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76화 (776/1,270)

프랜차이즈 갓 776화

193장 그 오토의 각성 (2)

제주도 KTX는 무조건 우리가 먹는다.

아니, 이 나라의 모든 해상교량은 당연히 우리가 먹는다.

'일단 먹고 힘 부족하다 싶으면 하청에 재하청을 주는 한이 있더라도, 원청은 무조건 우리가 먹는다.'

'우리가 먹지 못하면, 제주도 너희도 KTX를 가질 수 없어.'

'가질 수 없다면 차라리 백지로 놔둔다.'

'제주도 KTX를 무사히 성공시키면 이번엔 또 무엇을 보너스로 주실까?'

한 번 마음을 크게 먹으니, 그간 프라임건설이 해왔던 사업의 족적이 다르게 보인다.

세후 20억이라는 로또 보너스 덕분도 있고, 오늘은 백두템플 사장을 만나는 자리였다.

백두템플은 기관차 및 철도차량 제조업이 주종목인 방산업체였다.

국내 최초의 상용화 자기부상열차도 백두템플에서 완료한 것이다.

"서울 동해 자기부상열차는 백두템플에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합작 사업으로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안윤우 사장은 오너 일원이 아닌, 가신 그룹.

자기 그룹 생활이 걸린 대사업이다 보니, 단어 하나하나까지 민감하게 반응했다.

"저희가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대전 수영조명 사옥 건설에, 서울동해 고속도로에, 독도 해상 펜션에 추가로 해상교량 건설도 해야 합니다."

'회사 규모에 비해서 벌인 사업들이 너무 크고 굵직하긴 하네.'

물론 안윤우 사장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믿고 전부 맡기겠습니다. 대신 감리와 감독은 철저히 할 겁니다. 아마 상당히 고달프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거야 '하청'이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일감을 주신 것만 해도 감지덕지 아니겠습니까?"

백두템플은 열차와 플랜트 제작 업체.

그 긴 구간을 직접 파고, 터널을 뚫고 하는 등의 토목은 하지 않는다.

안윤우는 그 일을 맡길 만한 재하청 건설업체 후보들을 머릿속에 주르륵 떠올렸다.

"건설업이라는 게 원래 이리저리 빼먹기 좋은 사업입니다만……."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100원 한 장까지 모두 낱낱이 밝히겠습니다."

안윤우는 정색을 하고 다짐했다.

백진택으로부터 신신당부를 받았다.

절대로 VIP 고객사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비용 절감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중요한 건 돈이 아닙니다. 안전과 품질, 그리고 시간입니다."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귀 그룹에서 백두중공업에 주문하신 메가 컨테이너선 100척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우리 쪽에서 일단 총괄 감독급으로 한 명을 붙일 건데, 조금 상대하기 까탈스러운 친구입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이도공은 안윤우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이도공은 곧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동훈아. 박동훈, 목소리 좋고 잘생긴 우리 박 구조기술사님."

-……갑자기 뭐하는 짓이냐?

"우리가 이번에 자기부상열차 짓기로 한 거 알지?"

-알지. 그게 왜?

"백두템플에 하청 주기로 결정했는 데, 박 구조기술사님이 감독을 좀 해줬으면 좋겠어."

-따로 감리사를 쓰지 않고?

"우리 박 구조기술사님만큼 믿을만한 사람이 없지."

-알았어. 일감 주면 우리야 좋지. 그거 그럼 우리 사무실에서 맡을게. 백두템플하고는 계약서 찍은 거지?

"그래."

-그나저나 제주도 KTX는 어떻게 되는 거냐? 5대 메이저 건설사에 맡길 거라고 여기저기 말이 많던데.

"국토부에서 누가 돈 좀 먹었나 보지. 아마 한둘이 아닐걸?"

-저번에 만났다던 과장은?

"그 사람은 그냥 메신저야. 내부 결정 난 대로 입만 나불나불거리는. 메신저와 무슨 이야기를 해."

-관료들이 다 그렇지. 정치권에도 돈 좀 먹이지 않았을까?

"우리도 여차하면 회장님 카드 쓰면 된다."

-든든해서 좋겠다.

***

KTX사업 입찰이 시작되었다.

입찰장에 나타난 이도공 일행을 보고 주변에서 조용히 수군거렸다.

