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53화 (753/1,270)

프랜차이즈 갓 753화

187장 답답해서 내가 산다 (2)

"제게 구단이 있었다고요?"

장효주는 눈을 크게 뜨며 입을 가렸다.

"정말 몰랐어요?"

"알아야 하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구단주 본인이 정작 구단주라는 것을 모르면 이상하잖아요."

"떨이로 이것저것 사들이다 보면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모를 수가 있죠."

"……."

얼마 전, 화산그룹이 분열되었다.

고질적인 재정 악화, 형제간의 유산 다툼.

여기에 경쟁기업의 탐욕 낀 이빨까지.

근 10년 가까이 이어져 온 그룹의 혼란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그룹은 사업체를 쪼개 팔아서 막대한 채무를 부담했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상당한 부분 탕감을 구걸해야 했다.

여러 재벌 기업들의 화산그룹의 살점을 나눠 가졌고, 그중에는 프라임오일도 있었다.

프라임오일은 정유 사업체를 인수했는데, 그 밑에 야구 구단도 하나 딸려 있었다나?

"그리고 요즘 야구 인기 별로예요. 예전 같지가 않아요. 사실 누가 야구 봅니까, 요즘?"

"그래도 우리나라 4대 리그 중 하나인데. 썩어도 준치라잖아요. 아직도 관객은 제일 많아요."

프라임오일의 지분 80%를 가진 하수영은 사실상의 구단주인 셈.

하지만 전 화산정유의 사장이 아직도 구단주 노릇을 하고 있다.

프라임오일을 관리하는 정서희도 정작 관심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화산정유 내부에서도 임원이 구단주 대행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화산정유 안에서도 찬밥 신세라는 뜻이다.

"쯧쯧, 그러니 관리가 그렇게 개판이지. 화산 호크스 요즘도 말 엄청 많던데."

-KBO 자체가 요즘 구설수가 많습니다.

"화무십일홍인 거야. 십 년 넘게 활짝 피어 있었으면 족한 거지. 애초에 국민들 눈속임 3S 정책으로 활성화된 리그인데."

"그래도 야구 구단 있으면 기업 홍보에도 좋지 않아요?"

"수영농장은 홍보가 별로 필요 없는 사업체죠. 정유, 서진파운드리, 병원도 마찬가지고요."

"수영레스토랑은 서울 말고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서울 외에는 부산 지점 하나밖에 없고."

"차라리 화산 호크스가 부산 연고였으면 더 좋았겠네요. 왜 하필 수원 연고여서 쓸 데가 없는 거지?"

장효주는 순간 야구장에 나오는 수영레스토랑 홍보를 상상했다.

'진짜 부산 연고인 게 더 낫겠구나.'

"근데 화산정유 이 친구들은 회사가 팔렸으면 재깍재깍 와서 인사 올려야지, 왜 여태 연락이 없는 거야?"

-그룹 해체된 지 얼마 안 됐는데, 거기도 구단 운영에 신경을 쓸 겨를 이 없을 겁니다.

"그래도 나름 첫 스포츠 구단인데, 내가 친히 왕림해서 축사 겸 시구 한 번 해줘야겠군."

-첫 스포츠 구단은 아닙니다.

"뭐야?"

-배구, 농구, 핸드볼, 그리고 e스포츠 구단을 포함해서 총 6개의 구단을 갖고 계십니다.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야?"

-전성렬 사장과 정서희 부사장은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만, 지금은 잊어버렸을 겁니다.

집이 너무 큰 부자는 집에서 길을 잃는다.

사들인 게 너무 많다 보면, 작은 스포츠 구단 몇 개쯤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 있다.

"그래서 효주 씨가 시구 이야기한 거군요. 시구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화산 팬이었나요?"

"화산 팬 맞아요. 시구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시구는 해봤어요."

"그럼?"

"수영 씨가 시구하는 거 한 번 보고 싶은데, 생각 없어요?"

"아, 당연히 해야죠. 오리지널 구단 주가 시구 한 번 딱 해줘야지 체면이 살지 않겠습니까?"

***

정병걸은 멘탈이 나간 상태로 친구를 찾았다.

"자네는 알고 있었지?"

"……뭐가?"

