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65화
190장 엎드려 철 받기 (1)
"못 놓을 건 없죠. 혹시 제주도까지 KTX 연결하시려고요?"
"예? 어떻게 그걸?"
차관이 조금 놀라워하자, 하수영은 다시 말했다.
"방금 제주도지사가 한바탕 하소연하고 갔습니다. 고속도로 놔달라고요. 국토부는 제주도 KTX를 생각할 거 같더군요."
"……그렇습니까?"
"부산이나 여수에서 제주도까지 연장되는 KTX선로를 연결할 생각인가 보네요?"
"네, 양쪽 모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KTX로 3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게 됩니다."
"비행기 타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50분이면 가잖아요?"
"비행기는 번거롭습니다. 공항 이동 시간도 있고, 늦을 것에 대비해서 미리 훨씬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죠. 신분증이나 여권도 챙겨야 하고요."
"뭐, 그렇긴 한데. 제주도지사도 그 이야기 하더군요."
"화물도 제한이 크고요. 하지만 KTX는 모든 과정이 간편합니다."
"그런데 이건 프라임건설과 이야기 하셔야 할 거 같은데. 전 본업이 농사이지, 교량 건설이 아니거든요."
"그래도 유일한 투자자이신데 결심을 굳혀주시면 더 빠르지 않겠습니까?"
"전 프라임건설에 모든 걸 위임했습니다. 비즈니스는 거기서 알아서할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하수영의 결심을 얻어내면 모든 게 프리패스다.
그래서 차관은 좀처럼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울릉도 교량만 150km의 긴 노선입니다. 당분간은 거기 쓸 티타늄건설재만 뽑아내기도 빠듯할 걸요?"
"그건……."
"지금 남의 섬에 다리 놓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섬에 다리 놓는 것부터가 중요합니다."
하수영이 울릉도에 땅을 잔뜩 사둔 것은 차관도 알고 있었다.
다리가 놓이는 순간, 땅의 가치는 더욱 폭등할 것이다.
3배 이상을 주고 샀다지만, 그보다 훨씬 더 가치가 증가할 테지.
"포스코 광운제철소를 놓고 협상중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가요? 제가 일일이 챙기지는 않아서. 저는 오늘 처음 듣습니다."
차관은 거짓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하수영은 블러핑을 하는 중이었다.
"광운제철소에서 작정하고 생산한다면, 건설자재를 뽑아내는 것은 시간문제 아니겠습니까?"
광운제철소의 역량이라면, 필요한 티타늄 합금은 시작부터 모두 생산하고 착공에 들어갈 수 있다.
울릉도 교량과 상관없이, 제주도 열차교량에 임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도 진지하게 광운제철소분리소유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도공 사장님이 좋아하겠군요."
"저희 국토부에서도 긍정적으로 힘을 써드릴 수 있습니다."
"그럼 더 좋아하겠어요."
적어도 차관은 하수영의 의중은 깨달을 수 있었다.
'제주도 열차교량 건설을 원한다면, 광운제철소 문제부터 해결하라 이거로군.'
장관한테 올릴 양질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
이도공은 미국, 유럽에서 온 철강업체들도 상대해야만 했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은 도대체 어디로 흘린 건지, 하나같이 대동소이했다.
"저희 회사가 반수성 철강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특허는 출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라이선싱은 당연히 안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 유출되었을 시 보호를 받을 수 없지 않습니까?"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라이선스 생산이 안 된다면, 결국 기술보유 측이 직접 참가를 해야 한다.
"그럼 저희 공장에 따로 상주하시면서 반수성 처리를 해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조건이 괜찮다면 생각해 볼 만합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습니까?"
"시설, 보안, 체류 등 일체 비용은 저희가 부담하겠습니다. 완성재를 팔아서 얻는 수익을 절반씩 나누는 게 어떻습니까?"
"나쁘지 않군요."
해외 철강업체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오고 가자, 포스코는 더욱 애가 탔다.
그 와중에서도 국가 검증단은 반수성 성질을 차근차근 검토하고 있었다.
정확한 스펙과 성질을 알아야 안전 기준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코가 광운제철소의 지분 절반을 넘기는 조건으로 독점생산을 협상 중이라는 소문이 여의도에 돌았다.
