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54화
187장 답답해서 내가 산다 (3)
지방선거 운동이 시작되었다.
하수영은 보궐선거로 구의원이 된 것이기에, 초선 임기는 정작 얼마 되지 않았다.
당연히 지방선거에서 선수로서 뛴다.
청담동 휴민트타워 의원사무실에 모처럼 하수영계파가 모두 모였다.
"반갑습니다. 계파수장 하수영입니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원님."
"의원님 사무실은 처음 와보는데, 정말 너무 좋습니다. 이렇게 좋은 의원사무실은 처음 봅니다."
최서환, 부산시청 공무원 출신으로 수영레스토랑 센텀시티점주.
재벌가의 사생아로서 물려받은 빌딩을 하수영한테 팔아서 현금 1조원 이상의 자산가가 되었다.
"하수영계의 승리를 위해서 발 벗고 열심히 뛰겠습니다."
박조휘, 강남구의회 행정직원이었다가 하수영의 권유를 받고 보궐에 나가서 당선된 초선의원.
"그런데……."
"저희도 정말 지선에 나가야 하는 건가요?"
"저희는 정치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원래 전문지식은 전문가한테 물어보면 됩니다. 중요한 건 지역발전에 대한 포부와 시야, 열정이죠. 머리에 지식만 잔뜩 든 사람이 기초정치 하면 지역사회가 아니라 자기 출세 발판만 다지거든요."
"……네."
얼떨결에 하수영계가 돼버린 울릉도 귀어 젊은 양식업자들.
그 밖에도 강남구 구의원들이 몇 명 있긴 했다.
그래도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은 편이었다.
오히려 계파라기에는 조촐한 느낌마저 있었다.
'소속당도 없는 무소속 계파라니…… 이거 창당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강남구의회 9석! 부산시의회 1석! 울릉군수! 울릉군의회 7석! 이게 우리의 최소 목표치입니다!"
모두 합하면 18석.
"의원님, 그런데 여기는 의원님 포함해서 모두 17명뿐입니다."
"최우석 부의장님은 명예 하수영계 파라서 당연히 셈을 하고 말한 겁니다."
"아, 그렇군요."
"우리 모두가 당선이 되어야 최소목표치를 이룰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다들 분발해 주셔야 합니다."
"그럼 최대 목표치는 뭡니까?"
"당연히 여기 전원이 9선 해먹는 거죠. 모두 칠선, 팔선, 구선까지 고인물 찍고 기초정치판에서 승천 한번 해봅시다."
"군수는 3선 연임 제한이 있습니다만."
"군수 3선, 도의원 3선, 국회의원 3선 찍고 승천하면 되죠. 저는 다 계획이 있습니다."
"……."
"……."
부채질을 하고 있던 개량한복 노인, 후원회 멤버가 너털웃음으로 끼어들었다.
"아, 하 의원. 백날 천날 그럼 구의원만 하다가 정치 접을 거야?"
"우리 하 의원은 9선 이미 끝내고 50대 중반이라고, 시장 3선까지 찍고 나면 66, 67세쯤?"
"오, 대권 도전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
"하 의원이 대통령 되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으면 했는데, 그게 아쉬워."
"뭐야, 시장 되는 것까지는 보고 저승 가겠다는 거 아니야? 앞으로 서른 몇 년을 더 살겠다고? 그럼 110살이 넘어, 자네!"
"아, 100세 시대에 110살까지 살아보겠다는 게 과한 욕심인가? 내가 과한가?"
하수영 계파원들은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며 노는 노인들의 모습을 긴장해서 바라봤다.
언행은 평범한 동네노인들이지만, 죄다 자산이 천억 이상 가는 부호들이다.
웬만한 지역정치 생태계에서 끝판 왕 보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
그런 이들을 세 자릿수 넘게 후원회 멤버로 두고 있는 하수영은, 진정한 청담동 마왕.
아니, 마신.
"압니다. 다들 초보들이신 거. 하지만 제가 커리큘럼을 짜드릴 테니까, 그대로만 하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정작 하수영 본인도 1년이 안 된 보궐 출신 초선이지만, 아무도 지금 초선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았다.
"사실 강남구의회와 울릉군의회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이서환 후보님이 조금 쉽지 않겠어요."
