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갓 739화
184장 작은 변화의 바람 (2)
교통사고였다.
사거리를 건너던 중, 화물차가 그대로 차를 받아버린 것이다.
도우야 회장의 장남은 즉사했고, 도우야 회장은 의식불명 상태였다.
긴급상황에서 상무였던 회장의 차남, 도우야 산쿠라가 임시 회장대행을 맡게 되었다.
만약 도우야 히데키 회장의 유고 시, 1순위 후계자였기에 이견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계약 축하주는 다음에 나눠야 할 거 같군요."
분위기를 눈치챈 류이엔 회장이 먼저 술자리를 사양하는 배려를 보였다.
"저는 한국에 온 김에 회사 설립과 공장 부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당분간은 한국에 있을 예정이니, 편할 때 연락 주십시오."
"그렇게 해요, 류이엔 회장님. 저는 도우야 초밥 쪽을 좀 신경 써야 할 듯합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비슷한 처지이다 보니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하수영은 그 자리에서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출국 소식을 듣고 장효주가 전화를 걸었다.
-들었어요. 일본 가신다면서요?
"네, 일본 오토…… 아니, 도우야 초밥 회장이 지금 위급한 상황이랍니다."
-조심히 다녀오세요.
"염려 고맙습니다."
그 뒤로도 전성렬, 정서희 등등이 줄줄이 안부 전화를 걸었다.
도우야 초밥은 수영참치 일본 독점유통권을 쥔 파트너 기업.
북미와 중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한국 매출보다는 월등히 높은 시장이다.
-조선항공 걸프스트림 비즈니스제트기 임대가 가능합니다만, 일반항공편보다 출발 시간이 최소 6시간 이상 늦습니다.
"무조건 가장 빠른 걸로 해야지."
-공항 도착 예상 시간에 맞춰서 티켓 구매하겠습니다.
퍼스트 클래스가 없는, 이코노미좌석만 있는 항공기였다.
장효주가 톡 메시지로 걱정을 전달해왔다.
[이코노미 좌석이요? 우리 수영 씨좁고 답답해서 어떡해요? 아무리 2시간 남짓한 비행이라지만 편히 다녀와야 할 텐데.]
[어차피 퍼스트 클래스나 이코노미나 거기서 거기죠.]
[네?]
[B-747 개인전용기 아니면 그 밑으로 다 똑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공항에 도착한 하수영은 탑승 수속을 마치고 항공기에 올랐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비행기에 들어서자 웃는 얼굴로 인사하던 승무원의 표정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어머, 설마?'
"어디 보자…… 내 자리는 비상구좌석이로군."
-그만큼 마스터가 듬직해 보였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보통 이러면 내가 꼭 비상구를 열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던데."
-사고 상황 발생 가능성 말입니까?
"별 탈이 없었으면 좋겠어."
다행히 하네다 공항에서 거센 바람 때문에 착륙을 1회 더 시도한 것 말고는 큰일이 없었다.
공항에 내려서 비행기 모드를 켜자마자 통신이 연결된 프리덤이 다급히 말했다.
-마스터! 도우야 회장이 사망했습니다!
"아, 이런."
일본 파트너가 유명을 달리했다.
***
하수영은 곧바로 검은 정장을 구입해서 빈소가 차려진 병원을 찾았다.
초밥 재벌답게 장례식장은 크고 화려했으며, 사회 유명 인사들이 보낸 조화들이 가득했다.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조의금을 낸 하수영은 차남인 도우야 산쿠라를 찾았다.
형을 잃고 한나절도 채 안 돼 부친마저 잃었으니, 아마도 제정신이 아닐 것이다.
"깊은 조의를 표합니다. 도우야 히데키 회장님께서는 생전 제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업 파트너이자 벗이었습니다."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도우야 산쿠라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이제 명실공히 도우야 초밥의 새주인.
앞으로 하수영과 함께할 새 일본 파트너.
하수영은 도우야 산쿠라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고는, 장례식장을 나섰다.
-신임 회장 도우야 산쿠라를 낱낱이 조사했지만 자세한 점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도우야 산쿠라는 흔한 SNS 계정 하나도 없습니다.
새 일본 파트너이다 보니, 프리덤은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조사를 했다.
