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92화
196장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 (3)
"원자로 하나 달아줄 수 있죠?"
전략핵잠에 들어가는 원자로를 무슨 케이블사에서 주는 셋톱박스처럼 말한다.
조 위드너는 잠시 굳어 있다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해서 미 정부를 설득하겠습니다."
"역시 헌팅턴 인걸스 인더스트리 즈, 영업 정신이 정말 투철하군요."
"하하, 제가 어렵다고 발부터 뺄거라고 생각하셨나 보군요. 저는 장사꾼입니다. 이익이 된다면 무엇이든지 팝니다."
"솔직히 포드 항모도 이미 2척이나 팔아놓고 3호 병원선에 원자로 못달아주겠다는 것은 우습죠. 풀코스대접은 해줘도 불량식품은 못 사주겠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항모와 원자로를 풀코스와 불량식품에 비유를 한다고?
"그런데 회장님, 불량식품은 오히려 상대를 염려해서 못 사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겠습니까?"
"근데 사실 우라늄 원자로가 불량식품은 맞잖아요. 폭발 위험, 방사능 누출 위험이 언제든지 있으니까요."
"……."
"쯧, 그래서 수영조명이 빨리 핵융합로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마지막 마감을 그렇게 처리를 못 해서야. 원."
조 위드너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뭐라고 했지? 마지막 마감?
'설마 수영조명에서 핵융합로 기술을 거의 완성했다? 이렇게 벌써?'
말도 안 된다.
실험용 핵융합로도 플라즈마 상태를 겨우 몇 초 정도 유지하는 수준.
경제성 있는 핵융합로를, 그것도 잠수함에 들어갈 정도로 소형 모델을 만든다는 것은 갈 길이 멀다.
미국도 아직 아기 걸음마 수준인데.
생긴 지 일 년도 안 된 수영조명에서 벌써 그만한 성과를 이뤘다고?
'에릭 로한……. 그자가 핵융합에도 그렇게 대단한 천재라는 말인가?'
조 위드너는 애써 아닐 거라고 치부했다.
기술 실무를 잘 모르는 하수영이 태평하게 닦달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래, 그래야만 한다.
조 위드너는 애써 사교적인 웃음을 지었다.
"핵융합로 연구가 상당히 진척이 되었나 봅니다."
"조만간 나온다. 나온다, 하는데 그게 벌써 몇 번째 핑계 대는지 몰라요. 아니, 그게 뭐가 어렵다고 이렇게 질질 끄는지."
역시 기술 실무를 모르는 오너 입장에서 한 말이 틀림없으리라.
"핵융합로 기술이 완성되면 이제 에너지 시장에도 진출하시는 겁니까?"
"아뇨. 저는 에너지 시장에 관심 없어요."
"하지만 이미 진출을 하셨지 않습니까? 러시아 극동 에너지 파이프말입니다."
"고작 파이프 정도 깐 게 무슨 에너지 시장 진출인가요? 석유, 가스, 발전소 정도는 전 세계에서 퇴출될만한 에너지 상품 정도는 내놓아야 에너지 시장 진출이라고 할 수 있죠."
"……."
"전 '한국시장 에너지 유통'에 아주 살짝 발만 담갔을 뿐입니다. 애초에 일본 놈들이 제 독도 펜션을 스토킹하지만 않았어도 없었을 일이에요."
"회장님, 그것은……."
"아, 맞다. 미 7함대 잠수함이랬죠? 한국을 위해서 순찰하다가 고장으로 부상한, 아이고, 제가 이런 실수를."
조 위드너는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핵융합은 제가 농사지으려고 투자한 겁니다. 완성되더라도 국제 에너지 시장에 진출할 일은 없을 겁니다."
조 위드너는 조용히 생각했다.
그것을 과연 누가 순순히 믿을 수 있을까.
'농사가 전기를 먹어봤자 얼마나 먹는다고.'
물론 무인농장 제어 시스템, 수많은 무인 로봇들이 먹는 전기량이 어마어마하긴 할 것이다.
아마 웬만한 산업단지 이상은 되겠지.
