들인 거예요? 입구가 작아서 못 들어갈 텐데."
"방수포로 감싼 후 어뢰 공급 투입구를 통해서 함내로 들인 겁니다. 원래는 스크린 영사 방식을 사용하지만, 특별히 미 해군에서 기증을 했습니다."
"아하, 한국을 위한 선물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승조원들은 함내에 영화 상영관이 있다는 것에서 이미 머리가 어질어 질한데, 82인치 4K 티비까지 있다.
는 것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저기 대형 티비라서 전기 엄청 많이 먹을 텐데.'
'아, 맞다. 이건 전기 걱정은 없다고 했지.'
"참모총장님, 여기에 넷플렉스하고 UCC 사이트도 설치해 주실 거죠?"
"무, 물론입니다."
"부활의 이순신 시즌 1, 2. 그리고 맨 프롬 콜롬비아. 아직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꼭 부탁합니다."
하수영이 투자해서 제작한 드라마와 영화다.
당연히 함내에서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넷플렉스 로그인을 해둬야 한다.
"제가 한 번씩 부식 가지고 올 때마다 시청 기록도 체크할 겁니다. 말로만 로그인해 두고 막상 아무도 못 보게 방해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항해작전 중에는 당연히 넷플렉스 데이터를 수신할 수 없다.
인터넷 통신 문제도 있지만, 일단 전파 때문에 위치가 들통나니까.
하지만 참모총장은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고, 일단은 정신없이 끄덕였다.
(초소형 디젤함에 비해)넓은 침실.
아이스크림 제조 설비 등을 갖춘 취사시설.
함내 상영관, 등등.
핵잠수함은 과연 디젤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안락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승조원들이 가장 크게 감동한 것은, 바로 샤워시설과 세탁시설이었다.
"핵잠수함은 물을 아끼지 않습니다. 승조원들은 언제 어느 때든 깨끗한 물로 마음껏 샤워하고, 세탁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군 안내병이 자랑스럽게 말했고, 승조원들은 감격으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디젤함에서는 물을 아끼기 위해 샤워는 주에 1회, 평소에는 물티슈로 몸을 닦을 뿐이다.
세탁은 꿈에도 못 꾸고, 항구로 돌아온 후에 함 외부에서 한꺼번에 처리한다.
그전까지 근무했던 잠수함에 비하면 완전히 천국이었다.
그러니 신형 핵잠으로 발령받은 자신들을, 잠수함 동료들이 그렇게 부러워했던 거겠지.
"그럭저럭 쓸 만하겠네요."
하수영의 짤막한 마무리 감상이었다.
***
승조원들은 항구에 정박한 잠수함에서 본격적으로 생활했다.
일단 함에 적응을 해야 시험 항해를 나서고, 또 실제 항해에도 나갈 것 아닌가.
"천국이야, 천국. 진짜 천국이 따로 없어."
"이천 톤도 안 되는 디젤함에서만 10년 넘게 살다가 1.6만 톤짜리 핵잠으로 오니까 진짜 극락이네."
"앞으로 잠수함사령부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겠는데. 죄다 핵잠수함보직 받으려고."
"어? 저기 웬 트레일러들이 줄줄이 오고 있습니다?"
함 외부 활동 중이던 승조원들이 다가오는 트레일러들을 발견했다.
선두의 트레일러가 멈추고, 하수영이 운전석에서 훌쩍 내렸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해군 장교를 대동한 채였다.
"하수영 의원님이십니다? 뭐지?"
"혹시 부식을 가져오신 거 아닐까요? 저기 트레일러들 중에 냉동 컨테이너가 상당합니다."
"오, 그런가 보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하수영이 가져온 것은 식료품이었다.
하수영은 식료품 운반을 직접 감독했다.
"그거 김치박스입니다. 국물 안 흐르게 조심해서 나르세요."
"이건 라면박스예요. 면 부서지지 않게 조심조심."
"그거 냉동 소고기예요. 녹기 전에 얼른 가져가서 냉동고에 넣으세요."
조리장은 승조원들한테 지시를 내리며, 식료품을 저장소에 차곡차곡넣었다.
모든 식료품 박스에는 하나같이 '수영마트'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어디 보자. 이건…… 수영목장 프리미엄 스페셜 한우 안심?"
"한우 안심만 500kg이네요. 등심, 채끝살, 살치살…… 어휴, 한우는 배터지게 먹겠습니다."
한우뿐만이 아니라 돼지고기, 닭고기도 각종 부위가 완벽하게 손질을 마치고 랩핑이 되어 있었다.
랩핑을 따라 뜯어내고 곧바로 익히 기만 하면 될 정도로.
"우와. 지금 이거 생선들 죄다 머리, 내장까지 손질돼 있는데요?"
"이건 진짜 감동인데. 이렇게 일일이 전부 손질해서 랩핑 포장했다니. 손이 참 많이 가는 작업이었을 텐데."
"여기 채소들도 물세척 완료했다고 상자에 쓰여 있습니다. 그냥 바로 먹어도 된답니다."
"과일들도 그러네요."
"이건 엘릭서 드링크 아니에요? 와, 이거 한 병에 만오천 원이나 하는 건데, 이게 대체 박스로만 몇 개야."
"신두도 잔뜩 있네. 근데 잠수함에서 신두를 먹을 일이 있을까? 유일한 즐거움이 그나마 맛있는 거 먹는 건데."
"무슨 소리. 아파서 입맛 없을 때 신두가 기력 보충에 그만이라고, 영양 보충이 잘되어야 빨리 낫잖아."
하수영은 약속을 지켰다.
핵잠수함 식료품 저장소를 정말로 백화점 마트 수준으로 만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