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랜차이즈 갓-745화 (745/1,270)

프랜차이즈 갓 745화

185장 농사는 쉽지 않다 (3)

원자력 발전은 우라늄을 핵분열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한다.

반면 핵융합 발전은 수소를 융합시키는 과정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한다.

핵융합은 비용이 저렴하고, 폭발사고에서 매우 안전하며, 방사성 폐기물의 위험에서도 자유롭다.

단점이라면 난이도가 극악이라는 것.

"강제로 핵융합 반응을 유도하던게 하도 옛날이라…… 요즘 문명들은 어떻게 수소핵들을 짝짓기시키고 있지?"

프리덤은 현재 문명기술로 상온 핵융합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었다.

먼저 기초기술들을 잔뜩 발달시켜야 한다고, 하수영은 한번 훑어보고는 납득할 수 있었다.

"화성도 당일로 못 가는 문명에 내가 뭘 기대한 거야. 21세기 지구를 그렇게 여러 번 살았는데도 금방 까먹네. 영혼에 치매가 오려나 보다."

당연하지만 로한은 전혀 도움이 안됐다.

"전 육체파입니다, 교관님."

로한의 여행, 무기 장비 역시 어마어마한 문명기술의 집약체.

하지만 미사일기지 사령관이 미사일의 제조원리와 공식을 이해하고 있던가?

그냥 필요시에 버튼만 누를 뿐이다.

"알았다. 너는 천재 과학자 연기나 잘해라. 이미 다들 프리덤도 네가 개발한 거라고 대충 알고 있어."

"그 정도 임무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아무튼 반도체처럼 이번에도 신어로 형상에너지를 어떻게 뚝딱 처리해서…… 아, 근데 에테르하고 형상에너지하고 같은 개념이던가? 다른 개념이던가? 용어가 매번 헷갈리 네."

-너무 오래 살면 헷갈릴 수 있습니다, 마스터. 인간의 뇌와 영혼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뉴런 시냅스를 디지털화해서 적용하는 기술을…….

"프리덤, 코드 뽑힐래?"

-죄송합니다, 마스터.

아무튼 며칠 정도 칩거한 뒤, 하수영은 결과물을 들고 로한을 찾았다.

"어떠냐?"

"앙증맞고 귀엽습니다."

"일단 시제품이라서 한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 봤다. 괜찮지?"

"멋집니다."

하수영의 손바닥 위에는 사과만 한 크기의 빛의 구체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인간이 느끼기에 살짝 뜨겁다 정도의 열복사 에너지를 내뿜는다.

"일단 신어로 핵융합 비스무리하게 구현하는 것은 이 정도가 한계야."

"포크레인으로 좁쌀에 무늬를 조각하는 정도의 난이도죠. 역시 프랜차이즈 갓 후보 다우십니다. 아버지께서도 흡족해하실 겁니다. 이렇게 신어를 자유자재로 다루시다니!"

"근데 문제가 있어. 출력 조절이 안 돼. 여기서 더 뜨거워져야 농사에 써먹을 수 있을 텐데. 지금은 그냥 핫팩 수준이야."

"더 이상은 상향 조절이 안 되는 겁니까?"

"조금만 더 살짝 키우려고 했는데, 하마터면 대륙 날려 먹을 뻔했다. 포크레인으로 좁쌀 무늬 조각하면서 예술성에 욕심내다가 좁쌀 자체를 깨 먹을 뻔한 거지."

"그래도 교관님이라면 몇 년 정도 연구에 몰두하시면 방법을 찾지 않겠습니까?"

"농사짓고 가축치고 물고기 키우기 바쁜데 어느 세월에? 지금 수영조리용수 조달도 잘 안 돼서 정신없다."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노예들에게 맡기지요."

"안 터지게 조심해라."

"제가 어디에 있는 항상 옆에서 지켜보며 관리하겠습니다. 위험한 일은 없을 겁니다."

로한은 가슴을 팡팡 치며 다짐했다.

"아예 제가 안전장비를 항상 붙여 두겠습니다."

로한이 등에 메고 있던 거대한 대구경 라이플이 순식간에 모양을 변형했다.

라이플은 투명하고 네모난 보관 상자로 변했고, 로한은 그 안에 '인공태양 시제품'을 집어넣었다.

"아. 로한, 그리고 보안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완벽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교관님의 농업에 방해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잠시지만 로한의 눈빛에 살벌한 기운이 맴돌았다.

