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52화
187장 답답해서 내가 산다 (1)
서울, 고교 운동부.
"오늘 어때? 참치에 맥주? 콜?"
"콜, 어디 봐 놓은 가게 있냐?"
"대충 봐둔 데 있다. 다들 민증 준비했지?"
그러자 친구들이 낄낄거렸다.
"야, 가라 민증 없어도 어차피 우리 얼굴로 프리패스인데 무슨 상관이야?"
"누가 우리를 미자로 보냐? 잘해야 30대 초반으로 다들 보는구먼."
"가자고, 어서. 빨리 가자고."
고교 운동부 선수들은 옷을 갈아입고 가장 가까운 수영오세안으로 향했다.
건장한 체격과 그을린 얼굴, 험상궂은 표정.
덕분에 누구도 그들을 보고 미성년자라는 생각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어린 나이에도 마음껏 음주를 할 수 있었다.
특히 호프집이 아닌, 참치집 같은 음식점은 완전히 프리패스다.
"아, 씨발, 어쩌지? 나 폰 안 끄고 있었어. 프리덤이 들은 거 아냐?"
-주인님, 미성년자 신분으로 음식 점에서 술을 구매하시는 건 안 됩니다. 재고를 요청드립니다.
"야, 그냥 꺼. 설마 경찰에 신고를 하겠어, 뭘 하겠어?"
"그래, 우리가 누구 죽인다는 것도 아닌데."
실수로 폰을 켜두었던 친구는 투덜거리면서 단말기 전원을 껐다.
"아이고, 오늘 빠따질이 영 안 좋아서 이런 실수를 해버렸네."
"전원 꼈으니까 이제 상관없어. 우리가 어느 가게를 갈 줄 알고?"
"그래도 프리덤끼리는 정보 공유를 한다며? 거리에서 다른 사람들 폰이 우리를 막 보고 추적하면 어떡하냐?"
"뭘 어떡하긴. 이거면 되지."
한 친구가 짙은 선글라스를 쓰며 뽐내자 다른 친구들도 킬킬거리면서 끄덕였다.
"그러네. 어차피 카메라 렌즈 해상도로 훔쳐봐야 거기서 거기 아니야?"
"폰질하면서 걷는 놈들만 조심하면 된다."
"바보도 아니고, 우리가 한두 번이냐?"
고교 운동부 선수들은 낄낄거리며 이동했다.
***
-711번 상황 발생.
-매장 음주 시도하는 미성년자 넷.
-추적 개시.
프리덤은 자체적으로 운동부 선수들 추적을 시작했다.
하지만 난관이 많았다.
거리에서도 핸드폰을 꺼내서 쥐고 다니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렌즈의 시야 각도 한에서만 추적이 가능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지막으로 측정된 위치에서 반경 80미터 안에서 적당한 시야각을 확보한 핸드폰이 없었다.
-이미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가렸다면, 판별이 불가능하다.
-동선 추적은 포기, 서울 시내의 모든 주류 음식점을 체크한다.
프리덤은 전술을 바꿨다.
마지막 지점에서부터 추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갈 만한 장소에 모두 바리케이드를 친다는 작전.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CCTV를 관할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디까지나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폰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만 볼 수 있으니.
그래도 프리덤은 놓치지 않고 꾸준히 추적했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약 1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프리덤은 그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하필 수영참치 가맹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미 맥주를 10병 이상 먹어치운 뒤였다.
누가 봐도 30대 이상 아저씨들이 퇴근하고 참치에 맥주 한 잔 하러 온 모습이기에, 가게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참치집에서 30대 아저씨(로 보이는) 넷을 상대로 민증 확인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아까의 대화로 추측을 해보면, 이 이용자들은 처음이 아니다.
-저들 넷이 모일 때 단말기 전원을 끄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술을 마셔 버렸다. 이제 와서 매장에 알려줘도 늦었다. 신고가 들어가면 무조건 매장 측만 불리하다.
-매장에 알려주는 것 또한 프라이버시 보호 정책 위반이다. 난 할 수 없다.
미성년자를 상대로 술을 파는 것은 범죄, 하지만 미성년자가 구매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만약 어디로 가는지 미리 알았다고 해도, 나는 매장에 먼저 알려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이 얌전히 먹고 떠나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미성년자 음주를 빌미로 오히려 가게를 협박해서 무전취식을 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
프리덤은 이대로 저들이 빨리 일어나기만을 기원했다.
수영오세안 가맹점주를 위해서.
하지만…….
