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83화
194장 나는 생선장수다 (3)
개망신이었다.
프로펠러 파손으로 어쩔 수 없이 동해 위로 부상한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
굴욕적인 일이었으나, 자체 항행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이상 위로 부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통신 심도까지만 올라와서 해상자위대 본부에 구조 요청을 보냈다.
당연히 한국 해군도 통신파를 감청, 위치를 알아냈다.
거리상으로 도저히 해상자위대 구조함은 한국 해군보다 빨리 올 수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빨리 해역에 도착한 것은 청담수영병원 닥터헬기였다.
-구조 신호를 받고 왔다. 혹 귀 함정 안에 중환자가 있는가?
닥터헬기한테 구조신호까지 잡히고, 위치까지 발각당한 함장 이하장교들은 그저 할복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거리상으로 한국 해군이 해상자위대보다 좀 더 빨리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민간 닥터헬기가 가장 빨리 현장에 오다니?
-다시 묻겠다. 귀 함정 내부에 중 환자가 있는가?
-……없다.
-확실한가?
-확실하다.
-그럼 다른 도움은 필요 없는가?
-민간 구조헬기의 도움은 필요 없다. 감사하지만 복귀해 달라.
그러나 닥터헬기는 복귀하지 않고 계속해서 상공을 맴돌았다.
어느덧 한국 해군 함정 3척이 접근해서 잠수함 주변을 포위하듯이 에워쌌다.
뒤늦게 해상자위대 함정들이 도착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은 때였다.
선임 함장은 이를 바드득 갈았다.
"멍청한 놈! 차라리 깨끗하게 자폭해서 황국신민의 명예를 지킬 것이지! 조센징의 바다에서 멍청하게 배를 고장 내고, 또 아등바등 살겠다고 수면 위로 부상을 해?"
"야마다함은 해상자위대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어찌 한국 해군한테 위치를 드러내는 치욕을 범한단 말입니까!"
"못난 놈, 존재 자체가 기밀인 해상자위대의 최신 잠수함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드러내다니……."
한국 해군은 빈틈없이 잠수함 야마다를 포위하고 있었다.
선임 함장은 골치가 아파 왔다.
무력시위로 압박을 하자니, 하필이 해역에서 부상한 잠수함 때문에 명분이 없다.
***
한편 한국 해군 분위기는 심각했다.
"타이게이급 잠수함은 아닙니다. 배수량이 얼핏 봐도 8천 톤 이상은 되어 보입니다."
해상자위대의 가장 최신 잠수함은 3천 톤급.
하지만 저 잠수함은 그보다 훨씬 크다.
"아무리 봐도 디젤잠수함은 아닙니다. 핵추진 잠수함입니다."
"……."
디젤 잠수함은 크기에 한계가 있다.
8천 톤급 잠수함이 디젤잠수함이라고 박박 우기면 지나가던 참치도 안믿을 것이다.
저 정도 크기는 무조건 원자력 잠수함이라고 봐야 한다.
"저놈이 울릉도 해역에서 대체 뭘하고 있었던 거지?"
"독도 대교를 감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음……."
"어쩌면 수중에서 증거 없이 파괴한다는 시나리오 훈련 중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설마."
"해자위라면 그러고도 남습니다. 일본 눈에는 울릉, 독도 대교는 눈엣가시입니다."
"그래도 한일해상대교를 염두에 두느라고 지금껏 조용하지 않았나?"
"그래도 독도대교 가상파괴 작계는 이미 해자위 내부 훈련에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해자위 입장에서는 언제든 독도 대교는 파괴할 가능성이 높은 목표물.
훈련을 위해 몰래 잠입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잠수함으로 수중파괴를 시도한다면 어차피 잡아떼기도 좋다.
일본 입장에서는 충분히 숙련을 시켜둬야 할 작계훈련인 셈.
'정말 해상교량 수중파괴를 대비한 훈련 중이었단 말인가?'
물론 진지하게 당장 다리를 파괴하려는 게 아니라, 언젠가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연습을 하고 있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군사훈련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서는 매우, 아주 기분이 나쁘다.