서해건설(현재는 물산 건설사업부), 라테건설, 중앙건설.

톱5 안에 드는 대형 메이저 건설사 중에서 셋이 이미 모여 있었다.

다들 당황한 눈치였다.

'프라임건설이 여기는 왜?'

'모듈 제작만 맡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니, 일 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위장용 참가인가? 입찰조차 안 하면 너무 이상하니까 명분 세우기 용으로…….'

이도공은 그들의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입찰을 개시하기 전, 이도공은 그들을 향해 어슬렁어슬렁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어서 와요, 이도공 대표님."

"이거, 우리 건설의 신흥강자께서 오셨군요."

"울릉대교, 독도대교는 저도 가봤습니다. 정말 감탄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모듈 하나하나가 아주 견고하고 굳건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모듈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넌 다른 생각하지 말고 다리 모듈이나 만들어라, 라는 의미가 담긴 표현이었다.

이도공도 그걸 모르지 않았다.

"건설이 뭐 철강을 다루겠습니까? 우리가 직접 만든 게 아니고 자회사에서 만들었습니다. 철강업체를 몇 개 인수했거든요."

"오, 이제 본격적인 건설그룹으로 거듭나는 겁니까?"

"그럼 조만간 회장 타이틀을 달 수도 있겠어요."

"미리 축하합니다, 이도공 회장님."

"수영그룹에서 회장님 직함은 오직 한 명만 쓰실 수 있죠. 안 그래도 이번 사업에서 회장님께 당부를 받은 게 있었, 아, 이걸 말하는 건 좀 그런가?"

그러자 다들 눈빛을 빛내며 달려들었다.

"뭡니까? 살짝만 귀띔해 줘요."

"말실수 같진 않고, 우리더러 물어보라고 슬쩍 흘린 거 같은데 선수끼리 이러지 맙시다."

"우리도 어차피 다 똑같이 월급 받고 오너가 시키는 대로 일하는 처지입니다."

적어도 그 부분만큼은, 이들이 한 치도 거짓 없이 드러낸 속마음이었다.

"우리 회장님이 가볍게 설렁설렁 사업하시는 거 같아도, 연륜에 비해서 사업의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보십니다. 인간의 욕심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시죠."

"그렇지요."

"그런 분이니까 3년도 안 돼서 그런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지 않았겠습니까?"

"원래 사업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게 농사라고 합디다. 그걸로 그룹을 이루신 분이니, 다른 부분에서도 통달하셨겠지요. 하하."

이도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울릉도, 독도야 회장님 당신의 로망이 있으셔서 사비를 들여 손해 보면서까지 다리를 놨습니다. 하지만 제주도에는 아무것도 없으시죠."

제주도 양식업자들이 하수영의 영향력 아래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기반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하다.

"부산-제주도 KTX 해상철교 국책사업, 말이 국책이지, 정부에서 사업비를 얼마나 제대로 챙겨주겠습니까?"

"으음, 그건 그렇지요."

"그래도 대충 1,500억 이상은 남길수 있게 배려를 할 생각인 거 같은데……."

공식적인 마진이 그렇고, 당연히 여기저기서 빼먹어서 비공식 마진을 더욱 남겨 먹는 게 관례.

"철저히 돈만 보라고 하시더군요."

"돈만 보라……."

"으음……."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살짝 맥까지 빠지는 말이었다.

하수영이 이도공에게 그 점을 당부 했다고?

돈도 돈이지만, 상징성을 더 크게 보고 달려들었던 건설사들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언젠가 이어질 한일국제해상교량사업 참가를 위해 지금부터 경험을 쌓아둬야 한다.'

'한일교량은 최소 수십 조 이상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될 것이다. 철로, 화물차 전용도로, 일반차 전용도로까지 다 합치면 선로, 차로가 수십개는 넘어갈 것이다.'

'사업비는 걱정할 것 없다. 일본 정부에서 전부 부담해서라도 지으려고 할 테니까."

부산-제주도 KTX는 미래를 내다 본 경험 쌓기였다.

규슈 땅 전체 정도는(영토 할양이 아니다) 내줘야 다리를 지어주겠다는 하수영의 내심을 모르는, 속 편한 생각이었다.