"그만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서환은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자신이 재벌 사생아였지만, 가문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그저 얼굴도 한 번 못 본 부친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건물 한 채만 받았을 뿐.
하지만 이서환은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너희들이 무시한 사생아가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그리고 세상을 위해 큰 꿈을 펼치는지.
시의원은 그 첫걸음이다.
"마음 같아서는 바이럴 광고라도 하고 싶은데, 한 번 룰을 어기면 거기 너무 맛 들리고 쉬워지고 그러다가 흥미 잃어서 인생 접고 싶어지고, 그래서 안 하려고요."
게임에서 치트를 한 번 쓰면 계속 쓰게 되고, 게임이 쉬워지면서 흥미를 잃는다.
인생이라는 게임 역시 마찬가지.
하수영이 세상의 기존 규칙을 가급 적 지키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프리덤으로 바이럴 한 번 시원하게 때려주면 선거운동할 필요도 없지. 대신 아무런 재미도, 감동도 없지.'
무한전쟁의 반복에서 찾아낸 답.
인생은 재미라는 행복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선거운동의 첫 스타트는 정해뒀습니다. 바로 내일입니다."
"내일이요?"
"네, 다들 야구는 좋아하시나요?"
"……야구요?"
모두 어안이 벙벙해서 반문했다.
웬 야구가 갑자기?
***
-여기는 잠실구장입니다.
-오늘부터 맥산 비어스와 화산 호크스의 3연전이 시작되는데요.
-주말을 맞아, 오늘 아주 특별한 게스트분이 시구를 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아마 시청자 여러분들 깜짝놀라실 텐데요.
-네, 저도 시구자 이름을 듣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거, 지금도 입이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네, 지금 시구자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이 음악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등장 테마곡, 임페리얼 마치로군요.
-아, 지금 시구자…… 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 이게 뭐죠? 한두 명이 아니군요?
-모두 17명입니다. 그, 그런데 복장이…… 아, 시청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해설 실수.
하지만 시청자들은 아무도 거기에 주목하지 않았다.
그들 역시 잠실구장 마운드를 향해당당하게 행진하는 17인의 시구자 일행을 보고 있었으니까.
살점 하나 보이지 않는, 흰색 헬멧과 흰 방탄복을 입은 새하얀 16인의 우주제국 병사들.
그 병사들의 선두에서 당당하게 마운드를 향해 걷는, 금색 갑옷과 헬멧을 쓰고, 금색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시구자.
-다, 다스베이더가 블랙이 아니라 골든 컬러를 입고 나왔네요? 하하하…….
해설자의 애처로운 웃음소리는, 관객과 시청자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마운드에 선 하수영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자신이 오늘의 에이스 선발투수이기라도 한 듯한 당당함과 여유로움.
일반 연예인 시구자가 저렇게 느긋하게 굴었다가는, 양 팀 선수들이고, 코치진이고 감독이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우리 새 구단주…… 진짜 쇼킹하긴 쇼킹한데?"
"와, 포스가 장난 아니네. 마음에 들어. 딱 내 스타일이야."
"현금만 1,100조 원이라며? 그럼 연봉 가지고 째째하게 굴진 않겠다."
"병신아. 자기 현금이 아니고 자기 은행 예치금이 1,100조 원이라고 하잖아."
"아요, 형님. 왜 욕을 하고 그러십니까. 대충 그렇게 말할 수도 있는 거죠."
한국에서 서해그룹 회장보다 더 돈많다고 알려진 신임 구단주.
구단주의 시구가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지만, 과연 저 사람은 어떨까?
파격적인 코스튬 복장과 등장부터, 이미 선수들은 경기보다는 그쪽으로 흥미가 돌아갔다.
-마스터, 힘 조절 잘못하시면 포수 죽습니다. 그럼 오늘 경기 망합니다.
"알고 있어, 인마. 알아서 조절할 거야."
-이 시구의 진정한 목적은 지방선거운동이라는 점을 기억해 주십시오.
"진정한 목적 중에 하나일 뿐이지. 어떻게 사람이 한 가지 목적과 이유 만으로 행동할 수가 있겠냐?"
-그건 그렇습니다.
"그나저나 요즘 크보 구속 최고 기록이 얼마지? 대충 이때쯤이면…… 시속 200㎞인가, 220m인가?"