하지만 완성된 핵융합 기술 앞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남는 전기는, 결국 에너지 시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런, 제 말을 쉽게 믿지 않으시는군요."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부사장님, 한 번 생각해 보시죠. 부사장님이 제 입장에서 핵융합이 완성됐다 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국제 에너지 시장에 뛰어들 겁니다. 세계는 아직도 전기 부족에 신음하고 있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오히려 탈원전을 추구하기 때문에 전기 수급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국가들이 손을 내밀며 핵융합 발전소 구매를 요구할 겁니다. 저라면 그 나라들에 핵융합발전소를 지어주고, 유지보수 비용을 꾸준히 챙길 겁니다."
"그러면 에너지 카르텔에서 누군가가 큰 손해를 보겠군요. 제가 잡아먹은 그 점유율만큼."
"당연하지요. 그리고 그들이 가만히 놔두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당연히 맞서 싸워야지요. 식량도, 현금도, 심지어 미국의 비호도 등에 업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나라 정치권도 꽉 잡고 있고요. 두려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맞서 싸워서 에너지 카르텔에서 최종 승자가 되겠다?"
"제가 회장님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합니다."
"흐음, 그렇게 해서 제가 남는 게 뭐가 있죠?"
조 위드너는 조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표정에 드러내지 않았다.
"당연히 거대한 전기에너지 시장이 남게 됩니다. 전 세계 모든 전력망을 좌지우지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전 세계 모든 발전소에 제 이름이 붙긴 하겠군요."
겨우 그 정도로?
라는 듯한 냉소가 가득한 음성에, 조 위드너는 더욱 의아해졌다.
지금 하수영은 전 세계 전기에너지 시장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했다.
"올해 기준으로 한국은 천연가스발전이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석탄, 그리고 원전이 3위입니다."
"……."
"미국은 천연가스 40%, 그리고 풍력, 태양광 같은 신재생 발전이 42%가 넘죠. 원전은 겨우 11% 정도군요."
"……."
"중국은 화력이 60% 이상인데, 전 세계 태양광 모듈의 7할 이상을 공급하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제가 국제전력 시장에 뛰어든다?"
"회장님."
"당장 인구 20억이 넘는 그 세 나라를 적으로 돌리게 되는 겁니다."
러시아와 미국은 천연가스 수출.
그리고 중국은 태양광 모듈 수출.
핵융합 발전소의 등장으로 손해를 입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루 식료품 구매비를 100달러로 잡으면, 20억 소비자의 일 년 식료품 구매비는 73조 달러입니다. 겨우 전기 시장 조금 먹겠다고 그 시장을 버릴 수 있겠어요?"
"저, 회장님. 보통 사람들이 하루에 식료품 구매비로 100달러씩이나 쓰지 않습니다……."
"알았어요, 알았어. 0 하나 빼서 그럼 7조 3,000억 달러. 그거 버릴 수 있겠냐고요?"
여전히 너무 많은 거 같긴 한데, 평균 하루 10달러라면 그럭저럭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천연가스 생산, 공급, 발전, 신재생에너지 관련 설비 산업.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분야에서 엄청난 사람들이 지금도 피땀 흘리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모두 수영농장의 적으로 돌리게 되는 일이에요."
"……."
"어디 미·러 중뿐이겠어요? 20억이 아니라 30억, 40억, 그 이상일 수도 있는 겁니다. 겨우 전기 조금 팔자고 쌀, 밀, 보리, 육류, 수산물 판매를 포기하는 건 비합리적입니다."
하수영은 조금 부드러워진 미소를 띠고 조 위드너를 직시했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그게 바로 수영농장그룹이 추구하는 상생의 원칙입니다."
"……."
조 위드너는 불현듯 서진파운드리를 떠올렸다.
말도 안 되는 압도적인 반도체 공정기술을 보유한 파운드리 회사.
윈텔, ADM, 마이크론 등 유수의 반도체 회사들은 이미 생산량의 7, 80% 이상을 서진파운드리에 맡겨놓았다.
조만간 90%를 돌파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100% 외주 체제로 돌아설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오히려 서진파운드리가 종합반도체회사를 노릴 법도 한데, 그런 움직임은 조금도 없다.