"그럼 성공적인 입찰을 빕니다. 우리 각자 건승합시다."

"그래요, 잘되길 빌겠습니다."

"좋은 결과 있을 겁니다."

넷 중에 승리자는 오직 한 명뿐.

그런 관계에서 상대의 승리를 빌어 준다는 것은, 얼마나 공허한 헛울림인지.

입찰이 진행되었다.

국토부 관계자가 나와서 사업 설명을 하고, 길고 긴 브리핑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입찰희망서류 접수를 받기 시작했다.

모든 입찰 조건은 비공개다.

낙찰자가 써낸 금액만 마지막에 공개할 뿐이다.

가장 낮은 금액을 써냈다고 해서 무조건 입찰이 되지도 않는다.

사업에 대한 세부계획 등이 오히려 금액보다 더 중요했다.

"자, 이제 접수 완료까지 3분 남았습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이도공은 마지막까지 자리에서 꿈 쩍도 하지 않은 것이다.

입찰장에 나왔지만, 참여는 하지 않겠다는 태도가 명백했다.

국토부, 그리고 경쟁 건설사들은 의아했다.

하지만 곧 입가에 미소를 물었다.

'기름칠을 한 보람이 있군.'

'국토부에서 잘 설득을 했나 봐.'

'이러면…….'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

입찰이 끝나고, 2시간의 논의를 거쳐 입찰 결과를 발표하기로 했다.

이례적이라 할 만큼 빠른 진행이었다.

이도공 입장에서는 속이 훤히 보일정도.

"그럼 입찰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례적일 만큼 빠른 발표지만, 그만큼 심사에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었다는 점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발표자는 태연하게 결정문을 읽었다.

"낙찰사는 중앙건설입니다."

"됐다!"

"와!"

중앙건설 쪽에서 환호가 일어났다.

이도공은 조용히 다른 쪽도 살폈다.

낙찰에서 떨어진 서해 건설부, 라테건설은 그다지 안타까워하고 있지 않았다.

조금 아쉬워할 뿐이다.

'담합이군. 누가 됐든 셋 중에 하나가 되면 밀어주기로.'

다른 두 회사도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챙겨 받을 것이다.

차후 여수-제주도 KTX이든, 제주도 고속도로 해상대교이든.

'KTX만 놓고 끝날 게 아니니까 얼마든지 챙겨 먹을 수 있겠지.'

이도공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뻐하는 중앙건설 팀을 향해 다가갔다.

"축하합니다. 어려운 사업인데 결국 따내셨군요."

"고맙습니다. 프라임건설에서도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교량 모듈제작은 프라임건설의 독점 사업이나다름없지 않습니까? 하하."

남의 것을 태연하게 뺏어간 주제에 당연한 듯이 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도공은 속이 전혀 뒤틀리거나,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비즈니스니까.

"물론이죠. 완벽하게 모듈을 만들어드리겠습니다. 사전 미팅을 가볍게라도 갖고 싶은데요."

"아, 그래서 입찰장에 굳이 나오신 거로군요. 전 처음에 철교 건설 입찰을 정말 노리시는 건가 하고 오해 했지 뭡니까?"

다 알고 속을 긁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이 사람도 결국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프라임건설 쪽과는 잘 이야기가 된 거라고 믿으면서도, 막상 입찰장에 나타나니 불안했다가, 이제 다시 마음을 놓은 것일지도.

"티타늄 합금 모듈 단가 말인데요."

일부러 티타늄 합금이라는 단어에 강한 억양을 실었다.

과연 중앙건설 책임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네? 티타늄 합금 모듈이라니요? 일반 고강도 철강에 부식 방지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직접 '철강다리'를 짓는 거라면 안심할 수 있지만, 시공자가 우리가 아니잖습니까. '저렴한' 철강재는 안심이 안 돼서요."

"그건……."

"그런 건 납품 못 합니다. 자칫 부식 방지나 공사에 소홀해서 몇 년 안에 다리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곤란하거든요."

남의 손에 맡겨둬야 하니, 믿을 수 있는 안전장치를 끼얹어야겠다.

"티타늄 합금 모듈로만 납품을 할 겁니다. 이제 가격을 논의해 봅시다."

***

중앙건설은 며칠 후, 사업 자격을 반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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