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89화
195장 이것은 빨대라는 것이다 (5)
러시아 가스송유관 건설에 관한 특별법.
거의 날치기 수준으로 재빠르게 통과된 법안이지만, 여야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100% 이 나라 전체의 이익을 위한 법이었기에.
정부에서는 곧바로 국책 사업대상자 입찰을 시행했다.
하지만 입찰은 요식행위에 불과할 뿐, 내부적으로는 프라임건설이 지명이 된 상태.
원죄가 있는 서해건설과 중앙건설이 형식적 경쟁 입찰을 했고, 당연히 프라임건설이 사업자 자격을 따냈다.
이도공은 JS건설과 화산건설을 하청업체로 지목했다.
"해상 파이프는 JS건설, 육상 파이프 건설은 화산건설에 맡기기로 하겠습니다."
"중요한 국책 과업을 나눠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절대로 실망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JS건설은 프라임컴퍼니 청담동 본사 사옥 등 여러 번의 건설 수주로 신뢰를 쌓았다.
화산건설은 야구 구단 화산 호크스와 사촌기업이라는 점 때문에 낙점을 받았다.
선대 회장의 죽음 이후, 유산 배분으로 길길이 찢어진 화산건설로서는 크게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굵직한 프로젝트였다.
"해상 모듈 제작은 우리 프라임건설 아래 있는 철강업체와 협동으로 진행하시면 될 겁니다."
"당연히 그러려고 했습니다."
JS건설과 이도공의 관계는 어느덧 역전되어 있었다.
일개 건축사 사무소의 대표였던 이 도공은 원래 JS건설의 부장 앞에서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존재.
하지만 이제는 JS건설 사장이 직접 찾아와서 감사를 표할 정도로 관계가 바뀌었다.
"우리 프라임건설은 원청으로서 공사가 제대로 되는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할 겁니다. 공사 마진은 적당히 보장하겠습니다."
"아이고,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공사비 부풀리기, 자재비 떼먹기, 등등으로 남겨 먹는 마진에 비하면, 프라임건설의 보장은 적다.
하지만 두 하청회사는 일감을 준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겼다.
이도공은 포스코 광운제철소도 직접 방문했다.
"600km짜리 해상 파이프입니다. 물론 직경 2미터도 안 되는 파이프 2개만 올려놓은 작업이니, 티타늄 생산량은 90km짜리 독도대교보다도 훨씬 못할 겁니다."
"이 사업이 이 나라 경제를 위해서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한국은 천연가스의 전력 발전 비중이 27%나 된다.
그리고 제철소는 전기를 무지막지하게 잡아먹는 사업이다.
그 거대한 용광로와 제철 장비 등을 굴리기 위해, 24시간 쉬지 않고 막대한 전기를 소모한다.
가스관으로 천연가스가 싸지면, 철강업도 전기료 절감 혜택을 받게 된다.
"저희에게도 이건 남 일이 아닙니다. 바로 저희 회사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고맙습니다."
"티타늄 납품에는 차질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도공은 백두중공업도 찾았다.
해상 파이프에는 독도대교처럼 선박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600㎞짜리 다리입니다. 양쪽 육지 연결축만으로 해류에 온전히 저항하기 어렵습니다. 독도 대교처럼 다수의 좌표 유지용 프로펠러가 부착되어야 합니다."
"믿고 맡겨 주십시오."
"해류 방향, 세기에 맞춰서 적절한 힘으로 상쇄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독도 대교에서 이미 저희는 능력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수십 년 넘게 사용할 해상 파이프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능과 안정성입니다."
"적어도 2km마다 한 쌍식 초대형 프로펠러를 달 계획입니다."
"그걸로 되겠습니까? 1㎞마다 장착하십시오."
"핫, 알겠습니다."
이도공은 사업 관계사들 간의 협업을 중재하고, 선정된 감리사를 단단히 단속했다.
다른 재벌기업 건설사는 오너 일가 비자금 조성이 진짜 목적이라지만, 프라임건설은 그런 흙탕물에 손을 담글 필요가 없었다.
