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51화
186장 문어발이 뭐가 나빠? (6)
울릉군수는 과거 하수영을 비방한 적이 있었다.
혼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아니었다.
농업소득에도 과세를 해야 한다는 여론에 슬그머니 한 발짝을 걸친 것이다.
-목숨 걸고 바다에 나가는 어부들은 3,000만 원만 넘어도 소득세를 내는데, 농민들은 10억이든 100억이는 무제한 면세라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제 농민들에게서도 세금을 거 야 한다. 어민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
어차피 하수영을 저격하는 과세법안이었고, 통과된다 하더라도 기존농민들은 달라질 게 없었다.
때문에 울릉도 안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서 반발을 사지도 않았다.
그가 노린 것은 어업에 종사하는 군민들의 지지였다.
법안이 불발되긴 했지만, 울릉군수는 곧 잊었다.
하수영이 세금을 내든 말든 자신의 관심사는 아니었으니까.
그에게 하수영은 머나먼 나라 사람이었다.
아마 평생 얼굴을 볼 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황이 변했다.
"아니, 대체 왜 하수영 의원님 얼굴 뵙기가 이렇게 어려운 건가? 자네,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아?"
"그게 시간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시간을 내달라고 억지를 부릴 수도 없어서요."
"나, 울릉군수야! 우리 울릉도 양식산업에 1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분이라면, 당연히 내가 만나서 지자체가 도와줄 건 없는지, 그런 조율을 해야 하지 않겠어?"
보좌관은 겉으로는 고개를 숙였지만, 속으로는 투덜거렸다.
'애초에 체급이 전혀 안 된단 말입니다. 그 양반이 뭐하러 기초지자체와 협상을 합니까? 차라리 경북도청과 이야기를 하지.'
체급을 생각하면, 울릉군수를 패싱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애초에 패싱이라는 인식 자체를 가지지도 않을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울릉군수의 다급함을 이해했다.
'지방선거가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지금부터 부지런히 준비를 해야지.'
이미 울릉도는 하수영의 투자 때문에 크게 들썩이고 있는 상황.
천 명도 안 보던 울릉군민일보는 이제 울릉도에서만 하루에 만 부 넘게 나가고 있다.
총주민 수가 9,000여 명인데 만부가 넘게 나가고 있는 것이다.
관심 없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찾게 된 것도 있지만.
소장용 1부, 탐독용 1부, 포교용 1부, 이렇게 3부씩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도 크다.
울릉도에서 하수영은 이미 해신이었다.
조금이라도 그를 비판했다가는 아마 산 채로 바다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
전 군민들이 광적으로 하수영을 찬 양하며, 그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차기 군수와 군의원은 하수영이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만 해도 묻지마 당선이 될 것이다.
"군수님, 설마 이 작은 섬 정치 생태계에 그분이 크게 관심을 가질 리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습니다."
청담동에 눌러앉아 하루가 멀다고 여의도 거대 양당 중진들의 러브콜을 받는 사람.
그런 이가 이 작은 섬의 기초정치에 눈길을 주기나 할까?
보좌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사람아. 반대로 생각하면, 그분눈에 한 번 들기만 해도 다음 당선은 자동통과라고! 공천심사고 뭐고 신경 쓸 게 전혀 없단 말이지!"
"아,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사진 한 방만 찍으면 되는데, 딱 같이 사진 한 방만 찍으면 되는데."
그걸 가지고 홍보하면 군민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찍어줄 테니까.
애타게 기회를 기다리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하수영이 울릉도를 직접 찾은 것이다.
닥터헬기 퀸 스텔리온이 날아온다.
는 소식을 들은 울릉군수는 부리나 케 수행원들을 데리고 헬기 착륙장으로 향했다.
"오, 저게 그 1,400억짜리 수송헬기인가? 정말 대단하군. 헬기가 저렇게 클 수가 있나!"
"유사시에는 로터를 접고 제트 추진력을 이용해서 엄청난 속도를 낼수 있다던데요."
"날아다니는 수술실, 중환자실이나 다름없답니다."
마침내 헬기가 착륙했고, 울릉군수일행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가갔다.
수행원 한 명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을 준비를 갖췄다.
하수영은 의외로 혼자였다.
수행원이나 경호원을 줄줄이 거느리고 다닐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였다.
'섬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내가 곁에 찰싹 붙어서 수행을 해줘야겠어.'
울릉군수는 그렇게 다짐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하수영 의원님. 저는 울릉군수 조말식이라고 합니다."
"아, 농업소득도 과세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부르짖던 바로 조말식 군수님?"
"……."
"……."
순간 분위기가 창백하게 굳었다.
촬영 준비를 하던 수행원은 슬그머니 카메라를 내렸다.
울릉군수는 숨이 넘어가는 사람처럼 얼굴이 새파래진 채,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 그것은……."
"내가 알고 있는 게 신기합니까?"
"의, 의원님……."
"저를 비난한 사람들은 다 기록을 해두는 편입니다. 귀찮아서 굳이 먼저 찾아가지는 않지만요.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실수로 잘해주게 되면 얼마나 불상사예요? 그런 일은 없어야죠."
울릉군수는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억울한 마음을 누르기가 힘들었다.
자신이 먼저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런 여론의 대세에 끼어들어 목소리 몇 번 낸 게 전부다.
자신 말고도 같은 소리를 한 이가 한둘이 아닌데, 이렇게 딱 걸리다니.
너무 억울했다.
"의원님. 제가 그때 실언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 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어업소득을 배려해 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러다 보니 엉뚱하게 말실수가 번진 것이지, 절대 농업소득에 과세를 하자는 게 아닌……."