"알고 있었군. 표정 보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미 눈치 깠네, 갔어."

넷 중에서 유일하게 합의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친구.

당시에는 현명하고 이성적인 대처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 표정을 보니 그것뿐만이 아닌 게 확실해졌다.

"……사실 알고 있었네. 그래서, 뭐 내가 자네들한테 나쁘게 했나? 아니잖아."

정병걸은 순간 할 말이 없어졌다.

"우리 아들도 잘못했고, 나도 똑같이 2,500만 원 합의금으로 냈어. 저쪽에서 오히려 우리를 엄청나게 봐준 거라고."

"지금 누가 그거 가지고 뭐라고 하나? 알고 있었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알고 보니 피해자가 야구 구단주였다고!"

정확히는 구단 기업의 모기업의 모기업의 가맹점주가 피해자였지만, 그냥 구단주라고 퉁치는 게 편할 것이다.

그러자 친구가 오히려 놀랐다.

"구단주? 그게 무슨 말인가?"

"뭐야, 갑자기 웬 시치미인가?"

"이번에 우리 회사가 수영그룹에 원재료 90억어치 납품 건 이야기하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 90억을 납품한다고? 소소하게 거래하는 게 아니었어?"

"구단주야말로 무슨 말이야?"

"……."

"……."

둘은 서로 말이 조금씩 엇나가고 있음을 드디어 깨달았다.

정병걸이 먼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프라임오일이 얼마 전에 야구 구단 모기업을 하나 인수했대."

"프라임오일이라면, 수영농장 자회사잖아?"

"자회사나 마찬가지지. 근데 X발, 우리 아들이 화산 호크스에 입단했다고, 오늘 계약서 쓰러 갔는데 제 번에 그 변호사가 나 보면서 웃고 있었단 말이야."

틀림없이 알고 마중을 나온 것이리라.

애초에 자기 주업무가 아니라고, 시작부터 못을 박았으니까.

계약서만 검토해 주면 됐지, 계약자리까지 나올 이유는 없을 테니.

"뭐? 화산 호크스? 우리 아들도 화산 호크스인데!"

"자네 아들도?"

"……하. 싹싹 빌어서 합의금 내고 간신히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미치겠네."

국내 야구 시장에서 구단의 권력은 절대적이다.

마치 라면과 참치캔을 먹으려면 수영그룹을 피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이점은, 저 둘은 안 먹으면 그만인데, 야구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려서 쭉 야구만 해왔고, 앞으로도 야구 관련 일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하는데, 입단 전에 해외로 진출하면 된다지만, 해외에서 먹힐 만한 실력은 또 아니었으니.

"내가 이 새끼 한 번만 더 술 처먹으면 가만히 안 놔둘 거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들이 참치에 복분자라니, 내가 낳았지만 아주 미친놈이라니까."

***

잠시 통화를 하고 돌아온 장효주는 하수영이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음을 보았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나 했는데,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린다.

"수영 씨는 낮잠을 이렇게 자는구나."

장효주는 신기한 마음이 들어서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대배우들처럼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은 아니다.

하지만 깔끔하고 완벽한 균형으로 자리잡힌 이목구비.

전업 농사꾼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희고 맑은 피부.

수염은커녕 솜털 하나 보이지 않는 매끄러운 피부를 남자가 갖고 있으니, 질투마저 난다.

'몸이 정말 건강한가 봐. 얼굴이 이렇게 깨끗한 걸 보면.'

맨 프롬 콜롬비아를 찍을 때 키스신을 가졌던 추억이 생각났다.

저도 모르게 얼굴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데, 별안간 하수영이 으으으 하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동시에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마구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머, 왜 이래?"

장효주는 놀라서 얼른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아 주었다.

손길이 닿자 하수영이 부스스 눈을 떴다.

"왜 그래요? 갑자기 땀 엄청 흘리던데. 악몽 꿨어요?"

"중국…… 중국이 제 버섯농장을 갈취하는 꿈을 꿨어요."

"수영 씨도 그런 건 무서운가 봐요? 아, 하긴, 중국 농장, 일 년에 100조 원 넘게 들어온다고 했었죠?"

