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43화
185장 농사는 쉽지 않다 (1)
-폐하, 농사가 쉬워 보이세요?
-보니까 다들 대충 놀면서 해도 농산물이 쑥쑥 나오고 그러던데?
-농사가 얼마나 힘든 끝판왕인지 우리 폐하가 정녕 하나도 모르시는구나. 그렇구나.
-아니, 황비. 말이 너무 심하지 않소?
-그건 제국 농무부 사람들이 농사일에 고이고 고여서 그런 거고요. 폐하 같은 초보가 그 사람들만큼 하려면…… 일단 512클래스부터 마스터하고 이야기할까요?
-겨우 농사 하나 짓자고 512클래스나 마스터해야 되나?
-평생 손에 흙 안 묻히신 분이 제국 농무부 사람들 반의 반이라도 따라가려면 마법으로라도 커버를 해야지요. 안 그래요?
-그래도 512클래스라니. 이제 겨우 128 클래스인데.
-충분히 발달된 마법은 농사와 구분할 수 없답니다. 폐하에게는 그 정도 난이도예요. 농사라는 게.
하수영은 머릿속을 스치는 전생의 어느 기억에 잠시 잠겨 있었다.
'그때는 네가 무슨 농사냐, 잘하는 정복전쟁이나 하라는 마누라 잔소리인 줄 알았지.'
황비도 몰랐을 것이다.
생을 넘고 시공간을 초월한 지금, 자신이 그 말을 진지하게 되새기고 있으리라는 것을.
전성렬의 얼굴은 이미 흙빛이 되어 있었다.
"상온 핵융합…… 내가 과학은 잘 모르지만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이야기 같은데?"
"그냥 1억 도 이상에서 일으키는 핵융합을 상온에서도 일으키면 그게 상온 핵융합이죠. 별거 없습니다."
"그게 어째서 별거 없다는 건가?
설명 들으니까 더 무시무시한데?"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닐 거예요.
콜럼버스의 달걀이 그랬대잖습니까."
"아무튼! 그렇게 핵융, 아니, 상온 핵융합을 일으켜서 고작 인공광합성을 하겠다고? 인공조명으로도 충분히 가능한데?"
"지금의 인공조명 기술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언젠가 결국 한계가 올겁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미리미리 인공광합성 세팅을 해놔야 해요."
정서희가 끼어들었다.
"나중에 어디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 농장 지을 생각이세요?"
"어떻게 알았어요? 일단 연습 겸 심해 농장을 한 번 지어볼 생각인데."
"연습 겸…… 이라고 하셨나요?"
"이동식 심해 농장이 성공하면, 그 때부터는 어떤 극한 환경에서도 농사가 가능할 겁니다."
"그럴 거면 그냥 우주에 올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
"계란은 한 바구니에 나눠 담는 게 아닙니다. 식량 같은 중요한 것은 더욱 그렇죠. 공중, 우주, 심해, 이렇게 최대한 분산을 해놔야 하는 겁니다."
"수영 씨 죽는 날까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러니 최대한 일찍부터 투자를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간단하게 상온 핵융합이라고 하셨으니, 그 다음 스텝도 당연히 있겠네요?"
"물론이죠. 궤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궤도 수송, 무선로 공중수송방식, 완전한 무인행성 농사식민지 건설을 위한……."
이어지는 하수영의 원대한 농사 드림을 들으며, 전성렬과 정서희는 점점 머리가 아파왔다.
전성렬이 일침을 날리는 심정으로 말했다.
"화성 농장 계획은 왜 빠져 있는 건가?"
"아, 그건 중간 스텝이라서 굳이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을 했지요."
일침은 그렇게 쉽게 부서졌다.
"핵융합이야 그렇다 치고, 군수는 왜요? 아, 강도들한테서 농작물을 지키려고요?"
"가진 건 힘밖에 없는 초강대국들이 탐스러운 과실들을 뺏으려고 쳐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내 농장을 지킬 힘은 내가 갖춰야죠."
"……."
"……."
둘은 잠시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하수영이 문어발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진작 갖고 있었다.
여러 번 설득을 하기도 했었고, 그간 자신들이 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는 간접 승낙으로 만족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드디어 나서주겠다는 말은 반가웠다.
'그런데…….'
'이렇게 극단적일 필요가 있는 거야?'
이 사람은 중간이라는 게 없는 것일까?
전성렬이 떨떠름해서 말했다.
