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69화
190장 엎드려 철 받기 (5)
교량 자재용 티타늄 합금을 엄청나게 뽑아냈던 광운제철소.
울릉도동해대교가 완공된 이후부터는, 서울 동해 민자고속도로에 필요한 각종 철근 자재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프라임건설은 가장 우선순위에 올려야 할 고객사였기에.
내륙도로이기에 반수성 처리는 없었다.
그래도 서울외곽순환도로까지 약 170km가 넘기에, 소요되는 자재의 양은 상당할 것이다.
"이거는 이상해. 말이 안 되는데?"
프라임건설 직원들은 근래 모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째서 편히 땅에 놓는 도로가 바다에 놓는 교량보다 훨씬 시간이 걸리는 거지?"
"이미 해가 넘어갔어. 올해 안에 과연 완공할 수는 있을까?"
"원래 올해 안에 완공 못 하는 게 정상이에요. 울릉도 대교가 말도 안되는 거였다고요!"
"수심 수천 미터 바다에 놓는 교량이 건설 난이도가 최악인 게 아니었어?"
"물에 뜨는 금속으로 교각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버렸으니까. 난이도가 '헬지옥'에서 '이야기만 즐기기'모드가 된 거였지."
"쇼 미 더 머니 치트키도 한몫했고."
해상교량보다 더 일찍 시작한 서울 동해민자도로는 갈 길이 막막했다.
"여기도 아낌없이 현금을 붓고 있긴 한데, 기약이 없네."
"사실 고속도로 놓는 데 몇 년은 잡는 게 정상이죠. 정상이긴 한데, 그게 왜 이렇게 몇십 년처럼 느껴지는 걸까요?"
"터널은 파도 파도 끝이 없고, 땅은 다지고 다져도 끝이 없구나."
170km가 넘는 구간을 일단 파야 한다.
평지도 파서 바닥을 다져야 하고, 산악지대는 터널을 뚫어야 한다.
강을 만나면 교각을 놓아야 하고, 때로는 가로질러갈 수 있는 국도를 위해서 도로를 기둥에 얹어서 높이기도 해야 한다.
배수로도 마련을 해줘야 하고, 곳곳에 휴게실도 여러 개 지어야 한다.
"해상교량은 오히려 엄청 쉬운 거였구나……."
"건설자재야 제철소에서 쉬지 않고 뽑아냈으니까."
"다리 모듈 조립은 인수한 철강업체에서 알아서 다 해줬고."
"운반도 바다에 대충 던져놓은 다음에 예인선이 끌고 가면 그만이었고."
"모듈 각 맞춰서 대충 짜맞추고, 용접으로 마무리만 하면 땡이었으니까."
"가로등 설치하고, 수도가스 파이프, 전선 연결하고, 그게 오히려 가장 어려웠었네."
"강원도에 육지도로 놓는 게 더 극악이구나."
모두가 불가능할 거라고 여겼던 해상교량이 이렇게 빨리 완성되자, 프라임건설 직원들의 기대감은 자연스럽게 한 방향으로 향했다.
"로한 교수님이 육지도로에 좋은 금속 같은 건 뭐 안 만들어주시나?"
"물에 뜨는 금속 만들었으니 이제 허공에 뜨는 금속도 만들어주시면 좋을 거 같은데."
"그런 거 있으면 난이도 엄청 하락하겠습니다. 해상교량 지을 때처럼 모듈만 만들어서 허공에서 용접만 하면 땡이잖아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부유금속은 절대 못 만들지."
서울동해도로는 완공까지 몇 년 더 잡아야 할 예정.
그래서 수도권에서 울릉도를 가려면, 강릉을 거쳐서 동해를 경유해야 했다.
***
요즘 포스코의 사기는 높았다.
일단 해상교량 프로젝트 덕분에 수십조 원 이상, 1, 2년 치 매출이 한꺼번에 발생했다.
서울동해도로에 필요한 철강재 주문이 대량으로 이어지고.
철강업계의 영원한 마돈나인 조선업계에서는 모든 도크를 풀가동하는 중.
하수영이 주문한 100척의 메가 컨테이너선 건조 때문이다.
"사장님, 해외 조선소 주문입니다."
"또야? 순번표 뽑고 기다리라고 해."
순번표는 물론 농담이다.
그만큼 이사회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만들어내는 아재 개그.
해외 조선소들은 앞을 다투어 포스코를 찾고 있었다.
선주들이 반수성 철강을 쓰고 싶어하기 때문이었다.
