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41화
184장 작은 변화의 바람 (4)
제이콥은 노르웨이 양식업자였다.
가문 대대로 양식업을 이어온 그는 근방에서는 알아주는 대형 양식업자였다.
어느 날 그는 TV에서 해양 어획량이 절망적으로까지 감소했다는 뉴스를 봤다.
뉴스를 보고 아내가 물었다.
"어머, 바다에 물고기가 없다니. 그럼 사람들이 앞으로 양식어를 찾을 수밖에 없겠네요? 양식장을 더 늘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의 말에, 제 이콥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당신, 내가 우리 양식장 물고기들한테 뭘 먹이는지 알아?"
"호르반 아저씨네가 가져다주는 사료 먹이고 있잖아요?"
"그 사료는 뭘로 만들 거 같은데?"
"글쎄요, 곡물? 옥수수나 대두 같은 거……."
"물고기야, 물고기."
"네?"
"바다에서 잡은 잡어들을 갈아서 만드는 거라고, 우린 배합사료 안써. 효율이 낮아서 생사료만 쓴다고."
그제야 아내는 남편의 심각한 표정이 무엇 때문인지 알아차렸다.
"그럼 바닷물고기가 말라 버리면……."
"우리 양식장 연어들도 굶어 죽는 거야."
"그, 그럼 다른 사료를 먹이면 되지 않아요?"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라야 할 놈 들한테 땅에서 난 것을 먹이면 소화가 잘될 거 같애? 일단 자리는 속도가 느려. 살도 잘 안 붙고."
"그리고요?"
"소화불량으로 탈이 나고, 약해져서 전염병에도 취약해지지. 옆집 돌프엄 씨가 작년에 대량폐사 나왔던 것도 배합사료로 한 번 싹 갈아보자고 시도했다가 망한 거 아니야."
이른바 사료 효율이 떨어진다고 말을 한다.
물론 일반인들은 그냥 물고기가 자라는 속도가 좀 더딘가 보다, 하고 가볍게 생각을 하지만…….
"적당히 섞여 먹이면 괜찮지. 적응기간도 천천히 가지고, 그런데 어릴 때부터 무턱대고 먹일 수는 없다고."
"그럼 어떡해요?"
"젠장, 나라도 배 타고 나가서 잡어들을 잡아 와야 하나 싶은데."
아닌 게 아니라, 양식업계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선단을 꾸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가 직접 바다로 나가서 양식어들에게 먹일 물고기를 잡아 옵시다!"
"그럽시다!"
양식업자들은 일단 돈이 많았고, 나라를 먹여 살리는 산업이다 보니 정부에서도 지원을 듬뿍 해주었다.
놀고 있는 대형 어선들을 빌려서 그들은 직접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텅 빈 그물만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절망했다.
"이럴 수가……."
"10년 전만 해도 이 해역에서는 그물만 던졌다 하면 물고기들이 가득가득 올라왔었는데."
"말도 안 돼. 우리가 바다를 떠나 양식장에 있었던 동안, 도대체 저들이 바다에 무슨 짓을 한 거지?"
인부를 고용해서 바다로 나온 양식 업자들은 텅 빈 그물에 절망하며, 어업자들에게 모든 원망을 돌렸다.
"어부놈들이 뒤도 안 돌아보고 평펑 잡아 올리기만 하니 바다가 깡그리 말라 버린 거 아니야!"
"지속 가능한 어업도 몰라, 지속가능한 어업!"
"소비자들한테 물고기 팔아먹을 생각밖에 없는 어부놈들 같으니!"
제이콥은 그 광경을 보며 조용히 쓴웃음만 삼켰다.
양식업자들은 애써 소비자들 탓은 않고, 어부에게만 그 탓을 돌리고 있었다.
일반 소비자들은 그들에게도 고객이었으니, 하지만 저들이 지금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사실이 있었다.
'우리야말로 어부들의 가장 큰 고객인데.'
양식어 1㎏을 만드는 데에는, 생사료 수십 ㎏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 세계 식탁에 오르는 물고기의 절반 이상은 양식어.
즉 전 세계 양식업자들이야말로, 어부들의 가장 큰 고객인 셈.
그들은 텅 빈 선단을 거느리고, 힘없이 항구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료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미 만들어진 생사료 재고분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양식업자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다.
생사료 보관창고를 털어서 양식업자한테 웃돈을 받고 파는 도둑이 나왔다.
심지어 총격전이 벌어져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제이콥은 나날이 떨어져 가는 사료재고분을 보며, 결단을 내릴 때가 왔음을 느꼈다.
"덤핑을 쳐서라도 지금 정리해야 돼. 저러다가 집단폐사하면 큰일이야."
"제이콥, 자네도 덤핑 치려고? 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데."
