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61화
189장 한껏 돈을 싸들고 (3)
[하수영 의원님 오셨습니다!]
[빨리 내려오십시오! 지금 당장 내려오셔야 합니다! 우리 조선소의 운명이 걸렸습니다! 제가 접대 중이라 자세한 설명은 더 힘듭니다!]
[헬기 타고 오십시오! 무조건 빨리 오셔야 합니다!]
서울에 있던 백진택 사장은 한동철상무의 긴급 문자를 받았다.
평소와 달리 정중한 안부 문구 따위는 없었다.
닥치고 헬기 타고 내려오라는, 무엄하기까지 한 재촉.
하지만 하수영이 있다는 말에, 그는 불쾌감을 느끼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바로 포항으로 간다. 헬기 준비해."
"예, 사장님."
고속헬기를 탄 백진택은 약 1시간만에 겨우 포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원님이 왜 군용 수송헬기를 채 택하셨는지 알 거 같군. 너무 느리고 답답해."
"민수헬기 중에서는 최고의 기동력을 자랑하는 모델입니다."
비서가 변명하듯이 말했지만, 백진택은 시큰둥했다.
"30억도 안 하는 싸구려 헬기를 1,400억짜리에 비할 수는 없겠지."
그룹 헬기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략물자 수송헬기에 비하면 한참 모자랐다.
조선소에 도착한 백진택은 포항시장, 시의원들에 둘러싸인 하수영을 볼 수 있었다.
왠지 막 알을 까고 나온 아기새들과, 덩치 크고 건강한 어미새가 생각난다.
"의원님, 오셨습니까."
백진택도 얼른 그 안에 끼어들어서 하수영한테 인사했다.
"네, 배 잘 만드나 갑자기 보고 싶어서 들렀습니다. 민폐가 되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VIP는 언제든지 찾아만 주시면 대환영입니다.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찾아주셔도 됩니다."
"한 상무님한테 가보시죠. 할 말씀이 있는 거 같던데요."
"알겠습니다."
하수영이 일부러 배려해 준 것임을 알아차린 백진택은 감사를 표했다.
포항 정치인들에 둘러싸인 마당에 개인적인 질의를 할 수는 없었으니.
서둘러 빠져나온 그는 한동철 상무를 찾았다.
한동철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채, 흥분을 좀처럼 가라앉히지 못했다.
"한 상무, 무슨 일인가?"
"아직 건조를 시작하지 않은 60척은 특수금속처리를 거친 철강재를 사용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한동철은 먼저 늘어난 일정을 설명했다.
"괜찮군. 우리한테야 무조건 유리한 거 아닌가? 근데 그걸 가지고 급히 오라고 했나?"
"절대 아닙니다. 그 특수금속처리 기술 때문입니다."
"부력을 높여준다는 그 기술? 왜? 혹시 우리 조선소에서도 도입하면 좋을 거 같나?"
"좋을 거 같은 게 아니고, 반드시 도입을 해야 합니다. 제가 장담하건대, 앞으로 전 세계 모든 선박들은 이 기술을 적용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서 시장 퇴출 여부가 갈리게 될 겁니다."
"시장 퇴출? 그 정도인가?"
지금도 황산화물 배출 기준은 선박의 시장 퇴출의 조건으로 자리 잡는 중이다.
때문에 선주사들은 탈황장치를 장착하거나, LNG 추진선박으로 교체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입항 자체가 안 되는 곳이 많기에. 특히 유럽.
"그냥 먼저 직접 보시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이건 그 특수금속처리를 한 티타늄 목업입니다."
"다리 같은데?"
"네! 아마 울릉도 해상교량의 목업제품인 거 같습니다."
"그렇군. 가만, 8차선 도로인데 아랫부분이 이렇게 넓다고?"
무게중심 균형을 생각하면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게 당연히 맞다.
8차선 도로인 점, 그리고 목업의 비율을 생각하면…….
"이거 바지선이 보통 사이즈로는 안 되겠는데? 아주 초대형 바지선을 지어야겠어."
전문가들은 하수영이 초대형 바지 선을 촘촘히 연결해서 교량을 올리는 식으로 짓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다.
현재 기술로는 그게 가장 현실적이었으니, 때문에 백진택은 은근히 바지선 수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사장님, 바지선은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울릉도 해상교량에는 아마 바지선을 쓰지 않을 겁니다."
"바지선을 안 쓰고 다리를 어떻게 올리려고? 수천 미터짜리 교각을 동해에 세울 수도 없을 테고, 뭐 다리를 저대로 바다에 띄우기라도 할 셈인가?"
