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50화
186장 문어발이 뭐가 나빠? (5)
왕세경은 부이사장실에서 로봇 하수영과 대화하는 중이었다.
프리덤이 흉내 내는 하수영이 아니라, 실제 본인이었다.
-울릉도에 수영양식장이 크게 투자한다고 울릉군민일보에 후속 기사로 났더군요.
"맹세코 내가 헛소리를 한 게 아닐 세. 난 광고만 의뢰했을 뿐이야. 믿어주게."
-아, 그거 제가 했습니다.
"뭐야, 이사장이 한 거였나?"
-네, 언제고 울릉도에도 양식장을 만들려고 구상은 했습니다. 지금이 딱 터뜨리기에 적기라서요. 타이밍은 놓칠 수 없죠.
"내가 울릉 신문사에 광고를 준 게 격발을 한 셈이구먼."
-좋은 격발이었습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왜 엄한 거짓기사를 지어냈는지, 신문사에 따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병원에서도 미리미리 준비를 해주셔야 할 거 같아요.
"무슨 준비?"
-울릉도에도 분원을 세워야죠. 저만 믿고 울릉도에 들어갈 사람들을 위해서 그 정도는 기본으로 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야. 알았네, 병원도 그에 발맞춰서 준비를 하지. 근데 지금 학교인가? 한국대?"
-네, 좀 더 빼갈 만한 오토, 아니, 인재가 없는지 다시 둘러보러 나왔습니다.
"핵융합 투자에 진심이구먼, 이사장. 자본금으로 1조 원밖에 안 넣어서 그냥 재미 삼아 투자하는 줄 알았는데."
-진행 경과에 따라서 차차 추가로 집어넣으려고요. 요즘 제가 현찰이 얼마 없다 보니 아무래도 조금 벅차네요.
"현찰이 없기는, 수영사채 수신액이 전부 이사장 현찰이나 다름없는데 무슨. 지금 그 발언, 플래카드에 적어서 병원에 걸어도 되나?"
왕세경은 당연히 웃자고 한 말이었다.
하수영이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청담수영병원의 성주신인 그는, 물질적인 욕망에서 탈피했다.
그가 돈에 욕심을 느끼는 것은, 좋은 세상을 위해 쓸 돈이 부족할 때.
"중국 버섯 농장하고 북미 레스토랑이 엄청 잘되는 줄 아는데. 그래도 돈이 없어?"
-거기서 선금 잔뜩 땡겨서 지금 수영사채 예치액 만든 겁니다. 당분간 돈 들어올 게 없어요. 아, 레스토랑 비율 정산은 찔끔찔끔 들어오겠네요. 잘해야 한 달에 20억 달러정도?
"20억 달러가 찔끔찔끔이라니. 나 이건 꼭 플래카드에 걸고 싶은데."
우리 병원 이사장이 이런 사람이라구!
20억 달러를 찔끔찔끔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이런 자랑을 하고 싶은 욕망은, 참기가 힘들다.
가택신이 집안 곳간에 쌓인 재물에 흐뭇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수협에 계좌를 틀었던 천여 명의 젊은 예비 양식장주들은 수영사채로 당연히 둥지를 옮겼다.
그들은 수영양식장을 비롯하여 전국의 여러 양식장에서 열심히 양식에 관해서 배우고 있었다.
프리덤이 24시간 일대일 전담으로 알려주고 있기에, 지식 흡수율이 빨랐다.
-굳이 몇 년씩 공부만 시킬 필요 있나? 프로 버전 열어주고 지금 바로 시장에 투입하면 되지. 원래 실전에서 제일 많이, 그리고 빠르게 배우는 법이라고,
그런 이유에서 젊은 예비 양식장주들은 수업과 동시에 창업 준비를 시작했던 것이다.
하수영은 그들을 전부 불러모았다.
르주블랑 호텔 대연회실에 모인 그들은 이유를 짐작했는지, 긴장과 희망이 뒤섞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바다의 어종은 씨가 말랐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생선값이 폭등하고, 가정집 식탁에서는 생선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하수영은 근엄하게 말을 떼었다.
"곡물사료를 이용한 양식업이 바로 미래입니다. 그래서 저는 울릉도에 대형 양식업 투자를 하기로 했습니다."
"제주도가 더 낫지 않겠습니까?"
누가 손을 들어 질문을 했고, 하수영은 유쾌하게 반응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제주도가 울릉도보다 더 크고 여건이 쉽겠죠. 하지만 울릉도는 제주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
"바로 제주도보다 서울까지 더 가깝다는 겁니다. 100km 정도. 물리적인 거리라는 장점은 절대 못 이기죠."
