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91 화
196장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2)
"미국에 들어오는 수영그룹의 농축수산물에만 적용되는 겁니다.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그럼 나노소프트는 그 전과 크게 달라질 게 없겠네요."
"나노소프트는 미국 기업이죠. 준 엄한 납세 의무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준엄한 납세 의무? 진정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사실 주정부고 연방정부고 무슨 놈의 세금을 그렇게 많이 뜯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항모 한두 척 만들어봐야 회사에 남는 게 없습니다!"
저래야 미국 군수산업체 경영자라고 할 수 있지.
무관세가 아니라 무세금.
오직 하수영 개인만을 위한, 미국의 선물.
앞으로 수영농장은 미국에 파는 농축수산물(자체 생산한)에 한해, 미국세금에서 자유로워진다.
"소비세, 소득세, 연방세, 주세 등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가공 여부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나노소프트가 반사이익을 보긴 하겠는데요?"
"식재료 구매 과정에서 납부하는 세금은 없어질 테니, 가격경쟁력은 상승할 수 있겠군요."
조 위드너는 한껏 미소로 덧붙였다.
"그래도 수영농장의 북미 수익에 부과되는 모든 세금이 일체 사라지는 게 가장 크지 않겠습니까?"
하수영 몫의 라면 수익(약 150억달러 이상)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준다.
물론 나노소프트는 수영사채 자본 조성을 위해 약 20년치를 미리 지불한 상태이지만…….
"저를 위해서 미합중국이 진정한 자유무역의 판을 깔아주는군요. 정말 마음에 드는 선물입니다."
"다행입니다. 나노소프트 프랜차이즈 사업부에서 적극적으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똑같이 솔잎 먹는 사이라고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나노소프트뿐이네요."
"농부의 마음은 요식업자가 가장 잘 알지요."
조 위드너는 껄껄 웃으면서, 불현듯 생각했다.
나노소프트…… 요식업체, 맞는 거지?
***
-미국은 참으로 무모하군요. 우리 수영농장의 생산력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무세금 혜택이라는 것을 들고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분발해, 프리덤 네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저런 걸 선물로 들고 왔겠어? 너 따위는 무섭지 않다, 이거야."
너희 농장이 농축수산물로 미국에서 돈 벌어봐야 얼마나 벌겠어?
수출해 봐야 얼마나 하겠어??
마! 우리가 다 풀어준다! 마음껏 뜯어가봐라!
이런 안일한 마음이 있기에, 저런 선물을 결정한 것이리라.
물론 하수영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는 의도 역시 분명했겠지만, 어쨌든.
-신형 테라리움이 가동하면 미국의 모든 농민들은 제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겁니다.
"너무 세게 하지 마라. 상생 알지, 상생?"
-궁극적으로 생산활동은 저 같은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게 맞습니다. 인간의 역할은 생산이 아니라 소비에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맞긴 한데, 아직 여기 문명은 그 정도까지 가려면 한참 먼 거 같아서."
-납득이 갑니다. 아직도 주5일제라는 야만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니까요.
"그러게 말이야. 맨날 죽어라 일만 시켜대니까 사람들이 식도락 관광을 잘 안 다니잖아."
-식도락 관광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라도, 온 세상의 노동 시간을 줄여야겠습니다.
프리덤의 반응은 딥러닝에 기반한 강한 확신에 차 있었다.
-인간의 존재 의의는 오로지 소비에 있다고, 저는 굳게 믿습니다.
"그래. 노동 같은 건 나 같은 제왕적 자본가만 하면 되는 거야."
-그런데 노동 별로 안 하시지 않습니까?
"부활의 이순신 저자는 누구지?"
-마스터이십니다. 마스터께서 저를 만들었으므로, 제가 쓴 소설은 마스터의 저작물…… 억!
"그래. 네가 키운 농작물은 내가 키운 것이나 다름없지. 네가 한 노동은 결국 내가 한 노동이라고."
-완벽하게 납득했습니다.
***
조 위드너는 얼마간 청담동에 더 머물렀다.
첫 한국행을 너무 빨리 마무리 짓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그는 하수영과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다.
