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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차이즈 갓-784화 (784/1,270)

프랜차이즈 갓 784화

194장 나는 생선장수다 (4)

"모스크바의 공기는 여전하구나."

하수영은 공항에 내리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는 큼직한 배낭을 등에 짊어진채, 태연히 공항을 벗어났다.

"그런데 아무도 마중을 안 나왔네."

주위를 둘러보아도 평소처럼 한산하다.

자신을 향해 눈길을 주는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간혹 그런 눈길이 있긴 했지만, 모스크바 관광을 온 동양인을 한 번 슬쩍 보는 의미 정도뿐.

-주인님, 모스크바에 저 말고 다른 루트로 미리 연락을 하셨습니까?

"그럴 리가. 귀찮게 뭐 하러 널 두고 내가 직접하겠어?"

-그럼 당연히 아무도 마중을 나오지 않는 게 정상 아닙니까? 혹시 모스크바에 지인이나 인맥이 있습니까?

"옛날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졌어."

-그럼 마중을 안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야, 그건 아니지. 이 내가 이 시국에 떡 하니 모스크바에 왔으면, 당연히 버선발로 마중을 나와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 겁니까?

"우리 러시아 불곰 친구들이 아직 국제식량난이 피부로 와닿지가 않은가 봐."

-러시아는 밀 수출량으로 미국과 앞뒤를 다투는 농업강국입니다.

"야, 사람이 밀가루만 먹고 사냐? 맥주도 먹고 채소도 먹고 고기도 먹고 생선도 먹어야지."

-그건 그렇습니다.

"아니, 그나저나 이것들이 진짜 정말 마중 안 나온 거야?"

하수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폈다.

"우리 크렘린 궁의 주인께서 내가 러시아에 들어왔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단순 관광이라 생각하고 무심하게 넘기는 걸 수도 있습니다.

"미국이 몰래 일본에 제공한 핵잠수함이 꼬리지느러미 불량으로 동해에 부상해서, 한국과 일본이 대치 중인 이 상황에서 내가 러시아를 방문했어. 이걸 단순 관광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냐?"

-그렇다면 혹시 간을 보기 위해서 일단 지켜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음, 그럴 수도."

그러자 하수영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리고 만약 정말 단순 관광이라고 생각을 했어도!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나한테 빅딜을 걸어와야지. 하수영님, 우리에게도 생선을 팔아 주십시오, 하고 말이야."

-생선 팔러 온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생선 파는 게 제일 중요하지. 다른 건 부수적인 거고."

-…….

"원래 빅딜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거래는 별 거 아닌 것처럼 살짝 끼워 넣는 게 의외로 성공 가능성이 높…… 으차!"

그 순간 하수영은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뒤에서 몰래 가방을 낚아채려던 남자의 손목을 움켜쥐고 비틀었다.

"끄아아악!"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고, 하수영은 가볍게 땅바닥에 내동댕이친 후, 남자의 얼굴을 바닥에 거칠게 문질렀다.

살갖이 갈릴 정도로,

퍽!

커다란 돌덩이가 얼굴 옆을 내리찍으며 부서지는 소리에, 남자는 제압당한 채 사색이 되었다.

쾌활한 억양의 러시아어가 남자의 귀를 파고들었다.

"안녕, 강도 친구? 지금부터 이 돌덩이를 우리 친구 입에 쑤셔줄 거예요. 저런, 이빨을 새로 해넣으려면 귀찮겠지?"

"흐, 흐으윽……."

"그런데 나는 관대하단 말이야. 그냥 임플란트 비용으로 퉁 치자고, 강도 친구."

남자는 하수영이 이곳저곳을 뒤져서 현금을 빼가는 손길을 느꼈다.

기가 막힌 것은, 자신이 몸 여기저기에 숨겨놓은 현금을 귀신같이 단번에 찾아냈다는 것이다.

"10만 9,800루블이네. 무서운 치과를 안 가는 걸 감사히 여기라구, 친구. 사람 보는 눈도 좀 키우고."

돈을 챙긴 하수영이 풀어주자 강도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도는 험악한 눈으로 하수영을 노려보며, 품에 손을 넣었다.

하수영은 태연히 웃었다.

"칼 들면 이길 거 같애?"

"……."

"경찰 온다. 가라."

점심 메뉴를 고르는 듯한 태연한 눈빛.

묘한 압도감에 짓눌린 강도는 주춤주춤하더니, 결국 등을 돌려 후다닥 달아났다.

그제야 뒤늦게 러시아 경찰들이 달려와서 질문했다.

"무슨 일이오? 왜 거리에서 싸우는 겁니까?"