오히려 서진파운드리는 경쟁에서 탈락한 대만의 TSMC까지 품어 안으며, 상생의 정신을 보여 주었다.
"핵융합 기술은 고객들에게 더 싸고, 뛰어난 품질의 식량을 공급하기 위해서 투자한 '농업기술' 입니다."
감성은 '누가 그걸 믿겠냐고!' 라고 외친다.
하지만 이성은 그 반대에 매혹당해 있다.
"전기 조금 팔아서 뭐가 남겠어요? 수십억 고객을 적으로 돌리는 길인데. 안 그래요?"
"그럼 핵융합 기술은 정말로……."
"네, 농장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투자한 겁니다. 국제전력시장에 뛰어들 생각은 없어요."
"한국 시장은 다를 수도 있다는 거군요."
"여기는 제 구역이니까요. '사내판매'가 문제 될 게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국제 전력시장에는 관심 없다.
농사에 필요해서 투자했을 뿐이다.
하수영의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조 위드너는 분명하게 깨달았다.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논리 아닌가.
***
수영농장 무세금 혜택은 일본 잠수함(미국제)의 위협에 분노했을 VIP를 다독이기 위한 미국의 선물.
임무를 무사히 마친 조 위드너는 미국으로 돌아왔고, 백악관 관계자를 만나 자세한 성과를 전했다.
조 위드너는 추가로 미 에너지부부국장 라머스와 면담을 가졌다.
"퀸 루나 호에 원자로를 달고 싶다?"
"그래요, 라머스."
"으음,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지.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얽힌 게 너무 많아서 말이야."
"원자력 추진만 가능하게 해주면 뭐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초대형 병원선으로 활용하려면 연료보급 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이미 포드 항모 2척의 무한정 추진력에 맛을 들인 덕분이겠지. 흐……."
미군의 모든 원자로는 에너지부의 재산.
미군은 단지 그것을 빌려다가 쓰는 것이다.
"만약 채택을 한다면, 원자로 경호를 위해서 미군 부대가 퀸 루나 호에 상시 주둔해야 할 거야."
"그 정도야 당연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원자로 설치, 운용 비용, 주둔 비용은 당연히 수영그룹에 청구할 테고, 음, 미군 호위망에 들여야 할테니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겠는데."
"원자로를 정말로 설치해 줄 겁니까?"
조 위드너가 오히려 놀랐다.
이렇게 쉽게 밀어붙인다고?
"나야 수영그룹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니, 좋은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요?"
"우리 미국이 그간 수영그룹에 수출한 액수가 얼마인데? 포드 항모 2척, 퀸 스텔리온 수십 기에 공중급유기, 담수헬기 수백 기, 볼보 트레일러 수백 대, 슈퍼컴퓨터 제조 부품. 그런 VIP가 희망하는 커스터마이징인데, 가급적 들어줘야지."
"백악관의 허락은……."
"내가 책임지고 한 번 밀어보지. 포드 항모도 팔았는데 원자로 몇 기가 뭐가 대수라고."
조 위드너는 왠지 마음이 놓였다.
이제야 진짜로 방한 임무를 완수했다는 후련함이 들었다.
"참, 수영조명의 핵융합 기술이 생각보다 많이 전진한 거 같습니다."
"그래? 하수영 회장이 자기 입으로 직접 말을 해준 건가?"
"네. 근데 전문가가 아니니 잘못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기술 실무진이 오너를 그럴싸하게 홀리는 거야 자주 있는 일이지. 하지만 에릭 로한은 방심해선 안 될 인물이야. 프리덤, 신 반도체공정, 반수성 금속을 차례차례 대박을 낸 인물 아닌가."
라머스 부국장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덧붙였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하수영 회장이 러시아에서 뭘 쇼핑했느냐가 중요한 거지. 에너지 파이프 설치를 대가로, 부틴이 뭘 약속했을까?"
"우리도 캠프데이비드에 한 번 초청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증샷도 찍고, 해시태그도 좀 달고."
"안 그래도 백악관에서 추진 중이라네. 버팔로 사냥 한 번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