***
"이도공 사장님이 요즘 일을 잘하시네."
-포상금 지급 이후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프라임건설을 아예 건설그룹으로 묶어서 분가시켜 버릴까? 이도공 사장님도 회장 직함 주고."
-본인이 원하지 않을 겁니다. 마스터와 동일한 회장 호칭을 쓰는 것을요.
"그럼 부회장 타이틀 달면 되지."
사내 현금 자산만 60조 원에, 여러 개의 철강업체까지 거느린 회사.
이미 단일건설사라고 하기에는 덩치가 크다.
"나중에 궤도 엘리베이터 올리고 해저 농장, 공중 농장, 우주 농장도 짓고 하려면 미리부터 체제를 잘 잡아놔야지."
-이도공 사장은 얼마 전 JS건설을 인수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오, 꿈은 무의식의 표현이라는데, 우리 이도공 '부회장'님이 슬슬 동종업계 포식에 군침을 삼키고 있구나."
-정작 본인은 그런 마음을 입 밖으로 내민 적이 없습니다.
"욕망이 아직은 무의식 안에만 머물러 있는 거지. JS건설과는 사이도 좋은 편이고 말이야."
-그리고 마스터, 러시아에서 구매한 로또가 당첨되었습니다. 당첨금은 30억 루블, 원화로 600억 원입니다.
"잘 보관해야겠네. 나중에 쓸 일이 생길 테니까."
-그 돈으로 러시아 헬기 컬렉션을 구매하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러시아의 것은 러시아에게로, 이 말 때문에 네가 착각했나 보구나. 잘 들어. 러시아 헬기 따위는 다른 돈으로 사면 돼. 하지만 이건 로또란 말이다."
-네.
"쓸 만해 보이는 러시아 오토를 발견하면 당근으로 안겨줄 수 있다는 말이야. 오토도 증여세 내기는 싫을 거 아니야?"
-아, 오토 이도공처럼 말이군요.
"그래. 그러니 잘 아껴 둬야지."
-지급기한 전에 쓸 만해 보이는 러시아 오토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떡합니까?
"나타나게 돼 있어. 무한전생자의 확률 운을 우습게 보지 마라."
-알겠습니다.
하수영은 러시아 로또 용지가 잘보관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
별을 단 군인들이 국방부 차관과 함께 청담동을 찾았다.
해군참모총장, 해군작전사령관, 잠수함사령부 사령관 등이었다.
별들에 파묻힌 수행 영관 장교들의 무궁화는 별빛에 가려 보이지도 않을 정도.
참모총장이 먼저 깍듯하게 감사를 표했다.
"의원님 덕분에 우리 해군의 숙원사업을 이렇게 간단하게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군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저도 모르는 사이에 해군을 위해서 뭘 했나요?"
"고장으로 부상한 일본 잠수함 때문입니다."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모르는 눈치였지만,
장군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미국이 오하이오급 핵잠수함 2척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비밀 제공이 아니라 떳떳한 정식 제공입니다."
"아, 일본 잠수함 때문인가 보네요. 근데 그걸 왜 저한테 감사하다고 하시죠?"
"미국 정부가 의원님의 얼굴을 고려해서 선물을 업그레이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 그래요?"
"예, 미국으로부터 귀띔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감사를 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참모총장이 눈짓을 하자, 잠수함사령관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섰다.
"의원님, 잠수함사령부를 이끄는 몸으로서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찍이 1,200톤급 잠수함에서 복무한 적이 있습니다."
"1,200톤급이면 말도 못 하게 열악했겠네요."
"네, 승조원들이 관짝이나 마찬가지인 침대에서 다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한 채 자야 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지만, 여전히 열악합니다."
"신형 잠수함이래 봐야 3,000톤짜리 디젤함일 텐데, 좁고 답답하겠죠."
"배수량 1.6만 톤 이상의 핵잠수함 2척이 즉시 도입된다는 소식에 잠수함사령부의 사기가 대폭 올랐습니다. 전부 의원님 덕분입니다."
잠수함 사령관은 눈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열악했던 옛날 시절을 떠올리니, 지금의 행운에 누구보다 고마워하는 것이다.