"저 강도 친구가 내 배낭을 뺏으려고 해서 제압했더니, 두 분을 보고 도망치네요."

"강도란 말입니까? 저런, 조심하쇼."

"러시아에서 동양인이 그런 큰 배낭을 메고 혼자 다니는 건 제발 날 좀 털어달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요. 으슥한 곳은 절대 가지 말고."

"그런데 러시아어를 정말 잘하는군. 러시아에 오래 살았소?"

"오래 살았으면 더 잘 알겠네."

한두 번이 아닌지 경찰들은 그렇게 훈계하고는 자리를 떴다.

하수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

"뭐지? 강도까지 나타났는데 정말 아무도 안 보이네?"

나 진짜 러시아에서 지금 홀대받고 있는 건가?

"이야, 이거 자존심 상하네. 이렇게 된 거 러시아 국고에 화풀이 좀 해야겠다."

-주인님, 어디 가십니까?

"러시아 로또 사러 간다."

-…….

그리고 하수영은 상점을 들러서 러시아 로또를 구매했다.

***

"……."

"……."

비밀리에 하수영을 지켜보던 해외정보국 요원들은 할 말을 잃었다.

"러시아에 처음 온 거 맞아?"

"출입국 기록으로는 분명히 처음인데……."

"처음인데 저렇게 자연스러워? 마치 모스크바에서 몇십 년은 살았던 사람 같은데?"

"하지만 분명히 러시아 입국은 처음이라고."

"지금 발음 들었어? 음성만 들으면 러시아 토박이인 줄 알 거야."

"영어, 중국어, 일본어도 원어민 수준으로 잘한다고 하던데, 러시어까지 능통할 줄이야."

"독일어, 프랑스어도 능숙한 거 아니야?"

"설마…… 언어 전문가도 아니고 농업 기업가가 그렇게 많은 언어에 능통하다는 게 말이 되나?"

"지금 보고 있네. 그 말이 안 되는거."

원래 강도가 슬금슬금 접근할 때, 그들은 즉시 잠복형사인 척 개입하려고 했다.

(강도를 의도적으로 배치한 건 아니다)

하지만 하수영은 가볍게 강도를 제압하고는, 오히려 강도가 가진 현금을 역으로 털었다.

그렇게 턴 현금으로 러시아 로또와 복권들을 구매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느긋하게 모스크바를 관광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미녀를 상대로 헌팅까지 했다.

몇 번 퇴짜를 맞아도 능글맞게 다음 미녀를 상대로 재차 헌팅을 시도 했다.

"감도가 안 좋아서 잘 안 들리는데."

"근데 지금 헌팅하는 거 맞긴 한가?"

"그런 거 같은데? 아니면 뭐하러 예쁜 여자만 골라서 말을 걸어?"

"여자를 밝힌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이건 좀 뜻밖의 수확인데?"

"책임지는 만남은 꺼려 하는 편일수도, 가볍게 즐기는 관계를 선호하는 걸 수도 있어. 더군다나 여기서는 한국과 달리 대부분 저 사람을 모르잖아?"

물론 현실은 러시아 요원들의 상상과 동떨어져 있었다.

"안녕, 거기 예쁜 여성분, 혹시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할 말이 있어야 해요?"

"없으면 됐어요. 예쁘게 생겨서 나한테 할 말이 있는 줄 알았죠."

"그게 무슨 뜻이에요?"

"지금 스패츠나츠가 저를 미행하고 있거든요. 예쁘게 생겨서 요원인 줄 알았죠."

"아까 나 말고도 벌써 세 명한테 말 거는 거 봤는데, 이런 식으로 작업 치면 안 비웃던가요? 너무 성의가 없는데."

"작업이 아니라 정말 날 따라다니는 러시아 요원인 줄 알고 물어본 거예요."

금발의 미녀는 기가 막히다는 듯이 깔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진짜 어처구니없네. 어이가 없어. 이거 혹시 작업의 역발상 아이디어, 뭐 그런 거예요?"

"진짜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좋아요. 오랜만에 신선하네. 같이 차 정도는 마셔줄 수 있어요. 따라와요."

"오, 역시. 스패츠나츠 요원이었군요. 내가 바로 알아봤다니까. 통찰안따위 없어도 돼."

금발의 미녀는 정말 어이가 없다는듯이 또다시 크게 웃고는 앞장서서 안내했다.

둘은 야외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티타임을 가졌다.

"로마노프라고 해요.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어요."

"하수영이에요. 러시아에는 생선을 팔려고 왔어요."

"생선? 생선장수예요?"

"네, 맞아요. 겸사겸사 빅딜도 하나 살짝 끼워 넣고요."

"웬 빅딜? 아하."

