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86화
195장 이것은 빨대라는 것이다 (2)
부틴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놀라워하고 있었다.
해상 가스수송파이프,
울릉도와 독도를 잇는 그 해상교량을 보고도 아무도, 그런 생각을 안했다니?
생각해 보면 아주 간단한 발상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다들 '다리'라는 고정관념에만 사로잡혀 있던 터라, 해상 가스관이라는 발상까지 닿지 못한 것이다.
"가스관은 8차선 도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간단하죠. 자재도 많이 필요 없고, 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습니다."
"600㎞짜리 해상 가스관 하나만 놓으면 그만이니 말이오."
"150, 90㎞짜리 다리 2개 놓는 데도 그렇게 시간 많이 안 걸렸습니다. 600㎞라고 해봐야 뭐 지금부터 착공하면 올해 안에는 무조건 끝나겠는데요."
"가스관 높이는 적어도 80미터 이상은 되어야 하오. 그래야 대형 선박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소."
"차량 수백, 수천 대 지나다니는 다리에 비하면 깃털이죠."
교량의 경우, 상판과 하판을 연결하는 수많은 지지 기둥이 필요하다.
또한 부상력을 위해서 물에 닿는 하판이 아주 넓어야 한다.
그래서 교량은 100미터 구간 안에도 수없이 많은 지지 기둥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며 하중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가스관은 그럴 필요가 없다.
교량이 버텨야 하는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가볍기 때문이다.
지지 기둥의 숫자, 하판의 수면 접촉 면적을 훨씬 많이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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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내려다봤을 때, 저런 형태만 되어도 충분한 것이다.
넘어지지만 않게 중심 설계만 제대로 하면 된다.
"반수성 금속을 이용한 해상구조물은 육상 구조물에 비해서 시간이 훨씬 빠릅니다. 땅을 파낼 필요 없이, 필요 모듈을 조립해서 그냥 띄워서 연결만 하면 되니까요."
"잘하면 해상 가스관 자체는 정말 몇 달 안에 완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장담합니다. 육상 가스관이 오히려 훨씬 더 시간이 걸릴 겁니다."
둘은 어느덧 보드카를 병째로 들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마시고 있었다.
부틴은 조금도 취기가 오르지 않는 하수영의 반응을 보고 껄껄 웃었다.
"사나이로군, 사나이야. 보드카를 그렇게 마시고도 안색 하나 변하지 않다니."
"그건 대통령도 마찬가지죠."
"해상 가스관 계획이 발표되면 세상이 깜짝 놀랄 거요."
그리고 러시아는 천연가스 시장에서 우뚝 일어설 수 있겠지.
러시아에 가장 부족한 것은 지하자 원이 아니었다.
지하자원을 해외에 원활하게 판매할 수 있는 운송 수단이었다.
"하는 김에 송유관도 같이 묶어서 놓으면 훨씬 좋을 겁니다. 건설비도 절감되고요."
"아, 그거 좋군. 하는 김에 같이 하면 훨씬 좋겠소."
그리하여 보드카 4병을 함께 비우는 동안, 두 사람은 러시아-한국 해상가스송유관을 짓기로 약속했다.
"우리 러시아에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해 보시오. 들어줄 수 있는 거라면 들어주겠소."
부틴은 내심 쿠즈네초프 항공모함을 기대했다.
미국처럼 운영관리는 러시아가 모두 실행한다면, 돈 걱정 없이 차세대 항모를 도입할 수 있게 된다.
"러시아에서 생선을 좀 팔고 싶은데요."
"……생선이라. 너무 작은 사이즈라서 당황스럽소만."
"원래 러시아에 생선 팔러 왔으니까요."
"그건 너무 우리에게만 좋은 조건인데. 알다시피 우리 러시아도 요즘 생선 품귀 때문에 국민들의 불만이 자자하오."
생선 구하기 힘든 마당에, 수영양식이 직접 진출하겠다면 러시아로서는 두 팔 벌려 환영이다.
일방적으로 러시아만 좋은 거래, 하지만 부틴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원하는 게 없소?"
우리에게도 미국 못지않은 크고 아름답고 강력한 무기들이 있다고!!
쿠즈네초프 항공모함을 병원선으로 도색해서 끌고 다니면 얼마나 멋있을지, 궁금하지도 않아?
바다 사나이라면 누구든지 가슴이 거세게 쿵쾅거릴 거란 말이다!