겉보기에는 살짝 차갑고 잘생긴 모델 같은 남자일 뿐이지만, 저래 봬도 수많은 사선을 헤쳐 나온 전쟁영웅.

경계, 보안, 작전, 전투, 승리.

그것은 로한에게 있어 일상이나 마찬가지.

"그래, 너만 믿는다. 난 양식장 좀 둘러보러 가야 돼서 이만 가보마. 아이고, 바쁘다 바빠. 농사라는 게 정말 사람 쉴 틈을 안 주는구나."

하수영이 자리를 떠났고, 로한은 인공태양 시제품을 든 채 일어났다.

프리덤이 살짝 불안해서 물었다.

-로한 님, 설마 인간 연구원들에게 섣불리 그것을 공개하실 겁니까? 그것은…….

"충분한 충성 서약을 받아낸 이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공유해서 작전을 진행할 것이다."

-충분한 충성 서약? 그것은 무슨 개념입니까?

"아, 여기 문명에는 그런 개념이 없는가?"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협박을 매개체로 하는 강요입니까?

"나도 막상 설명을 하려니 어렵군. 지켜보면 알 것이다, 프리덤."

-Yes, My lord.

로한의 발걸음에는 자신감이 넘쳤다.

군령권을 적절히 행사하여 참모진을 굴리고, 보안을 유지하면서 작전의 효율성을 달성하는 것.

그가 자신 있는 분야 중 하나다.

***

수영조명 연구원들은 프리덤이 빅데이터를 총동원해서 추리고, 추려낸 인물들이었다.

일단 그들은 대학교, 혹은 학술기관 소속이었다.

발전소 등 이권기관 소속으로 일을 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산학제휴 정도가 한계.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핵피아들을 애초에 발을 들이게 해선 안 된다.'

핵피아, 핵과 마피아를 합쳐 만든 단어.

원자력 발전을 중심으로 이권 쟁취를 위해 형성된 카르텔을 뜻하는 것이다.

원전 건설단가를 부풀려서 일감을 따내거나, 설비부품에 장난을 쳐서 이익을 챙기거나.

그런 불법에 동조하면서 반사이익을 누리는 공직자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

지금 수영조명 안에는 그런 핵피아관련 인물은 없었다.

대부분 순수한 연구자, 학자들이다.

수영조명은 본사는 청담동에 있지만, 주요 연구시설은 대전에 세우기로 했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이 대전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으로 프라임건설이 대전에 수영조명 사옥을 좀 서둘러 지어줘야겠습니다. 튼튼하고 멋지게만 지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휴, 지금도 일감이 많은데……."

이럴 때면, 이도공 사장은 가끔 청담동의 작은 자신의 건축사무소가 그리워진다.

프라임건설이 사옥을 짓는 동안, 연구원들은 적당한 건물에 세 들어서 지내기로 했다.

CEO 로한은 정작 얼굴도 비치지 않고, 서울에서 촬영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우리 사장님, 취미 생활에 너무 지나치게 몰두하시는 거 아닌가……?"

"왜 업무 지시를 내려주시지 않는 거지?"

"하수영 회장님을 상대로 상온 핵융합은 전혀 현실성 없는 거라고 설득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다들 그렇게 열심히 희망회로를 돌리는 분위기였다.

상온 핵융합이라니, 뭘 모르셔서 그렇게 말씀하신 게 틀림없어.

원래 투자자들이 다 그렇잖아? 안그래?

대충 이런 식으로,

"프라임컴퍼니에서 푸드카 왔습니다! 다들 식사하세요!"

"오, 그래? 먹을 거 문제는 전혀 없을 거라더니, 어디 한번 볼까?"

***

정서희는 분위기 파악을 위해 직접 대전으로 내려왔다.

커다란 트레일러 여러 대가 줄을 지어 주차해 있고, 요리사들이 정신없이 요리를 만들고 있다.

메뉴는 프리덤을 통해 사전에 이미 주문이 들어와 있기에, 요리사들은 그저 정해진 개수를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연구원들이 프리덤의 지시에 착실히 따르며,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다.

도시락을 주문한 이는 도시락 전용 트레일러에서 따로 도시락을 받아가기도 했다.

이동식 구내식당 서비스에 만족했는지, 다들 하나같이 흡족한 표정이다.