"네, 물에 띄운답니다."
철썩!
그리고 한동철은 교량 모듈을 분수대의 물에 띄웠다.
보란 듯이 둥둥 떠 있는, 30㎝짜리 교량 모듈에 백진택은 한참 동안 시선을 뺏겼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저거…… 혹시 나무인가?"
"아닙니다. 티타늄 합금입니다. 잠수함 선체에 쓰이는 고강도 합금입니다."
"나무가 아닌데 어떻게 저런 형태로 물에 뜰 수가 있나?"
상단도로보다 넓은 밑면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 구조였다.
당연히 구멍 사이로 물이 들어와서 가라앉아야 정상인데, 어떻게 떠 있지?
왜 물이 안 올라오는 거지?
"혹시 안이 비어 있나? 그러니까 0.1m 이하로 표면을 만들고 안을 진공으로 하거나 헬륨이라도 채워 넣었나?"
"100% 티타늄 합금입니다. 한 번 들어보십시오."
직접 들어서 무게를 확인한 백진택은 여전히 패닉을 벗지 못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물에 뜨는 거야?
"혹시 이 티타늄 합금이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합금 구조로 새로이……."
"그냥 금속처리만 추가한 거랍니다. 다른 성질 자체는 모두 그대로입니다. 아, 그래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금속에 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철강, 알루미늄, 심지어 순금에도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물에 뜨는 건가?"
"물에 대한 반발력 때문입니다. 부력이 아닙니다. 그냥 물 자체를 거부하고, 튕겨냅니다. 그래서 억지로 바다에 깊이 빠뜨려도 기어이 수면으로 올라온답니다."
"……."
백진택은 여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눈빛이 조금씩 또렷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동공이 열리고, 얼굴이 붉어지며, 콧김이 거칠어진다.
"불침선이 되겠군."
"네, 아무리 파도가 거칠어서 배가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도, 선체가 물을 튕겨내니까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설 겁니다."
"복원력이 극대화되겠는데."
"최악의 경우, 전복하더라도 절대 물에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냥 전복한 채로 해상에 둥둥 떠 있겠죠."
배가 뒤집어지면 내부로 물이 들어오면서 부력을 상실, 그래서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 특수처리를 한 금속으로 만든 배는, 뒤집어져도 그냥 떠 있을 뿐이다.
물도 해수면 이상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심지어 배가 부서져서 조각나도, 파편들은 가라앉지 않고 계속 물에 떠 있을 것이다.
백진택은 조선소 경영자답게, 이 금속처리가 가진 가치를 한눈에 알아봤다.
그야말로 전 세계 모든 선주사들이 돈을 싸들고 와서 애걸을 하게 될 꿈의 기술, 아니, 국가 차원에서 자국 조선소에 이 기술의 적용을 강제하게 될지도 모른다.
전복이나 침몰에 대한 두려움은 배를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있는 법.
그들은 이 기술을 적용되지 않은 배를 거부하게 될 테니까.
국제 표준으로 자리 잡는 것은 시간문제다.
"의원님은 남은 60척은 모두 이 금속처리를 적용한 철강재로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당연하지만, 배의 모든 부분에 적용할 수는 없다.
물탱크, 물 배관,
그리고 수면 아래로 잠기는 부분에는 적용해서는 안 된다.
"중심과 메타센터 값을 다시 계산해서 선박 설계를 개량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복원력이 너무 비대해질 거 같은데. 그럼 배가 심하게 흔들릴테고."
"배 측면이 직접 물에 닿아야 반발력이 발생하기에, 설계를 바꾸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래?"
"아무것도 바꾸지 않아도 됩니다. 딱 하나, 이 금속처리를 한 철강만 쓰면 됩니다. 강도, 인장력, 무게, 부식, 모든 것은 다 그대로입니다."
"하, 이걸 수영그룹에서 개발했다고?"
백진택은 로한의 이름을 떠올렸다.
프리덤을 개발했고, 서진파운드리의 핵심공정 기술에 관여한 자.
무인공장 세팅 및 운영 안정화는 정서진의 공적이지만, 물이 필요하지 않은 핵심공정 기술을 개발한 것은 로한이라고 들었다.
***
포항시 측에서는 부랴부랴 만찬을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하수영이 흔쾌히 거절했다.
"오히려 제가 여러분들을 대접하고 싶군요. 이미 출장 뷔페가 출발했습니다."