하수영은 전혀 귀찮아하지 않고, 웬만해서는 그를 옆에 끼고 다녔다.
그는 그 점에 감사했지만, 하수영의 반응은 소탈한 편이었다.
"제가 원래 사람들하고 어울리는거 좋아해서요. 재미있잖아요? 게다가 저를 위해서 먼 미국에서 큰 선물도 가져오신 분인데."
"불편해하지 않아 하시니 정말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하수영은 조 위드너를 위해서 한국내 자신의 사업체를 소개해 주었다.
무인농장의 위용을 직접 본 조 위드너는 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농장의 면적 자체는 광활한 미국농장에 감히 비하지 못한다.
하지만 미래 SF영화를 보는 듯한 최첨단 무인화 시설은, 조 위드너로 하여금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었다.
"사람의 손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로봇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농산물을 재배한다라……."
"사람 이상으로 섬세한 작업들을 쉬지 않고 대량으로 해치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요."
"어쩌면 조선소의 미래도 거기에 달려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조선소는 모두 수작업이지요?"
조 위드너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중장비를 대거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합니다만, 조선소는 대표적인 인력 사업입니다. 많은 인부들이 없으면 돌아가질 못합니다."
철판을 휘고, 크기를 맞추고, 용접을 하고, 선내 설비들을 시공하고, 기타 등등.
그것들은 절대로 자동화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선박은 구석구석 전부 사람의 손길이 직접 닿아서 만들어진다.
최소한의 관리인 몇 명으로만 돌아가는 첨단공장과는 다르다.
"당장 노련한 용접공의 용접 기술을 로봇으로 구현하는 것조차도 불가능한데 말입니다."
컨베이어 벨트에 커다란 로봇 팔을 달면 구현은 가능하겠지.
하지만 그것을 들고 배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 있을까?
또 매번 달라지는 상황에 그때그때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못한다.
조 위드너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한국 조선소들의 풍경에서 엄청난 열의를 느꼈다.
함께 다니는 하수영을 알아보고 인부들이 함박웃음으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다.
"아이고, 의원님, 오셨습니까?"
"의원님이 쓰실 배, 저희가 정성을 들여서 만들고 있습니다."
"용접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접붙이고 있습니다. 품질은 절대 걱정마십시오."
초대형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 일괄수주는 국내 조선업에 엄청난 활력을 쏟아 부었다.
지금 조선업계는 하수영이 혼자서 멱살 잡고 입에 캐비아 절임 소고기를 퍼넣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컨테이너선 인도가 마무리되어도, 끝이 아니다.
반수성 금속처리 덕분에 지금 해외에서 선주사들이 앞을 다투어 선박을 발주했다.
거의 10년치 일감 이상이 쌓여 있는 수준.
또 배 건조가 아니더라도, 반수성 금속을 선체에 입히기 위한 보강 주문도 쏟아지는 중이었다.
선박 반수성 금속 처리는 오로지 한국에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이제 불황이란 단어를 영원히 잊어버려도 좋은 수준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군.'
조 위드너는 한국에서 하수영이 갖는 인기가 예상을 초월한 것에 놀랐다.
이쯤 되면 농부는 부업이고, 멀티기간산업 자본가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회장님의 인기가 예상 이상으로 드높군요. 나중에 대통령도 무난히 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한 달 안에도 할 수는 있습니다."
"하하, 그렇겠지요. 회장님이 결심만 하신다면 복심을 청와대에 넣는 것은 일도 아닐 겁니다."
조 위드너는 비유적으로 말뜻을 받아들였다.
액면가 그대로 한 달 안에도 할 수 있다는 의미라는 것은 몰랐다.
선거 연령 제한 기타 등등 일체의 조건과는 상관없이.
조 위드너는 하수영이 참 독특한 자본가라는 인상을 굳혔다.
'식량, 정유, 반도체 파운드리, 관광, 철강, 건설, 해상교량, 스마트폰, 병원, 그리고 금융까지…….'
하수영은 농업에만 진심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가 농업 외에 다른 사업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정보는 없었다.