일본 SNS 정보를 뒤지는 정도가 고작이지만,
"내가 관상을 볼 줄 아는 건 아닌데, 얼굴에 재물운이 없다."
-그게 관상을 볼 줄 아는 거 아닙니까?
"재물운 하나만 딱 보이는데 그걸 가지고 무슨 관상이라고. 아무튼 재물운이 없어. 물려받은 것을 까먹을 팔자야."
-새 일본 파트너를 찾아야 할 정도입니까?
"필요 없어. 애초에 일본 시장은 덤이었으니까. 참치 판매도 도우야 회장이 한국까지 찾아와서 졸랐으니까 한 거였지."
도우야 초밥은 참치 유통권을 갖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유통은 시작하지 않았다.
자기들 매장에 쓸 참치도 부족한 판국이었으니.
하수영은 도우야 히데키 회장이 무덤에 묻히는 것까지 보고 나서야 일본을 떠났다.
***
도우야 회장이 죽고 며칠 후, 일본에서 공문이 왔다.
프라임유통 사장 주성철이 공문을 들고 하수영을 찾아와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회장님, 도우야 초밥에서 공문이 왔는데요. 프리덤이 번역을 해준 걸 읽긴 했는데, 무슨 뜻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어디 봅시다. 부정, 부정, 부정, 긍정, 부정, 긍정, 부정, 부정을 복잡하게 섞어놓은 상습적 우회 만연체식 문장이네요."
"……그게 뭡니까?"
"여기 보세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금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 통석의 마음을 강제로 누를 수가 없음을 양해해 주길 바라는, 이렇게 꼬아놓은 문장들이 반복되는 거죠."
"이게 무슨 말인지 도대체 모르겠습니다, 회장님."
"앞으로 농산물 식재료 물량을 줄여서 받겠다는 통보입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그렇게 한 줄로 설명될 것을 뭐하러 이렇게 길게 썼답니까?"
하수영은 공문을 팔랑거리면서 피식거렸다.
"거봐. 얼굴에 재물운 없다고 했잖아."
-믿을 수가 없는 선택입니다. 우리 수영농장산 농산물 식재료는 세계 최고의 품질과 안전성을 자랑합니다.
농작물이라면 피할 수 없는 중금속등 위험물질 축적 현상.
어느 농작물이든 그런 위험물질은 미량 포함하고 있고, 그래서 식품안전기준이라는 게 있다.
하지만 엘릭서 비료와 성역의 버프를 먹고 큰 수영농장산 작물에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심지어 일본의 다른 농산물보다도 저렴한 가격으로 도우야 초밥에 팔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량을 줄이겠다니요. 말도 안 되는 선택입니다.
"네가 그래서 앞으로 물량을 줄여 받겠다는 뜻을 못 읽었구나."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인공지능은, 말도 안 되는 비효율의 수를 둔 인간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다.
"회장님, 그럼 앞으로 냉동 컨테이너 얼마나 줄여서 보내야 합니까?"
프라임유통은 수영농장 작물의 운송을 도맡아 한다.
때문에 주성철 사장은 당장 일본으로 갈 물량편을 얼마나 줄여야 하는 지부터 반응했다.
"줄일 필요는 없고요, 그냥 보내지 마세요."
"예? 아예 끊으란 말입니까? 하지만 줄이겠다고 했지 물량을 아예 안받겠다고는……."
"거기서 정확하게 요구하는 물량만큼만 준비해서 보내주면 됩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그렇게 답하시고요."
하수영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일어났다.
"그런데 아마 연락 안 올 겁니다."
"안 옵니까?"
"네, 옳다구나 하고 물량 달라고 연락 안 할 거예요. 이미 다른 일본 농작물 루트 다 마련해 놓고 공문보낸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농산물화물선 보내봤자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인수 거부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참치는 어떻게 합니까?"
"참치 컨테이너는 1/10 밑으로 줄이세요."
"그래도 될까요? 농산물을 줄여서 받겠다고 했지, 참치를 줄이겠다는 것은 아닌 거 같은데."
"신임 회장한테 알려줘야죠. 자기가 줄여서 받고 싶은 종류만 콕 집어서 줄여 받을 순 없다는 것을요."
주성철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쌀과 채소를 줄여서 받겠다고 했는 데, 정작 참치 물량이 타격을 받는다면?