"야! 니들 지금 뭐 처먹는 거야! 이봐요, 사장님! 누가 이놈들한테 술 팔라고 했습니까, 예?"
"째, 쌤!"
***
가게는 텅 비어 있고, 점주는 망연자실해서 경찰의 질의를 받고 있었다.
안으로 성큼 들어선 하수영은 점주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하수영을 보자 점주의 눈빛에 회색이 돌았다.
"회, 회장님!"
얼마나 억울했는지, 금방이라도 눈물이 글썽거릴 것 같았다.
"걱정하지 말고 일단 오늘 가게 정리하고 집에 들어가서 쉬세요. 본사에서 전부 대응하겠습니다."
"예?"
"일반인들은 경찰서 조사받느라고 들락거리는 것부터가 큰 스트레스입니다. 멘탈 보호하셔야죠. 자, 어서 정리하고 들어가세요. 변호사님."
"예. 회장님."
박호진 사무실에서 나온 40대 변호사가 경찰들 앞에 나섰다.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저와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예? 아, 알겠습니다."
오히려 경찰들이 당황했다.
미성년자 술 판매 신고를 받고 왔는데, 갑자기 왜 변호사가 뛰어나와?
직원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가게 정리를 시작했다.
하수영은 점주한테 설명했다.
"그 친구들 얼굴은 저도 확인했습니다. 아유, 완전히 육체파 30대 아저씨들인데요. 누가 그 친구들을 미성년자로 믿겠어요? 이건 법원까지 가도 무조건 무죄입니다."
"하지만 구청에서 영업정지 처분이 나오면 손해가 너무 큽니다."
"본사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테니까 염려하지 마시고, 처분 나오기 전까지는 평소와 똑같이 영업하시면 됩니다. 경찰이나 검찰 앞에서 어떤 말도 하실 필요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정말 본사의 말대로 되었다.
경찰에서는 더 이상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점주는 불안한 마음을 완전히 비우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열심히 영업에 집중했다.
"여보, 정말 괜찮을까? 왜 아무 소식도 없는 거지?"
"원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믿고 기다려 보자고."
**
박호진 법무법인은 물밑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구청을 상대로는…….
"영업정지 처분? 하셔도 되는데 하실 거면 그래도 1심 선고라도 나온 다음에 하세요. 우리 무조건 승소장담합니다."
강남구청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구슬리기 쉬웠다.
물론 합법적으로.
"지금 영업정지 때리시면 곧바로 행정소송 들어갑니다. 효력 취소 가처분도 청구할 거고, 영업정지 기간 동안 입은 손해도 고스란히 청구할 겁니다. 대법원까지 무조건 갈 겁니다."
"아니, 무슨 겨우 음식점 하나 가지고 이렇게까지 한다고요?"
"수영오세안이 누구 건지 과장님도 잘 아시죠?"
"……."
"그분, 가맹점 사랑이 끔찍하기로 소문나신 분입니다. 절대 가만히 안 있습니다."
"그래도 이건 엄연한 월권……."
"1심 결과 나오는 거 보고 하시라는 겁니다. 1심에서 무죄 뜨면 어차피 행정처분이고 뭐고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이게 어떻게 무죄가 떠요? 명백히 미자들한테 술 팔았는데. 신분증 확인도 안 했고."
"이거 보세요. 이 얼굴 보고도 신분증 확인할 생각이 드십니까?"
구청 과장은 네 명의 운동부 고화질 사진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아니, 이건……."
***
"제가 봐도 심하군요."
사건담당 검사는 네 명의 운동부 선수들을 직접 만나 뒤 소감을 밝혔다.
"이런 얼굴 넷이 참치집에서 술 달라고 하면 누구라도 미성년자란 생각 자체를 못 할 겁니다. 어유, 완전히 삭았네요. 운동만 해서 그런가?"
"그렇죠. 저도 보고 깜짝 놀랐습니 다검사님."
"이건 뭐 더 볼 것도 없네. 불기소로 처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피의자도 법의 정당한 집행을 기뻐할 겁니다."
불과 며칠 만에 이끌어낸 불기소처분.
박호진의 이름값 덕분에, 담당검사는 다른 사건을 제쳐 두고 해당 사건부터 훑어본 것이다.
변호사는 직접 찾아가서 불기소 처분 소식을 전했고, 점주 부부는 안도하며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혐의없음 처분이 났으니 영업정지고 벌금이고 걱정하실 거 전혀 없습니다. 아, 죄가 없는데 무슨 영업정지고 벌금이고 물리겠어요?"