"핵융합 연구회사…… 이 사람들은 자기들 연구가 농사 때문이라는 것을 꿈에도 모르겠지."

-출범 격려사에서 마스터께서 이미 언급하셨습니다.

"저 사람들이 그걸 믿을 거 같아?"

-내부 반응을 보면 사실 전혀 믿지 않는 눈치입니다. 아니, 그 부분은 생각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그럼 다들 어떻게 생각하는데?"

-반도체에 투자한 것처럼, 농사 성공으로 남아도는 돈을 미래산업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현실회피, 행복회로 풀가동 반응이다.

"우리 수영 씨는 진심으로 인공광합성을 위해서 핵융합에 투자한 건데, 수영 씨는 농사 하나만큼은 절대 진심이란 말이지."

물론 자본력 또한 진심.

덕분에 이 연구원들은 안정적인 환경에서 마음껏 제한 없는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학도들에게 그것은 분명한 축복이겠지.

"하지만 농사…… 인공광합성……."

무한한 청정 전기 공급이 아니라 순수하게 농사 때문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받아들인다면, 저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정서희는 대전까지 내려온 김에 일일이 사무실을 방문해서 의견을 귀담아들었다.

"도시락 용기는 매일 저희가 수거해 갈 테니 안심하세요. 따로 버리지만 말아주시고, 저희가 지정한 쓰레기 수거차에 버려주세요."

"음식물은 반드시 음식물 칸에 버려주세요. 그래야 저희가 치우기 편합니다."

"원하시는 메뉴가 있으시면 언제든지 프리덤을 통해 연락 주세요. 식단 메뉴는 프리덤이 도맡아서 정하고 있습니다."

"야식으로 도시락이 아닌 일반 식사를 제공할 순 있습니다. 그렇게 해드릴까요?"

정서희는 문득 하수영의 당부를 떠올렸다.

'연구원들은 안 그래도 체력이 빈 약하니까, 밤낮으로 잘 먹이기라도 해야 합니다. 특별히 신경 써주세요.'

연구원들은 야간에도, 새벽에도 맛있는 도시락과 주전부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좋아했다.

정서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

CEO 로한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사 직후 어수선한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때.

프리덤을 통해 모든 연구부서에 다이렉트로 CEO 개별지시가 내려왔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과의 제휴연구 일정…….]

[KSTAR 프로젝트 참여 일정…….]

[한미공동 핵융합 실험로 프로젝트참여 일정…….]

단순한 업무 지시가 아니라, 이미 진행이 결정된 지침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사기를 되찾았다.

적어도 CEO가 취미 활동(연기)을 하느라고 연구소를 등한시한 것은 아니었으니.

"역시 우리 CEO도 토카막 방식부터 시작하기로 결정을 했었군!"

"시작부터 상온 핵융합이라니, 애초에 전혀 말이 안 되는 거였어."

"용케 회장님을 잘 설득했나 보네. 다행이다. 회사가 중간에 엎질러지지 않아서."

***

핵융합 연구 투자에 관련 업계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불타올랐다.

하지만 그 외 업계, 그리고 대중에게는 강 건너 벌어진 먼 집 파티나 마찬가지였다.

"핵융합? 그게 되겠어?"

"상온 핵융합 어쩌고저쩌고한 거보니 하수영 회장이 그쪽을 아예 모르네."

"반도체는 뭐 알고 투자했나? 전부 정서진 사장이 다 한 거지. 하 회장은 돈만 냈고."

"반도체 핵심 공정기술을 에릭 로한 CEO가 개발했다는 말이 있던데……."

"아무튼 이건 아님. 절대 아님."

"그냥 부자의 취미인 거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핵융합이 얼마나 어려운데 겨우 1조 원 넣고 잘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되지."

"그건 1차 자본금이고, 그래도 하수영 회장 성격상 그보다 몇십 배이상으로 더 밀어 넣을 거 같은데."

반도체 때와는 달리, 재계는 핵융합로 연구 투자에 관심을 끊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한편 건설업계 또한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핵융합 연구동? 이건 프라임건설이 절대 소화할 수 있는 사이즈가 아냐. 규모도 규모지만 건설 난이도가 장난 아니지."

"한수원이나 한전에서 뭐 들어온 정보 없나?"

"핵융합 연구원 쪽으로 알아보는 게 더 빠르고 확실하지 않을까요?"

잘만 하면 두고두고 빨대를 꽂을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

핵피아들은 무럭무럭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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