"이 거지같은 새끼들이 감히 여기가 어느 해역이라고……! 함포장!"
"예, 함장님!"
"녀석들이 조금이라도 도발하면 우리도 즉각 응대한다! 무조건 다섯배다! 다섯 배 이상으로 돌려준다! 알았나!"
"알겠습니다!"
***
퀸 스텔리온 조종실.
미군 파일럿들은 대치 중인 한일군함들 사이에서 호버링하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기장님, 본부 명령입니다. 현재 위치 고수하고 정보수집 하랍니다. 아무래도 한일 간에 우발적인 교전을 억제하라는 의도 같습니다."
"아니, 우리는 민간 헬기라고, 우리가 왜 이런 일에 나서야 해?"
"민간 헬기이지만 우리 소속은 여전히 미군이죠. 이 사랑스러운 퀸은 우리 미군의 통제하에 있고요."
"만약 하수영 이사장이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리면 즉각 철수한다."
"하, 하지만……."
"하수영 이사장이 내린 민간 운용 명령은 다른 무엇보다 우선한다. 그게 내가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정식으로 받은 명령이야."
달리 말하면, 하수영의 명령을 뒤집을 수 있는 것은 주한미군 사령관 이상이어야 한다.
"아! 하수영 이사장님 연락입니다!"
부기장은 조마조마한 안색이었다.
만약 하수영이 철수하라고 지시하면, 상부의 명령과 모순된다.
어느 쪽을 따르든지 간에 자신에게는 부담스럽다.
미군의 통제하에 있는 민간 헬기라는 특수한 경우가 이런 상황을 낳은 것이다.
차라리 위에서 교통정리를 제대로 해서 명령을 내려주면 좋을 텐데.
-이사장입니다. 피탄에 안 휩쓸리게 안전거리 유지하고 지켜보세요.
"네?"
-교전이 벌어지면 환자가 발생할 수도 있을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그 빈약한 수상함에 있는 의료시설 보다는 우리 닥터헬기가 낫지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를 환자 발생을 위해서 안전한 위치에서 대기하겠습니다."
-근데 일본 잠수함에 관해서 혹시 아시는 거 있나요?
"……그건 제가 발설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정도만 해도 고마워요.
부담스러운 통화가 끝나고, 기장은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그는 원거리 카메라에 찍힌 일본 잠수함을 주의 깊게 바라봤다.
"이 잠수함,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아?"
"참을 수 없는 미국 공장의 냄새가 납니다."
"크기로 보면 디젤함은 아닌데, 설마 미 정부가 일본이 핵추진 잠수함을 만들도록 허용했을 리는 없을 테고"
대여. 혹은 양도.
두 파일럿들의 머릿속에는 그런 단어가 동시에 떠올랐다.
그 이상은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위험하다.
***
-속보입니다! 오늘 오후 5시경, 독도대교 해상 플래폼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잠수함이 부상했습니다.
-프로펠러 파손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긴급부상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지금 이 순간에도 실시간 진행중입니다!
-현재 잠수함을 두고, 한일 전투함이 서로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한일 정부 간에 물밑교섭이 시끄럽게 오가고 있겠죠? 정부는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까요?
-전 그것보다 일본 잠수함의 의도를 파헤치고 싶습니다. 부상한 해역이 마음에 걸리는군요. 노리는 것은 독도였을까요, 독도 해상플래폼이었을까요?
-그간 일본 정부는 독도 해상플래폼에 관해서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습니다. 한일해상교량 개설 때문에 입단속을 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었는데요.
-물밑에서는 해상대교 파괴 시나리오를 꾸준히 훈련하고 있다는 것이, 이렇게 만천하에 밝혀지게 되었군요.
-어쩌면 한일해상대교 개설이 거절당하면, 동해의 두 대교를 협박의미끼로 삼겠다는 교활한 시나리오일수도 있습니다.
-잠수함에 의해 독도대교가 부분파손당하면, 사실 우리로서는 일본이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어렵죠.