서울이 가장 큰 소비 시장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
"그리고 남쪽에는 이미 통영의 수영양식장이 있습니다. 굳이 바로 코앞에 붙어 있는 제주도에 중복 투자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통영의 수영양식장과 멀리 떨어진 곳에 새로 짓는 게 여러모로 이득.
어느 젊은 창업자가 다시 질문했다.
"울릉도에서 서울로 운반하려면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할 텐데, 겨울이면 폭설 때문에 자주 정체되거나 고립됩니다."
"아, 걱정하지 마세요. 안 그래도 동해시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 하나 더 놓을 겁니다."
"고속도로 건설 발표가 있었습니까?"
"제가 100% 민자사업으로 할 겁니다."
그 점은 다들 납득했다.
하수영이라면 사비로 고속도로 170㎞짜리 고속도로 하나 놓는 것쯤 문제없으리라.
"폭설이 도로 봐가면서 퍼붓고 그러지는 않을 텐데요?"
"개폐식 뚜껑을 달 겁니다. 평소에는 열려 있다가 눈이 오면 닫히게요. 경사진 아치형으로 만들어서 눈이 얼마가 쌓이는 무너지지 않게 할 거고, 열선도 넣어서 눈이 내려앉자마자 녹아서 흘러내리게 할 겁니다."
"……."
"……."
아니, 그럼 대체 건설비용이 얼마가 되는 거야?
젊은 창업인들은 차마 도로 건설비용이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남쪽의 통영, 동쪽의 울릉도, 이 두 양식장이 서로를 보완하며 한국인의 식탁을 지키는 수호신이 될 겁니다."
'어민 회장님, 울릉도 투자에 정말 진심이셨구나. 소소하게 투자하시는 게 아니었어.'
'이러면 나도 끌리는데? 경남 바다 말고 울릉도로 넘어가 봐?'
"동해를 아우르는 초대형 양식산업단지, 여기에 제가 1차로 1조 원을 투자할 겁니다. 양식환경 조성에만 투자하는 금액입니다."
하수영은 더 강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울릉도에 청담수영병원 분원을 지을 예정입니다. 단순히 작은 분원이 아니라,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만들 겁니다."
'복합엔터 공간?'
"분원 건물에는 쇼핑센터, 여가 체육시설, 용산 IMAX급 상영관도 들일 겁니다. 규모는 작지만 대도시만이 가지는 장점을 압축해서 집어넣을 예정입니다."
젊은 창업인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교육 지원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최대한 서울 눈높이에 맞출 예정입니다."
하수영은 잠시 말을 끊고, 천여 명이 넘는 창업인들을 둘러보았다.
열정이 끓는 눈빛들을 차분히 훑어보며, 하수영은 손을 내밀었다.
"나를 따라 울릉도 양식장 프로젝트에 한 번 뛰어들어보실 분?"
***
520명이 그 자리에서 바로 울릉도로 가겠다고 대답을 했다.
나머지도 모두 거절을 한 것은 아니었다.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보류한 것.
"괜찮습니다.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 삽도 안 떴습니다."
하지만 선발대를 위한 포상이 없다면, 경쟁이 불타오를 수 없는 법.
하수영은 그 부분을 능숙하게 파고들었다.
설명회가 끝난 후, 520명을 따로 불러모았다.
"여러분들은 수영사채 대출에 더해서, 제가 따로 인당 3억씩을 빌려드리겠습니다. 이자?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그냥 넣어둬요, 넣어둬."
무이자로 3억을 받는다면 좋은 일.
520명의 얼굴에 기쁜 빛이 흘렀다.
"상환? 나중에 사업 잘돼서 하고 싶을 때 하세요. '울릉도 창업에 쓰셨다면' 제 쪽에서 갚으라고 먼저 요구하는 일은 없습니다. 분명하게 약속드리죠."
"예? 상환 요구를 안 하신다고요?"
"그럼요. 3억 받아내려고 신경 쓸 바에는 다른 데 신경 쓰는 게 더 돈 버는 일입니다. 그냥 돈 잃은 셈칠 겁니다."
"……?"
패기 넘치는 대답.
젊은 창업인들은 하수영의 약속이 고마우면서, 한편으로는 혼란스러웠다.
'이자를 안 받는다고?'
'알아서 갚을 때까지 요구 안 한다고?'
