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70화
191장 범인은 우리 안에 있었다 (1)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약 87km, 현재 만든 모듈은 200㎞의 해상교량을 지을 수 있는 물량.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교량으로 연결하고, 다리 마지막 부분에 큰 휴게소를 만들 겁니다. 그럼 독도 관광이 더 편해지겠죠?"
마음만 먹으면 서울에서 자차를 끌고 바로 독도까지 달릴 수도 있다.
독도 일출과 석양을 훨씬 더 편안히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비교하자면, 서울에서 차끌고 해운대 일출을 보는 것보다 독도 일출 보는 게 더 빠르고 쉬울 겁니다."
"그런……."
"바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 독도를 가본 사람은 의외로 적죠. 왜냐? 매우 불편하니까. 동해시, 포항시에서 울릉도까지 배 타고 간 다음, 다시 또 독도 가는 여객선을 타야 됩니다."
"확실히 독도 관광이 쉬워지면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늘겠어요, 선배님."
"포항 알박기 펀드하고 드잡이질하는 것보다는 이게 더 생산적이죠?"
교수와 학생들은 일제히 감동했다.
그들은 내심 하수영이 알박기 세력을 어떻게 돌파하나 염려했었다.
돈을 보고 달려든 자들은 일단 문것을 쉽게 놓지 않을 것이기에.
포항 패싱도 그들을 견제하기 위한 블러핑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확실하다.'
'포항대교는 정말 끝난 거야. 블러핑 따위가 아니었어.'
'감히 우리 하수영 농민 회장님을 뜯어먹으려 했다니. 어느 세력인지 몰라도 정말 간도 크구나.'
이런 것이야말로 진짜 고급 정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학생과 교수들 앞에서 저녁 메뉴를 말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발설하다니.
하수영에게는 그다지 고급 정보도 아니라는 뜻이리라.
'농대 오길 잘했다.'
신입생들은 입학 첫날부터 자신들의 결정을 흡족하게 생각했다.
[속보! 울릉도-독도 해상대교 지어지다!]
[포항 패싱! 독도까지 교량 연결할것.]
[블러핑이 아니었다? 진짜는 바로 독도대교!]
[서울에서 독도까지 차 한 번으로 갈 수 있다?]
[해운대보다 가깝고 편해지는 독도의 절경!]
기사가 뜨고, 전국은 다시 한번 발칵 뒤집어졌다.
특히 포항은 초악재가 겹친 증권 폐장 직전을 보는 듯한 분위기였다.
포항 정치인들은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 기사의 진위를 확인하려 썼다.
"김 의원님, 이거 어떻게 된 거요? 기사가 사실입니까?"
"그건 모르겠고, 한국대 농대 입학뒤풀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더군요."
"거기서 하수영 의원님이 직접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뒤풀이 자리에 하수영 의원이 내내 눌러앉아 있었다는 것은 확실거 같아요."
"그럼 거의 기정사실 아닙니까!"
"그래도 술에 취해서 그냥 말이 잘못 나온 걸 수도 있으니까……."
"수영리에서 이미 소문이 자자해요! 그 양반, 술을 궤짝으로 들이부어도 안 취한답니다!"
강남구의회는 아예 업무 마비 수준으로 외부 전화가 미친 듯이 걸려왔다.
의회직원들은 왜 머나먼 포항의 문제로 자신들이 업무에 시달려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저희 소관이 아닙니다."
"하수영 의원님이요? 당연히 출근하셨죠."
로봇 하수영이지만, 어쨌든 출근은 출근이다.
조례에서도 원격 업무를 인정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하수영은 원격으로 일하면서 더욱 효율이 높아지고 처리하는 업무량이 늘어났다.
"독도 교량이요?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여기는 강남구의회입니다. 독도 교량은 관할 밖이에요."
"욕설을 사용하셨습니다. 법적 절차 바로 밟겠습니다."
***
청담동 마왕성이라 불리는 하수영의원사무실.
후원회 노인들은 느긋하게 부채질을 하면서 세상의 혼란을 즐기고 있었다.
"독도 교량이라…… 우리는 왜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
"독도 일출과 석양이 정말 멋지지. 태어나서 한 번쯤은 반드시 눈에 새겨둬야 하는 절경 아닌가."
"예전에 한 번 배 타고 본 적 있었는데, 정말 멋지더라고."