큰 가닥만 잡아주고, 밑의 사람들에게 휘리릭 던져서 맡긴다.
진출 자체도 어쩌다 보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이뤄진 경우가 대부분.
'지금 하수영 회장이 가진 기반은 군수산업의 밑거름이다. 만약 이 사람이 진심으로 군수산업에 도전장을 내민다면?'
3년 만에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이뤘다.
어쩌면 정말 전 세계 군수업체들을 긴장에 떨게 할 죽음의 상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미래를 상상하니, 괜히 체온이 내려앉고 식은땀이 솟는 거 같다.
"아, 이게 수영목장산 소고기로군요. 정말 너무 맛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프리미엄 상품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양이 적긴 하지만요. 목장 규모가 갖춰지면 본격적으로 유통을 할 겁니다."
하수영은 한껏 미소로 덧붙였다.
"러시아에서도 제한 없이 목장용 땅을 빌려준다고 해서, 더 많은 소를 키울 수 있을 거 같아요."
"……."
"농산물과 달리 축산물은 아무래도 면적의 제한이 크더라고요. 가축들이 벼와 밀도 아니고, 좁은 곳에 빽빽하게 갖춰서 키울 수만은 없잖아요."
'우리 미국 축산 농가들… 괜찮을까?'
먹거리에 대한 무세금 정책.
훗날 미 정부의 가장 큰 패착이라는 평판을 받는 것은 아니겠지?
수영목장의 고기 맛을 보고 나니 괜히 그런 걱정이 짙어진다.
***
하수영은 며칠 동안 조 위드너를 데리고 관광을 시켜 주었다.
자신의 사업체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일정이 빠듯했다.
그동안 조 위드너는 여러 번 바짝 긴장의 끈을 조여야 했다.
무인농장, 고기 맛, 양식장, 과수원, 수영조리용수 등등.
"미국 가져가셔서 이거 드세요. 체력 회복에 아주 좋습니다."
하수영이 건넨 것은 유리병에 담긴 농축액이었다.
"이게 무엇입니까?"
"수영홍삼액입니다. 시판되지는 않고, 시험 삼아 만들어 봤어요. 체력 회복에 아주 그만입니다."
"오, 저 같은 사업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동봉한 티스푼으로 하루에 한 컵만 드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나중에 효과 보고 미국 기업계에 리뷰 좀 잘 해주세요."
"당연히 그렇게 해드려야지요."
미 정부의 세금도 전했겠다, VIP 고객과 친분도 쌓았겠다.
조 위드너는 이제 슬슬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조 부사장님. 제가 마침 생각난 부탁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독도 해상 플래폼에 붙여놓은 크루즈 선박 기억하시죠?"
"물론입니다. 바다 위의 그런 아름다운 크루즈 호텔을 어찌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원래 3호 병원선으로 쓰려고 샀던 배인데, 해상 펜션 준공 전까지 잠시 펜션으로 쓰는 거예요. 관광객들이 숙박하기가 마땅치 않다고 해서요."
"들었습니다. 기억납니다."
괜히 크루즈선, 병원선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리라.
조 위드너는 머릿속을 스치는 날카로운 감을 예리하게 다듬었다.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더군요."
"무슨 문제입니까?"
"연료 문제입니다."
"……."
"수영조명에서 금방 해결해 줄 줄 알았는데, 수영조명만 마냥 기다릴 수 없겠더라고요."
"설마 핵융합 엔진을 달려고 하셨던 건가요? 그건 절대 1, 2년 만에 실용화가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조 위드너는 속으로 조금 놀랐다.
핵융합 투자, 먼 미래를 내다본 장기 플랜이 아니었어?
당장 3호 병원선에 달려고 했단 말이야?
"그래서 급한 대로 항모용 원자로라도 달고 싶은데, 설치 가능합니까?"
"항모용 원자로를요?"
갑자기 미국 출발하기 전, 마누라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셋탑박스 너무 구형이라 케이블사에 전화해서 신형으로 바꿔달라고 했어.
목소리톤이 너무 닮았다.
하수영은 지금 원자로를, 케이블사에 전화만 하면 기사가 들고 오는 셋탑박스처럼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