'잃는 셈 치겠다고?'
'빌려주는 거 맞아?'
'이건 그냥 증여 아니야?'
"수협에서 수영사채로 대환대출로 받으신 돈도 있고, 또 제가 3억을 준, 아니, 빌려준 것도 있고."
'진짜 증여인 거야? 겉으로만 빌려 주는 척 하시는 거?'
"제가 준비하는 울릉도 양식투자기 금에서 나오는 지원까지 합치면, 내 륙이나 제주도에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더 크게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젊은 창업인들의 눈빛에 일제히 야망이 깃들었다.
그들이 울릉도를 선택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울릉도 아닌 곳에서 하는 것보다는 더 크게 개업할 수 있다는 점.
"자, 켠 김에 왕까지 가라고 했죠? 지금 바로 슛 들어갑니다."
바로 금전소비대차 계약서가 준비되었다.
[갑은 울릉도에서 양식창업을 한 을의 상환 연장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돈을 빌려준 갑을 위한 독소조항.
그것을 받아든 520명은 얼떨떨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마자 3억이 곧바로 입금되었다.
"자, 이제 울릉도 양식업장주가 되셨습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땐 아닙니다."
***
소문은 이북의 로켓 탄도보다 빠르다.
채권의 탈을 덮어쓴 증여 3억은 젊은 창업인들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그러자 마음을 못 정하고 있던 이들이 부랴부랴 울릉도로 옮기겠다고 요청을 해왔다.
"좋습니다. 2억 5,000만 원을 지원해드리죠."
다른 조건은 모두 같았지만, 금액이 줄어들었다.
후발대보다 선발대를 좀 더 우대한다는 취지.
후발대는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총 750명이 울릉도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나머지는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부터 내륙에서 양식업을 하기로 결정한 이들.
더 크게 사업을 할 기회를 포기했지만, 그들은 아쉬움을 접었다.
[경축! 750명의 젊은 양식업자들, 울릉도로 이사오기로 결정하다!]
[단숨에 8% 가까운 인구 증가!]
[청담수영그룹, 울릉도에 튼튼하고 건강한 젊은 피를 대거 수혈하다!]
[하수영 어민 회장, 그는 울릉도의 수호신인가?]
[최소 1조 원 이상의 양식산업 투자 확정!]
울릉도는 다시 한번 경사 분위기가 온 섬을 뒤덮었다.
울릉군민일보는 프리덤이 작성한 기사를 쉴 새 없이 쏟아냈다.
[전 세계가 지나친 남획으로 인해 어획량이 바닥을 친 지금, 곡물사료만을 이용한 양식업은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거대한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물고기가 없으니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인간은 누구나 물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전부 먹을 수 있는 천부식권이 있는 법.]
[울릉도 양식장은 국내 시장만을 조준하지 않는다. 식탁에 물고기가 없어 눈물을 흘리는 전 세계 소비자들을 위한 희망의 등대로 거듭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수영그룹, 퀸 스텔리온 5기 추가 발주! 오직 울릉도민을 위한 수송수단으로 활용할 예정!]
[동해시와 서울을 잇는 고속도로 민자사업, 수영그룹이 나서나? 양식 어들을 서울까지 단숨에 수송해 줄 대동맥이 될 것.]
[고속도로 폭설대란? 수영그룹은 이미 방법을 찾았다. 늘 그랬듯이.]
[충격! 개인 농업기업의 이 거대한 투자에서도 울릉군수와 군의회는 여태껏 아무런 감사 표시도 하지 않았다!]
-마스터. 울릉군수가 연락이 왔습니다. 시키신 대로 적당히 거절했습니다.
"저번에 농업소득에 과세해서 어민들 지원해야 한다고 떠들었던 거. 그거 나 저격한 거잖아?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게 더 웃기네."
-총선이 이제 얼마 안 남았습니다.
창업자들이 주민등록을 마쳤으니, 다음 전국총선에 모두 출마할 수 있습니다.
"도의원과 국회의원 빼고는 다 가져올 수 있겠구나."
-그 자리들은 지역구가 포항 남구와 묶여 있으니까요. 그래도 군수와 군의회는 모두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어차피 독립된 섬이니까 군수, 군의회만 먹으면 그만이지."
양식투자를 편하게 하려면 교통정리가 필요하고, 그럴 거면 군수와 군의회를 전부 차지하는 게 낫다.
섬 유권자들은 돈다발을 들고 찾아온 전입민들을 거부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