도우야 초밥 입장에서는 뒤통수가 얼얼할 것이다.
"참치 가지고 항의하면 뭐라고 할까요?"
"그때 공문 보고 이야기하죠."
***
참치 냉동컨테이너가 1/10 밑으로 뚝 줄어들자마자 도우야 초밥에서 바로 공문이 날아왔다.
주성철은 전산으로 공문을 보냈고, 하수영은 답문을 준비했다.
하수영은 한글로 125,000글자쯤되는 분량의 답문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한국어의 위대함을 보여줄 시간이군. 이거 해석하면 한국어 천재로 인정해 주지, 신임 회장."
-저도 이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더 헛소리해라, 그럼 거래 끊어버린다. 그 두 줄을 125,000글자로 방대하게 늘려놓았군요.
"원래 모든 소설은 <태어났고, 죽었다>를 아주 길게 늘린 것이지. 자, 이대로 보내."
온갖 잡다한 수식어와 문장 배배꼬기, 은유와 비유를 섞어 놓은 답문.
도우야 초밥은 먼저 그것을 번역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번역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진짜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며칠 후, 결국 버티지 못했는지 도우야 초밥의 고리야마 상무가 직접 전화를 했다.
-하이, 고리야마 상무입니다.
"아, 오랜만이에요. 하수영입니다. 오늘 날씨를 보니 문득 제가 일본에 처음으로 참치 해체쇼를 벌이러 갔을 때가 생각이 나네요. 그때……."
하수영은 고리야마 상무가 말을 할 틈을 주지 않았다.
무려 1시간 30분 동안 일본 땅을 처음 밟은 시절부터 방대한 잡담을 늘어놓았다.
도저히 끝날 기미가 없자 고리야마상무가 중간에 말을 끊고 말았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하수영회장님, 제가 말씀을 올릴 수 있게 끔 허락해 주십시오.
"말씀하세요."
-저는 평생 선대 회장님을 모시며 함께해 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죽은 도우야 히데키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도 고리야마 상무는 항상 곁에서 보필했었다.
-저는 순장조입니다. 회장님이 돌아가신 이상, 저도 곧 회사를 떠나야 합니다. 주변 정리 도중 신임 회장님으로부터 마지막 명을 받았습니다.
"뭐죠?"
-하수영 회장님께서 보내신 공문의 뜻, 그리고 참치 물량이 왜 줄어들었는지 알아내라는 지시였습니다.
고리야마 상무의 음성은 차분했다.
회사를 떠나야 하는 운명을 덤덤히 받아들인 이의 담대함이 느껴졌다.
"상무님과 저의 인연도 보통은 아니었지요. 나중에 한국 오실 때 꼭 연락 주세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허리를 숙여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상무님, 그리고 돌아가신 회장님의 얼굴을 봐서 제가 세 줄 요약해드리는 겁니다."
-깊은 감사의 뜻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만 더 계약가지고 헛소리하면 전부 파토 내겠다, 그걸 좀 길게 늘려 써봤습니다."
-……제가 답문은 해석하지 못했지만 왠지 그런 의미일 거 같았습니다. 그럼 참치 물량은 언제쯤 정상으로 회복되는지……?
"불장난한 벌은 받아야죠. 앞으로 1년간은 지금 물량 유지합니다. 1년 동안 도우야 초밥이 하는 거 봐서 다시 결정하려고요."
-감사드립니다. 노파심에 드리는 말씀이지만, 신임 회장님께서는 아마 받아들이기 힘드실 거 같습니다. 절대 신임 회장님 편을 드는 게 아닙니다.
"그럼 더 좋지요. 거래 끊으면 되니까요."
-이미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셨군요. 건강하시길 빌겠습니다. 이제 회사를 위한 제 마지막 업무가 끝이 났습니다.
신임 회장한테 하수영의 말을 잘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
물론 신임 회장의 성정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표현에 치장을 하겠지만, 사실 자체를 감추거나 뺄 수는 없을 것이다.
***
도우야 초밥에서 소송을 제기했다.
갑작스러운 참치 물량 축소로 장사에 피해를 봤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수영은 주성철사장한테 연락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참치 컨테이너 전부 돌리세요."
때가 됐다. 배를 돌려라!