"해가 지면서 바다 주변이 새카매지는데 그게 무서우면서도 뭔가 고요한…… 아무튼 설명하기 힘든 그런 울림이 있어."
"뱃멀미로 고생 많이 했는데, 이제는 그런 고생 할 필요 없이 차 끌고 가면 되는 건가?"
"편히 다녀오려면 캠핑카 한 대 장만해야겠는데."
"이참에 우리도 퍼포먼스로 통일하는 게 어때?"
"퍼포먼스 좋지. 나도 얻어 타봤는데 하 의원이 왜 그걸 고집하는지 알겠더라고."
"기왕 할 거면 티타늄 합금으로 주문 제작하자고."
"그래야지."
"말 나온 김에 지금 주문할까? 프리덤, 오늘 안 나온 회원들까지 연락 한 번 돌려봐. 퍼포먼스 공동구매 말이야."
-네, 주인님. 지금 바로 연락하겠습니다.
불과 몇 분이 채 되지 않아서, 모든 후원회 회원들이 공동구매에 찬성했다.
이토록 의사집결이 빨라진 것은, 모두 프리덤 덕분이다.
"진짜 프리덤 덕분에 세상 참 좋아졌어. 예전 같았으면 전화 돌리고, 확인하고, 의견 조율하고, 뭐다 뭐다해서 며칠에서 한 달 넘게도 걸릴 일인데 말이야."
"이제는 공동구매 확인 같은 건 앉은 자리에서 말 한마디 하면 몇 분 안에 끝나니까."
"색상은 우리 검은색으로 통일하자고."
"흰색은 안 되나? 하 의원 흰색 퍼포먼스가 아주 괜찮던데."
"안 돼. 청담동에서 흰색 퍼포먼스를 타고 다닐 수 있는 건 하 의원 뿐이라고."
멀리서 차만 봐도 저게 하수영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그 상징성을 감히 침해할 수는 없었다.
"검정색은 싫은데. 무슨 조폭도 아니고, 검은 캠핑카 수백 대가 줄줄이 다닌다고 한번 생각을 해봐."
"그럼 색은 각자 원하는 대로 결정하고, 일단 주문부터 넣자고."
"그러자고, 프리덤, 독일에 연락해서 주문 좀 넣어라."
-네, 알겠습니다.
***
독일, 캠핑카 퍼포먼스 제조사는 한국에서 온 발주서 때문에 혼란에 빠졌다.
"티타늄 합금 커스터마이징 퍼포먼스 321대 공동주문 요청이라고?"
"네, 사장님."
"이상한 장난 주문은 아닌가?"
"아닌 거 같습니다. 하수영 후원회라는 곳에서 온 주문입니다."
"그 하수영 고객님?"
"네, 맞습니다. 알아보니까 하수영고객님을 정치적으로 후원하는 집단인 모양입니다. 대부분 1억 유로 이상의 자산가들입니다."
사장 및 임원들의 눈빛이 비로소 날카롭게 빛나기 시작했다.
"1억 유로 이상의 자산가들? 그런 자산가들이 321명이나 주문을 했다고?"
"네, 하수영 고객님이 구매한 차와 같은 사양으로 달라고 합니다. 대신 색은 흰색을 제외하고, 개별 도색을 할 거라고 합니다."
"그 정도야 당연히 문제없이 해드려야지. 전량 티타늄 합금을 원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차의 주요 부품에는 티타늄 합금이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차 프레임과 껍질까지 통째로 티타늄을 쓰는 일은 없다.
그 비용이 감당이 안 되기 때문이다.
임원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어디 보자. 그럼 매출이 8억 유로 정도 되나?"
"네, 8억 유로 약간 넘을 겁니다."
원화로 8,000억 원 이상이 넘어가는 매출.
데일리카에 비해서 매출 자체가 적은 캠핑카 시장에서는 엄청난 수준이다.
"이거 하수영 고객님 덕분에 이런 깜짝 매출도 올리고 말이야."
"사실 그동안 한국에서 알음알음퍼포먼스 주문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티타늄 합금은 아니고 일반 모델이지만요."
"하수영 고객님이 한국 첫 퍼포먼스 구매자인데, 그 이후에 20대가 넘게 팔렸습니다. 하수영 고객님이 타고 다니는 걸 보고 마음에 들어한 소비자들이 주문을 넣은 겁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우리 제품은 5억이하 보급형 모델만 팔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프리미엄 시장 개척도 노려볼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주문제작에 쓰일 티타늄 합금은 한국에서 구매하는 게 어떨까요?"