"음, 글쎄요. 생선 수출하고 가스관말고는 생각을 따로 한 게 없어서요."
"생선수출에 관해서는 면세 혜택을 주겠소.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시오."
"글쎄요. 딱히……."
"……."
"제가 본업이 농사이다 보니까 물과 햇빛만 있으면 풍족해서, 뭐가 특별히 아쉽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네요."
"귀하는 대형 제철소도 갖고 있다고 들었소. 시베리아의 철광산이나 티타늄 광산은 어떻소? 개발권을 줄수 있소만."
"제철소…… 근데 그건 독도 대교 놓으려고 급히 지분만 산 거라 별로 신경은 안 써서요. 나중에 정리할까……."
"광활한 농지가 필요하지 않소? 한국은 땅이 좁아서 농사짓기에 문제가 있을 거요. 귀하 같은 최고의 농부가 넓은 농지마저 갖는다면, 팟디서플라이나 카길이 합쳐도 이기지 못할 거요."
"아, 농지. 그건 탐나네요. 땅은 진짜 어디 가서 구할 수가 없어서 답답했는데."
"그렇소?"
부틴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저는 이제 땅에 연연하지 않는 농부이지만, 제 주변의 농부들은 아직 그렇지 않죠. 울릉도 수영양식장처럼, 러시아의 수영농장이 될 수도 있겠어요."
하수영이 직접 진출하는 게 아니라, 그의 영향력 아래 있는 젊은 농부들이 진출한다?
약간 아쉽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괜찮다.
"귀하는 미국에 육류 수출도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소. 우리 러시아에는 수출 의향이 없소?"
"미국 수출은 예비 연습입니다. 아직은 목장을 갖추는 중이죠. 일단 소 100만 두는 갖춰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유통을 시작할 수 있을 거 같군요."
"러시아는 땅이 아주 넓소. 소 100만 마리가 아니라 1억 마리도 얼마든지 쾌적하게 키울 수 있소."
"그러네요. 러시아에 농장 만들면 좋겠네요."
"농지, 농장, 내륙 양식장, 땅이 필요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말하시오. 원하는 만큼 무상으로 내어주겠소."
하수영이라는 거농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만으로도 러시아는 이익이다.
가스관, 송유관 개설과는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아직 부틴이 원하는 요구사항은 나오지 않았다.
"동해에서 걸린 일본 잠수함이 미국이 제공한 핵잠수함이라는 것은 아시오?"
"대충 들었습니다. 뭐, 두 나라끼리 합의가 있었겠지요."
"한국도 엄연한 미국의 동맹인데, 정치인으로서 화가 나지 않으시오?"
"저는 중앙정치 무대가 아니라 마을 민생을 챙기는 기초정치인이라서요."
"큰 정치 무대에 마음이 있다면, 러시아가 일본 잠수함 문제를 도와줄 수 있소."
핵잠수함을 제공해 줄 수도 있다.
부틴은 그런 의사를 넌지시 비쳤지만, 하수영의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 밖에도 부틴은 이런저런 다양한 미끼를 던지며 하수영을 떠보았다.
그리고 분명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알려진 것과 달리, 이 사람은 오직 농업에만 진심이다.'
빌딩을 수집하는 것은 음식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이고, 해상대교를 놓은 것은 해상 음식점을 갖고 싶어서이며, 제철소 지분인수는 그 수단일 뿐.
정치 활동도 마찬가지.
이제껏 알려진 하수영의 여러 가지 사업들은, 결국 농사를 방해받지 않고 잘 짓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부틴은 오히려 마음이 한결 느긋해졌다.
'탐욕에 미친 자본가와는 거리가 멀군.'
그러니 수영사채, 그 막강한 무기를 쥐고도 금융 시장에서 별반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리라.
그는 러시아의 독재자였다.
러시아 전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다.
그래서 국가기간자원을 탐내는 자본가들을 극도로 혐오했다.
러시아인이든, 외국인이든 간에.
하지만 하수영은 생산물을 팔 생각에만 관심이 있을 뿐, 러시아의 자원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그가 팔려는 생산물(특히 생선)은, 러시아 입장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극동송유관 완공을 서둘러야겠어.'
블라디보스토크 동쪽의 나홋카 지역.
해상가스송유관이 추가되면, 극동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곧바로 기름과 가스를 수돗물처럼 보낼 수 있게 된다.
'나홋카에서 일본으로도 해상 파이프를 연결하면 좋겠지만.'