하수영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이상기후, 바닷물고기 멸종, 전 세계적 해충 피해, 일조량 감소와 식물 전염병으로 지구적 식물 팬데믹……."

"네?"

"식량 확보를 위해 전쟁이 일어나고, 내 농장을 탐낸 일본과 중국이 한반도에 상륙하고, 미국과 러시아의 참전으로 전쟁이 확대되고……."

하수영은 멍한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우주농장을 뺏으려는 놈들이 청담동 궤도 엘리베이터를 강탈하고, 극단주의 한국인들이 뺏길 바에는 차라리 없애겠다며 궤도 엘리베이터를 파괴하는 꿈을 꿨어요."

"……무시무시한 꿈이네요."

장효주는 진심으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남자, 무슨 꿈을 꿔도 저렇게 초대형 블록버스터 스케일이란 말인가?

"그 안에서 결국 나는 선택을 해야만 했죠."

"……무슨 선택이요?"

"그때까지 축적한 모든 농업 관련기술을 전시용으로 전환하고, 모든 농기구들을 무기로 개조했어요."

"……?"

"농장관리 인공지능은 무인군단 커맨드 타워 모드로 재설정했고, 대기권 부유농장은 비행항공모함이 됐죠. 살충 드론들은 요격기가 되어 지상을 폭격했고요."

장효주의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갔다.

하수영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괴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해저농장은 잠수모함이 되어 놈들의 해군 전대가 기동하지 못하게 모국가의 해상 출입을 완전히 틀어 막았어요."

그의 눈빛은 아직도 멍한 채였다.

"형상에너지 중립화 변환 펄스 도축건은 리미트를 완전히 풀고, 전 지구인들을 잠재적 타켓으로 락온했죠."

불끈 쥐어지는 주먹이 부르르 떨리고 있다.

"무슨무슨 도축건? 그거 혹시……?"

"네, 맞아요. 지금 수영도축장에서 사용하는 도축 시설이죠. 가축들을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게 해줘요."

"그걸로 사람도 죽일 수 있…… 아, 제가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을 할 뻔했네요."

가축 잡는 도축칼, 당연히 사람도 죽일 수 있는 게 정상 아닐까?

장효주는 다만 그 정확한 스케일까지는 몰랐다.

"건설로봇들은 더 이상 농기구가 아닌, 살인병기를 만들기 시작했고, 서진파운드리는 폰, PC, 노트북, 태블릿, 서버가 아니라 살인병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찍어내기 시작했어요."

"……."

"그럼에도 인간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어요. 식량을 합리적인 가격에 팔 거라고 공고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식량을 생산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미쳐 있었어요. 아니, 누가 식량 안 판대?"

식량주권이 0%를 찍은 상황에 대한 절박함.

그것은 국가적인 광기를 낳았고, 절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인류가 10%로 줄어들고, 우주농장을 우주모함으로 개조해서 모든 지구 영역을 상시 감시하에 두고 통제함으로써 인류전쟁이 결국 끝이 났습니다."

"끔찍하긴 한데, 영화로 만들면 뭔가 흥미로울 거 같아요. 수영 씨는 그 꿈에서 마지막에 어떻게 됐나요? 인류 황제?"

"……인류 황제라니요. 10억 아기 새들이 부리만 벌리고 떠먹여 달라고 짹짹거리는 데 환멸을 느끼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그게 무슨 황제입니까?"

"어쨌든 지구 독재자가 됐다는 거 네요?"

"아무튼 정말 끔찍한 꿈이었어요. 으으, 아직도 소름 돋은 것 좀 봐."

"남자들 재입대하는 꿈만큼 끔찍했나요?"

"그것과 어떻게 비교를…… 에이, 대충 그 정도쯤 된다고 칩시다."

"그럼 정말 끔찍한 꿈 맞네요. 우리 아버지는 아직도 입대하는 날 꿈을 꾸시는데, 그때마다 온몸이 땀에 젖어서 깬대요."

장효주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살짝 웃었다.

"수영 씨는 재물운이 워낙 좋으니까…… 그거 혹시 예지몽 그런 건 아니겠죠?"

"효주 씨, 나 싫죠?"

"아뇨, 좋은데요. 완전 좋아하는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