포스코 투자자들은 기관, 개인을 가리지 않고 어서 계약하지 않느냐고 아우성을 피웠다.
"겨우 절반밖에 안 받으신다잖아! 닥치고 이 딜 받으라고!"
"30년이면 광운제철소가 전 세계 선박철강 시장은 다 먹어치우겠다! 무조건 받으라고!"
"아! 빨리 가서 그랜절 하면서 받지 못해?"
***
전 세계 해운사들도 큰 난리였다.
배를 직접 소유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해상보험이 있다지만, 그래도 사고가 나지 않는 게 가장 좋다.
수면 위 선체를 반수성 철강으로 만든다면, 어떤 극한 환경에서도 배가 침몰할 리가 없다.
해운사들은 기존에 계약했던 조선 소들을 상대로 조건 변경을 내걸고 있었다.
"선체 바깥 만재흘수선 윗부분은 반드시 반수성 철강을 사용해 주시오."
"그거 아직 검증이 확실하게 나지 않아서 바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조만간 한국에서 품질인증이 나올 분위기던데? 한국의 조선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 거기서 나온 기준이라면 믿을 수 있어요."
"이미 선체 외곽 모듈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와서 설계 변경은……."
"설계를 변경할 게 아니라, 그냥 그 부분만 새로 만들어 붙이면 될 거 아니오?"
만재흘수선 위쪽부터 시작해서 갑판, 함교 등 외부 노출 부분만 반수성 철강으로 만들면 된다.
"그럼 비용이 더 듭니다. 인도 시간도 더 주셔야 합니다."
"돈이고 시간이고 더 줄 수 있으니, 무조건 반수성 철판을 써 달라 이 말이오!"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화물선주고 여객선주고, 가리지 않았다.
특히 여객선주는 대단히 까칠하게 반응했다.
"해운관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압니까? 바로 승객들이 항해안전에 갖는 신뢰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크루즈선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재정적으로 여유가 넘치는 분들이죠. 신형 크루즈 선박에 안티워터 아이언 합금이 사용되지 않았다? 고객들 난리 납니다."
"예, 알겠습니다."
조선소들은 선주사들의 변경 요구에 쩔쩔매고 있었다.
***
[포스코 최대주주 국민연금공단, 광운제철소 분리매각 안건 상정하기로 결정.]
[광운제철소 분리매각 안건, 주총에 상정 예정!]
[안건 부결시 포스코그룹 관련주 대폭락 예상!]
[수영그룹, 마침내 철강까지 진출하나?]
[사람의 쌀, 가축의 쌀, 이어서 산 업의 쌀까지 모조리 집어삼키는 수영농장!]
온 나라가 포스코 주주총회를 주시하고 있었다.
만약 안건이 부결되면, 반수성 철강은 더욱 늦게 시중에 풀리게 된다.
프라임건설에서 아예 맨바닥부터 제철소를 시작할 뜻을 내비쳤기 때문에.
적어도 10년 이상의 시간이 퇴보하는 셈.
때문에 조선업, 해운업은 누구보다 간절하게 포스코 주총에서 의결되기를 빌었다.
"제발 하수영 회장님이 광운제철소 꿀꺽 삼키게 해주십시오."
"50%가 뭡니까? 그냥 90% 팍팍 안겨드려야 합니다."
"하다못해 51%는 되어야 하수영회장님이 제철소 운영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텐데."
"포스코 이사회 새끼들이 욕심이 많아서 50%로 타협 본 거라며?"
"어휴, 진짜 창업주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가면 얼마나 좋냐."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국민연금공단은 당연히 찬성표를 던졌다.
주총에 참석한 주주와 위임인들도 앞을 다투어 찬성표를 던졌다.
참석 지분의 95% 이상이 분리매각에 찬성한 것이다.
수조 원의 가치를 가진 광운제철소는 이제 하수영과 공동소유가 되었다.
매매대금은 돈이 아니라, 30년간 반수성 금속 독점 생산권이었다.
***
"우리 조명사업부는 아직도 소식이 없네."