"우리 둘이 그 생각을 했으면, 이미 다른 업자들도 비슷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봐. 생사료제조공장은 모두 멈췄고, 언제 가동할지 기약이 없어."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이들이 많으면 덤핑도 쉽지 않겠는데."
"서둘러야겠어."
덤핑 경쟁자가 많으면 파는 싸게 떨이처분 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혀 예상과 달랐다.
덜 키운 양식어들도, 그저 내놓기만 하면 무섭게 팔려 나갔다.
팔겠다고 하자마자 유통업자들이 아예 냉동트럭을 여러 대를 끌고 와서 곧바로 물고기들을 건져갔다.
"지금 수출업자들이고 소매업자들이고 물고기 내놓으라고 다들 난리라니까요. 국민들이 생선을 못 먹고 있어요."
"수출이요? 이거 수출 못 합니다. 지금 노르웨이 정부에서 양식어 수출금지 때린 거 모르십니까?"
"당장 국민들 식탁부터 구원하는 게 우선입니다. 지금 수출이고 뭐고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전부 냉동처리 해서 장기보관하고 천천히 내수시장에 풀 겁니다."
거액에 눈이 먼 업자들이 정부의 조치를 어기고, 몰래 밀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밀수를 감시했다.
적발이 된 업자들은 물고기 몰수는 물론, 사업면허를 박탈당했다. 강력한 벌금 조치도 함께였다.
***
"코리아는 양식장이 문제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말을 들은 거 같아."
"코리아? 말도 안 돼. 불량 로켓이나 펑펑 쏴대는 그놈들이 양식업 같은 고급 1차 산업을 어떻게 감당한다고?"
"그 코리아 말고, 18년도 월드컵에서 도이치 놈들을 조별리그 탈락시킨 코리아 말이야."
"뭐야, 코리아가 두 개였어? 로켓 보이 말고 하나가 더 있었단 말이야?"
"우리 노르웨이 물고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나라인데, 양식업자가 돼서 그것도 모르면 쓰나?"
"도이치 놈들을 2:0으로 무너뜨린 강국이라면 충분히 그런 고급 양식 기술을 갖추고 있을 수 있지."
풍문을 들은 제이콥은 곧바로 사우스 코리아에 관해서 알아봤다.
처음 그는 양식업 규모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양식 톤수가 우리 노르웨이의 10%도 안 되는데? 이런 나라가 양식강국이라고?"
역시 풍문은 풍문일 뿐인가.
그럼에도 혹시 건질 게 없나 싶어서, 그는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계속해서 기사를 훑었다.
"오호, 참치도 양식하고 있어? 대단한데."
참치까지 양식한다면 인정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제이콥은 눈을 부릅떴다.
"뭐? 참치한테 100% 곡물로만 만든 사료를 먹이고 있다고?"
참치는 고등어로 키우는 게 아니었나?
어떻게 그걸 곡물 사료로 키우지?
이건 마치 육식공룡을 풀만 먹여서 키웠다는 수준 아닌가?
"한국에 가봐야겠어."
마침 양식장도 전부 비웠다.
여기 남아 있어 봤자 럼주만 축낼 뿐이다.
제이콥은 곧바로 한국행 티켓을 끊었다.
***
"반갑습니다. 제가 수영농장 주인 하수영입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이 반갑게 맞이 하자, 제이콥은 얼떨떨했다.
이 청년이 정말 주인이라고? 주인의 아들이나 손주가 아니라?
"그런데 노르웨이어가 유창하시군요. 제가 순간 외국이 아니라 옆 지방으로 온 줄 알았습니다."
"옛날에 노르웨이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안 까먹어서 다행이군요."
"이거 참, 통역사를 고용할 필요가 없었나 봅니다."
"만약 우리가 계약을 하게 되면 노르웨이어, 한국어, 영어, 이렇게 세개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니 통역사는 있어야지요."
"그렇군요."
제이콥은 하수영의 안내를 받아 수영농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농장 문이 열리자마자 드러난 웅장한 SF시대 농경사회의 광경.
제이콥은 입을 쩍 벌린 채 한참 동안 그렇게 굳어 있었고, 하수영은 흐뭇해서 지켜봤다.
"제 무인농장이 어떻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런 식으로 농사를 짓는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제 눈으로 직접 보셨군요."
"이 농장에서 어떤 종류의 농산물들을 생산하고 있습니까?"
"전부요."
"…… 전부라고요?"
"네, 생산량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재배 가능한 모든 농산물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주로 생산하는 것은 고급 버섯류, 쌀, 밀, 보리, 옥수수, 콩 같은 것들이지요."
"아니, 이건 코카나무가 아닙니까? 한국에서는 코카나무 재배가 합법입니까?"
"하하, 이건 코카나무가 아닙니다.
잣나무를 코카나무 개량한 품종인데, 겉보기에는 코카나무처럼 생겼지요?"