"아무튼 농사에 필요한 영역에 한 해서라고는 하지만, 자네가 레드오션 사업에도 뛰어든다고 하니까 동업자로서 그저 반가울 뿐일세."
"저도요. 뭐든 첫걸음이 중요하죠. 그래도…… 핵융합 투자만 딸랑 하고 말 건 아니죠? 기왕이면 좀 더 쉬운 다른 것들도 병행해서 시작을 하는 게 어때요?"
"좀 더 쉬운 다른 것들? 궤도 엘리베이터 착공을 하려면 일단 소재공학부터 전부 갈아엎어야 하는 데……."
"그보다 좀 더 쉬운 것은 없을까요? 예를 들면 반도체라던가 말이에요."
"음, 파운드리 사업은 이미 정서진 사장님이 잘하고 계시는데."
"파운드리를 넘어서 설계까지 진출하는 것은요? 핵융합보다는 훨씬 쉬울 거 같은데."
"그건 윈텔이나 ADM, 마이크론같은 기업들이 알아서 해주고 있으니까, 저는 소외받고 있는 영역부터 가는 게 효율적일 거 같군요."
핵융합 연구가 소외받고 있었나?
전성렬과 정서희는 하수영의 결심이 단단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했다.
"잘 될 수 있을까요?"
"잘 되게 해야지요. 서희 씨, 혹시 주변에 핵융합 연구하는 분들 없나요?"
"없는데요. 왜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하신 거예요?"
"아쉽네요. 노예들이 많이 필요할 거 같은데. 할 수 없지. 우리 한국대에도 한 번 문의해 봐야겠어요."
하수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전성렬이 얼른 물었다.
"정말 할 거 같지?"
"안 할 거였으면 애초에 말도 안꺼냈을 거예요. 이미 예산까지 머릿속에 다 잡아놓은 거 같은데요."
"얼마나 쓰려고 할까?"
"수영 씨 스케일이면…… 못해도 50조 원까지는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요?"
"50조 원이라……."
전성렬은 50조 원을 식품사업에 쏟아부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느라고 눈알이 팽글팽글 돌았다.
"성공할 거 같아? 하 사장은 핵융합하고는 전혀 상관없잖아?"
"에릭 로한, 그분이 얼마나 대단하느냐에 달린 거 같은데요."
"프리덤 개발자라는 것은 들었어.
하지만 핵융합은 전혀 분야가 다르지 않나? 아니면 천재들은 분야에 상관없이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건가?"
"만약 프리덤 엔터프라이즈 버전이 강인공지능이라면, 인공지능을 활용한 연구에서 시간과 효율을 훌쩍 앞 당길 수 있을 테니…… 어머."
정서희는 가만히 생각하다가 화들짝 놀랐다.
'이거 정말…… 진짜로 되는 거 아니야?'
***
하수영은 시공간을 넘어 우주에서 온 전 부하, 에릭 로한한테 연락했다.
"어디냐?"
-촬영 중입니다, 교관님.
"으응? 촬영? 무슨 촬영?"
맨 프롬 콜롬비아 촬영은 진작 끝났고, 이미 한창 상영 중인데?
-새 영화 시작했습니다. 준조연입니다. 장효주 님이 소개해 주셨습니다.
"잘 적응하고 있네. 좋은 일이야."
스스로 밥값을 하는 게 기특해서 하수영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에릭, 네가 할 일이 있다."
본명은 로한, 에릭은 어디까지나 하수영이 붙여준 이름.
하지만 에릭 로한은 고분고분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 핵융합 연구를 시작할 건데, 네가 책임자 좀 맡아줘야겠다."
-저는 몸 쓰는 게 특기입니다, 교관님.
"알지. 이번에도 그냥 얼굴마담만 해, 신비한 천재 과학자 행세하는 게 어렵지도 않잖아?"
-알겠습니다.
프리덤, 입자집합명령 장치 개발자.
여기에 상온 핵융합 개발자 타이틀 하나가 더 추가되는 게 뭐가 대수겠는가.
"자, 숨어서 몰래 관음하고 있을 전 세계 첩보원들한테 던져줄 뼈다귀는 대충 준비 됐고."
물이 필요 없는 반도체 공정 기술은 전 세계 스파이들에게 탐스러운 먹잇감이었다.
하수영은 그들의 첩보망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그냥 물주로만 인식하기 때문이었다.