***
포스코 영업부에서는 바이어 상담이 한창이었다.
주로 조선소 회사와 해상플래폼 건설회사들이었다.
"선체 전체를 안티워터 아이언으로 감싸선 안 됩니다. 외곽만, 그것도 만재흘수선 위쪽만 사용해야 합니다. 갑판과 선교까지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도 흘수선 위쪽으로 외곽을 도배하면 전복되더라도 물에 안 빠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지요."
"우리 선주들이 그런 설계를 원합니다. 그런데 비용이……."
"안티워터 처리를 하면 5% 정도 납품가가 올라갑니다."
"아, 그 정도면 충분히 고려할 만한데요. 파격적으로 비쌀 줄 알았습니다."
"저희 포스코는 고객사들을 위해서 항상 비용절감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배 전체 재료비가 5%로 뛰어오르는 게 아니다.
선체 외부, 만재흘수선 위쪽의 철판만 올라가는 것이기에, 실제로는 1% 미만일 것이다.
"드러나지 않는 내부 철강재는 안티워터 처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물탱크나 수도파이프 같은 건 절대 해선 안 됩니다."
"그럼 우리 입장에서는 필요한 양만 부분 발주를 하면 그만인데
"하하, 저희 포스코는 일정량 이상만의 일괄주문만 받습니다. 그 점을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비즈니스니까 당연하겠지요. 알겠소. 우리가 건조할 선박에 필요한 모든 철강을 귀사에 주문하겠습니다."
반수성 처리기술이 막대한 이득을 직접 만들진 않는다.
그러나 더 많은 일괄수주를 위한 최고의 미끼 역할을 한다.
조선소들은 반수성 금속 옵션을 위해서, 포스코와 전담계약을 맺어야 했으니.
순위에서 밀려난 조선소들은 돈을 싸들고 찾아와서 납작 엎드렸다.
"우리는 매우 급합니다. 선박 건조가 다 끝났는데도 선주가 인도를 거부합니다. 선체 외피를 반드시 반수성 철판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주 얇은 철판으로 덧붙이면 될 겁니다. 선적 능력은 조금 줄겠군요."
"도장을 해도 문제없는 겁니까?"
"페인트는 괜찮지만, 다른 금속을 덧대면 그 부위에서는 물 저항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이러다가 전 세계의 모든 조선소들이 포스코 광운제철소에만 주문을 넣을 기세였다.
쏟아지는 주문에 포스코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 콧대 높은 메이저 조선소들이 저렇게 깍듯하게 나오는 모습을 보다니."
"세상이 참 변했습니다. 모비딕크루즈 해운사가 조선소 사장을 데리고 직접 제철소를 찾을 줄이야."
심지어 유럽의 크루즈 재벌사가 조선소의 멱살을 잡아끌고 제철소까지 찾아오기도 했다.
무조건 여기에서 만드는 철로 내 배를 만들라고, 다른 제철소에서 납품받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고.
철강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조선업계는 제철소의 영원한 고객이다.
초대형 규모, 뛰어난 품질, 막대한 생산량.
포스코는 충분히 훌륭한 을로 인정을 받아왔지만, 이제는 언터쳐블 슈퍼을이 되었다.
***
한국대는 하늘을 찌를 듯한 농업대학 경쟁률에 당황하고 있었다.
"16 대 1이라고?"
"아무리 농대라지만, 두 자릿수 경쟁률이라니……."
"요즘 애들이 이렇게 농업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까?"
"에이, 그럴 리가요. 우리 하수영학생과 어떻게든 인맥을 만들고 싶어서 그러는 거겠죠."
"여기 이 친구는 의대에 지원해도 충분한 스펙인데, 굳이 농대에 지원을 했군요."
"농대에서 친분 쌓은 다음 학부 마치고 나중에 의전원으로 면허 따서 수영병원에 취직하겠다, 그런 전략이겠죠. 요즘 그렇게 머리 굴리는 친구들 많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는지, 참."
한국대 농대 지원생들이 늘어났다.
"입학식에 부디 하수영 학생이 꼭 참석해 주었으면 하는데 말입니다."
"학장님이 여러 번 어필을 했는데, 의외로 시큰둥한 모양입니다."
"요즘 하수영 학생이 울릉도 대교에 정신을 뺏겨 있다 보니……."
"포항 쪽은 아직도 말이 많다지요?"
"진짜 포항 패싱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부동산 알박기하는 것들, 죄다 솎아내서 털어야 한다니까요."
