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90화
196장 자유무역은 좋은 것이다 (1)
해상 수송관.
하수영이 러시아에 꽂은 빨대.
여기에 다시 빨대를 꽂기 위해 지자체는 부지런히 움직였다.
파이프는 강원도 고성을 통해 경기도 동부까지 진입한 다음, 전라도와 경상도를 향해 2갈래로 나뉘어서 남하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구체적으로 어느 경로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각 지자체가 취할 수 있는 세수가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어서 파이프 길이가 총 1,000㎞이고 통과 수수료로 1억 달러를 준다고 칩시다. 우리 지역을 지나는 파이프가 100km 정도로 가정하고, 그럼 1억 달러의 1/10의 수입에 대해서 우리가 지방세를 과세할 수 있을 겁니다."
"넓게 보면 일종의 토지임대료 같은 거군요."
"그렇죠. 유지보수는 물론 에너지 공단에서 할 테니, 지자체는 가만히 앉아서 세수만 받아먹으면 되는 겁니다."
"파이프 루트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지자체 수입이 달라지겠는데요."
최소 수십 년 동안은 가만히 앉아서 들어오는 세수입이다.
이런 걸 눈뜨고 가만히 놓치면, 주민들로부터 탄핵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강원도가 너무 유리한데. 시작부터 강원도부터 찍고 들어오니까."
"경기도는 아무래도 지나가는 루트가 짧아서 불리하군. 경쟁에 크게 관심이 없을 수도 있겠어."
"충청도와 경북이 박 터지겠는데. 남진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극과 극으로 나뉠 수가 있잖아."
"전라도로 내려가는 파이프는 어차피 무조건 충청도를 지나게 돼 있으니까, 부산, 경남으로 가는 파이프는 경북에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지자체는 물론, 여의도에서도 육상파이프 경로를 어떻게 잡을지 연일 논의하느라 바빴다.
"지금 LNG 발전이 각광받고 있어. 안 그래도 내년에는 가스 발전이 원자력 제치고 1위를 찍을지도 모를 추세인데."
"그 정도야?"
"석탄이나 원자력과 달리 오염물질 배출이 거의 없거든. 수력, 태양광처럼 지역이나 시간대에 제한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나라에서 지열이나 풍력을 수는 없으니."
"LNG 발전이 그래도 오염물질 어느 정도 나오는 걸로 아는데? 원자력이 더 깨끗하지 않아?"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보다 위험하고 더러운 배출물질은 이 세상에 없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
실제로 정부에서는 LNG 발전을 장려하는 정책 사업 변경을 고려 중이었다.
당장 원전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석탄 발전 점유율을 가스로 대체하는 게 그나마 나았다.
-총공사는 프라임건설이 전적으로 맡는다.
-해상파이프가 고성에 들어오는 것, 경기도 인근에서 양갈래로 갈라 진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
-파이프의 소유권 주체는?
보통 이런 건 국유물이 되는 게 맞다.
하지만 수송관 연결에서 정부가 기여한 것은 전혀 없는 상황.
그리고 수영그룹의 심사가 뒤틀리면 모두 없던 것이 되고 만다.
당장 물에 뜨는 금속처리는 수영그룹의 고유재산이었으니까.
산자부에서는 파이프 권리를 놓고 이도공과 물밑협상에 들어갔다.
"당연히 우리 수영그룹의 재산이지요. 일단 600㎞짜리 티타늄 해상 파이프를 놓을 예산이라도 만들 수 있습니까?"
"……현실적으로 무리입니다."
"결국 우리 그룹 돈을 들여서 짓는 수송관입니다. 그런데 소유권 의논을 하고 싶다니요? 이해할 수가 없는 논리전개로군요."
소유권은 하수영에게로.
이도공은 이 점을 분명하게 못 박고 지나갔다.
"공사비 지원? 당연히 해주셔야죠. 공사로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이 나라 기업과 국가가 아닙니까? 그런데 공사비 지원을 안 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겁니까?"
"물론 해야지요. 다만 현실적으로 금액 부분에서는 타협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허허, 무조건 쥐어짜 내서 지원해 주셔야죠.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게 누굽니까?"