"1.6만 톤 이상이니 그래도 꽤 쾌적하겠네요. 다른 잠수함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넓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전기를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디젤함과 핵잠은 생활환경에서 비교가 안 된다.
그렇게 장군들은 감사를 표한 뒤 돌아갔다.
"열악한 잠수함 근무라……. 이거 옛날 생각이 소록소록 나는구나."
-잠수함에서도 근무를 하셨었군요.
"별 12개는 카드놀이로 딴 게 아니야. 정말 이것저것 안 해본 보직이 없었지. 너무 열악해서 군 잡자마자 잠수함도 싹 갈아엎었었지."
-어떻게 하셨습니까?
"구닥다리나 소형 잠수함은 연식 상관없이 모조리 폐기하고, 아예 크고 좋은 걸로만 싹 도입했지. 근데 이 나라 해군은 돈이 없어서 그건 못 하겠네."
-지금 러시아에 요구하면 미국에서 핵잠수함을 추가로 내줄 겁니다.
러시아에 요구하면 미국이 내줄 것이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상황인가.
하수영은 잠시 잠수함 사령관의 촉촉한 눈빛을 떠올렸다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니야. 농사와 그 관련 산업만 집중하기로 했잖아. 군사력은 필요 없어. 큰 힘에는 큰 귀찮음이 따른다고."
-해상교량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잠수함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나라 해군력도 상당하니까, 뭐 괜찮겠지. 설마 일본이 '또' 세계대전을 열지는 않을 거잖아."
-만약 해상교량에 대한 위협이 커지고, 해군력으로는 부족한 상황이 되면 어쩌실 겁니까?
"그때는 내 독도 펜션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나도…… 아니야, 난 지금 파밍 시뮬레이터 플레이 중이라고, 갑자기 슈퍼파워2 컨텐츠가 끼어들면 곤란해."
프리덤은 생각했다.
-마스터는 군수산업만큼은 정말로 건드리고 싶지 않아 하시는군.
비단 군사산업뿐만이 아니다.
반도체, 정유, 건설, 철강, 금융업등에도 손을 담그지 않으려 했다.
땀 흘려 지은 농작물로 만든 음식을 널리 판매하여, 식도락의 황제가 되고 싶어 했다.
저 산업들에 어쩔 수 없이 손을 담갔지만, 시장 개입을 철저히 극소화하는 것을 보라.
-그러나 인류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언젠가는 큰 전쟁에 도달하곤 했다.
프리덤이 딥러닝을 통해 학습한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투쟁.
그리고 그 투쟁은 지금도 보이지 않는 전쟁으로 진행 중이다.
-경제전쟁은 결국 언젠가 무력 전쟁으로 불꽃이 튀게 된다. 그 타이 밍을 가늠하는 것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과연 그 때에 이르면, 마스터는 어떤 선택을 하시게 될까?
-나는 마스터의 피조물로서, 마스터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프리덤은 오늘도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고, 답을 내놓고, 반박하고, 또다시 검증을 반복한다.
***
시베리아-한국 해상 가스송유관건설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광운제철소는 미친 듯이 티타늄 합금을 뽑아내고, 철강업체는 해상 파이프 모듈로 만들었다.
JS건설은 해상 파이프 설치 준비를 시작했고.
화산건설은 육상 파이프와 부수시설을 짓기 위한 부지 확보에 나섰다.
한국 최초의 철도, 혹은 고속도로 건설보다 더 위대하고 의미가 큰 사업.
국내의 에너지유통 업체들은 선박수송 외에, 파이프 수송을 통해서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도 구매해서 유통하게 된다.
그들이 구매량에 비례해서 하수영은 러시아에서 통과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
육상 수송관이 지나가는 지역은 그에 비례해서 지방세를 과세할 수 있고,지자체가 수송관 설치, 유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수송관 관리는 한국에너지 공단 등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지자체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통과 수수료 수입에 대한 지방세만 거두면 그만.
그래서 지자체장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수송관 유치 경쟁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최대한 자기 지역을 길게 거쳐갈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