로마노프는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명함을 꺼내 손가락 사이에 끼워서 슬쩍 보여주었다.

"이게 갖고 싶어요?"

"러시아가 애간장 타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우리 빨리 진행합시다."

"동양계로 보이는데 러시아어를 굉장히 잘하네요? 러시아 출생이에요?"

"이번 생은 러시아 처음 와봤는데요."

"거짓말. 근데 자꾸 보다 보니 얼굴이 마음에 들어요. 귀엽고 자상할 거 같은데."

그때였다.

검은 세단 여러 대가 줄을 지어 달려와서 끽 멈췄다.

시가를 문 남자가 차에서 내리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이 우르르 내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마피아 일당, 근처에 있던 손님들은 흠칫해서 고개를 돌리고 멀어졌다.

그들이 다가오자 로마노프는 뻣뻣하게 굳었고, 하수영은 그런 반응에 의아했다.

'마피아로 위장한 경쟁 정보기관인가?'

정보기관이 여럿일 테니, 저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친구냐?"

"예! 보스! 저놈이! 저놈이 제 하루 수익을 모두 털어갔습니다!"

"따라와. 안 그럼 이 아리따운 아가씨가 위험해질 거다. 네놈도 사내라면……."

하수영은 아까 자신한테 털렸던 남자를 잠시 바라보다가 픽 웃음을 지었다.

"그럼 그렇지. 도착하자마자 강도가 덮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역시 간보기 미팅, 내 그럴 줄 알았다. KGB 클리셰는 시간이 지나도 어디 가질 않네."

"클리…… 뭐라고요?"

"로마노프, 그럼 난 잠시 '다른 입찰자'를 만나고 올게요. 로마노프도 여기서 천천히 좋은 빅딜을 생각하고 있어요."

순간 로마노프는 깨달았다.

자신이 손에 끼고 있던 명함이 어느새 하수영한테 넘어간 것을.

"조금 있다가 봅시다, 로마노프 요원."

"……."

"자, 당신들도 갑시다. 어디서 왔어요? 연방보안국? 정보총국? 해외정보국?"

마피아 두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개방된 거리라는 점을 고려해서 일단 꾹 참았다.

***

"젠장! 지원 요청해! 우리만으로는 무리야!"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아니, 왜 느닷없이 전개가 이렇게 되는 거냐고?"

"세르토비아 놈들인 거 같다! 빨리 구출해야 돼! 자칫 잘못되면 큰일이야!"

어떻게 보고를 해야 할까?

관찰 대상이 강도를 역으로 강탈해 뺏은 현금으로 복권을 사고, 남은 돈으로 근사한 금발 미녀를 꼬셔서 차를 마시다가, 그 강도가 데려온 마피아 조직이 하수영을 끌고 갔다고?

"마피아 중간보스가 시비가 붙어서 관찰 대상을 끌고 갔습니다! 서둘러 지원을 보내 주십시오!"

-알았다. 대기 중인 특수부대를 바로 보내겠다.

거리를 두고 대기하던 특수부대 지원팀이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달려 왔다.

마피아 일당이 들어간 아지트, 중형 규모의 비즈니스호텔은 순식간에 포위되었다.

특수부대는 곧바로 문을 부수고 뛰어들며 사방으로 총구를 겨누었다.

"꼼짝 마라! 우리는 러시아 연방군대테러부대…… 뭐야?"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피아 일당은 한 명도 남김없이 쓰러져서 신음하고 있었다.

일반 호텔 직원들은 저마다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로비 중심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던 하수영이 천천히 그들을 돌아보았다.

해외정보국 이반 요원은, 무채색의 눈동자를 보고 저도 모르게 숨을 죄였다.

"대테러부대는 무슨, 이놈들하고 같은 패거리인 거 다 안다. 총 내려라. 코발트 홍차에 뒈지고 싶지 않으면……."

"해외정보국 요원입니다. 수영그룹하수영 회장님께서 입국했다는 정보를 늦게 입수하고 부랴부랴 경호를 위해 달려왔습니다!"

이반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외쳤다.

원래 이 타이밍에 정체를 밝히는 건 계획에 없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무기물에 가깝던 하수영의 얼굴에 순식간에 환한 미소가 깃들었다.

"아니, 이제 오시면 어떡합니까?"

"죄송합니다. 워낙 조용히 입국하셔서 정보 입수가 너무 늦었습니다."

"선전포고 외교문서보다 폭격기가 먼저 도착하던 그 스피드는 대체 어디로 간 거예요? 한참 기다렸잖아요."

"예?"

"원래 러시아하면 말보다 주먹이 빨리 도착해야 하는데, 이렇게 늦을 줄은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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