"덕분에 포항 시민들만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농대에서 하수영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가만히 있어도 그저 이슈를 불러온다.
울릉도 교량은 농대 입장에서도 전혀 무관하지 않았다.
농사로 만들어진 곡물사료들이 다리를 건너서 양식장에 공급되고, 그 양식어들이 다시 다리를 거쳐서 내륙에 공급되는 구조이니까.
입학식 날, 다행스럽게도 하수영이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참석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요즘 바쁘다고 들어서 못 올 줄 알았어요."
"아닙니다, 학장님. 그래도 후배들과 처음으로 인사하는 날인데 당연히 와야죠. 좋은 친구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입학식을 마치고 뒤풀이가 열렸다.
자유롭고 한껏 풀어진 분위기였다.
학장이 먼저 격려를 하고, 그 다음으로 하수영한테 마이크를 넘겼다.
하수영은 의아해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제가요? 저는 학생인데요?"
"우리 한국대에서 하수영 학생을 그저 학생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뭐, 최연소 학장을 거쳐 최연소 총장, 최연소 종신 이사장까지 갈 야망이 있긴 합니다만."
"……."
"……"
"왜들 그러세요? 기왕 한국대에 입학한 거, 종신 이사장까지는 해보고 싶은데 무리일까요?"
"아, 아닙니다. 그냥 갑자기 훅 들어와서 당황했을 뿐입니다."
"하수영 학생이 종신 이사장을 해주면 우리 모두야 좋죠. 돈 많은 이사장 싫어할 교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
하수영이 마이크를 잡고 앞으로 나오자, 신입생과 재학생들도 바짝 긴장해서 입술을 핥았다.
"후배 여러분들, 반가워요. 하수영입니다. 아직은 평범한 반쪽짜리 2학년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세계 제일의 농부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듣고 있던 모두가 생각했다.
이미 가진 것을 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을 꿈이라고 불러도 좋은 것인가?
"학장님께서 참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당부할 것은, 식량은 패권이라는 것입니다."
"……!"
"다가올 미래에서 식량권력은 새로운 헤게모니로 자리를 잡을 겁니다."
하수영의 목소리가 엄중해지자 다들 눈빛이 진지해졌다.
"생선을 보시죠. 지금 가정 식탁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나마 수영양식장 덕분에 낫지만, 다른 나라는 심각하죠.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자화자찬처럼 보이는 팩트 거론도 빼먹지 않았고,
"미국은 올해 아몬드를 10%도 공급하지 못할 예정이고, 양파 쇼크의 여파는 아직도 남아 있지요. 쇼크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양파와 당근은 비쌉니다."
"……."
"농업과학은 식량패권을 움켜쥐는 중요한 전략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사천하지대본, 농사야말로 천하의 큰 근본입니다. 농대여, 영원하라!"
마지막에 하수영이 크게 외치자, 다들 주먹을 불끈 쥐고 따라 외쳤다.
"농대여, 영원하라!"
"농사야말로 천하의 큰 근본이다!"
"C대 농대에 언제까지 1위 자리를 내줄 순 없습니다! 조만간 우리 농대 학우 모두가 합심해서 가져옵시다!"
"하수영! 하수영! 하수영!"
마이크를 줄 때만 해도 '제가 이래도 되나요?' 하던 사람이었다.
이제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은 채 사회자라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이끌었다.
하수영은 학생들 사이를 자유롭고 헤집고 다니면서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고, 소개를 시켜주고, 분위기를 북돋웠다.
한 교수가 학장한테 조용히 말했다.
"마이크 안 드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우리 하수영 학생?"
"……마이크 주길 잘했군."
"큰 무대에서 정치하는 인재라 그런지 확실히 뭔가 다르네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다?"
"그것도 그렇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는 걸 참 즐기는군요."
"……즐길 줄 아는 게 가장 중요하지."
분위기가 무르익고, 다들 얼큰하게 취했다.
한 신입생이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하수영한테 물었다.
"선배님, 근데 포항은 정말 패싱되는 건가요?"
"지금까지 허위 발표를 하진 않았습니다, 후배님."
"그럼 정말 제주도가 여수나 부산으로 연결되는 건가요?"
"그거야 국토부가 결정할 일이죠. 저하고는 상관없어요."
"네? 그런데 소문으로는 울릉도포항대교 지으려던 다리 모듈을 제주도에 돌린다고……."
"그거 독도로 돌릴 건데요?"
뒤풀이 분위기가 확 달아올랐다.
"네? 독도라고요?"
"울릉도와 독도를 연결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