"그거야 당연히 하수영 회장님 아닙니까?"
이도공은 실소를 머금은 채 산자부실무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정부죠, 정부."
"……."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것은 바로 정부다, 이 말입니다. 한 달 생활비로만 수십조 원을 쓰는 존재 아닙니까?"
"아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뭔가……."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저번에 청담 스코프 양산을 위해서 지금까지 국비로 투자한 것만 40조 원입니다. 사실 지금 정부 예산은 여유가 없습니다. 너무 수영그룹에만 몰아줄 수는 없어요."
"그럼 천천히 하시죠. 해상 파이프를 굳이 당장 짓지 않아도 사실 저희는 상관없습니다."
"아니, 그건 아니잖습니까."
산자부 실무진은 내내 대화에서 밀리기만 했다.
목이 마른 자가 우물이 간절하다고, 지금 수송관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정부였기에.
실무팀도 알고 있었다.
이도공은 좋은 조건을 받기 위해서 마음 놓고 배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정말로 이 사업을 하지 않거나, 지연시킬 생각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총사업권을 미리 선수 친것이겠지.
다만 정부가 한없이 약한 입장이라는 것을 알고, 사정없이 빈틈을 찌르고 있는 것뿐.
야속한 것은 정부를 도와야 할 서해건설과 중앙건설이 뒷짐을 진 채 지켜보기만 한다는 것이다.
하청을 따낸 두 기업은 정부가 삥을 뜯기면 뜯길수록 좋으니까.
"총공사비의 절반을 지원해 주십시오."
"절반이나 말입니까!"
제주도 해상다리도 국가에서 그렇게 많이 지원하지는 않았었다.
"이건 제주도 다리와는 전혀 달라요. 이 나라 전체에 가스와 원유를 공급할 대동맥을 넓히는 작업입니다. 정부에서도 사활을 걸고 뛰어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
"공사비가 부족하면 저희로서도 공기가 지연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고 계시면 좋겠습니다."
협상은 이도공의 뜻대로 차근차근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
조 위드너.
포드항모 제조사의 부사장이 한국에 들어와서 하수영을 찾았다.
"한국에 대한 핵잠수함 2척 제공에는 저도 한 팔 거들었습니다."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 시민으로서 감사합니다."
"조만간 입항하는데, 한 번 타보시겠습니까?"
"그럼요. 당연히 타봐야지요. 제 얼굴 때문에 들어온 녀석들인데 안 타면 안 되지요."
조 위드너는 은근한 표정으로 말했다.
"원래 우리 미국의 대전략은 더 이상의 핵잠수함 제공을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나요?"
"네, 실제로 10년 이상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어느 동맹국에도 핵잠수함관련 인프라는 일절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외란 없습니다. 아니, 없었습니다."
"흠, 그런데 이번에 기술을 주신 것은 아니지 않나요? 제가 듣기로는 그냥 반영구 임대라고 한 거 같은데요."
빌려만 주는 것이다.
핵잠수함에 사용된 기술은 볼트 하나 만드는 것조차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핵잠수함에는 감시 겸해서 미군 2인이 상시 탑승하기로 되어 있었다.(당연히 교대제)
"실제 운용에서 오는 기술적 이해 증가와 훈련 경험은 핵잠수함 건조에 필요한 무형 자산이 될 수 있죠. 그것조차도 주지 않는다는 게 원래 미국의 대전략이었습니다."
"저 때문이군요."
"네, 맞습니다. 회장님 때문입니다."
조 위드너는 웃음기를 완전히 지우고 말했다.
"만약 러시아에서 핵잠수함을 들여 올 생각이 있으시다면, 우리 미국산을 우선시해 달라는 부탁이기도 합니다."
"저는 군사력 증강에 관심 없습니다. 포드 항모도 어차피 군용으로 못 쓸 거, 병원선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구매를 한 거였죠."
"……그 포드 항모가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속력을 내고 있어서 미 해군이 땅을 치고 있죠. 한국 판매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고장 난 척 한 거 아니냐는, 야당의 질책도 받았습니다."