-약 169.14km/h입니다. 한국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스탯캐스트 기준 신기록입니다.
"와, 어쩐지 구장이 콩알만 하더라. 이런 애들 야구 보고 있으니까 관객들이 그렇게 성질이 나빠지는 거야."
-많은 관객들이 지속적인 PTSD를 호소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좋아, 그럼 딱 170km에 맞춰 줘야겠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70으로."
무한전생자의 영혼이 깃든, 엘릭서 몇 방울로 다져진 초월적인 신체.
파5홀의 비거리도 한 방에 쳐서 넣는 파워와 정확도를 겸비한 몸에게 있어, 170,00km/h의 핀포인트 패스트볼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수영은 헬멧을 벗었다.
옆에 시립해 있던 우주제국 병사가 공손히 헬멧을 받아든다.
전광판에 하수영의 얼굴이 비치자, 관객들 사이에서 놀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어? 어어? 어어어?"
"하수영 의원 아니야?"
"나 저 사람 알아! 수영사채 회장이야!"
"프라임컴퍼니 오너라고! 우리나라 최고 식품재벌! 아니아니, 농민재벌!"
"와, 저 사람이 시구하는 거였어?
어쩐지 저렇게 요란하게 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더라."
"일반 연예인이 저렇게 했으면 자기 홍보한다고 구단에서 욕 엄청 먹었을 텐데."
관객들은 실질 구단주가 바뀌었다는 것까지는 아직 몰랐다.
구단 이름, 구단의 모기업 이름도 아직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박! 지금 엠바고 끝났다는데, 프라임오일에서 화산정유 인수했대!! 구단 모기업 말이야!"
"뭐? 그럼 이제 저 사람이 구단주인 거야?"
"진짜 구단주인 거지. 기존 구단 사장은 이제 진짜 월급사장인 거고."
"대박이네. 그럼 우리 화산, 올해는 가을야구 할 수 있는 건가?"
"이제 정규리그 끝물인데 무슨 소리? 남은 경기 전승해도 가을야구는 절대 못 감. 가능성 전무함."
"시벌. 병신같은 선수놈들 리그 막 판이라고 설렁설렁하려다가 군기 바짝 들겠는데."
"구단주가 저러고 나온 것부터가 선수, 코치감독에게 단단히 경고하는 거다. 앞으로 지켜볼 테니 잘하라고, 리그 끝물이라고 설렁설렁했다가 내년에 재미없을 줄 알라고."
"오, 자세 잡는다."
"자세, 예술인데?"
"우리 1, 2선발보다 훨씬 낫다. 자세만 보면 그냥 구단주가 대신 뛰어도 되겠네."
우주제국 병사들이 사주경계를 하는 동안, 헬멧을 벗은 하수영이 크게 와인드업을 하고 있었다.
망토가 펄럭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진지한 표정과 동작이었다.
'살살, 아주 살살! 정확히 170km/h에 맞춰서 포수 글러브에 꽂아 넣는다!'
슈우웅!
콤마 초 단위로 총알같이 날아간 공은 순식간에 글러브에 빨려 들어갔다.
동체신경을 넘어선 속도에 놀란 시타자 현역 선수는 저도 모르게 배트를 휘둘렀지만, 이미 공은 글러브에 꽂힌 지 오래였다.
'뭐? 뭐야?'
포수는 욱신거리는 손바닥의 감촉에 놀라, 저도 모르게 전광판을 바라봤다.
[170km/h]
"뭐야? 170km/h라고? 아, 어쩐지 손이…… 아니아니, 이게 아니잖아! 메이저 파이어볼러도 아니고, 일반인이 어떻게 이런 구속을 내?"
관중석도 이미 흥분의 도가니였다.
홈팀이고 원정팀이고 구분 없이 흥분해서 마구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씨발, 이거지!"
"진짜 야구의 신이 나타났다! 공놀이들 하는 짓거리 답답해서 자기가 구단 사고, 자기가 던지고 있다!"
"아니, 170이면 메이저신기록급 아님? 이게 말이 됨?"
"답답해서 내가 샀다! 답답해서 내가 던졌다! 이게 바로 청담동 구단주 클라스다, 이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