"그건 저희가 처리를 해도 되는 건데……."
"수영펜션 출장 뷔페입니다."
"아, 수영펜션!"
포항시 정치인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영펜션은 요즘 식도락의 절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특급호텔 출신 주방장들이 즐비해 있으며, 온갖 신선한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서 만든 진미들을 내놓는 곳.
당장 펜션 오너인 수영농장에서 최고의 육류, 채소, 해산물을 취급하고 있으니.
최고의 재료와 최고의 요리사들이 만나 비용을 생각하지 않고 만드는 요리들.
벌써부터 입에 군침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영펜션 출장 뷔페팀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정말 맛있습니다!"
"서울 고급 식당은 비교도 안 되는군요! 이게 바로 원조 청담동 미식의 맛입니까!"
"허허, 그냥 전부 입에서 살살 녹습니다."
특히 수영목장에서 전량 미국으로 수출하는 프리미엄 한우는 포항시 정치인들을 깊이 감동시켰다.
송아지부터 엘릭서 볏짚을 먹여 기른 소의 육질은, 그 어떤 고급 한우도 따라잡을 수 없는 품격 있는 맛이 있었다.
"기름지면서도 전혀 부담되지 않고 질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혀를 땅기는 맛이라니…… 이런 소고기가 존재할 줄이야."
"이런 소고기가 아직도 국내에 유통되지 않는다는 게 천추의 한이로군요."
-수영목장은 소 100만 두를 달성하기 전에는 본격 유통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도 미국 브랜드가치 형성을 위해 일정한 양만 수출하고 있습니다.
"돈 주고도 못 먹는 그런 귀한 고기라는 거구나."
***
프라임건설은 현금이 많다.
무려 50조 원을 그냥 쌩 현금으로 쥐고 있다.
서해건설 시절 짓다 만 신 반도체 공장을 다시 지어서 넘기면서 받은 돈이다.
지분, 채권, 인력도 전부 싹 정리 했기에, 국내에서 가장 건전한 건설사였다.
"자자, 들어 봐. 우리가 아무래도 제철소를 하나 인수해야 할 거 같은데."
"건설에 필요한 거면 제철소만 인수하면 안 되죠. 철근가공회사도 인수해야 합니다. 제철소에서 뽑아낸 철을 건설자재로 가공해줘야 하잖아요."
"결국 우리 프라임건설이 프라임건설그룹으로 승격되는 겁니까?"
젊은 임직원들은 눈을 빛내며 관심을 보였다.
단지 땅 파고 철근콘크리트만 올리는 게 아니라, 주요자재까지 직접 조달을 한다는 것.
회사의 위상 자체가 달라진다.
자재 시장을 먹으면 경쟁 건설사들을 어린아이 다루듯이 주무를 수도 있으리라.
"그럼 대표님이 나중에는 건설회장 되시는 거 아니에요?"
"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 같은데."
"프라임컴퍼니 전성렬 사장님도 나중에 회장님으로 승격되니 마니 말 한창 나오던데."
이도공은 떨떠름해서 말했다.
"건설그룹 승격은 모르겠고, 해상교량에 들어가는 자재는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써야 할 거 같다."
"바지선 확보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지금부터 준비해도 본격 착공들어가려면 적어도 10년은 걸릴 거 같은데요."
"바지선은 안 써."
"네? 바지선에 교량 얹어서 연환계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나중에 공식발표할 때 알려 줄게. 일단 인수할 제철소부터 알아봐야겠어."
"찾아보면 인수할 만한 중소기업제철소는 널렸죠. 돈은 얼마까지 쓰실 겁니까?"
"그건 규모 보고 차차 정하자고. 여러 개 인수해서 하나로 묶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150km짜리 다리 짓는 게 보통 일은 아니잖아?"
길이만 보면 한강교량 150개를 짓는 규모.
하지만 난이도는 비교조차 안 된다.
문득 부장 한 명이 말했다.
"대표님, 그런데 저희가 지금 해상교량 짓자고 제철소, 철근가공업까지 인수를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해상교량 놓는 목적은 울릉도를 차량으로 드나들 수 있게 하려는 게 맞습니까?"
"그렇죠."
"울릉도를 차로 드나들려는 목적이 아마……."
"울릉도 양식장 생선들을 서울, 지방까지 다이렉트로 수송하기 위해서…… 였던가?"
"……."
"……."
"관광로 개척 목적도 있고, 아하하."
누군가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농사도 제대로 지으려니까 장난 아니네요. 새삼 농부들에 대한 존경심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