그러나 부틴은 그 이야기는 일절꺼내지 않았다.
일본이 하수영한테 잘한 게 하나도 없는데, 뭐하러 일본 유리한 이야기를 꺼내겠는가.
다음 날.
부틴 대통령은 하수영과 함께 사냥을 가기로 했다.
일부러 사냥을 공식 일정으로 잡아서, 외부에도 공표를 했다.
정보 수집이 늦는 국가에도, 하수영이 귀빈 자격으로 모스크바에 머무르고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다.
'우리가 이렇게 친하다.'
라는 것을 대외에 과시한다는 목적도 있었다.
"오, 저기 순록이 있군요. 뿔이 아주 멋진 놈인데요?"
"망원경도 안 쓰고 그게 보인단 말이오?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첫 사냥감은 제가 먼저 잡겠습니다, 대통령님."
하수영은 호쾌하게 사냥용 라이플을 조준하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조준에서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말 그대로 총구를 겨누자마자 곧바로 당겨 버린 수준.
저렇게 해서야 맞기는커녕, 스칠 리도 없다.
"명중입니다!"
쌍안경으로 확인한 수행 경호원이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부틴은 놀란 눈으로 하수영을 돌아봤다.
"이 거리에서 그런 즉석 사격이 가능하단 말이오?"
"이 정도야 우습죠. 아, 저기 한 마리가 더 보입니다."
이번에도 부틴 대통령은 눈을 부릅뜨고 봤으나, 장애물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수영은 다시 조준하자마자 방아쇠를 당겼고, 경호원은 이번에도 명중을 외쳤다.
"놀라운 사격 실력이오. 저격수로서 정말 완벽한 재능을 가지고 있군요."
"제가 한 것은 사격이 아닙니다."
"사격이 아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이오?"
"확률 게임이죠. 사격이란 행위에 확률을 끼얹은 겁니다. 저는 총알을 날린 게 아니라, 카드를 뒤집어 명중이 나오게 한 거죠."
부틴은 실소를 지었다.
"사격 실력에 대한 겸양을 그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군요. 누가 뭐라 해도 하수영 의원, 귀하는 뛰어난 사격 선수요."
친분을 과시하기 위한 공식 일정.
당연히 여러 가지 장면도 다양하게 연출했고, 사진도 많이 찍었다.
둘은 순록의 뿔을 투구처럼 각자 머리에 올리고 활짝 웃는 사진도 찍었다.
또 부틴이 가죽을 벗기고, 하수영이 토막을 내며 같이 야외 요리를 하는 모습도 선보였다.
하수영은 엘릭서 고춧가루를 꺼냈다.
부틴은 관심을 보였다.
"그건 특제 향신료라도 되는 거요?"
"네, 미국 수영레스토랑에서도 이 수영향신료가 들어가지요. 어떤 요리든지 깊고 좋은 맛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하수영은 불에 구워지는 순록 고기에 수영향신료를 아낌없이 뿌렸다.
부틴 대통령과 경호대는 맛을 보고 저마다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천상의 맛이로군! 숙성도 하지 않은 순록 스테이크가 이렇게 맛있어지다니!"
"원래 야외에서 바로 먹는 순록 스테이크는 아주 맛있죠. 하지만 이 수영향신료를 뿌림으로써 혹시 있을지 모를 약점까지 지워진 겁니다."
부틴 대통령은 갈망을 느꼈다.
국적, 인종, 나이를 아득히 초월해서, 그와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은 갈증.
그것은 대통령 부틴이 아닌, 인간 부틴으로서 느끼는 욕망이었다.
"아!"
그 순간 하수영이 뭔가 생각난 듯이 탄성을 내질렀고, 부틴 대통령이 얼른 물었다.
"무슨 좋은 생각이라도 난 거요?"
"제가 투자하고 출연하는 영화가 속편이 확정됐는데요. 꽤 괜찮은 블록버스터입니다. 1편보다 더 화려한 전쟁씬, 전투씬을 넣고 싶은데 혹시 러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부틴은 주저 없이 말했다.
"전투기, T전차, 항모함대를 포함한 러시아군의 모든 병력이 촬영을 도울 거요."
"이런, 그러면 출연료가 꽤 비싸겠는데요?"
"걱정하지 마시오. 우정 출연이니까. 하하하!"
부틴의 마음속에서 통합군 합동훈련 계획이 살포시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