"에이, 순풍과 해류 한 번 잘 타서 속도 잘 나온 거 가지고 그러면 안되죠. 그 야당 의원도 참 속이 좁네요."
포드 항모 병원선은 지정 해역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항공기와 헬기를 이용해서 환자들을 입원시키고, 퇴원시키고를 반복할 뿐이다.
"그리고 군사력 증강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하셨지요?"
"거짓말 같아요?"
"아니요, 진심이란 걸 알고 있습니다."
"흠?"
"그게 더 무서운 겁니다."
조 위드너는 굳은 표정을 지우고 대신 씁쓸한 웃음기를 머금었다.
"군사력 증강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그저 멋지고 쓸 만하다는 충동만으로 핵잠을 구매할 만한 인물이기에, 더 무서운 겁니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쇼핑하는 이는 그렇게 무섭지 않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은데 그냥 멋지다는 이유만으로 사 모으는 이는 무섭다.
어디로 튈지 전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막말로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서, 러시아에 '이제부터 핵잠수함 전단을 꾸려 보려고 한다'라고 통보라도 한다면?
더 이상의 핵잠수함 확장은 없다는 게 미국의 대원칙이지만.
그런 탐스러운 과실을 러시아가 전부 처먹게 놔두는 것은 용납 못 한다.
"일종의 시식품 같은 겁니다. 우리 미제 핵잠수함이 얼마나 멋지고 편리하고 성능이 뛰어난지 기억해 달라는…… 그러니 너무 부담 가지실 것은 없습니다."
"부담 가진 적 없는데요?"
"그러실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베글턴 대장님이 오신다는 걸 극구 말리고 제가 직접 온 겁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 접대 감성으로 접근하는 게 나을 테니까.
"그리고 동해에 나타났던 잠수함은……."
조 위드너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자, 하수영은 그럴 것 없다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일본 배인지 미군 배인지 상관없습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더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쓴웃음이 나왔다.
하수영이 곧바로 러시아로 간 것은, 잠수함의 몰래 정찰에 대한 경고 차원이다.
백악관은 그렇게 해석하고 었다.
'너희 기분 나쁘게 내 해상 펜션주변에서 잠수함으로 얼쩡거리더라? 똑바로 관리 안 할래?'
라는 의도였겠지.
핵잠수함 2척 제공은 한국 정부에 주는 당근이지, 하수영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선물 배달.
바로 조 위드너가 한국을 찾은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다.
'러시아가 약속한 것들은 아마도 송유관, 가스관, 목장, 농장 부지, 세금 면제…….'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
하지만 정확한 선물 목록은 오직 하수영과 부틴 대통령만 알고 있으리라.
전문가들은 정말 다양한 선물들을 추천했다.
누가 봐도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대단한 것들.
서진파운드리 공장산 반도체 제품에 대한 혜택 같은 것은 기본 옵션이었다.
그러나 조 위드너는 나노소프트의 조언을 추천했고, 대통령은 그걸 선택했다.
"수영농장이 모든 미국 지역에 수출하는 전체 농축수산물에 관해 무세금 혜택을 드리겠습니다."
"무관세가 아니라 무세금이군요."
"예, 그렇습니다. 세금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그 어떤 것도 붙이지 않겠습니다. 미가공이든, 가공이든 말입니다."
하수영은 잠시 말이 없이, 조용히 차를 마시기만 했다.
조 위드너는 묵묵히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이윽고 하수영이 차분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조만간 테라리움 2.0이 가동합니다. 원통형 고밀도 집적무인농장이지요. 그 생산력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조 위드너는 불현듯 언젠가 미국의 이 결정을 후회할 것 같다는 예감을 받았다.
하지만 상관없다.
식량 쪽은 자신의 비즈니스와는 무관하다.
지금은 메신저로서의 역할에 충실 해야 할 때.
"미국은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습니다."
"독도 펜션을 스토킹한 잠수함은 이제부터 제 머릿속에서 영원히 없는 겁니다."
하수영 농축수산물 완전 무세금.
잠수함이 독도 펜션을 위협한 것은 이제 그만 잊어달라는 선물.
조 위드너는 하수영과 힘차게 악수를 나눴다.
미션 클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