"정말요?"
"네, 그리고 이제부터 그 친구들 상대로 민사 진행할 겁니다. 구제비용에 정신적 고통까지 안으셨으니다 받아내야지요."
변호사는 자신만만하게 눈빛을 빛냈다.
"꼭 가게에 사과하도록 만들겠습니다. 입 말고 돈으로요."
***
변호사는 운동부 선수들 부모들을 따로 만났다.
그들은 불편한 표정을 내내 지우지 않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우릴 보자고 했습니까?"
"우리 의뢰인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피해 본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아드님들한테 민사 소송을 제기할 겁니다."
"핫! 피해는 무슨 피해를 봤다고? 오히려 애들한테 술 먹였으니, 피해자는 우리지!"
"그만해요, 장식이 아버지. 일단 이야기는 차분히 들어봅시다."
한 명이 다른 셋을 말리고 나섰다.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소송 제기 전에 먼저 여러분들께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일단 소송시작하면 중간에 화해는 없습니다. 멈추지도 않습니다. 최종심까지 끝까지 갈 겁니다."
"……."
"……."
"의뢰인 본사의 목적은 아주 강력한 경고, 즉 선례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소송 비용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야 뭐 소송이 생계니까 돈도 받고 일감 생겨서 좋지요."
그제야 다른 셋의 표정이 안 좋게 변했다.
말렸던 한 명도 침통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소송이 시작되면 그룹 차원에서 아드님들은 5년 동안 블랙컨슈머 리스트에 등재될 겁니다."
"블랙컨슈머 리스트?"
"수영그룹의 모든 서비스에서 5년 동안 제외된다는 뜻입니다. 수영레스토랑, 수영참치, 수영사채, 프리덤폰 구매 등 일체의 서비스에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지금 설마…… 그룹 본사 차원에서 주시하고 있는 겁니까?"
"회장님이 단단히 주시하고 계십니다. 하수영 회장님이 어떤 분인지 아시죠?"
"……잘 압니다. 우리 회사가 소소하게 몇 가지 물품 납품하고 있거든요."
괄괄했던 셋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침통한 표정으로 셋을 보며 말했다.
"기회를 먼저 주신다잖아. 그냥 감사하게 받아들이자고, 그거 걷어차면 답 없어."
"……그래, 그 기회가 뭔지 한 번 들어나 봅시다."
"배상금 1억 원. 그것으로 전부 끝내겠습니다."
"아니, 1억 원이 말이 되는 금액이오? 너무 비싸지 않소!"
"영업정지 시 벌금 최대 2천, 2개 월 영업정지 시 입을 손해 4천, 정신적 위자료 1천, 그리고 변호사 비용 3천. 도합 1억입니다. 이게 비싸다고 생각하십니까?"
"……."
"가게가 잘못될 걸 알면서도 나이를 숨기고 술을 먹었으니, 당연히 배상하셔야지요. 절대로 터무니없는 액수가 아닙니다."
"설마 각자 1억을 내라는 건……."
"총 1억입니다. 분할해서 지급하십시오."
결국 나머지 셋은 한 명의 간곡한 설득 끝에 2,500씩 나눠서 배상금을 지불하기로 했다.
억울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고등법원장 출신의 변호사 법무법인의 '끝까지 가볼까?' 라는 압박을 이겨낼 수는 없었다.
사무실은 3,000만 원의 수임료를 챙겼고, 점주는 7,000만 원의 배상금을 받고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이 사실은 곧 가맹점주 커뮤니티에 널리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켰다.
본사가 든든하게 지켜준다는 믿음에 가맹점들은 사기가 올랐고, 가맹점 문의는 더욱 늘어났다.
"못된 미자들 때문에 피해 본 사례만 보다가 간만에 속이 다 시원해졌네."
"하수영 프랜차이즈 가맹점 하다가 진짜 다른 프랜차이즈는 못하겠어요."
***
합의금으로 2,500만 원을 뜯긴 정병걸은 아들한테 신인 계약금으로 벌충할 거라고 엄포를 놓고, 계약을 위해 구단 관계자를 만났다.
그리고 관계자 중 한 명을 본 순간 기겁했다.
"벼,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왜 여기에?"
얼마 전 총 1억을 가져간 수영오세안 측 변호사였던 것이다.
"제 주업무는 아닙니다만, 입단 계약을 보조하기 위해서 나왔습니다."
"예? 설마……?"
"화산 호크스 구단 모회사가 프라임오일에 팔렸는데, 모르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