***
'상온 핵융합을 어떻게 하더라? 하도 옛날 기술이라서 생각이 안 나네.'
하수영은 기억의 창고를 힘들게 뒤적거렸다.
분명 쓸 만한 '기술실록'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너무 오래 살았는지 머리가 좀 굳은 거 같다.
'맨날 압축한 초은하단 묶은 엔진만 쓰다가 핵융합 엔진 만들려니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
조선시대로 회귀한 공학 교수가 맨바닥에서 당대에 현대 문물을 재현하는 난이도라고 할 수 있을까?
뭘 좀 만들려고 할 때마다 현대의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해지니, 결국 무한의 도돌이표를 찍게 되는 좌의 궤도.
"일단 이 시대에 뭐가 있는지부터 좀 알아봐야겠다. 프리덤."
-네, 마스터. 바로 조사하겠습니다.
그리고 프리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론을 내놓았다.
-이 시대의 기술력만으로 상온 핵융합 기술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기초제반기술을 먼저 대폭 끌어올려야 합니다.
"반도체 때도 그랬지. 그래서 할 수 없이 신어로 형상 에너지 어찌어찌 엮어서 대충 재현했잖아."
-이번에도 그렇게 하셔야 할 거 같습니다. 아니면 30년 정도 내다보고 길게 기초기술을 축적해 나가야 합니다. 돈이 많이 듭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년, 내후년에 인공광합성이 필요할지도 모르는데…… 그냥 짧고 빠르게 가야겠다."
-예, 그럼 그 방향으로 준비하겠습니다. 회사 이름은 뭐라고 할까요?
"수영조명이라고 하면 되겠다."
-수영조명, 알겠습니다.
농사에 필요한 인공광합성을 위한 상온 핵융합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
수영조명이라는 이름이 가장 적절할 거 같다.
"농사 어려워. 참 어려워."
까르르 비웃는 황비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떠도는 거 같다.
-거봐요. 제가 금방 때려치우실 줄 알았어요.
***
총자본금 10조 원 이상.
예치금의 80%는 자기 돈이어야 할 것.
소위 '사채은행' 설립 충족을 위한 주요 요건.
이 말도 안 되는 제약 덕분에, 수영사채는 금산분리법에서 오히려 자유로운 몸이었다.
그래서 '수영조명은 수영사채에서 자본금 대출을 받아 설립될 수 있었다.
그 자본금은 다시 수영사채에 기탁을 하고, 법인 계좌를 수영사채에 설립하고……
돈이 결국 같은 집안에서 계속 돌고 도는 셈이다.
수영그룹에 새로운 계열사가 생겼다는 사실에, 재계는 기웃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수영조명? 뭐 하는 회사지?"
"조명 기구 만드는 회사인가?"
"근데 수영그룹이 그런 사업을 왜 해? 농사나 식품 관련 사업도 아닌데……."
"아! 혹시 일조량이 적은 날에도 작물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게 인공조명을 개발하려는 건가?"
"설득력이 있어. 과연, 그게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로군."
그리고 재계는 설립 자본금의 규모를 보고 기절할 뻔했다.
"1조 원?"
"아니, 무슨 LED 조명 만드는 회사 자본금이 1조 원이나 돼?"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유한법인으로 설립된 회사는 지분소유자가 하수영 1인이었다.
그리고 CEO에는 생소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에릭 로한? 이게 누구지?"
"첨 듣는 이름인데? 뭐 하는 친구야?"
정보력이 늦는 기업들은 에릭 로한의 신분을 열심히 파고들었다.
반면 정보력이 빠른 서해그룹 같은 기업들은 드디어 때가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에릭 로한, 프리덤의 개발자로 추정되며 서진파운드리의 반도체 공정기술에도 핵심적인 기여를 한 과학자로 생각됩니다."
"수영그룹과 연계를 맺고 있는 외국 기업들도 에릭 로한이라는 이름을 진작부터 주목해 왔습니다."
"여기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본 임원들은 이를 바드득 갈 정도로 분해했다.
"이게 세기의 천재 과학자라고? 배우 아니야?"
"배우 맞습니다. 요즘 취미로 배우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합니다."
"……대체 못 가진 게 뭐야, 이 친구?"
"전무님, 에릭 로한 이 친구가 우리나라 주요 공대 핵물리학과를 순행하면서 연구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핵물리학과? 그게 조명 회사에 왜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