핵융합 오브를 주었지만, 출력 조절은 아직 성공 못한 모양이다.
"일단 핵융합 발전소라도 세워야 티타늄 합금을 싸게 생산할 텐데."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시간은 곧 금이니까.
그래서 하수영은 포스코를 닦달했다.
"울릉도 다리가 먼저입니다. 다른 작업은 전부 제치고 다리부터 만듭시다."
"이미 선주문 받은 물량 납기를 지키지 않으면 위약금이 엄청납니다."
"제가 그냥 고객이었으면 위약금물어줄 테니까 내 것부터 만들라고 했을 텐데, 이제 저도 제철소 주인이니까 차마 그럴 순 없겠네요."
고객이 다른 고객을 견제할 순 있다.
하지만 주인이 되어서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릴 순 없다.
위약금 물어줬으니까 납기 안 지켜도 되죠, 라는 태도는 고객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더 이상 추가 주문 받지 말고, 무조건 티타늄 합금부터 찍어내세요."
연간 3,000만 톤 이상의 철강 생산량을 자랑하는 광운제철소.
하수영은 그 생산력을 모두 울릉도 다리로 돌리기로 했다.
포스코 입장에서도 엎드려 감사할 일이었다.
값비싼 티타늄 합금을 대량으로 생산하면, 큰 수익이 나니까.
티타늄 합금 판매수익의 절반은 포스코 몫이다.(남은 절반은 하수영)
"가격 편의 봐줄 필요는 없어요. 시세대로 하세요. 아, 대량주문 할인율은 회사지침에 따라 상한선으로 땡겨주시고요."
"겨우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조금 더 재량껏 할인을 해드릴 수 있는데."
"제가 제철소 공동주인 됐다고 지침에도 없는 할인하면, 주주에 대한 배임이죠. 원래 지침대로만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심 걱정했는데, 이야기가 잘 통해서 좋았다.
다른 재벌 기업이었다면 어떻게든 싸게 구매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을 텐데.
길이 150km 8차선 초대형 다리라고 해도, 광운제철소의 생산 능력이면 충분히 넘친다.
하지만 최대한 일정을 절약하기 위해, 선주문만 소화하고 모든 고로를 티타늄 합금 형강에 쏟기로 했다.
주총 이후에도, 로한은 광운제철소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그는 30기의 로봇들을 보냈다.
로봇들은 열처리와 기계가공 사이에 새로운 후처리 라인 하나를 추가 했다.
철저한 보안이 유지되기에, 제철소장도 그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저기에서 반수성 처리를 하는 모양이군."
"어떤 원리인지 라인설비만 봐서는 전혀 짐작도 안 가는데요. 도대체 무슨 후처리를 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반수성 처리를 거쳐 기계가 공까지 마친 티타늄 합금들은 품질 검사를 완벽하게 통과했다.
부력 테스트 역시 아무 문제 없었다.
[첫 티타늄 합금 양산품! 전량 울릉도 해상교량에 쓰일 예정!]
[완제품 KS인증 획득! 기술 인증은 미궁 속으로?]
[공정기술 검증 없이 제품에 대한 인증만, 매우 이례적인 것.]
[정부, 반수성 금속처리 기술을 특허로부터 보호하기로 결심했나??]
"정부에서도 기술도용 염려만 없다면 특허를 내지 않고 백년 천년 독점하는 게 유익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설득하느라고 힘들었습니다."
산업부, 국토부, 과기정통부, 행안부가 하수영을 찾아와서 열심히 노력한 것을 어필했다.
"로한 교수가 도용 염려가 없다면 없는 겁니다.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광운제철소에 국정원 비밀요원을 추가로 배치했습니다. 로한 교수에게만 슬쩍 일러 주십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그나저나 로한 교수는 한 번 만나기가 쉽지 않네요."
"영화 촬영 때문에 바쁘거든요."
공무원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웃었다.
"그런 천재 과학자가 외모까지 그렇게 잘생겼다니, 정말 신은 불공평하군요."
"원래 세상은 공평했던 적이 없어요."
어쨌거나, 반수성 처리 금속의 시대가 정식으로 열렸다.
울릉도 해상교량이 눈앞까지 성큼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