"아, 좋은 생각이야. 하수영 고객님이 제철소도 운영한다고 했었지?"
"네, 해상교량에 지은 티타늄 합금도 그 제철소에서 전부 만들었을 겁니다."
"으음…… 그럼 당연히 거기에 주문을 해야지. 무엇보다 금속 품질 자체도 신뢰할 만하니까."
그리하여 독일사는 포스코에 퍼포먼스 차체에 쓸 티타늄 합금을 주문했다.
포스코 김항철 사장은 청담동 후원회 노인들의 공동구매라는 말을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주를 받았다.
포스코의 귀빈이자 광운제철소의지분 50%를 가진 이를 후원하는 돈 많은 노인들이다.
잘 보여야 한다.
***
포항의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해상교량 포항 패싱.
처음에는 부정했고, 분노했으며, 타협하다가, 이제는 침체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이제는 지나가는 개도 포항에 울릉도 대교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들어놓은 다리 부품을, 울릉도에서 독도로 연결하는 데 사용한다고 하니까.
'어째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해?'
'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어디서부터 틀어진 거야?'
당연히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갑작스럽게 날아가자, 그 박탈감은 진득하게 주민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사실 울릉도와 연결 안 된다고 우리가 크게 손해 볼 것은 없어."
"편하게 울릉도 관광 갈 수 있는 카드가 없어진 것뿐이지."
"난 사실 여행 별로 안 좋아해. 울릉도는 단지 교통이 불편해서 안 간게 아니야."
"울릉도에 연결된다고 뭐 우리 포항 경제가 특별히 나아질 건 없지 않나?"
저 포드는 틀림없이 신포도일 거야, 라고 자기 위안도 해보고,
"이게 다 알박기한 새끼들 때문이야!"
"저 새끼들이 모든 걸 망쳐놨어!"
"하여튼 외국 자본들은 우리나라에 못 들어오게 죄다 금지해야 해! 이러다가 제주도 꼴 나겠어! 외국인들이 우리 포항시 알짜배기 땅을 다 쓸어 담으려 하고 있다고!"
"공시지가보다 백 배는 줘야지 팔거라고 그랬다면서?"
"어떻게 이 나라를 위해서 사비를 지출하는 사람을 상대로 돈 빨아먹을 생각을 하냐! 그것도 외국인 쩐주 편들어서!"
알박기한 땅에 한창 지어지는 관광호텔에 울분을 토해내 보기도 했다가.
"대체 시에서는 뭐한 거야?"
"시장이고 시의원이고, 하여튼 간에 제대로 된 놈들이 없어."
"도지사는 뭘 한 거야? 강원도는 앉은 자리에서 거저 주워 먹는데, 그냥 받아 처먹는 것도 제대로 못하면 왜 도지사를 하지?"
지역 정치인들에게 원망을 돌려보기도 했다.
***
포항시장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미 서울을 몇 번이고 찾아왔다.
시청을 비우고 서울 출장만 다니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걸 가지고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수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면, 이자까지 한꺼번에 쳐서 비난을 덮어쓸 것이다.
-주인님, 공식 정보를 취합해 보면 독도 교량 건설은 확정입니다. 울릉도포항대교에 쓰려고 만든 모듈을 그쪽으로 돌린다고 합니다.
"그래도 다리 모듈이 110km 이상 남잖아? 그럼 우리 포항에도 아직 희망이 있다는 거 아니겠어?"
-주인님, 수영그룹은 이미 포항 패싱을 결정했고, 더 이상 고려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설득을 해야지. 부산, 경남, 전남에 사는 그 많은 사람들이 독도 한 번 보자고 강원도 동해시까지 거쳐 갈 순 없어. 의원님도 그 점을 설명하면 마음을 돌리실 거라고."
-무릎 꿇고 간청하기 전에 용안리를 차지한 사모펀드를 조치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됩니다만.
"같이 하고 있잖아. 내 측근들이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으니까 설득할 수 있을 거다. 정 안 되면 건설허가 취소를 내면 돼. 아니면 영업허가 가지고 물고 늘어지면 되고."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보십니까?
"왜 못 해? 일개 사모펀드 따위가 감히 지자체를 거스르고도……."
-그 사모펀드에 사모님 돈도 들어가 있습니다.
포항 시장은 순간 우뚝 굳어버렸다.
"뭐?"
-포항 시의원 일부의 돈도 들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