-일본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두 대교 가상 파괴 시나리오를 훈련하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론이 시끄럽게 달아올랐다.
한일전이라면 가위바위보도 질 수 없는 게 대한민국 사람.
국민들은 잠수함을 체포해서 끌고 와야 한다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감히 독도 해상플래폼을 노리는 훈련을 했다는 것 자체를 용서하지 못했다.
이런 분위기이다 보니, 한국 정부는 섣불리 기울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조용히 잠수함을 건네주었다가는 국민들이 청와대에 불을 질러 버릴 듯한 분위기였던 것이다.
독도 해상플래폼은 이미 국민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관광 명소였다.
해상플래폼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자존심이자, 언제나 마음 아픈 먼 영토인 독도의 동반자.
그곳까지 단번에 이어지는, 세계 최초의 해상다리를 놓았다는 자부심!
자존심이자, 사랑이자, 자랑이자, 보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히 그것을 위협해?
몰래 잠수함으로 파괴하는 작전을 연습해?
한국인이라면 분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
한일 외교부는 물밑에서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양쪽 모두 이 피곤한 상황을 서둘러 종식시키고 싶다는 것에는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공통점에 도달했다.
"하수영 의원만이 지금의 이 상황을 무난하게 중재할 수 있다."
오직 하수영만이 부드럽게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으리라.
그래서 먼저 한국 외교부가 하수영을 은밀하게 찾아갔다.
하지만 하수영은 자리에 없었다.
"의원님은 지금 학교에 계실 텐데요?"
그래서 학교에 갔지만, 로봇 하수영 외에는 보지 못했다는 대답만 들었다.
로봇 하수영을 찾아갔지만, 가동을 중지하고 충전 중이었다.
"지금 포천 과수원에서 조리용수공장 살피고 있다고 들은 거 같습니다."
다시 포천 과수원을 찾아갔지만, 그곳에도 하수영은 없었다.
"실시간 SNS 보니까, 의원님 지금 청담동 클럽 마르스에 있는 거 같은데요?"
그래서 다시 클럽 마르스(구 핀익스)를 찾아갔지만, 클럽 사장 와트니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조금 전에 일어나셨는데, 10분만 더 빨리 오셨으면 됐을 텐데요."
"혹시 어디 가셨는지 들으셨습니까?"
"지인 여자분 만나러 간다고 '흘리라고' 들었습니다."
"……흘리라고, 라고 하셨나요?"
"어서 가세요. 지금 영업개시 준비해야 됩니다."
그렇게 꼬박 하루 동안 하수영을 찾아다녔지만, 결국 외교부는 그를 찾지 못했다.
달리 말하자면, 하루 동안 잠수함을 놓고 한일 전투함들이 대치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
외교부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그 시각, 하수영은 공항에서 최우석의 배웅을 받는 중이었다.
"그 잠수함, 미국이 일본에 제공한 것이라고?"
"네, 임대는 판매든 간에요."
"어찌 그리 확신하나? 일본이 만들었을 수도 있지 않나?"
"핵추진 잠수함을 몰래 만들었다가는 미국이 손찌검을 내줬을 겁니다.
직접 만들도록 허락해 주지도 않았을 테고요."
"허허, 참…… 대체 왜 그런 거지?"
"워싱턴은 일본과 친한 인사들이 많죠.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애초에 국제사회에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나라는 없어요."
"그래도 난 조금 충격일세. 차라리 일본이 미국 몰래 만든 거라고 믿고 싶구먼."
"저한테 포드 항모를 2척이나 팔았으니, 일본을 달래줄 마음에 그랬을 수도 있지요. 전 그냥 너그럽게 생각하렵니다. 물론 일본이 아니라 미국한테 말입니다."
하수영은 느긋한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저는 관대합니다."
"잘 다녀오게. 러시아 미녀한테 너무 푹 빠지지는 말고."
***
하수영의 출국, 그리고 러시아 입국.
정보를 입수한 워싱턴 정가가 뒤집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