"수천억 원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가가 세금 한 푼 안 내는 것은 부당하다, 그 세금을 거둬들여서 어촌을 지원해야 한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신 걸 제가 기억하고 있는데요."
"의, 의원님."
"프리덤. 틀어봐."
-예, 마스터.
그리고 프리덤폰에서 울릉군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인터뷰했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이래서는 안 돼요. 안 됩니다. 아니, 몇천억 원을 벌어대는 농가가 세금 한 푼 안 내는 게 말이 됩니까?
-도대체 국세청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정부는 왜 손을 놓고 있습니까? 이게 대한민국입니까! 이게 민주주의국가냐고요!
-제도를 바로 정비해야 나라가 똑바로 섭니다. 아, 참. 정말 답답합니다, 답답해요.
"……."
울릉군수는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몇십 명 보지도 않은 인터뷰기사를 어떻게 하수영이 알고 있는 거지?
"제가 피아식별은 확실합니다. 굳이 찾아가서 때리지는 않지만, 제 영역에 들어오면 손을 쓰죠."
모기가 집 밖에서 왱왱거리면 놔두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살충제를 뿌리는 것처럼.
"비켜주세요. 좀 지나갑시다."
울릉군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석상처럼 굳어서 하수영을 보내야만 했다.
함께 온 군의원들 역시 안절부절못했다.
이대로 군수와 자신들이 도매로 엮여 들어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지만, 체급이 워낙 차이 나다 보니 그럴 용기도 낼 수 없었다.
"의원님! 의원님! 저희는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애타게 해명을 외치면서, 먼발치에서 쫓아가기만 할 뿐.
***
먼저 울릉도로 건너온 창업자들은 콘도, 호텔 등을 단체로 빌려서 숙박하고 있었다.
울릉도에서 아직 월셋집을 구하지 못한 이들이다.
하수영은 그들과 함께 섬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파트 단지를 지을 생각입니다. 양식업자분들 전용으로요. 분양보다는 관리비 정도만 받고 임대를 하려고 해요."
"수영그룹이 주거지원 면에서 복지가 아주 좋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광진구에도 대단지 직원 아파트를 짓고 계시다고요."
"사람이 주거가 해결이 되어야 뭘 도모하든지 하니까요. 지반이 단단하긴 하지만 그래도 높이를 올릴 수 있을 만큼 올려봐야죠."
1차로 양식장을 설치할 해역 위치도 대충 정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러분들이 군수와 군의회도 싹 접수할 예정입니다."
"예? 저희가요?"
"저희는 외지인 출신인데요? 이제 섬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됐습니다."
"걱정 마세요. 수영양식장 깃발만 들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당선 될 겁니다. 그리고 울릉도 지자체를 여러분들이 접수해야 양식사업을 하기도 편해요."
듣고 보니 업인들은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영양식장은 나라도 못 해주는 것을 울릉도에 해주었으니.
"도의원과 국회의원도 접수하면 좋은데, 포항하고 선거구가 묶여 있다보니 아무래도 이번에는 좀 무리겠네요."
일단 같이 묶인 포항 지역과 인구수가 수십 배 이상 차이가 났다.
"국회의원, 도의원 선거구도 나중에는 단독으로 하긴 해야 할 텐데. 그렇다고 이 작은 섬에서 인구를 수십만 명으로 늘릴 수도 없고, 아유, 벌써부터 고민이네요."
하수영의 표정은 이미 울릉도가 자기 소유나 다름없다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자, 밥 먹고 성인봉이나 올라갑시다."
"네!"
점심을 해결하고는 다 같이 성인봉에 올랐다.
울릉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 멀리 내륙 쪽 하늘과 바다를 가리키며, 하수영이 말했다.
"당분간 내륙을 오가려면 배나 헬기를 이용하셔야 할 겁니다. 많이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아주세요."
"일하느라 바쁠 텐데 내륙에 갈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청담수영병원분원을 복합문화센터로 만들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쉴 때는 거기서 놀면 됩니다."
"그럼요. 게다가 퀸 스텔리온 헬기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시지 않습니까. 오히려 편하게 내륙 왕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헬기 타면 강남 한복판까지 1시간도 안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시간으로 보면 대전보다 오히려 서울이 가까워요. 하하."
다들 웃으며 한 마디씩 보탰지만, 하수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헬기 타고 가려면 매번 예약하고, 기다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요. 자차 끌고 바로 출발하는 자유로움은 없잖아요."
"그건 감수해야지요. 저희 선택인 걸요."
"나중에 KTX도 뚫어드리고, 고속도로도 놔드릴 테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세요."
"……?"
"……?"
창업인들은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수심이 1,000미터에서 3,000미터를 왔다 갔다 하는 바다에 다리를 놓겠다고?
"저, 어민 회장님, 동해는 수심이 아주 깊습니다.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아닙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프라임건설은 그런 거 문제없습니다. 지금은 무리지만 나중에는 동해시와 울릉도를 연결하는 직통다리도 놓을 수 있을 겁니다."
"……?"
"……?"
"엘리베이터에 비하면 그깟 해상다리는 별거 아니죠. 시간이 해결해줄 거예요."
다들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아무리 하수영이 돈이 많다지만, 그것만큼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냐. 2, 30년 후라면 건설 기술이 아주아주 발달해서 혹시 가능할지도?'
'근데 다리를 놓으려면 킬로미터단위 높이의 교각을 몇 개나 지어야 하는 거야?'
교각의 높이가 수 킬로미터, 도로 길이가 약 150킬로미터인 해상 다리?
창업인들은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대전, 수영조명 연구소 사옥 부지.
연구소를 짓기 위해 시찰을 나왔던 이도공은 동쪽에서 불어오는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고 몸을 떨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춥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