"아무리 봐도 코카나무인데요?"
"코카인도 검출 안 되고, 유전자 검사에서도 잣나무로 판정이 났습니다. 염려 놓으시지요. 여기 농식품부에서 발급한 인증서도 있습니다."
제이콥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농경을 위해서는 엄청난 면적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수영농장의 규모는 미국 대농지들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하다.
아무리 수천 기의 무인로봇들이 관리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농지가 좁아서 과연 생산량을 충분히 거둘 수 있을까?
"그런데 농장 옆에 웬 산업단지가 있군요. 이러면 농산물의 안전성에 나쁘지 않습니까?"
농장 옆에는 웬 어마어마하게 큰 산업단지가 떡하니 있었다.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 농장을 지었을까?
"아, 산업단지가 아니고 제 곡물창고입니다."
"……네? 곡물창고라고요? 저게요?"
"네, 생산한 곡물들을 잠시 보관해 두는 곳이죠. 구경시켜 드리죠."
그리고 제이콥은 기적을 목격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초대형 창고단지.
저 작은 농장에서 어떻게 이 초대 형 창고단지를 채웠을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곡물포대가 가득가득하게 쌓여 있었다.
"다음은 양식장을 한 번 보시죠."
남쪽 바다에서 제이콥은 또 한 번 기적을 목격했다.
참다랑어들이 자라는 가두리그물.
그 주변으로 무수히 많은, 다양한 어류들이 모여 있는 광경.
양식장 직원들이 어선에 파이프를 싣고 나가서 먹이를 뿌려대자, 물고기들이 미친 듯이 달려들면서 주워 먹는다.
한쪽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물고기들을 직원들이 몰아서 낚아 올리고 있다.
"설마 참치 말고 다른 물고기들은 그물에 가두지 않고 키우는 겁니까?"
"네, 먹이가 풍족하다 보니 물고기들이 도망가지 않네요. 아, 생선치기 보더콜리도 한 마리 키우고 있어서 관리가 수월합니다."
"생선치기 보더콜리……?"
그 순간, 저 멀리서 거대한 참다랑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높이 솟구쳐 올랐다.
생긴 건 참다랑어처럼 생겼는데, 몸집이 아무리 봐도 500kg 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저게 참다랑어라고요? 저렇게 큰데요?"
"요즘 갑자기 살이 너무 많이 꼈더라고요. 한 번 재볼까요?"
-브라우니! 이리 와라!"
하수영이 바다에 대고 외치는 소리에, 제이콥은 잠시 멍멍해졌다.
목청이 크다, 라기보다는 마치 천둥이 주변을 뒤흔드는 거 같다.
그럼에도 고막을 아프게 울리거나하지는 않는다.
거인이 포효를 지른다면 이런 느낌?
신기하게도 그 안정적인 목청에, 제이콥은 기이한 믿음이 생겼다.
브라우니가 어느새 달려왔고, 하수영은 거대한 저울을 가리켰다.
"올라가."
그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브라우니가 저울 위에 올라갔고, 디지털 저울이 숫자를 나타냈다.
"3.21톤. 어휴, 얼마나 돼지처럼 처먹었으면 몇 달 만에 열 배 이상 찌지?"
"……참다랑어는 많이 커야 5, 600kg 정도 아니었습니까? 이 정도면 학술 보고감입니다."
"그만큼 우리 수영농장 사료가 좋다는 거 아니겠어요?"
하수영은 그렇게 말하면서, 거대한 포대를 들어서 입구를 열었다.
브라우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고, 하수영은 그 안에 사료를 콸콸콸 부어 주었다.
제이콥은 분명히 봤다.
포대에 써 있는 '1t'이라는 숫자를.
"농장주님, 그 사료포대 무게가 지금……."
"아, 풀용량이 아니라 쓰고 좀 비어 있던 거라서 가볍네요."
분명히 방금 새로 뜯은 거 같았는데?
제이콥은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뭐지? 수영농장은 대체 정체가 뭐지?'
"자, 이번에는 다른 양식장도 한번 둘러보시죠. 전부 우리 수영농장사료를 쓰는 곳입니다."
제이콥은 통영을 시작으로, 여러 군데 양식장을 전부 둘러보았다.
그곳에서도 하수영이 판, 곡물로 만든 사료만 100% 급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물고기 맛까지 모두 확인한 뒤, 제이콥은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결정했다.
"계약해 주십시오. 계약하고 싶습니다."
"계약서에 적지는 않겠지만, 이것 하나는 기억해 주십시오. 제가 얼마 전 일본 프랜차이즈한테 부당한 일방파기를 당했습니다."
"아! 한국은 일본한테는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사이라는 건 저도 알고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이콥은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었다.
"수영농장의 적은, 저에게도 곧 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